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등허리는 동굴처럼 어둡고 암담하게 느껴졌다
독박골의 겨울은 빨리 왔다. 가을이 왔는가 싶었는데 아침이면 기온이 뚝 떨어졌다. 물이 차가워서 대충 얼굴에 물만 묻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냈다. 서랍을 열어 긴 팔 셔츠를 찾아 입었다. 치마를 입고 가려고 긴 양말을 찾았지만 한 여름 더위에 고무가 녹아내렸는지 고무줄이 삭아버려 신을 수가 없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바지를 꺼내 입었다. 깡총하니 길이가 짧아졌다. 바지가 짧아져서 발목이 드러났다. 윗도리 팔 길이도 깡충 올라갔다. 동생 옷을 얻어 입은 것 같았다. 천을 힘껏 잡아 늘렸지만 잠깐 늘어났을 뿐 다시 쏘옥 원상태가 되었다. 나는 엉거주춤한 옷을 입고 대문을 나섰다. 다른 아이들도 나처럼 죄다 긴 팔과 긴 바지로 갈아입었다. 어, 그런데 찬우는 아직도 반팔 윗도리에 짧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찬우야, 너 안 추워?”
“응, 괜찮아.”
하지만 찬우의 입술은 물놀이를 하고 난 것처럼 파랬다.
그날 나는 하루 종일 찬우 생각을 했다. 변덕스러운 날씨는 오후에 돌풍을 몰고 왔다. 쉬는 시간에 찬우네 교실로 갔다. 학년이 바뀌어서 찬우와 나는 서로 다른 반이다. 멀찌감치 서서 찬우의 입술이 아직도 파란 가 살폈다. 그러나 친구들하고 노느라고 정신이 없는 찬우의 뒷모습 밖에는 볼 수가 없었다. 혼자서만 반팔을 입어서 그런지 유난히 팔이 가늘어보였다. 나는 수업이 끝나고 학교 문 앞에서 찬우를 기다렸다. 멀리서도 찬우는 금방 눈에 띄었다. 혼자서만 한여름 옷차림이었기 때문이다.
“찬우야!”
“어, 미래야.”
내가 자기를 기다렸다는 걸 모르는 찬우는 나를 보자 무척 반가워했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학교 앞에 병아리 파는 할머니 모습도 보이지가 않았다. 아마 병아리 할머니는 따뜻한 봄날에나 볼 수 있을 것이다. 빗자루 질을 하듯 바람이 거리를 쓸었다. 프린스 약국을 지나면 걸음걸이는 제 속도를 내지 못한다. 고소한 튀김냄새를 맡으며 그냥 지나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오늘따라 유난히 튀김냄새가 진동했다. 찬우도 힐끔 튀김가게를 쳐다보았다. 철망 위에 고구마튀김, 햄튀김, 야채튀김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찬우야, 저거 먹을래?”
“저거……?”
“내가 사줄게. 이리 와.”
지난 번 큰아버지가 주신 돈을 꺼냈다. 아직도 4천원이나 남아있다. 나는 천 원짜리 지폐를 2장 꺼냈다.
“찬우야, 뭐 먹을래?”
“나…….”
찬우는 대답대신 가느다란 팔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자기가 돈을 낼 것도 아니면서 돈을 꺼내는 것처럼 시늉을 했다.
“괜찮아. 이거 큰아버지가 주신 용돈이야. 아줌마, 튀김 골고루 섞어서 2천 원어치만 싸주세요.”
튀김집 아줌마는 미리 튀겨놓은 튀김을 다시 뜨거운 기름 속에 담갔다. 물거품을 일으키며 튀겨진 튀김을 쇠 집게로 집어 기름을 툭툭 털어낸 다음 종이봉투에 담아 우리에게 건넸다. 기름이 배어 말갛게 변해가는 봉투 속에서 찬우는 햄튀김, 나는 야채튀김을 집었다. 바람이 옷을 잡아 흔들었다. 길바닥에 떨어진 휴지들이 붕붕 날아다녔고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쏟을 것처럼 어두컴컴해졌다.
“얘들아, 말 좀 물어보자.”
“네?”
“너희들 혹시, 최정구라는 이름을 들어봤니?”
“최정구요?”
“어! 우리……, 목사님 이름인데.”
“그래? 너네 교회 목사야?”
“제대로 찾았군.”
남자는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그제 서야 우리는 고소하고 바삭한 튀김을 먹으며 우리 앞을 가로막는 남자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렌즈가 달려있는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는 아저씨는 학교 앞에 가끔 나타나는 사진사 같았다.
“그런데, 왜 물으세요.”
“아, 아니다. 근데 그 교회가 어디 있니?”
“저기, 고개 아래 있는 공터까지 가셔야 해요.”
“공터? 교회 이름은 뭐냐?”
“이름이요? 없어요. 그냥 천막교회라고 불러요.”
“그래? 고맙다.”
남자는 아주 빠른 걸음으로 우리를 앞질러 걸었다.
“근데, 저 아저씨가 왜 우리 목사님을 찾지?”
“글쎄, 괜히 가리켜줬나?”
쓸데없이 목사님에 대해 알려준 것 같아 후회했다. 아마 찬우도 나처럼 후회를 한 모양이었다. 언덕 아래로 내려갈 때까지 찬우와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몸을 최대한 동그랗게 움츠렸지만 바람 때문에 옷은 풍선처럼 부풀었다. 걸음을 재촉했다. 낯선 아저씨가 왠지 기분 나빴고 컴컴해진 하늘이 한바탕 비를 뿜을 태세여서 불안했다. 비가 내리기 전에 얼른 집으로 가야했다. 구르릉 우르릉 구름 부딪치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집에 도착한 나는 계곡까지 가야하는 찬우에게 우산을 빌려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우산을 들고 후다닥 대문 밖에 나가보니 찬우는 벌써 달음박질을 하고 있었다. 후두둑후두둑. 뛰어가는 찬우를 쫓아가듯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에 홈빡 젖을 찬우를 지켜보다 집안으로 들어왔다.
홈통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지붕이라도 부셔놓을 것처럼 요란하게 떨어졌다. 추위에 떨었던 나는 아랫목에 들어가 몸을 녹이다 스르륵 잠이 들었다. 화들짝 잠을 깬 나는 시계를 보고 깜짝 놀랐다. 벌써 밤 10시가 되었다.
‘비가 오는데 엄마는 왜 안 오지?’
낮잠을 잔 탓인지 한 번 깬 잠은 쉽게 오질 않았다. 엄마는 새벽이 되어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침이 되어 눈을 떴다. 하늘을 보니 날이 개기 시작했다. 비구름은 북한산 너머로 뭉글뭉글 몰려갔다. 혼자서 아침밥을 챙겨먹고 학교로 향했다. 엄마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는데 하늘은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파랬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엄마는 그날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겁이 덜컥 났다. 불안을 끌어안고 잠을 자는 어둠은 나 혼자 지키기에 너무 길고 무서웠다. 그래서 몇 번씩 문이 잠겼는지 확인했다. 가게 방 문고리가 제대로 맞물려있는지 만져보았다. 아무래도 날이 밝으면 시골에 계신 아버지에게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간신히 잠이 들었다. 날이 밝자 나는 깔깔한 밥을 먹고 학교에 갔다. 찬우가 나를 보고 뛰어왔지만 시무룩해진 나는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미래야.”
“왜, 찬우야?”
“니네 엄마 우리 집에 있어.”
“니네 집에? 왜?”
“우리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산에서 좀 다쳤데, 오늘 너네 집에 간다고 했어.”
“그래? 진작 얘기 해주지. 난 무척 걱정했는데…….”
“미안해. 할머니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그래서.”
찬우 말대로 엄마는 집으로 돌아왔다. 3일 만에 집에 온 엄마는 소금에 절여진 배추를 소쿠리 건져 내고 있었다.
“엄마!”
와락 반가웠지만 뚝뚝 서러움도 같이 눈물이 되어 떨어졌다.
“미안하구나, 엄마가 사정이 있어 연락을 못했어. 걱정 많이 했지?”
끄덕끄덕. 나는 대답 대신에 고개를 흔들었다. 안심이다. 나는 엄마가 돌아온 것만으로도 좋아서 어떤 낯선 아저씨가 목사님을 찾더라는 것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겨울 방학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아직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올해는 성탄절에 눈이 왔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했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그 많던 똥파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간혹 한 마리가 창턱에 앉았는데 날개를 움직이지도 못하고 파르르 떨기만 했다.
그런데 엄마는 파리처럼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아랫목에 누워만 있었다. 겨레를 잃은 슬픔을 털어버리는가 싶었다. 어디 간단 말도 없이 며칠 만에 집에 돌아온 엄마는 병이 난 강아지처럼 일어나질 않았다. 어두컴컴한 방안에 누워있는 엄마의 등허리는 산속에 뚫려있는 동굴처럼 어둡고 암담하게 느껴졌다. 외할머니 말대로 부엌에 햇빛이 안 들어서 동생도 죽고 지금 엄마도 아픈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어디 아파?”
“아니, 배고프면 밥 먹어.”
엄마는 보자기 덮어놓은 밥상을 가리켰다. 살아야 할 사람이 일찍 세상을 떠나면 남아있는 가족들도 견디기 힘이 든다. 나도 가끔 겨레 생각이 났다. 되돌릴 수 없는 동생의 죽음 뒤에 내가 있었다. 차라리 겨레 대신에 내가 죽었다면 어쨌을까. 평생토록 잘못을 뉘우치며 사는 것보다는 내가 희생하는 편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저러다 엄마마저 죽게 될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난로도 없는 천막교회에 열심히 갔다. 내가 죽은 동생과 아픈 엄마를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기도하는 것밖에는 없었다고 여겼다. 외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집에 돌아오면 저녁밥을 먹기가 바쁘게 교회로 향했다. 난로가 없어 천막 안은 무척 추웠다. 그래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연극할 때 입을 옷은 아직 준비가 되질 않아 소품만 들고 주인공 기분을 냈다. 찬우는 종이로 만든 수염을 붙였고 나무막대기를 지팡이 대신 들었다. 나는 인형을 갖고 아기 예수라고 했다. 목사님은 연습이 끝날 때쯤 호빵이랑 귤이랑 사왔다. 저녁밥을 먹고 모여도 연습을 하다보면 배는 금세 꺼져 간식은 바닥에 놓기가 무섭게 먹어치웠다.
“계십니까?”
우리는 모두 천막을 젖히고 열고 들어오는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남자였다. 카메라를 어깨에 둘러맨 남자.
찬우와 나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너, 저 사람 기억나니?’ 우리는 그를 기억했지만 그 아저씨는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얘들아, 목사님이 어디 계시니?”
“잠깐 밖에 나가셨는데요.”
“아, 그래. 너희들 연극연습을 하는구나. 아저씨가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어줄까?”
“아저씬 누구세요?”
“나? 사람을 찾아다니는 사람이지. 자, 모두 바깥으로 나가서 찍자.”
사진을 찍어준다는 말에 우리는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해가 짧아져 날은 벌써 저물고 있었다. 우리는 빨리 서라고 서로에게 소리쳤다. 나는 인형을 들고 찬우의 팔을 붙잡았다. 대머리 바위를 배경으로 자세를 잡았다. 우리 등 뒤에는 높은 산이 드리웠고 넓은 하늘도 있었다. 사진을 찍는다는데 신이 난 아이들은 장난스런 몸짓으로 한바탕 웃음을 만들었다.
“자! 웃어라. 하나 두울 셋!”
번쩍. 아주 강하고 환한 불이 눈앞에서 터졌다.
“아저씨, 그 사진 언제 주실 거예요?”
“내일, 또 올게.”
“내일 또 와요? 그러면 내일도 또 사진 찍어 주세요.”
“으흐흐, 그래 내일 또 오마. 니가 마리아 역을 맡은 아이구나.”
“네.”
“이름이 뭐니?”
“양미래라고 해요.”
“양미래? 연습은 재미있니?”
“연극을 처음 해보는 거지만 아주 재미있었어요. 목사님이 그러는데 이번 연극을 잘 마치면 교회에 난로도 들여놓을 수 있다고 했어요. 동네어른 몇 분이 우리 연극을 도와준다고 그랬거든요. 그리고 저는 나중에 연극배우가 될 거예요.”
“그래에? 나중에 배우가 되면 ‘미래’라고 예명을 지으면 되겠구나.”
“그런데 아저씨는 왜 우리 목사님을 찾으세요?”
“너희들은 좀 커야 알 수 있는 일들이지. 아마 느이 목사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면 깜짝 놀랠 걸. 으흐흡. 자, 나는 간다.”
카메라를 둘러맨 남자의 구부정한 뒷모습은 그의 웃음소리만큼이나 기분이 나빴다. 우리도 가끔 슬픔을 감추긴 하지만 웃음을 가면처럼 써먹진 않는다. 우리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늘 웃고 다녔다. 웃을 일이 생기면 참을 수도 없이 풍선 터지듯이 웃음보를 터트렸다. 그런데 웃음소리가 저렇게 기분 나쁠 수 있다니. 마치 바람에 고목나무가 흔들리는 것처럼 음산했다. 카메라 아저씨가 가고 난 한참 후에 목사님이 들어섰다.
“자, 얘들아! 호빵 먹자.”
“목사님, 아까 어떤 남자분이 찾아왔었어요.”
“남자?”
“네, 카메라를 들고 있었거든요.”
“우리 사진을 찍어줬어요.”
“내일 또 올 거래요.”
“그래?”
우리는 호빵을 먹느라고 정신이 팔려 목사님의 얼굴에 슬쩍 어두운 그늘이 스치는 걸 보지 못했다. 그리고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천막을 제치고 밖으로 나가는 우울한 뒷모습을 보지 못했다.
큰댁에 가셨던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거의 석달만이었다. 예고도 없이 아버지가 나타나자 집안은 갑자기 부산스러워졌다. 버럭 소리를 질러대는 아버지의 호통에 거의 누워만 지내던 엄마는 누렇게 뜬 얼굴로 주섬주섬 움직였다.
“오랜만에 서방이 찾아왔는데 왜 이렇게 애 밴 여자처럼 어그적거리고 있어!”
엄마는 그 호령이 떨어지자 그제야 부스스 부엌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돌아온 아버지가 반가웠던 것도 잠시뿐이었다. 윽박지르는 주인의 낯을 피해 마루 밑으로 기어가는 강아지처럼 나는 방안으로 냉큼 들어가 버렸고 아버지의 잔소리에 시달리는 엄마의 슬픈 얼굴을 걱정하며 이내 잠이 들었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사람이 변화되는 일이라던 외할머니의 말이 꿈결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드디어 성극 마지막 총연습 날이다. 공연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긴장이 되었고 약간 흥분이 되기도 했다. 마음이 분주한 우리처럼 목사님도 바쁘신지 하루 종일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옷장을 뒤져 찾아낸 엄마의 긴 머플러를 머리에 늘어뜨렸다.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이럴 때 외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손수 재봉틀을 꺼내 인형 옷을 만들던 솜씨로 마리아 옷을 만들어주었을 텐데.
희옥이가 이불호청을 가져왔다. 가져온 이불호청을 접어 동그랗게 잘라냈다. 병찬이가 그 구멍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허리를 끈으로 묶었더니 바느질을 할 필요도 없었다. 어설프긴 해도 아라비아 상인처럼 이국적인 느낌은 났다. 찬우만 아직 옷을 마련하지 못했다. 희옥이가 자른 광목천을 보자 번뜻 아이디어가 생각이 났다.
“찬우야,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 내가 연극하는 날 네 옷을 만들어줄게.”
“그래? 알았어.”
찬우는 비로소 활짝 웃었다. 아마 말은 안했지만 속으로는 무대 복을 구하지 못해 걱정을 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연기를 할 생각을 하니 꿈만 같았다. 떨리긴 해도 사람들 앞에서 뭔가 보여줄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일이었다. 그날은 아마도 최고의 날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내 생애의 최악의 날이 되었다. 사실 최고와 최악은 똑같았다.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다는 점에서.
“너희들 아주 열심히 연습을 하는구나.”
카메라 아저씨가 천막을 젖히고 들어왔다.
“자, 여기 사진을 뽑아왔다. 한 장씩들 가져라.”
“와!”
정말로 사진을 뽑아왔네. 공짜로 주는 사진을 받고 보니 사람까지 달라보였다. 카메라 아저씨는 걱정했던 것처럼 그리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 것 같다. 찬우는 신기한지 사진을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성경책 갈피 속에 집어넣었다. 나도 구겨질까봐 사진을 수첩 안에 꽂아 넣었다.
“그런데 목사님은 지금 안 계세요.”
“그래? 그럼 기다려야지. 그런데 너네 안 춥니?”
“조…금, 추워요.”
“난로도 없이……쯔쯔.”
카메라 아저씨는 목사님 책상 곁으로 갔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진지하게 연습에 몰두하려 했지만 자꾸 그 아저씨가 신경이 쓰였다. 우리는 지켜보는 것도 그렇고, 툭툭 내뱉는 불평도 거슬렸다. 우리는 추위를 참을 만큼 연극이 좋았지만 카메라 아저씨는 추위가 견디기 힘들었는지 내일 또 오겠노라며 천막을 나섰다.
“이러다 감기 들어서 진짜 공연을 못 하게 되면 어떻게 해?”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참았던 추위가 한꺼번에 몰려오는지 덜덜 떨려 더는 천막 안에 있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죄다 천막 안에서 나왔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은 몹시도 뿌듯했다. 내일이면 그동안 고생했던 수고가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우린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그 많은 대사를 다 외울 수가 있지?”
“그건 우리가 똑똑하다는 말이지.”
“난 내가 이렇게 잘 할 줄 몰랐어.”
“나도 그래.”
열등하다고 생각했던 우리였다. 내가 내 자신한테 놀랐다. 초라했던 내가 저기 하늘에 떠있는 달보다 위대해졌고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 보였다. 실패한 어른들 틈에서 뭔가를 할 수 있다니 생각할수록 대견하고 기특했다. 그러나 실패한 환경을 피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대문을 열고 불 켜진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난 잠시 환상 속에 취해있었음을 깨달았다. 연극은 한낱 꿈에 불과했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다.
“빨리 약속해. 이런 쓸데없는 데 정신을 팔 거야 말거야!”
“여보. 그건 억지예요.”
“그래! 끝까지 교회에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겠다 이거지? 오늘 아주 끝장을 내자.”
“악!”
“엄마! 엄마아아아앗”
난 후다닥 철문을 젖히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바닥은 온통 찢겨진 성경책과 찬송가로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낱장으로 찢겨진 종이처럼 터진 엄마의 얼굴에서는 여기저기 벌겋게 붉은 핏물이 흘러내렸다.
“아버지! 그만하세요!”
“너! 저리 안 비켜!”
“아버지, 잘못했어요. 엄마를 살려 주세요.”
“저리 비키란 말이야!”
“아버지,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나는 무릎을 꿇고 매달리다가 밖으로 뛰쳐나갔다. 저러다가는 엄마가 죽을 것만 같았다. 다급한 목소리로 쌀집 아저씨네로 달려갔다.
“아저씨, 우리 엄마가 다 죽어가요.”
동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사람들은 누가 뭐라고 할 것 없이 지나가는 택시를 붙들어 대기시켰고 쌀집 아저씨는 쌀가마니를 메듯 엄마를 둘러업었다. 몇몇 어른들이 ‘한 잔 하자’ 며 아버지를 끌고 나가려고 했으나 아버지는 푸. 푸. 한숨을 쉬며 땅바닥만 쳐다봤다. 당장이라도 큰일 날 것 같은 분위기는 일단 진정이 된듯했다. 기웃거리던 동네 어른들은 소란이 가라앉자 하나 둘씩 사라졌다.
나는 대야에 물을 담아 방바닥에 묻은 핏자국을 닦았다. 눈물이 자꾸 났다. 나로서는 어떻게 해결해 볼 수 없는 이 상황이 서글펐다. 엄마가 죽으면 어떻게 하나. 혼자 살 생각을 하니 겁이 덜컥 났다. 그래도 난 믿고 싶었다. 괜찮아지겠지. 이러다가 내일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짱할 거야.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얼마나 지났을까 울다 잠이 든 나는 마루 밖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에 귀를 열었다. 어렴풋이 실눈을 떴다.
“양 대위, 미래 엄마 뱃속에 얼라가 있었다는구먼.”
“허 참!”
“삼 개월이었다데. 수술을 했으니 며칠 있으면 곧 퇴원하게 될 거야.”
“어떤 새끼라고 말은 안 합디까?”
“양 대위! 이사람, 그만 하구료. 이제 와서 그걸 따지면 뭐해요. 그동안 양 대위가 집을 비웠잖아. 그게 실수였을 거라고. 하긴 내가 저, 천막교회 목사랑 같이 있는 걸 가끔 보긴 했는데 설마……? 에이, 아닐 거야.”
“모옥싸아? 내 이 새끼를 그냥.”
“아, 아니야. 그게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미래 엄마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그날 밤 나는 아이를 낳는 꿈을 꾸었다. 내 방 창문에 흰 옷을 입은 천사가 날아왔다. 천사 날개 뒤에서 뿜어대는 광채가 온 방을 환하게 밝혔다. 그런데 그 천사얼굴이 겨레 얼굴로 바뀌어있었다. 겨레야!
- 다음은 장편소설 독박골 산1번지 "제16화 휘어진 십자가" 편이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