나는 독박골에 뿌리를 내려 산이 되고 가을이 되며 개천이 되었다.
북한산 자락과 연결되어있는 독박골은 유난히 돌멩이들이 많았다. 독박골이 ‘돌밭골’에서 비롯됐다는 유래를 모르는 독박골 아이들은 없다. 개울가에도, 산골짝에도 둥글둥글한 돌멩이들이 뜨거운 햇볕아래 누워 달궈졌다. 돌멩이만 많은 게 아니라 산속에는 집도 많았다. 친구들 따라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대문도 없는 집이 자꾸 나타났다.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골짜기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허름한 집들이 참새둥지처럼 산속에 박혀있었다. 사람들이 산속에 숨어사는 건지 모르겠지만 멀리서 보면 산은 엄마처럼 집을 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동네아이들은 굶주린 들개마냥 놀 거리를 찾아 계곡을 싸돌아다녔다. 산은 가만히 숲속으로 들어오는 개구쟁이들을 대접했다. 빠알간 뱀딸기를 내놓기도 하고 버섯을 내놓기도 했다. 우리들은 독버섯인지도 모를 그 위험천만한 식물을 겁도 없이 따먹었다. 산딸기 근처에는 뱀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외할머니는 신신당부했지만 뱀은 스스로 우리를 피해가는 듯 했다. 선녀바위에 올라가 소리를 질러댔고 험난한 족두리 바위를 기를 쓰고 올라갔다. 겁이 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두려움이 뭔지도 몰랐다. 위험이라고 해봐야 고작 넘어져 무르팍이 깨지는 상처쯤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넘어져 무릎에 피가 나면 곧 딱지가 앉고 시간이 지나면 피부는 말짱하게 아물었다. 그까짓 흉터쯤이야.
산도 우리가 반가운 듯 우리가 산등성이로 올라오면 우- 하고 몸 전체를 떨어댔다. 산만 아는 척을 하는 게 아니다. 풀도 일어서고 새들도 푸드득 소리를 냈다. 곤줄박이 녀석이 포로롱 조로롱 울어댔다. 녀석은 겁이 많은지 우리 앞에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좁다란 산길을 고불고불 걸어가는 것만으로는 심심했다. 쓸데없이 우리는 나뭇가지를 뽑아 꽃가지들을 훑으며 걸었다. 꽃잎이 더러는 나뭇가지에 부딪쳐 땅에 떨어졌지만 대게는 후드득 소리만 냈다. 단단한 소나무 기둥은 투두둑. 마른가지 소리는 타다닥. 여린 꽃잎들은 차자작 소리를 냈다.
우리는 산등성이에 올라앉아 멀리 보이는 동네를 바라보았다. 확 트인 사방을 둘러보는 일도 가슴이 뻥 뚫리는 일이지만 높은 곳에 오르면 세상이 정말로 만만해보였다.
“찬우야, 저기 우리 학교 좀 봐.”
“와, 무지 작다.”
실은 학교는 너무 멀어 보이진 않았다. 어림잡아 학교가 있을 지점을 대충 짐작했다. 동네가 한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보니 누추한 녹슨 철문도 보이지 않고 구멍 뚫린 담벼락도 보이지 않았다. 지붕은 우리들이 입고 있는 옷처럼 알록달록했다. 하얀 스티로폼을 올려놓은 지붕, 루핑 위에 파란 비닐을 덧댄 지붕, 돌멩이를 얹어놓은 지붕. 눈 아래 펼쳐진 것은 장난감 도시처럼 작았다. 뚜껑을 닫아놓은 장독대가 올망졸망 놓여있는 앞마당도 내 손바닥보다 더 작게 보였다. 집도 조그맣고, 사람도 개미처럼 작았다. 우린 서로 자기네 집이 크다고 우겨댔다. 누군가 말했다.
“집보다 이 넓은 들판이 훨씬 좋다.”
그 말은 맞는 말이다. 산에 올라와서 풀피리를 만들어 삑삑 불어대거나 꽃대로 복조리를 만들다보면 까맣게 산 아래 일들은 잊어졌다. 구멍이 송송 뚫린 개미굴 입구에 흙으로 살짝 가려 우왕좌왕하는 개미떼를 구경하기도 하고 멀쩡한 소나무 껍질을 벗기다가 손에 찐득한 송진을 묻히기도 했다.
“야, 너희들 새알 볼래?”
“새알? 그게 어딨어?”
나는 웃옷을 훌떡 까서 가슴에 붙은 새알을 보여주었다. 그 새알은 바로 내 젖꼭지다. 나는 아기마냥 젖꼭지처럼 손가락을 빨았다. 내가 왼손 엄지손가락을 빨 때 다른 오른손으로는 왼쪽 젖꼭지를 만지작거렸다. 그래서 내 왼쪽 젖꼭지는 언제나 동그란 알 모양으로 부풀어있었다. 할머니 말대로 부모 사랑을 제대로 못 받아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집에만 있으면 나는 애기처럼 손가락을 빨며 방바닥을 뒹굴었다.
부푼 젖꼭지 부근의 피부를 살짝 들어 올리자 마치 둥지 안에 새알이 들어있는 것 같은 모양이 만들어졌다.
“정말 새알 같네.”
녀석들은 나처럼 새 집을 만든다고 웃옷을 올려 모두 젖꼭지를 들어 올렸지만 나처럼 동그랗고 예쁜 새알이 들어있는 새집은 만들지 못했다. 대신 녀석들은 바위틈에 둥지를 튼 진짜 새집을 찾아내었다. 짙은 잿빛 털을 가진 딱새 새끼들은 어미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서로 먹겠다고 노란 부리를 벌리고 짹짹거렸다. 어미 새를 보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우리는 죄다 산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제야 두고 온 집이 생각이 난 것이다. 이제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산 아래 내려오면 길 잃은 개미들처럼 갈팡질팡했다. 다들 집에 들어가기 싫은 눈치다.
“더 놀고 갈까?”
“…….”
정말로 더 놀고 싶어서 물어보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놀고 싶다는 것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도 아닌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다. 집으로 가야되는 건 알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썩 내키지 않다. 시작도 하지 못한 숙제가 떠올랐고 괜한 트집으로 손찌검을 하는 아버지의 두터운 손바닥도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할머니하고 사는 찬우만 빼고는 우린 모두 싸움쟁이 어른들과 같이 살고 있었다. 독박골 어른들은 주먹질에 물건을 부수는 건 예사다. 집안에서 싸우는 소리가 길가까지 들렸고 길거리에서도 어른들은 걸핏하면 시비가 붙었다. 술집 문짝이 와장창 부셔지는 소리가 들리면 어느 틈에 몰려들었다. ‘안주일절’이라고 쓴 술집 유리창은 하루걸러 와장창 깨졌고 술 취한 어른은 찢어진 러닝셔츠를 펄럭이며 비틀거렸다. ‘이 쌍놈의 동네에서는 인간 말종만 산다’고 술집 아줌마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이상한 건 다들 싸움구경을 좋아하는 듯했다. 일찍 쌈판이 끝나면 사람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흩어졌다. 무식하기는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암놈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수놈은 사람이 보거나 말거나였다. 예의를 배운 적이 없는 발정난 개들은 민망하게 사랑을 나눴다. 간혹 서로의 엉덩이가 붙어있는 개를 발견하게 되면 그냥 지나칠 리 없는 우리다.
“떨어져, 떨어져.”
사내 녀석들은 엉덩이를 떼지 못하는 두 마리를 향해 돌멩이를 던졌다. 깨갱거리며 두 마리의 개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지지직. 두 놈 다 달아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결국 힘이 센 놈이 이끄는 대로 다른 한 놈은 질질 끌려갔다. 똥개를 괴롭히는 우리들은 똥개보다 못한 어른들을 닮아갔다.
우리들은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산을 쏘다니다가 해가 넘어가려는 즈음에는 공터에서 놀았다. 공터 한 귀퉁이에서 사내 녀석들은 찢어져서 달달거리는 축구공을 공중으로 뻥뻥 찼고 나와 희옥이는 분필로 땅따먹기를 하고 있었다. 동네 어른들도 뒷짐을 지고 공터에서 어슬렁거렸다. 어른들이 저녁밥 먹으라고 찾으러 나올 때까지 놀고 있을 무렵 처음 보는 아저씨가 땅에 기둥을 박고 있었다.
“거, 뭐하는 거요?”
“예, 제가 이곳에서 천막을 치려고 하는데요.”
“천막?”
“뭐 하시게?”
“이곳에서 예배를 보려구요.”
“예배?”
“예. 어르신.”
“아니, 이런 공터에? 그리고 여긴 임자가 있는 땅이요.”
“알고 있습니다. 일요일에만 사용하고 예배가 끝나는 즉시 거둘 겁니다.”
동네 어른들과 낯선 아저씨가 주고받는 대화를 듣게 된 나와 희옥이는 하던 짓을 멈추고 남자 곁으로 다가갔다. 단정하게 머리를 빗은 아저씨의 인상은 사진 속의 장교군복을 입고 있는 아버지와 분위기가 흡사했다.
“목사님! 우리가 좀 도와드릴까요?”
공을 차고 있던 찬우가 불쑥 나섰다.
“그래? 좀 도와주겠니?”
땀 구정물로 얼굴이 얼룩덜룩한 찬우는 숨을 몰아쉬며 벌써 천막 줄을 잡고 끌어당겼다.
“예배당? 허참.”
동네 어른들은 혀를 끌끌 차더니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나 슬금슬금 흩어졌다.
독박골에 사는 사람들은 산속에 있는 절이나 무당집을 찾아갔다. 외할머니도 그랬고 외할머니랑 10원짜리 화투 내기를 하던 박 씨 할머니도 무당을 찾았다.
“독박골은 바위가 많아 기가 센 동네야.”
외할머니는 바위가 많은 동네는 기가 세기 때문에 산신령이 많은 거라고. 산신령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그래서 그런지 바위가 많은 독박골에는 절이나 무당집이 많았다. 울긋불긋한 깃발이 꽂혀있는 집은 무당집이고 기와지붕 밑에 단청색으로 칠해진 것은 절이었다. 무당집과 절은 앞집과 뒷집에 사는 이웃처럼 지내는 것 같았다.
굿을 하는 날이면 꽹과리 소리가 온 산을 다 뒤흔들었다. 굿하는 집 마당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웅성 구경을 하고 있었고 우리도 기웃거리며 그 안을 살폈다. 무당은 장군처럼 무사 복을 입고 칼을 휘두르며 춤을 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굿판은 싸움구경보다는 덜 재미가 있었다. 호기심에 기웃거리긴 했지만 귀신이 내 목덜미를 붙들 것만 같아 가까이 다가가기가 겁이 났다. 그래도 할머니가 시루떡을 얻어오면 팥가루를 질질 흘리며 떡을 먹었다.
회색 빛깔을 싫어하는 외할머니는 ‘중놈’이라고 욕을 했으면서도 가끔씩 절을 찾았다. 절을 찾아간 할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스님에게 깍듯이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절을 하기도 했다. 난 절에서 주는 나물밥을 먹어보기도 했는데 산에 올라오느라고 배가 푹 꺼진 터라 절에서 주는 밥은 꿀맛이었다. 어느 날 할머니는 단박에 발길을 끊었다. 아픈 할아버지를 위해 천 배 기도를 했는데 소용이 없었다고 여기는 듯했다. 아무튼 변덕스런 어른들도 나중에는 죄다 천막교회로 몰려들었다.
언젠가 찬우는 들깨를 입안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우리 아버지 같으려면 차라리 너처럼 아버지가 아예 없는 편이 더 나아.”
“그래도 아버지가 안 계시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넌 모를 거야.”
“네가 아버지한테 매를 안 맞아봐서 하는 소리야.”
“그건 니네 아버지가 화풀이 하느라고 그래.”
“화풀이?”
“어른들이 다른 사람을 때리는 건 자기 자신한테 화가 나서 그러는 거래.”
“그럼 자신한테 화풀이를 해야지 왜 우리들한테 해? 그건 비겁한 행동이잖아.”
“글쎄, 그건……, 나도 왜 그런지 몰라.”
“너네 부모님은 어디계시니?”
“응, 멀리 돈 벌러 가셨데.”
“그랬구나.”
돈 벌러 갔다던 찬우 부모님은 내가 독박골을 떠날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찬우가 공터에 들어선 천막교회 목사님을 따랐던 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천막교회가 공터에 세워지게 된 일은 우리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대단한 사건이었다.
예배당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자세히는 알 수는 없었지만 동네에 새로운 놀 거리가 생긴다는 건 신나는 일이었다. 그렇잖아도 목사님이 우리는 모두 일요일에 교회를 갈 참이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밖에서 노는 일도 줄어들 테고 마침 소꿉놀이에 싫증이 나던 차였다. 소꿉놀이 할 때마다 광훈이는 술 취한 사람처럼 휘청휘청 걸었다. 그리고는 자기 아버지처럼 잡초를 뜯어 만든 밥상을 곧잘 엎었다. 새엄마랑 살고 있는 희옥이는 내게 밥 하라고 빽빽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할머니처럼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했다. 몇 번씩 사금파리에 풀을 뜯어 올려놓은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끝내고 잠을 자는 일을 되풀이했다. 잠을 잘 때는 희옥이와 내가 번갈아가며 찬우 옆에 누웠다. 땅바닥에 깔아놓은 신문지는 이내 돌멩이 자국으로 우둘우둘 구멍이 뚫렸다. 너무 힘을 주어 몸을 비틀면 신문지가 찢어지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소꿉놀이의 아침저녁은 아주 빨랐다. 눈을 감으면 밤이 되었다가 눈을 뜨면 금세 아침이 되었다. 아침이 되면 나는 또 잡초를 뜯어 흙을 담은 상을 차렸다. 그렇게 스무 번이 넘게 밥상을 차리고 나면 누가 먼저 ‘집에 가자’는 말을 꺼낸 것도 아닌데 신문지를 걷고 장난감 그릇들을 챙겼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작된 놀이는 언제나 싱겁게 끝났다. 한참 푹 빠져 놀다가도 저녁 먹으라는 소리가 들리면 미련 없이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남겨진 애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애를 붙잡거나 더 놀자고 떼를 쓰지는 않았다.
지난 것에 미련을 두지 않고 새로운 것에 열린 마음이 되었던 우리였으니 예배당을 기웃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낙엽이 지고. 다시 꽃이 피고. 그렇게 계절이 돌아간다는 것을 아는 독박골 아이들은 새것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관심을 베풀었다. 가을이 되면 어른들의 한숨소리가 더 깊어진다는 이유를 나중에 크면서 이해하게 됐지만 어른들이 걱정하는 것만큼 세찬 바람이 부는 겨울은 우리를 슬프게 만들지는 못했다. 잔인한 겨울에도 개구리의 알은 수초에 동동 매달려 살고 잡초처럼 뒹굴어도 시작과 끝이 맞물려있음을 알았기에 상처도 쉽게 잊고 스스로 자신을 추스를 줄 알았다.
- 다음은 장편소설 독박골 산1번지 "제12화 난장이가 되어버린 어른들" 이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