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갓집 옆집엔 소리하는 할머니가 살았다. 그 집 곁방에 병찬이네가 살았다. 소리 할머니는 멋쟁이였다. 언제나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우리 할머니가 입고 있는 한복과는 옷감 질이 달랐다. 외할머니가 입는 치마는 뻣뻣한 무명치마였지만 소리 할머니 치마저고리는 얇고 보드라워 보였다. 소리 할머니의 친언니가 아주 유명한 명창이라고 했다. 하지만 소리 할머니는 친언니처럼 텔레비전에는 나오지 않았다. 유명한 언니를 둔 소리 할머니가 왜 이런 동네로 이사 왔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소리 할머니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쇳가루가 끓는 소리가 났다. 창을 많이 하면 목소리가 썩는 거라고 할머니가 그러셨다. 고운 한복 때문에 외할머니가 질투한다는 걸 모를 내가 아니다. 소리 할머니가 그렇게 멋진 옷을 입고 독박골에 사는 모습이 안타깝긴 했다.
그러니까 독박골에는 불쌍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다. 그렇지만 불쌍하다고 해서 매일 슬퍼하거나 우울해하진 않았다. 떡장수 귀대엄마도 언제나 싱글벙글 웃었고 물지게를 지고 나르는 물장수 아저씨도 할머니가 준비해둔 소주 한 잔을 들이키며 ‘감사하다’는 말을 연거푸 했다. 뭘 감사하다는 건지. 하긴 공짜 술이니 감사할 일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굽실대며 여러 번 감사를 반복할 것까지야 없는 일인데. 나는 물장수 아저씨가 술에 취해 물지게를 지다 쓰러질까 염려되었다. 겨울에는 물이 흘러내린 바위가 빙판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용하게도 물장수 아저씨는 부엌바닥에 묻은 독 안에 물을 한 가득 채웠다.
정작 감사 하지 못하는 건 오히려 가진 게 많은 외삼촌이었다. 외삼촌 방은 독박골 살림살이에 어울리지 않게 방안에 침대를 놓았다. 스프링이 꺼진다고 할머니는 내게 침대 근처에는 가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나는 몰래 침대 위에서 뛰었다. 쿨렁쿨렁 푹신한 침대를 가진 외삼촌이 부러웠다. 그런데 외삼촌은 외할아버지를 원망했다. 그리고 “늦둥이로 태어난 자기를 무슨 수로 공부시킬 거냐”고 따졌다. 재산을 불려놓아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재산 다 까불리고 독박골에 들어왔다고 가끔씩 할아버지에게 목에 파란 힘줄을 세우며 소리를 질렀다.
외삼촌의 발작이 시작되면 외할머니는 귀대어멈을 불렀다. 귀대어멈은 떡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이곳저곳으로 떡을 팔러 다녔다.
“요번에 우리 아들이 대학 시험에 붙을 건지 어쩔 건지, 기도 좀 해줘봐.”
귀대어멈은 무슨 귀신이 들렸는지 기도를 하면 오른팔을 떨었다. 팔이 흔들리면 ‘오케이’고 안 흔들리면 ‘노’였다. 귀대어멈은 눈을 감고 촉새처럼 나온 입술을 오물거리며 기도를 했다. 외할머니와 나는 눈을 뜨고 팔이 흔들리는지 안 흔들리는지 쳐다보았다. 잠시 후 오른팔이 마구 흔들렸다.
“아이고, 올해는 우리 아들이 합격을 하겠네.”
기쁜지 외할머니는 기도를 자꾸자꾸 시켰다. 오른팔이 신기하게 마구 흔들렸다. 나는 일부러 팔을 흔드는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기분이 좋아진 외할머니는 아예 저녁밥까지 먹고 가라고 귀대어멈을 붙잡았다. 벌써 외삼촌이 대학시험에 붙은 것 마냥 외할머니는 들떠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외할머니가 나이 마흔 셋에 간신히 낳은 아들인데다가 어릴 적 총소리에 놀라 그 충격 때문에 심신이 허약하다고 늘 걱정했다. 그런 귀한 아들이 대학에 몇 해 째 떨어졌으니 온 집안 식구가 외삼촌 비위를 맞추느라 쩔쩔 맬 수밖에.
외삼촌이 경기를 하듯 소리 지를 때마다 외할아버지는 까만 얼굴색을 하고 뒤뜰로 나가셨다. 그리고 한참 만에 돌아오셨다. 난 외삼촌의 하얗게 질린 얼굴과 외할아버지의 까만 얼굴을 번갈아가며 봤다. 외할아버지가 아프게 된 건 다 외삼촌 때문이다. 아니 결정적으로 외할아버지가 자리에 몸져눕게 된 건 복실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외갓집은 개를 키웠다. 복실이라는 누런 개였는데 외할아버지가 유독 아꼈다. 잡종이긴 해도 똥을 먹지는 않았다. 덩치는 무지 큰 게 애교는 어찌나 많은 지 할아버지만 나타나면 사방팔방 털 가루를 휘날리며 온몸을 흔들어댔다. 꼬리를 흔들면 빳빳한 고추도 덩달아 징그럽게 흔들렸다. 외할아버지는 개만 좋아한 게 아니고 새도 좋아했다. 십자매 한 쌍을 넣은 새장에 차조를 넣어주고 물을 갈아주었던 것도 모두 외할아버지 담당이었다. 게다가 닭까지 키웠는데 가엽게도 하루 밤 자고 일어났더니 피 묻은 깃털만 남기고 없어졌다. 닭이 사라져서 그런지 외할아버지는 더욱 개에게 정성을 다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복실이가 갑자기 안방으로 쳐들어왔다. 복실이 입에선 끈적끈적 침이 거미줄처럼 대롱거렸다. 미끄러운 비닐 장판에 휘청하며 쓰러지면서도 균형을 잡으려 애를 썼다. 점심밥을 먹던 우리는 갑작스런 복실이의 행동에 놀라 모두 밖으로 뛰쳐나왔다.
“쯔쯔, 쥐약이 묻은 음식을 먹은 모양이네.”
동네 아저씨가 와서 미쳐 날뛰는 복실이를 끌어냈다. 그런데 어떻게 죽는 그 순간에 집을 찾아들어왔는지 신기하다. 복실이가 안방까지 들어와서 발발 떨었던 건 외할아버지에게 살려달라는 몸짓이었을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복실이가 그렇게 죽고 난 다음에 아예 자리에 누워버렸다. 외삼촌이 소리칠 때만 까맣게 변했던 얼굴은 아예 새까매졌고 배도 아이 밴 생선가게 아줌마처럼 커다랗게 불러갔다. 외할머니는 간장빛깔 오줌이 들은 요강을 하루에도 몇 번씩 비워야 했다. 가끔 외할아버지가 내 손을 잡아주었는데 그때마다 할머니는 나를 내쫓고 외할아버지를 나무라셨다.
“병 옮게 언네 손은 왜 잡아요.”
외할아버지는 하얗게 백태가 낀 혀를 움직이며 뭐라 웅얼거렸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외할머니는 담장을 뚫고 자라는 소나무 때문에 담장이 무너질 거라고 늘 걱정했고 외할아버지는 살아있는 생명을 죽여 버리며 안 된다고 말렸다. 소나무도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던 외할아버지가 아픈 걸 아는지 솔잎은 점점 갈색으로 변해갔다.
“저거, 아주 요망한 소나무네.”
닭장 안에 닭들이 죽고, 복실이가 죽고, 그리고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을 치르고 난 후에 외할머니는 혼자 자기 무섭다고 외삼촌과 함께 잤다.
“할머니! 왜 할아버지가 계셨던 방에 못 들어가?”
“그건 죽은 사람하고 정을 떼느라 그런 거야?”
“왜 정을 떼야 돼?”
“안 그러면 자꾸 죽은 사람이 생각이 나거든.”
그래서 그런지 나는 죽은 외할아버지 생각이 자꾸 나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억지로 할아버지와 정을 떼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외할머니는 더 이상 외할아버지 생각은 하고 싶지 않은지 아예 집을 복덕방에 내놨다. 복덕방 아저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람들을 데리고 찾아왔다. 외할머니가 천막교회에 다니게 된 것도 죽은 할아버지가 무서워서라고 했다.
내게도 천막교회를 가게 된 이유는 있었다. 겨레가 산을 타다가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뜻밖에 겪게 되는 충격은 사람을 겁쟁이로 만들었다. 산에만 오르면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자신만만했는데 겨레가 산에서 내려오다가 그만 바위에서 미끄러진 것이다. 얼굴이 피범벅이 된 겨레의 얼굴은 보기에 끔찍했다. 이마가 찢어져서 병원에 가서 꿰매야했다. 그 사고 이후로는 산에는 자주 올라가지 않았다. 엄마가 사고 난다고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기도 했고 산 대신 교회에 가는 걸로 놀이를 바꾸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가는 교회는 아쉬웠다. 교회에 매일 가고 싶었지만 천막교회는 일요일에만 공터에 세워졌다. 솔직히 내가 그토록 교회에 관심을 쏟게 된 건 다름 아니라 연필 때문이었다. 교회에 출석하면 상으로 연필을 한 자루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일요일에 교회에 오면 받을 연필 개수를 계산했다. 우와, 상당했다. 나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게다가 목사님은 친구를 데려온 사람에게는 상으로 공책도 나눠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동네 친구들을 끌어 모았다.
목사님은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다. 얘기라면 내가 좋아하는 거다. 흰 머리를 뽑을 때마다 할머니는 내게 옛날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내가 할머니의 흰 머리 뽑기를 반기는 때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 뿐이었다. 날이 맑으면 집밖으로 나돌았지만 비가 내리는 날은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옻을 탔다. 멋 부리기를 좋아하는 할머니가 염색을 못한다는 건 속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할머니는 언제나 까만 옷솔과 족집게를 쟁반에 항상 준비를 해두었다. 흰머리를 뽑아 까만 옷솔에 올려놓으면 흰머리가 잘 보였다. 나는 옷솔 위에 얹은 흰머리가 수북하게 쌓일 때까지 흰머리를 뽑았다. 구부리고 앉아 머리 뽑는 일은 아주 힘이 들고 귀찮았다. 하지만 염색약 독이 올라 풍선처럼 부푼 할머니의 불쌍한 얼굴을 생각하면 싫다고 뿌리칠 수도 없었다. 하기 싫은 표정을 짓는 나를 달래느라 할머니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냄새 나는 할머니 머릿속을 뒤지는 건 싫었지만 이야기는 재밌었다. 장화홍련전이나 심청전 뿐 아니라 한글을 깨우친 할머니는 소설도 많이 읽어서 동경에 유학 갔다가 본부인을 버리고 신여성하고 살림을 차린 남자의 이야기며 도박에 빠진 남편에게 덮고 자던 이불마저 빼앗긴 불쌍한 여자의 인생도 술술 들려주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느새 옷솔에 수북하게 흰 머리카락이 쌓였다. 그걸 보는 외할머니는 무척 흡족해했다. 왜냐면 할머니는 흰머리가 뽑힌 만큼 검은 머리가 많아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쩌다 실수로 검은 머리까지 뽑혀져 나올 때는 외할머니는 아까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점점 외할머니의 머리통은 훤하게 속이 들여다보였다. 검은 머리는 나지 않고 흰 머리 뿐인데도 외할머니는 자꾸 흰 머리를 뽑으라고 했다. 훤한 외할머니 머리통을 볼 때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대머리가 된 게 내 책임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목사님은 우리들에게 천사와 같이 있는 아기의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그 아기는 말 밥그릇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우리는 우리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있다는데 슬퍼서 눈물을 흘렸다.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는 개집에 들어가서 잠을 자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목사님은 이야기를 끝마치고 나면 그림을 한 장씩 우리에게 나눠주었다. 마리아라는 엄마와 예수라는 이름의 아기가 웃고 있는 그림이다. 마리아? 메리? 크큭. 나 혼자 웃었다. 예전에 키웠던 강아지 이름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색연필로 부지런히 색을 칠했다. 노아 방주 이이야기는 정말로 흥미로웠다. 얼마나 큰 배 인지는 모르지만 코끼리랑 사자랑 호랑이가 쌍으로 들어가고 또 다른 짐승들도 들어가는 걸보면 동물원만한 큰 배였을 것이다. 나는 목사님 설교를 들으며 머릿속에 배의 크기를 상상했다. 하나님이 동물도 홍수가 나기 전에 배에 피신시켰다는데 진즉에 내가 교회를 다녔더라면 산에는 올라가지 않았을 테고 겨레가 다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바위에서 떨어진 사고 때문인지 겨레는 멀쩡하게 있다가 갑자기 숨을 쉬지 못했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겨레가 숨을 쉬지 못한다는 말은 전해주지 않았다. 괜히 말했다가 혼만 더 날 것만 같았다. 다행히도 겨레는 죽을 것처럼 숨이 넘어가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괜찮아졌다.
어쨌거나 나는 교회에 취미를 붙이게 되었다. 우리는 예배가 끝나고 나면 길거리로 다니면서 교회선전을 했다. 찬우는 큰북을 메고 개천을 따라 걸었다. 우리는 친구들의 손을 맞잡고 찬우의 뒤를 따랐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서 …….”
그렇게 목청껏 소리를 높여 찬송가를 불러도 창피한 줄 몰랐다. 오히려 사람들이 쳐다보면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목사님은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 줄을 잘 알았다. 애들은 연필을 좋아했지만 어른들은 영화를 좋아했다. 어른들을 위해 토요일 저녁이면 소나무 가지에 스크린을 걸어놓고 영화를 틀어주었다. 영화를 유난히 좋아하던 외할머니도 빠지지 않고 영화를 보러 공터에 갔다. 동네 깡패들이 어슬렁거리던 공터는 토요일 밤이 되면 노천극장으로 바뀌었다. 극장이라곤 가본 적이 없던 우리에게 영화구경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영화를 보여준다는 소문이 나자 이젠 교회에 나오라고 선전하는 종이쪽지를 나눠주지 않아도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독박골 고개 아래 사는 친구 녀석들이 학교 복도에서 나와 찬우에게 과자를 갖다 주는 것도 다 영화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나만 만나면 좋은 자리를 맡아달라고 귀찮게 졸라댔다. 영화 상영 때문에 주말이면 독박골은 축제 분위기였다. 나무에 매달은 스피커에서는 영화 상영을 알리는 목사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독박골 주민께 알립니다. 오늘은 ‘쿼바디스’라는 영화를 상영할 예정입니다. 장소가 넓지 않은 관계로 서둘러 나오시길 부탁드립니다.”
토요일 저녁이 되면 밥숟가락을 놓자마자 사람들은 공터로 몰려들었다. 푸르른 꽁지를 팔랑이며 날아다녔던 개똥벌레는 영화스크린에서 뿜어지는 빛 때문인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앞자리는 대체로 아이들 차지였다. 맨 앞줄은 찬우와 내가 여분으로 여러 자리를 미리 맡아놓았다. 평소에 나한테 잘해주었던 친구들을 위해서다. 자리 때문에 친구들끼리 말다툼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가 나서서 아이들의 시비를 가려주었다.
“목사님이 원래 영화배우 출신이래.”
“어쩐지. 생김생김이 뭔가 다르다 했어.”
“근데 어떻게 목사가 됐데?”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무슨 사연이 있것지.”
어른들은 확실히 우리 조무래기들하고는 달랐다. 우리는 연필 한 자루와 공책에만 관심을 두었는데 동네 사람들은 목사님에게 관심을 두었다. 독박골에 젊은 남자가 들어온 것도 화제지만 더더군다나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었다는 건 우리에게도 놀라운 정보였다.
설교하는 목사님의 모습은 교장선생님보다도 더 위엄이 있었다. 목사님은 우리가 죄를 갖고 있다고 했다. 죄인이라는 말에는 할머니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우리가 모두 죄인이니께 경찰서를 가야 헌단 말유?”
꼬장꼬장한 박 씨 할머니가 따질 듯이 목사님께 따지고 들었다.
“할머니, 그 말이 아니구요. 우리가 영적으로 죄인이 되었다는 말이에요. 그 죄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니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믿으면 그 죄가 용서를 받아요.”
“우리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왜 십자가에 달린데?”
“십자가는 또 뭐꼬?”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서는 흉악범에게는 십자가에서 죽는 형벌 내리는데 예수님은 죄가 없이 그 십자가 형벌을 받았어요. 왜냐면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기 위해 손과 발에 못을 박아 십자가에 매달리는 벌을 받게 된 거죠.”
“이스라엘? 그럼 시방 우리가 서양 신을 믿어야 한단 말여?”
“거 좀, 잠자코 듣기나 하쇼.”
외할머니는 목사님의 설교를 진지하게 들었다. 예수만 믿으면 천당에 갈 수 있다는 말에 천막교회에 오면 명절날 극장자리를 차지하는 것처럼 서로 앞자리에 앉겠다고 싸웠다.
“나이가 내가 제일 많으니까 내가 앞자리에 앉아야 해.”
“무슨 소리야. 죽는 건 순서가 없는 법이야.”
초겨울 햇살은 참새 혀처럼 짧았다. 날씨가 추워지자 공터에 예배를 보러오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었다. 교인이 점점 줄어서 그런지 목사님은 집집마다 심방을 다녔다. 갈 때마다 우리를 데리고 다녔다. 왜냐면 우린 산속을 손바닥처럼 꿰고 있었기 때문이다.
울타리도 없이 맞바로 창호지문이 보이던 담집, 꺼멓게 그슬린 돌멩이가 한 가운데 놓여있던 개고기 집. 북한산 계곡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에게 커피를 타주던 빨간 천막집. 포도밭 너머에 있는 토담집.
물론 우리 집에도 목사님은 찾아왔다. 하지만 아버지의 표정은 바위만큼이나 단단했다. 아버지는 대꾸도 없이 뒷짐을 지고 먼 산만 바라봤다. 나는 행여나 아버지가 목사님을 두들겨 팰까 봐 조마조마했다. 나는 목사님께 다른 집에 가자고 팔을 잡아끌었다. 뒤도 돌아다보지 않는 아버지에게 꾸벅 인사를 하는 목사님이 가여워보였다.
“찬우야, 니네 집은 어디니?”
“우리 집은……요.”
목사님이 찬우네 집에 가자고 했지만 끝내 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나도 찬우네 집엔 한 번도 간적이 없었다. 찬우가 할머니랑 살고 있다는 것밖에 찬우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럼, 다음에 형편이 되면 찬우네 집에도 한 번 가자꾸나.”
“예.”
찬우는 며칠을 굶은 아이처럼 대답했다. 집에 대한 부끄러움은 독박골 아이들 모두가 앓고 있는 속병이었다. 집어갈 것 없는 세간들, 덜렁대는 문짝, 너덕너덕 쌓아놓은 집기들. 독박골에 산다는 것 자체가 약점이 되었고 놀림감이 되었다. 자신의 집을 공개하길 꺼려했던 그 집에 엄마가 며칠 동안이나 숨어있었다니.
- 다음은 장편소설 독박골 산1번지 "제13화 날개 잃은 장군" 편이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