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날개 잃은 장군

세상은 패잔병으로 살아가던 퇴역군인의 절망을 이해하지 못했다

by 권소희
013-001-cover.jpg

우리 집 마루 벽에는 커다란 훈장이 걸려있다. 학도병으로 6.25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아버지가 받은 화랑무공 수훈장이다. 그 커다란 액자는 좁은 벽 하나를 전부 차지했다. 고물상 아저씨도 현금으로 쳐주지 않는 훈장은 거치적거리는 애물단지이기도 했다. 옷장이 부족해서 훈장이 걸려있는 뾰족한 못 위로 아버지의 겉옷이 걸리고 엄마의 스웨터가 걸렸다. 옷더미에 가려 훈장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자존심도 옷으로 덮여진 훈장처럼 독박골 땅에 묻혀갔다. 어쩌면 독박골은 동정조차 거부하며 살아가는 아버지의 자존심을 위해서는 가장 적당한 안식처였는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독박골에서 없다는 것은 아무런 흉이 되질 않았다. 모두들 그날그날 얻은 품삯처럼 간당간당하게 살았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가진 거라곤 눈을 뜨면 쏟아지는 햇살이 전부였고 더 있다고 자랑해봐야 기껏 쥐똥 섞인 쌀 한 포대였다. 애초에 물욕은 안중에도 없던 아버지였으니 독박골에서 화석이 되어간다고 해도 크게 잘못된 일도 아니었다. 잘못이라면 오히려 아버지의 빈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던 우리에게 있었다. 가족들은 전쟁에서는 영웅이었지만 현실에서는 패잔병이 되어야했던 퇴역군인의 절망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무신경했다.

026-wing-0.jpg

“어머, 저 사람 당신하고 군대 동기잖아. 이젠 장관이 되어 텔레비전엘 다 나오네. 당신이 찾아가서 일자리 좀 부탁해보면 안 돼요?”

“쓸데없는 소리!”


처자식을 위해서라도 한 번 쯤 고개를 숙여보는 게 의당하다는 엄마의 의견은 늘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렸다. 실수라면 멈춰서야 할 때 엄마가 그 타이밍을 조절하지 못하는 데 있었다. 엄마의 푸념은 시도 때도 없었다. 다른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꼭 군대동기와 비교하고 진급명단에서 누락되어 대위계급을 끝으로 군복을 벗어야했던 군대서열에 딴죽을 걸었다. 전우를 찾아가 보라는 둥. 다른 사람들은 5.16군사혁명에 가담해서 죄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데 당신은 왜 혁명 때 빠졌냐는 둥. 종알거리다가 엄마는 결국 아버지의 매를 벌었다.


아버지에 대한 엄마의 기대치는 돈벌이하고 연관되었지만 나의 기대치는 군복을 입은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학교 운동장이 예비군 훈련장으로 바뀌던 날, 어김없이 아버지는 예비군들 앞에 서있었다. 집에 걸려있는 사진 속 모습처럼 아버지는 늠름했고 무척 자랑스러웠다.


“저기 예비군들 앞에 서있는 사람이 우리 아버지야.”

“니네 아버지 장군이니?”

“육군 대위야.”

“장군보다 더 높아?”

“그와 비슷해.”


군인 계급이 장군밖에 없는 줄 아는 녀석들과 말씨름 한다는 건 피곤한 일이다.


“우리 집에 화랑무공훈장 있다.”

“그럼, 니네 아버지 상이군인이니?”

“야, 훈장은 다친다고 타는 게 아니고 전쟁터에서 세운 공로가 있어야 타는 거야.”

“그럼, 니네 아버지 대단하신 분이구나.”


아이들이 꼬리를 내리면 그제야 나는 얼른 아버지 자랑을 멈췄다. 자랑할 건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일 년에 서너 번 있는 예비군 훈련 말고는 아버지는 거의 일을 하지 않았다. 어깨에 견장을 달고 가슴에 훈장을 달고 찍은 사진처럼 일 년 열두 달 훈련만 했으면 좋겠는데 일거리 없는 아버지의 아침햇살은 게으르고 아주 길었다.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잠을 자는 아버지를 깨운 건 큰아버지였다.

026-wing-1.jpg

시골에서 방앗간을 하시는 큰아버지가 서울로 올라오셨다. 아버지보다 더 콧대가 넓고 배가 불룩하게 나온 큰아버지는 꾸벅 인사하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래야, 이 돈 갖고 가서 먹고 싶은 것 사먹어라.”

“형님도, 어린애한테 무슨 그리 큰돈을 주세요.”


행여 그 말에 큰아버지의 마음이 바뀔까봐 나는 얼른 돈을 손에 쥐었다. 5천 원이었다. 우와! 난생처음 받아보는 큰돈이었다. 이 돈이면 몇 날 며칠을 과자를 입에 달고 살아도 되겠다.


“감사합니다.”

“미래를 길에서 보면 큰아버지가 몰라보겠구나. 어릴 적에는 잘 몰랐는데 이젠 정말 예쁘게 컸네. 제수씨를 닮아 크면 미인이 되겠어.”

“기집애가 노는 게 꼭 사내 같아서 말이죠.”

“어릴 때는 그렇게 커야 돼. 철이 들면 달라지지. 근데 종일이 녀석은 철이 들기는커녕 싹수가 안 보이니…….”


씨름선수처럼 몸집이 건장한 큰아버지가 쩨쩨하게 종일 오빠 흉을 보러 우리 집에 왔을 리는 없고. 직업도 없는 아버지에게 돈을 꿔달라는 부탁을 하러왔나? 그럼, 나에게 준 이 5천원은? 어린 내가 어른들의 세계를 짐작으로 추리를 한다는 건 무리였다. 잘 곳도 마땅치 않은 우리 집을 갑자기 찾아온 걸 보면 무슨 일이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 궁금증은 저녁밥을 먹을 때 풀렸다. 방이 한 칸뿐이어서 큰아버지는 그날로 시골로 내려가야 했다. 그날 저녁 반찬은 큰아버지가 사온 소고기로 만든 양파소고기 볶음이었다. 고기에서 우러나는 단맛이 밥알과 섞여 고소한 맛을 냈다. 고기를 얼른 삼키기가 아까워서 오래오래 씹었다. 고기가 뭉그러져 죽처럼 될 때까지 씹었다. 저녁식사 내내 아버지와 엄마는 큰아버지 이야기를 하느라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026-wing-2.jpg

“이번에 종일이가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서울로 올라오고 싶다네. 촌구석에 있으면 대학에도 못 갈 것 같으니까 서울로 와서 몇 년이 걸려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시키겠다는 거야. 아무래도 공부를 하려면 시골구석보다는 서울이 훨씬 낫지 않겠어? 형님이 판단을 잘 한 거지.”

“참,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네요. 당신이 일이 없으니 뭘 먹고 사나 했더니만……, 종일이를 맡아주면 큰댁에서 생활비는 좀 보태줄 것 아녜요.”

“물론이지. 종일이를 맡아주면 생활비는 물론이고 조금 넓은 집으로 옮겨주겠다나. 이집은 방이 한 칸 밖에 없잖아. 이제 곧 형이 돈을 보내 줄 거야.”

“그럼, 적당한 집을 알아봐야겠네요.”

“내가 보기에 저기 제일슈퍼마켓 앞에 집이 하나 있잖아? 그 집이 괜찮을 것 같아. 아까 형이 그 집 시세를 알아보고 갔으니 돈이 오는 대로 이사를 가자구.”

“그 집이요? 집이 엄청 낡았던데.”

“응, 우선 손을 좀 봐야 될 거야. 그 대신 가격이 싸잖아.”

026-wing-3.jpg

아버지와 엄마는 잠자리에 누워서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밤이 깊어가도록 이야기는 나직나직 이어졌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아버지가 아침 늦게 일어났던 이유는 게을러서가 아니라 해야 할 숙제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버지는 슈퍼마켓 길 건너편에 있는 집을 계약했다. 그리고 일찍 일어나 매일 새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무슨 종이 같은 것을 펼쳐놓고 일꾼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 그림은 색칠도 없이 선만 그어져있었다. 아저씨들은 그 그림대로 벽을 세우고 창문틀을 만들었다. 방구들을 새로 앉히고 벽에는 새 벽지로 도배 했다. 아버지가 그린 그 그림이 엉터리였다는 걸 알게 된 건 집이 다 완성되고 난 후였다.


불광동 1-217번지 양준만


아버지는 정식으로 대문에 문패를 달았다. ‘양’자 ‘준’자 ‘만’자가 우리 아버지 이름이다. 엄마는 대문 앞에 서서 문패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엄마는 하루 종일 웃음을 얼굴에서 거둘 줄 몰랐다. 그 문패를 보고 집배원 아저씨가 찾아오고 통장아저씨도 다녀갔다. 이름이 새긴 문패를 걸어놓은 집을 장만했다는 게 어느 정도로 감격스러운 일인지 잘 아는 나는 내 이름이 새긴 명찰을 소중하게 다뤘다. 양미래.


“이제 니네 집 살림이 피려나 보다.”

“그러게 말예요.”

“그런데 부엌이 너무 어둡지 않니? 왜 그렇게 좁게 만들었냐. 집이 어두우면 안 되는데…….”


집안을 둘러보던 외할머니는 부엌이 너무 어둡다고 걱정을 했다.


“불 키면 되지 뭐. 근데 엄마, 내가 동사무소에 갔다가 들은 얘기인데. 엄마가 지금 사는 쪽은 불하 나지 않아 다 헐린 데요.”

“그래? 그럼 빨리 팔아야겠구나.”


그길로 할머니는 엄마랑 복덕방 아저씨를 찾아가서 집을 빨리 팔아달라고 재촉을 했다.


“집을 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요. 서두른다고 집이 팔립니까? 그리고 그 지대는 몽땅 다 헐릴 텐데……”

“내가 복비를 좀 더 쳐서 줄 테니 사람을 좀 끌어와 봐요. 당최 외로워서 말이죠. 이제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그래서 딸네 곁으로 가기로 했어요.”


그렇게 복덕방 아저씨를 닦달을 하더니 외갓집이 드디어 팔렸단다. 외갓집이 팔렸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는 딸기를 사왔다. 어찌나 단내가 실한지 들큰한 딸기의 향기가 콧속까지 풍겼다. 마루에 걸터앉아 난 참을성 있게 딸기가 접시에 담겨지길 기다렸다.


“그래도 집이 금방 팔렸어. 집안을 워낙 깔끔하게 해놔서 그런지 집을 보러온 사람들이 단박에 계약하더라.”


그 말은 맞는 말이다. 집안을 오밀조밀하게 꾸며놓길 좋아하는 외할머니 손길에 외갓집은 늘 정갈했다. 텔레비전 위에는 모형으로 만든 포도와 사과를 플라스틱 접시에 소담스럽게 올려놓고 거울 달린 경대 위에는 목각으로 깎아 만든 사슴인형과 못난이 삼형제 인형을 올려놓았다. 못난이 삼형제는 내가 가끔 갖고 놀기도 했지만 푸른 눈의 금발인형은 할머니가 손도 못 대게 했다.

금발 인형은 유리로 된 박스 안에 들어있었다. 눕히면 잠자는 모습처럼 눈이 감기고 세우면 번쩍 눈을 떴다. 그런데 한 쪽 눈이 고장 났다. 할머니는 인형 옷을 빨아서 갈아입힐 때마다 핀셋으로 한 쪽 눈을 잡아당기느라 애를 먹었다. 고장 난 눈 때문에 그 인형은 바라볼 뿐 갖고 놀지는 못했다.


나는 할머니가 애지중지하는 그 인형이 싫었다. 금발 머리카락에서는 파 냄새가 났다. 파가 싫은 건지 금발 인형이 싫은 건지. 내가 금발 인형을 싫어하는지도 모르고 할머니는 철마다 인형에게 예쁜 스커트를 만들어주었다. 버선을 꿰맬 때는 손바느질을 했지만 인형 옷을 만들 때는 벽장에 있는 손재봉틀을 꺼냈다.

026-wing-4.jpg

나도 할머니 옆에서 바느질 흉내를 냈다. 조각난 천을 들고 할머니가 하는 것처럼 한 땀 한 땀 바늘을 천에 꿰었다. 내가 바느질 하는 걸 보더니 할머니가 벽장에 올라가서 창호지를 꺼냈다. 지난가을에 창살문에 바르고 남은 창호지였다

.

“미래야, 이걸로 연습해라. 이게 종이이긴 하지만 옷감처럼 질겨. 옛날에 할미가 한복을 만들 때 이 창호지로 연습을 했거든.”


종이니까 바느질이 서툴러도 그만이었다. 나는 할머니 옆에서 홈질도 배우고 박음질도 따라했다. 나는 조그맣게 저고리와 치마를 만들었다. 치마는 저고리보다 쉬웠다. 바느질이 끝난 종이를 치마저고리 모양으로 자르고 한지를 손으로 구겨주면 빳빳한 종이는 부드러운 천이 되었다. 솜씨 좋은 할머니는 뭐든지 잘 만들고 잘 꾸몄다. 불하 받지 못한 집이라는 것도 감쪽같이 속이고 팔 만큼.


“그래도 적당하게 가격을 잘 쳐서 팔았네.”


엄마는 소쿠리에 담긴 딸기를 한 개 집어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엄마, 그 집이 허가나지 않은 집이라는 걸 곧 알게 될 텐데…….”

“그래도 이집을 팔아 이사 갈 돈을 마련해야지. 허가가 안 났다고 그냥 버릴 수는 없잖니.”

“엄마! 허가나지 않은 집이 뭐야?”

“넌 어른이 말하는데 끼어들어 참견 좀 하지 마.”


찔끔. 말대꾸를 했다가는 딸기도 못 먹고 또 쫓겨날라. 지금 중요한 건 단물이 줄줄 흐르는 딸기를 먹는 것이다. 설탕처럼 단 딸기는 내가 혼자 다 먹었다. 엄마랑 외할머니는 얘기하느라 정신이 팔려 딸기는 거들떠보질 않았다.


어쨌거나 얼렁뚱땅 팔린 외갓집은 나도 맘에 들진 않았다. 겨울이면 연탄가스가 새어나와 항상 방문을 조금 열어놓고 자야했다. 방문을 열고 자도 어떤 날은 정신을 잃기도 했다. 연탄가스를 맡고 정신을 잃은 나를 외삼촌이 업고 뛰었다. 외삼촌은 천막가게를 지나 개천 길을 따라 우리 집까지 달렸다.


바람이 나를 깨웠다. 까만 하늘엔 구름이 나를 보며 흘러갔다. 벌판에서 불어대는 찬 공기는 내 뺨을 어루만졌다. 가슴으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와 땀으로 범벅이 된 외삼촌의 뜨거운 잔등은 내 심장을 녹였다. 찬바람은 장난을 치듯 양말을 신지 않은 내 발가락을 간질였다. 별, 유난히 밝았던 별 중에 외별이 줄곧 나를 따라왔다. 우리 집 철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제야 그 별도 수돗가 위에서 멈췄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놀란 엄마는 김칫국물을 내왔지만 그전에 난 이미 정신을 차렸다. 나를 업고 뛰느라 숨을 헉헉대던 까탈스런 외삼촌은 내게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 외할아버지 말대로 사람은 원래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건가보다.

외갓집을 판 건 잘된 일인지는 몰라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게 된 건 뜻밖이었다. 새로 이사 간 외할머니 집 마당은 우리 집 마당의 두 배만했다. 할머니는 널찍한 마당을 제일 마음에 들어 했다. 텃밭을 가꾸고 싶다고 했다. 텃밭이야 마당이 그리 넓지 않아도 얼마든지 흙만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하다못해 개천 옆에도 상추가 자랐고 하얀 스티로폼 통에도 흙을 담아 씨를 뿌리면 새싹이 돋아났다. 마당이 넓어서 계약했다는 외할머니는 불하받지 못한 집을 팔았다는 말도, 집값이 싸서 샀다는것도 남들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몇 번씩 당부했다.새로 이사 간집은 원래 무당이 살던 집이었다.


외할머니랑 외삼촌이 우리 집 옆으로 이사를 오자 수시로 외갓집을 들락거릴 수 있었다. 엄마는 돌나물김치를 담아 외할머니 집으로 달려갔고 외할머니는 쑥떡을 만들어놓고 나를 기다렸다. 흰 머리는 뽑을 게 없는 데도 외할머니는 자주 나를 불렀다. 외할머니는 철문을 열고 ‘양대위!’하며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외할머니였어도 외할아버지가 안 계시니 어쩔 수 없나보다. 몸이 허약한 외삼촌은 남자인데도 힘을 쓰는 일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사 오고 한 달 후 결혼식장에 다녀온 할머니는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났다. 엄마는 피로연에서 먹었던 음식 때문이라고 했지만 나는 사람이 사는 것을 싫어했던 귀신 때문이라고 동네 애들한테 얘기해주었다. 하지만 나와 귀신만 알고 있을, 불하나지 않은 집을 팔았기 때문이라고는 아무에게 말하지 않았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생전 보지 못했던 친척들이 다 모였다. 친척들은 ‘호상’이라고 했다. 외할머니가 아프지도 않고 금방 돌아가셨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이모들은 모두 방안에만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이모들은 손에 낀 반지를 서로 끼어보느라 부엌일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엄마만 부엌을 떠나지 못하고 국을 끓이고 그릇을 닦았다. 나는 이모들이 멀리 살고 있는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가까이에 있었다면 자주 왔을 테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부엌에서 나오질 못했을 테니 말이다.

마당이 넓으니 편하긴 했다. 아주 넓은 돗자리를 깔아도 공간이 남았다. 그 돗자리에 앉아 어른들은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지도 다른 친척들과 함께 섞여있었지만 다른 친척들처럼 말참견은 하지 않았다.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서 화가 난 듯도 보이는 아버지의 굳은 표정이 실은 울음을 참고 있는 거라는 것을 아는 친척들은 아무도 없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에게 베로 만든 수의를 입힐 때였다. 다른 친척들은 눈물이 안 나는 건지 아니면 참고 있는 건지.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정말로 '호상‘이라서 사람들은 슬프지가 않은가보다. 그런데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나는 기도를 하는 귀대어멈을 훔쳐보듯 한 눈을 몰래 뜨고 힐끔 소리 나는 쪽을 보았다. 놀랍게도 소리를 내어 흐느끼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깨를 들썩였다. 아버지가 눈물을? 그것도 저렇게 서럽게?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가 어려웠다.

영웅이 항상 영웅답지 않은 것처럼 아버지가 언제나 엄마에게 폭력만 행사했던 것은 아니었다. 환하게 햇살이 비치는 날이면 마루에 앉아있던 아버지는 내 귀지를 파주었다. 어찌나 편안하고 보드라운지 아버지가 귀지를 팔 때는 깜박 잠이 들기도 했다. 내가 산에서 솔방울을 따오면 그걸로 화분을 만들어주었던 것도 아버지였다. 손재주가 있는 아버지는 붓글씨를 쓰는 화구통도 손수 만들었다. 언젠가부터 화구통을 만들더니 붓글씨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번씩 배달되는 신문은 죄다 아버지의 붓글씨용 자습지가 되었다. 배달되는 신문지도 모자라 외할머니 집에 가서 날짜 지난 신문지를 얻어 왔다. 매일 글씨 연습을 했지만 그다지 진전은 없었는지 아예 붓글씨 교본까지 들여놨다. 비단 천으로 표지를 싼 교본은 우리 집에서 가장 값이 비싼 책이기도 했다. 우리 반 반장처럼 반듯반듯한 글씨체로 시작해서 지렁이 기어가듯 휘갈기게 쓰는 방법이 상세히 나와 있는 교본이었다. 난을 그리는 방법까지 설명된 부록도 끼어있었다. 그 책에 있는 난 그림을 미술시간에 습자지에 비슷하게 흉내 냈더니 선생님이 잘 그렸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난 엉터리로 흉내 내도 칭찬을 받았는데 어른들은 칭찬 받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듯했다.

026-wing-5.jpg

“미래야, 문방구에 가서 이력서 쓸 종이를 좀 사와라.”


아버지는 먹을 갈고 화구통에서 세필을 꺼냈다. 그리고 신문지 대신 이력서에 한문과 한글을 섞은 글씨를 정성을 다해 썼다. 쓰고 버리고 또 썼다. 뭐라고 적었는지 궁금해서 쓰레기통에 버려진 이력서를 펼쳐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세 단계의 학력이 적혀있었다. 고졸, 대학중퇴, 대졸. 어떤 종이에는 최종학력에 고졸이라고 썼다가 다른 종이에는 대학 중퇴라고 써넣었다. 이력서를 보냈는지 탈락됐는지 그 어떤 소식도 집배원 아저씨는 들고 오지 않았다.


- 다음은 장편소설 독박골 산1번지 "제14화 유기된 놀이터"가 이어집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제12화 난장이가 되어버린 어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