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복개공사가 시작되자 우리는 놀이터를 잃어버렸다
“양 대위님, 집에 계십니까?”
회장댁 아저씨랑, 철물점 아저씨, 생선가게 아저씨 그리고 동네 어른 몇 분이 철문을 열고 들어섰다. 마루에 앉아있던 아버지는 황급히 방안으로 들어갔다.
“잠, 잠깐만 기다리세요.”
러닝셔츠와 팬티 바람으로 마루에 앉아있던 아버지는 얼른 반바지를 입고 나왔다.
“어떻게 오셨나요?”
“개천을 덮어버리고 길을 만들자는 의견을 구청에다 제출하려고 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아, 예.”
아버지는 한 손으로는 뒷머리를 긁으며 다른 한 손으로는 다리 한 짝을 안쪽으로 끌어당겨 책상다리를 만들었다.
엄마는 우물물에 담가놓았던 수박을 칼로 자르기 시작했다. 빨간 플라스틱 통에 우물물을 채워놓고 과일을 동동 띄워놓으면 냉장고에 넣은 것 이상으로 시원했다. 플라스틱 쟁반위에 수박을 삼각형으로 자르고 노란 배꼽참외도 깎았다.
“이것 좀 드시면서 말씀 나누세요.”
“아휴, 뭘 또 이런 걸……, 잘 먹겠습니다.”
아저씨들은 과일을 서걱서걱 씹으며 의견을 내놓았다.
“이참에 행길 가에 블록을 까는 건 어떻것어?”
“그렇지, 그것도 우리가 나서서 추진해야 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가 시골이지 이게 뭔 서울이여?”
“그러니까 우리가 자꾸 의견을 내서 나라에서 돈만 받아쳐먹고 빈둥거리는 공무원들을 바쁘게 만들어야지.”
“여기 저 독박골 고개 말여. 거기도 무슨 대책을 세워야지. 겨울만 되면 차가 올라가덜 못하잖혀.”
“맞아, 택시운전사들에게 ‘독박골 고개 가요’ 하면 냅다 도망가 버리거든.”
“저 고개 바로 밑에 있는 담배 가게는 택시가 단골로 들이박는 곳 아녀.”
나도 겨울만 되면 고개를 올라가지 못한 택시가 선숙이네 담배 가게를 들이박는 장면을 몇 번 봤다. 빙판길에 자동차 바퀴가 헛돌더니 주욱 선숙이네 가게로 돌진했다.
쾅, 와장창.
“에이그머니나. 사람 살려.”
“뭐, 이런 좆같은 동네가 다 있나.”
독바위 고개 주변에 살던 주민들은 택시를 이용하려면 ‘씨팔’을 연발 내뱉는 택시 운전사를 달래야 했다.
겨울이 되면 잽싸게 눈을 녹일 수 있는 제설장비를 구청에다 신청을 해야 한다는 의견에 모두 찬성했다. 울퉁불퉁한 도로에 보도 블럭을 깔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고 집집마다 똥 푸는 화장실을 개량 화장실로 개조해야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 말에는 나도 동감한다. 지금 참외껍데기에 앉으려고 성가시게 구는 똥파리는 변소에서 나온 것이었다. 변소 문만 열면 변위에 앉아있던 놈들이 일제히 밖으로 튀어 날았다. 게다가 꼭 아침에 학교 갈 때 실어 나르는 똥지게는 선생님 막대기보다 더 무서웠다. 그 고약한 구린 냄새. 생각만 해도 토하려고 한다.
마루에 한 쪽에 앉아 나는 흘끔흘끔 아버지를 훔쳐보았다. 엄마에게 손찌검을 했던 야만적인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예비군 훈련을 할 때처럼 무게가 있어보였다. 권위 있게 아버지는 동네 아저씨들이 발언한 안건에 즉각 문제점을 지적했다. 회장댁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버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어른들은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눴다. 의견정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됐는지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집을 나서는 어른들은 허리를 굽히며 아버지에게 인사를 고했다.
“양 대위님 덕분에 일이 아주 말끔하게 정리가 됐습니다.”
그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정말 일은 빨리 추진이 되었다. 노란 철모를 쓴 아저씨들이 개천 부근에서 땅 길이를 재고 땅바닥에서 숫자를 써넣기도 했다. 동네 어른들은 매일 저녁이면 공터에 나와서 개천을 바라보며 감상을 했다.
“여기 이 개천이 땅으로 변하게 되면 아마 이곳 땅값이 올라갈 것이야.”
“내가 구청 관계자들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이 도로가 앞으로 저기 세검정까지 연결 된다누만.”
“세검정까지? 어떻게? 거긴 산으로 막혀있는데…….”
“터널을 만든다나 어쩐다나.”
“아무튼 이곳도 좀 개발이 되야서 못사는 동네라는 오명이 씻어졌으면 좋것어.”
“이 사람아, 동네가 변하는 게 대순가? 사는 사람 수준이 바뀌어야지.”
“사람 수준이 뭐 어때서. 돈 없으면 인간도 아니란 말이야? 세상에 못된 짓 안하고 돈 번 놈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맞아. 우린 그런 능력이 안 되니까 이 꼴로 살고 있는 거라고.”
“개발 된다고 우리더러 몽땅 집 내놓고 나가라 그러면 어떻게 하지?”
“글쎄, 그럴 수도 있겠지.”
“개천 너머 저쪽은 모두 불하 받지 못한 채 살고 있잖아?”
“그럼, 시방 우리가 괜한 짓을 저지른 겨?”
“…….”
“설마하니 살고 있는 사람더러 나가라고 하것어?”
“그건 모를 일이지.”
“말도 안 돼. 그런 법이 어딨어. 여기서 쫓겨나면 어디 가서 살라고. 거지가 되란 말여?”
“…….”
“그렇게만 된다면 나도 가만히 있진 않을겨.”
흥분한 아저씨는 갑자기 웃통을 벗어 땅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이 사람이 벌써 취했네. 그만 열 내고 이 술잔이나 받으쇼.”
그렇게 어른들은 밤마다 공터에 모여 막걸리를 마셨다. 술을 마시기 위해 공터에 모였는지 동네의 발전 때문에 모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른들도 우리들처럼 놀이터가 필요했던 것만은 확실했다.
겨레가 죽었다. 나는 동생의 마지막 얼굴도 보지 못했다. 병원에서 죽은 동생은 태워져서 하얀 가루로 되었다는 말을 들은 그날, 나 혼자서 대머리바위에 올라갔다. 위험하다고 다시는 산에 올라가지 말라고 당부했던 엄마 말을 어기고 산을 탔다. 실은 나도 죽고 싶었다. 동생을 다시 볼 수 없게 된 게 내 책임인 것만 같아서 나도 바위에서 떨어지고 싶었다.
“겨레야! 겨레야!”
겨레의 이름을 부른다고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나는 목이 터져라 동생의 이름을 불러댔다. 나도, 어른들도 힘이 없었다. 돈만 있으면 겨레를 살릴 수 있었다는데 어른들은 돈이 없었다. 오히려 돈이 없는 아버지는 버럭 화를 냈다.
“이 여편네가 왜 이리 소란이야! 죽는 건 다 운명이지. 돈 없는 데 어떻게 하란 말이야!”
“아이고, 겨레를 어떻게 해.”
돈이 없는 엄마는 로봇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며칠에 한 번씩 집에 들어왔다. 엄마의 얼굴은 핏물이 다 빠져나간 병자처럼 하얗다못해 보랏빛이 돌았다. 엄마는 내가 밥을 해먹는지 라면만 끓여먹는지 묻지도 않았다. 헝클어진 머리를 고무줄로 질끈 묶은 엄마의 관심은 뚜껑열린 된장독도 아니었고 며칠 동안 빨랫줄에 널어놓고 걷지 않아 까만 먼지가 쌓여가는 아버지의 흰 러닝셔츠도 아니었다. 엄마가 집에 오는 건 돈을 구하기 위해 집에 들렀다는 것을 동네 아줌마들이 찾아와서 알게 되었다.
“미래 엄마, 그래 겨레는 좀 괜찮아요?”
“수술을 해야 한다나 봐요.”
“수술? 아주 큰 병에 걸렸나부다.”
“입원비도 만만치 않을 텐데. 우짜노.”
“저……, 그런데 미래엄마가 부탁한 돈은 마련이 안 되고 이 돈으로 병원 갈 때 음료수라도 사갖고 가요.”
엄마는 더 이상 말도 못하고 큭 하고 눈물만 흘렸다.
“에고, 돈이 웬수네. 돈이.”
“도둑질을 할 수도 없고, 우야노.”
동네 아줌마들은 마루에 걸터앉아 정신이 반쯤 나간 엄마를 위로했다. 엄마의 입술에는 딱지가 앉을 만하면 물집이 터지고 물집이 아물 만하면 새 딱지가 생겼다. 그래도 입술에 난 물집은 시간이 지나자 사라졌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터진 상처는 쉽사리 아물지 못했다. 겨레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현실감이 시간이 갈수록 짙어졌다. 벌컥 철문을 제치고 들어올 것은 겨레는 펌프대 앞에서도 어른거렸고 집 앞 공터에서도 휙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하루 종일 겨레와 만화를 보던 만화방에는 더 이상 가지 않았다. 만화책만보면 겨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겨레가 동네 아이들을 끌고 물총 싸움하던 축대 위에도 겨레가 죽고 없자 아이들은 모이지 않았다.
엄마는 어디에서 겨레의 흔적을 찾았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여기저기 겨레의 자취를 훑고 다녔다. 집안 꼴이 말이 아니었다. 신발은 뒤집어져있고 마당에 펼쳐 놓은 빨간 고추가 썩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공터에서 어슬렁거리는 종일 오빠를 몇 번 봤다. 도끼 빗을 바지 뒷주머니에 찔러 넣은 오빠는 갈수록 껄렁껄렁 해져갔다. 나는 오빠 방에 있는 책꽂이에서 책을 꺼내보다가 책갈피에 숨겨놓은 사진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기타를 어깨에 둘러맨 오빠 옆에 여자가 서있었다. 주말이면 집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시골집에 갔던 것이 아니고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엄마에게 하지는 않았다. 말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엄마는 더 이상 오빠에게 잔소리를 하지도 않았고 내가 속옷을 며칠 째 입고 다니는지, 숙제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 묻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추석을 앞두고 바닥에 깔려있던 이불을 갰다. 엄마의 옷차림도 달라졌다. 촌스럽다싶을 정도로 유치한 빨강색을 입었다. 수박껍질 색깔의 바지를 입었고 노란색 블라우스를 옷장에서 찾아 입었다. 엄마는 축대 위에 노란 참외처럼 앉아있기도 하고 오이처럼 서서 문밖에서 서성댔다.
동네 아줌마들은 엄마가 아들이 죽고 난 충격 때문이라고 불쌍하다고 혀를 찼다.
“자식이 죽었는데 정신인들 온전하겠어.”
“나도 자식이 죽으면 아마 저렇게 될 거야.”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넋을 놓고 있으면 어떻게 해. 산 사람은 살아야지.”
동네 어른들의 수군거리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은 개천을 메우는 복개공사 뿐이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공사를 마무리지려는 듯 땅을 파는 공사소리가 멈추질 않았다. 소음 때문에 동네 전체가 어수선해졌다. 하늘이 온통 뿌옇게 흰 먼지가 날렸다. 아마 이 개천에서 썰매를 타는 것도 올해가 마지막이 될 것이다. 썰매를 타려면 계곡까지 물이 흐르는 곳으로 찾아가야 했다. 하지만 계곡은 고불고불 해서 물이 얼어도 썰매를 타기엔 적당하지 않았다.
우리는 놀이터를 잃게 되었다. 우리에게 심술을 부렸던 개천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개천에게 심술을 부린 건 우리였다. 홍수가 질 때만 빼놓고는 물이 흐르는 개천은 사계절 내내 우리에게 놀 거리를 제공했던 친구였다. 여름이면 낮이고 밤이고 틈만 나면 개울에서 물장구를 쳤다. 개울물이 얕아 두 팔로 땅을 짚고 헤엄을 치면 자칫 모래에 뱃가죽이 쓸리기도 했다. 그래도 수영을 할 줄 모르는 나는 고무신을 두 손에 끼고 다리를 든 채 물장구를 치며 앞으로 몸을 옮겼다. 다리에 감겨드는 부드러운 감촉은 수영을 할 줄 몰라도 마냥 즐거웠었다. 겨울이면 겨울대로 썰매를 만들어 얼음 위를 지쳤다. 이제 와서 중요한 것을 잃었다는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지게차는 흙을 퍼냈고 쇠기둥이 땅바닥에 박혀졌다. 그런데 개천만 없어지면 살기 좋은 동네가 될 줄 알았는데 복개공사는 옛 모습까지 덮어버렸다.
시커먼 콜타르로 개천을 덮어버리자 도로가 생기고 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믿겨지지 않았다. 움푹 파인 개천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그 위로 사람이 걸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다른 동네 사람들도 독박골을 가로질러 다니게 되었다. 그 길을 따라 장관도 지나가고 경찰도 지나갔다. 높은 사람도 개천 위를 지나가고 유명한 사람도 독박골 사이를 달렸다.
복개공사를 하고 난 다음에 산 아래 무허가 건물에 살던 사람들이 힘없이 동네를 떠나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술만 취하면 그렇게 싸움을 잘하더니 정작 싸워야 할 때는 바보 같이 떼를 쓸 줄도 몰랐다. 하늘을 닮은 웃음을 짓던 동네 어른들은 하나 둘 동네를 떠났다. 떡을 팔던 귀대 엄마도. 소주 한 잔에 신이 나서 물을 나르던 물지게 아저씨도 보이지 않았다.
동네사람들이 떠난 자리는 폐가가 되었다. 빈집들은 문짝이 떨어져나가고 지붕은 내려앉았다. 공사를 하는 아저씨들은 산등성이를 따라 있던 집들을 인정사정없이 굴삭기로 눌렀다. 집들은 맥없이 휘어졌고 종이박스처럼 가볍게 구겨졌다. 집들이 부서질 때 우지직 하는 소리에 내 가슴도 덩달아 눌리는 것만 같았다.
집들이 헐리자 그곳에는 더 이상 건물은 짓지 않았다. 대신 개나리와 진달래가 동네사람들이 떠난 자리를 차지했다. 낡고 허름한 집들이 사라지고 산은 꽃동산처럼 바뀌었다. 타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그 풍경을 감탄하며 구기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보기 좋다.”
모두들 멋들어진 경관을 맘에 들어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곳에 살던 독박골 사람들이 어디로 이사 갔는지는 묻지 않았다. 외부 사람들에게는 미관상 낡고 허름한 집을 치워 없앴다는 사실만 중요한 듯했다.
우리 집에도 변화가 생겼다. 종일 오빠에게 군대영장이 나왔다. 오빠는 더 이상 우리 집에 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아버지는 오빠가 군대 가는 건 잘 된 일이라고 했다.
“남자라면 공부보다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하는 일이 군대를 가는 일이야. 늦장부리지 말고 하루 빨리 갔다 오는 게 오히려 낫지. 지금 전쟁을 하는 것도 아닌데, 군대 생활은 식은 죽 먹기라고. 대학 들어가는 건 나중으로 미루고 군대부터 다녀 오거라. 그 다음에 네 아버지 방앗간 일을 돕든지 다른 장사를 해서 인생경험을 더 쌓든지 하면 된다. 공부도 공부할 사람이 해야 하는 거야.”
공부 할 사람이 따로 있다는 말은 맞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보기에도 오빠는 군대를 가야 철이 날 것 같았다. 그래도 막상 짐을 꾸리는 오빠의 모습을 보니 안 돼보였다. 그런데 종일 오빠의 군대 입대를 앞두고 방앗간 큰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연락이 왔다. 그 소식은 아버지도 집을 떠나야 했음을 의미했다.
“형님이 많이 편찮으셔서 내가 시골에 내려가서 형님 일을 도와야 할 것 같아. 종일이가 군대를 가지 않는다면 내가 굳이 내려가지 않아도 되는데 방앗간 일이라는 게 워낙 손이 많이 필요해서 말이야. 국수도 말려야지. 쌀도 빻아야지. 들기름도 짜야지. 그걸 형수 혼자 할 수가 없으니까 나더러 좀 거들어 달래. 그러니 당분간 불편하더라도 당신이 미래하고 지내고 있으라구.”
“오래 걸려요?”
“글쎄, 지금으로 봐서는 언제 올지 모르겠어. 일을 봐 줄 사람이 생기면 돌아와야지.”
종일 오빠도 떠나고 아버지도 집을 떠났다. 든 자리는 표가 안 나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던 할머니 말대로 별안간 집안이 허전하고 스산해졌다. 아버지가 안 계시자 텅 빈 마루가 더 썰렁해보였다. 여름 내내 러닝셔츠에 팬티바람으로 마루에 앉아있던 아버지 대신 차가운 공기가 차지했다. 유리창 너머 수돗가에는 어디서 날아왔는지 마른 나뭇잎 하나가 물통에 떨어져 동동 떠다녔다. 쓸쓸한 바람이 벌어진 문틈 사이로 스며들었다.
- 다음은 장편소설 독박골 산1번지 "제15화 독박골의 겨울" 편이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