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사라진 도시

죽은 사람을 대한 것 같은 상실감에 견딜 수가 없었다.

by 권소희

‘양미래, 사라진 도시에 선 그녀’

독박골은 그녀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동네가 되어버렸다. 세계적인 인물을 탄생시킨 독박골, 지금은 과거의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은 동네다. 독박골은 북한산의 산세를 끼고 사대문 밖에 형성되었던 변두리 동네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에 사람들은 폐허가 된 서울을 떠나 서울변두리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동네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 동네에 교회가 들어서면서부터 발전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동네에 들어선 교회는 공터에 가건물을 세워놓고 무료로 영화상영도 해주고 성극을 지도하는 둥 먹고 살기에 바쁜 어른들을 대신해서 버려진 아이들의 인성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 아이들 가운데 양미래라는 인물도 속해있었지만 그녀가 세계적인 인물로 성장하기까지는 굴곡 많은 어린 시절을 보내야했다. 미래 씨의 아버지 양준만 씨가 그 교회 목사에게 상해를 입히고 불을 지르는 바람에 그곳에 참석했던 상당한 수가 중경상을 입게 되었다. 왜 미래 씨의 아버지가 목사에게 횡포를 부렸는지 자세한 내막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일로 인해 천막교회가 전소되고 미래 씨와 그녀의 어머니는 동네를 이사 갔기 때문에 그 다음의 행적은 묘연해졌다. 양미래 씨가 자신의 과거를 숨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마도 우울했던 어린 시절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세계 위에 우뚝 서 있는 대한의 딸로 한국에 돌아왔다.


다음 날에 실린 나에 대한 기사는 좀 더 구체적이었다. 전날 장 기자가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겠노라고 했지만 응하지 않은 데에 대한 복수였다. 다시 장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양 미래씨? 전화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죠. 아무튼 고마워요. 내가 양 미래씨 덕분에 이렇게 특종을 날리게 되다니. 더한 기사가 3탄, 4탄으로 준비되어 있어요.”

“만나죠. 지금 어디 계신가요?”

“그러잖아도, 지금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같이 식사를 하시죠."


030-maria-city-1.jpg

호텔 로비에 마련된 식당으로 내려갔다. 커피와 스크램블 에그를 접시에 담아 장 기자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스픈과 포크를 싸고 있던 넵킨을 풀어서 무릎에 깔며 물었다.


“저에 대한 폭로가 목적이신가요?”

“양미래씨 사람을 뭘로 보고 그런 말을 하시나요? 그건 나에 대한 모독이야. 그간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전해주면 오히려 나에게 고마워해야 할 텐데, 남의 성의도 모르고, 쯔쯔.”

“정보요?”

“당신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시고 그 뒤치다꺼리를 누가 했는지 알아?”

“……."


입안에 넣은 음식을 씹어 넘길 시간조차 부족했던 그의 발언은 뜻밖이었다. 그가 음식을 다 삼키기를 기다렸다.


“아버지……에 대해서 아시나요?”

“물론이지. 그 목사란 사람이 문제야. 실은 양미래 씨 가정을 그렇게 만든 사람이 목사가 아니었나?”

“저, 죄송한데요. 그 이야기라면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고 될 일이 아니지. 찬우가 궁금하지 않나?”

“차, 찬우요?”

“기억을 하고 있네. 하긴 그 이름을 잊으면 안 되지. 앉아, 앉으라고 내가 찬우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줄 테니. 아, 벌써 만났었지?”

“만나다니요? 누구를요?”

“일전에 연극에 가서 만났잖아.”

“누구요?”

"이럴 게 아니라 내 진짜 모습을 보여주지, 일어납시다."


030-city-2.jpg

엉겁결에 나는 장 기자를 따라 나섰다.


“기사 양반, 불광동으로 가주세요.”

“…….”

“휴, 내가 그곳에 한 번 가려면 너무 힘들어서 말이야. 이젠 산타는 게 쉽지 않더라고. 나이가 들어서 말이야. 그래도 내가 미래씨를 모시고 가야지. 그게 내가 여태 목숨을 부지하고 살고 있는 이유인지도 모르니까.”

“…….”

“독박골 많이 좋아졌지. 개발되기 전에 이곳이 모두 개천이었는데…….”

“…….”

“저기 모퉁이 돌면 예전에 미래 양이 살던 집터가 있을 걸. 한 번 들어가 보지 않겠어? 아저씨, 여기서 세워주세요.”

‘불광 제6구역 주택재개발지역’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모퉁이엔 공사를 알리는 간판이 세워져있었다. 그 간판을 끼고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황망했다.


몽땅 사라졌다.


내가 살던 집도, 아이스크림을 사먹던 슈퍼마켓도. 레슬링을 보던 만화방도. 실력 없는 목수를 불러 얼기설기 너와집처럼 슬레이트 지붕을 얹고 그 아래서 저녁 밥 짓는 연기를 올리고 밤이면 지붕을 닮은 불빛을 비추던 집들은 싹 사라졌다. 가슴이 메어졌다. 마치 죽은 사람을 대한 것 같은 상실감에 견딜 수가 없었다. 올망졸망 머리를 맞대었던 지붕들은 흔적은커녕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땅을 갈아버린 포크레인은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다들 어디로 건 것일까. 너무 늦게 왔음을 깨달았다. 이제 머잖아 그나마 남은 기억들마저 퇴색되고 말 것이다. 헉, 나는 그만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030-city-3.jpg

“왜, 왜 그래요?”

“아, 아니. 잠시 옛날 생각이 나서 그만…….”

“괜찮겠어요? 그만 돌아갈까?”

“아, 아니에요.”


다시 도로로 나왔다. 사람없는 한적한 거리에는 구기터널을 빠져나온 자동차들만 쏜살같이 내달렸다. 계곡 안으로 들어섰다. 숲은 깊은 숨을 쉬고 있었다. 둥지로 찾아드는 새들은 소나무가지를 흔들며 요란을 떨었다. 산속 동물들의 부산함 때문에 덩달아 송진가루도 사방으로 방사되었다. 솔잎 향, 숨을 들이마셨다. 마음껏. 독박골 개구쟁이들을 반기던 산은 나를 잊지 않은 듯했다.


“헉, 헉. 아이고 숨차. 이젠 정말 이 계곡에는 못 올라오겠어. 조금만 참아요. 거의 다 왔으니까.”


장 기자는 작은 토담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자, 이곳이요.”


아직도 이런 집이 남아있었나? 지붕 위에 덮인 비닐이 펄럭거렸다. 방 입구에 걸려있는 반쯤 찢겨진 대나무도 썩어 검은 색이었다. 토담집 한 옆에 컨테이너로 된 자그마한 집이 있었다. 보수를 했는지 페인트 색이 선명했다.

그는 컨테이너를 끼고 뒤로 돌아들어갔다. 나도 그 뒤를 따랐다. 그곳에는 두 개의 봉분이 있었다. 그곳에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봉분 위의 잡풀을 뜯어내고 있었다.


“어, 아저씨 오셨어요?”

“잘 있었어? 참, 전망 좋다.”


030-city-4.jpg


찬우였다. 찬우가 마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공인물이 영화 스크린을 뚫고 현실 밖으로 걸어 나오듯 내게로 다가왔다. 이제 기억들이 선명해졌다. 그동안 잊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실은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 찬우와 모습이 어렴풋하게 비슷한 사람을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했다. 어릴 때도 저렇게 걸었는데. 그 시절 우리는 메뚜기 다리처럼 앙상한 다리로 산을 탔다. 밥만으로는 부족했던 시기인데 제때 영양공급이 되지 않아 죄다 엉성하게 걸었다. 유난히 다리 사이가 넓었던 찬우는 양 어깨까지 흔들며 걸었다. 비척비척.


“찬, 찬우?”

“미, 미래야.”

“…….”

“…….”


낭만적이고 뭔가 뭉클한 감정을 기대했다. 내가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만큼 그 시간을 응축시킬만한 강렬한 감정이 끓어올라야 했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정상이라 여겼다. 그러나.

건조했다. 덤덤했고 아주 지루했다. 잔뜩 이물질이 껴있어 더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뭉텅 채워진 공백기는 연민도 애틋함도 그 어떤 그리움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무미건조함에 나도 당황스러웠다. 어쩌며 나는 그동안 과거 어린 시절의 찬우만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현실과는 상관없이 인공적으로 화초를 가꾸듯 마음속에 과거에 알았던 한 남자의 형상을 다듬어키웠을 수도 있다. 지금의 침묵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난, 그만 일이 있어 내려가 봐야해. 나중에 찬우가 미래를 데려다 주도록 해.”

“아, 네. 그럴게요. 아저씨, 그럼 조심해서 가세요.”


장 기자가 토담집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건 한동안 떠도는 어색함이었다.

세월은 각자 멈춰 서로를 바라보았다. 현재일 수도 없는 시간. 나는 너를 불렀지만 그건 잃어버린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잃어버린 나. 대체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던 것인가.


“아, 이. 내 정신 좀 봐. 손님이 왔는데 대접할 것도 없는데…….”


그제야 찬우는 한 줌 가득 쥐었던 하얀 진물이 흐르는 엉겅퀴와 강아지풀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내가 사는 집이야. 실은 이곳도 헐려야 하는데 하도 버티고 있으니까 시에서 산속에서 등산객들의 안내를 맡으라고 특별히 배려를 해주었지. 내가 이 계곡의 해설가야. 내가 이곳에서만도 몇 십 년을 살았잖아. 이 산속 지리를 나만큼 아는 사람이 없거덩.”

“그래에?”

“그런데 너는 너무 많이 변해서 잘 몰라보겠어. 유명하게 됐다니 다행이구나.”

“유명하긴, 그런데 이 무덤은 누구 무덤이니?”

“이 무덤은……누구?”

“이건 우리 할머니 묘고, 저건 목사님의 묘야.”

“뭐라고?”

“할머니는 오래 전에 돌아가시고 목사님은 작년에 돌아가셨지.”

“작년에?”

“사고로. 빗길에 바위를 타시다가 미끄러져서 낙사하셨어.”

“…….”


멀리 구기터널로 이어진 도로가 내려다 보였다. 개천이었던 자리가 길로 닦아지자 문명은 산을 뚫었고 집이 부서진 사이를 거침없이 내달렸다. 산이 뚫린 곳에는 동그란 터널이 생기고 집이 허물어지자 그곳에서 살던 동네사람들은 전부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갔는지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너도 몰라보게 변했다.”

“지금 보니 그래도 어릴 적 모습 그대로 남아있네. 내가 너를 몰라봤던 건 미처 너라고 생각을 못했던 거지. 정말로 네가 내 앞에 나타나리라고 꿈에도 생각을 못했거든. 네가 날 못 알아보는 건 당연한 거야.”


찬우는 오른 팔을 들어 손가락으로 오그라든 입매부분을 쓰다듬었다. 흉터 때문에 자신을 못 알아봤을 거라고 가리키듯.


030-city-6.jpg

“미, 미안해.”

“뭐가?”

“전부 다.”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

“…….”

“찬우야.”

“응?”

“…….”

“말해, 뜸 들이지 말고.”

“난 몰랐어. 네가 나를 불속에서 업고 나왔다는 걸. 고마워.”

“고맙긴……. 사실. 널 어떻게 업고 뛰었는지 나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삽시간에 불이 붙은 천막이 내 머리를 덮었던 수건에 옮겨 붙었고……, 종이옷에도……, 불이 붙었지. 나는 몸에 불이 붙었는지도 몰랐어. 화상을 입었을 때는 옷을 확 벗기면 안 되었는데 그것 모르고 옷을 벗다가 이렇게 됐어. 치료를 제때 하질 못해서 그만……. 그래도 장 기자 아저씨가 그때 나를 많이 돌봐주셨어. 나를 병원에 데려다 주신 분이 아저씨였거든. 나중에 보니까 너네 집은 이사 가고 없더라. 왜 그렇게 말도 없이 가버렸니?”

“날, 찾았니?”

“소식이 궁금했었지. 난 네가 연극배우가 될 줄 알았어. 극단에 있으면 혹 널 만날 수 있을까 기대했었어. 언젠가는……. 널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극단 주변을 맴돌았는데. 그래도 그렇지 훌쩍 떠날 수가 있니?”

“그러게. 연락을 할 형편이 안 됐어. 정신이 온전치 못한 엄마가 결국 약도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돌아가셨어. 혼자 살아가기엔 이 세상은 너무 넓고 버겁더라. 엄마가 돌아가시지만 않았어도 생활이 좀 달라졌을까? 아마 그랬겠지. 그럴 줄 알았으면 독박골을 떠나는 게 아니었는데. 엄마랑 야밤에 독박골을 떠나 다른 곳에 살아도 어김없이 봄은 오더라. 무심하게도 꽃이 피다가 때가 되면 저절로 졌지. 여름은 나를 자라게 했고 가을은 나를 어른이 되게 했는데…….”

“그럼, 지금 결혼은……?”

“결혼했다가 지금은 혼자야. 전남편 릭 플린을 만났던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나는 그가 복무하는 부천캠프 근처에서 일을 했었거든. 복무기간이 끝나고 남편 따라 미국에 쫓아가긴 했는데……, 그리곤 곧 이혼을 했지. 그다음부터는 끝이 보이지 않았어. 구차하다는 생각도, 원망도. 앞날에 대한 희망도. 차라리 아예 포기하는 게 마음은 편하더라. 그래, 양미래라는 과거는 이제 잊자. 그렇게 말야.”

“힘들었겠구나.”

“응, 아주 많이 그랬지. 그래도 차마 죽지는 못하겠더라.”

“야, 죽기는 왜 죽어. 나도 여태 살고 있는데.”

“…….”

“너는 몰랐을 거야.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너네집 대문 앞을 서성거렸어. 네가 우리 반에 전학을 오던 날. 독박골을 산다고 진숙이에게 말하는 소리를 듣고 다음 날부터 아침밥도 안 먹고 너네 집 부근에서 네가 나오기를 기다렸던 걸 넌 모를 거야.”

“그랬니?”

“늦지 않으려고 아침마다 뜀박질을 해야 했기에 늦은 가을까지 반팔차림으로 학교를 다녔지. 그런데 여름엔 괜찮은데 가을이 되니까 아침에는 뛰느라 땀이 펄펄 났지만 하루 종일 추위에 덜덜 떨며 지내야 했어. 그래도 날만 흐리지 않으면 견딜 만 했는데. 초가을을 앞 둔 날이었나. 그날은 유난히 날이 흐렸었어. 어찌나 추웠던지 쉬는 시간만이라도 뛰고 놀지 않으면 경련이 일 듯 몸이 떨려 견딜 수가 없었거든. 그날 운동장에서 너를 보았을 때 난 창피해서 달아나고만 싶었다고. 퍼런 내 입술과 소름 돋은 내 팔뚝을 너에게 보여주는 게 싫어서 말이야. 그것도 모르고 너는 튀김을 사준다고 내 팔을 잡아끌었잖아. 사실 고소한 기름내가 풍기는 따뜻한 튀김을 한 입 베어 먹었을 때 어찌나 맛있던지. 하루 종일 떨었던 온몸이 스르륵 녹아내리더라. 그때 난 마음속으로 마음먹었지. 나중에 어른이 되면 미래한테 맛있는 거 많이 사줄 거라고. 그런데 아직 그 약속은 지키지도 못했네.”

“그깟 튀김이 뭐 별거라고.”

“훗, 이거, 옛날 생각나네. 니가 내 부인이었잖아. 그때 내가 얼마나 곤란했는지 아냐? 희옥이랑 너랑. 부인을 두 명씩 데리고 사느라고.”

“에휴, 그건 소꿉놀이였잖아.”

“어쨌든. 게다가 하는 일이라곤 맨날 밥만 먹고 잠만 자래. 하. 하. 하.”

“애들 소식은 알아?”

“모두 독박골을 떠났어. 지금은 어떻게 사는 지 소식 없어. 걔들도 아마 이 독박골이 그리울 텐데.”

“그럼 넌, 계속 이곳에서 살았던 거니?”

“그러니까… 천막교회가 불이 나고 독박골은 난리가 났었잖아. 다행히도 죽은 사람은 없었지. 그 화재 뒤로 네 아버지는 행방불명이 되었고 애꾸가 될 뻔했던 목사님은 나와 함께 이곳에 살았더랬어.”

“목사……님에 대해 잘 알아?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 엄마하고…….”

“진실을 알고 싶은 거니? 진실이라는 건 네가 믿고 싶은 게 바로 진실이야. 그 이상은 상상하지 마. 목사님이 네 어머니를 우리 집에 데리고 왔지. 할머니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나에게 신신당부해서 너한테도 네 엄마가 우리 집에 있었다는 걸 말하지 않았어.”

"그건 좀 너무하다."

030-city-5.jpg

- 그래, 내가 지은 죄가 크지. 내가 이 독박골로 처음 들어왔을 때 기억나나? 공터에 천막을 치려는데 너희들이 내게로 달려와서 돕겠다고 했지. 실은 그땐 나는 사이비였어. 영화 만든다고 투자자들 모아다가 부도를 내고 이 동네로 숨어들어온 거였다고. 교회는 내가 어릴 적부터 다녀서 나도 풍월을 좀 읊을 줄 알았지. 우리 아버지가 목사였거든. 우리 아버지가 날 목사 만든다고 그렇게 소원했는데 그놈의 가난이 하도 지긋지긋해서 영화배우해서 떼돈 벌거라고 허풍을 떨며 젊은 시절을 홀라당 까먹었지. 설교 그거 뭐 별거 아니더라고. 게다가 이런 촌 동네에서 얼렁뚱땅 설교하는 게 뭐가 어려워. 동네 사람들이 내 연기에 깜박 속아 넘어갔지. 그래도 나는 나름대로 진짜 목사처럼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어. 그 장일춘 기자가 어떻게 내가 이곳에 숨어있는 걸 알아갖고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날 감시했었지. 세상에 숨을 곳이 없었던 걸 몰랐던 게 내 실수야. 그래도 쥐방울만한 양심은 있어서 비록 내가 가짜 목사이긴 하지만 이 순박한 사람들에게 상처 주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런데 미래 아버지가 다짜고짜 내 눈을 이 모양으로 만들더라고. 그러나 미래 아버지가 휘두른 칼로 상처를 입고 난 다음에 깨달았지. 한 마디로 나는 벌 받은 거지. 흉터만 생긴 걸 다행히 라고 여기며 나는 진짜 목사로 살아가기 위해 이 산속에 남았어.

내 눈 아래 이렇게 흉터를 만든 미래 아버지를 원망 하냐고? 솔직히 원망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은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그게 미래 아버지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고 내가 뿌린 거짓의 결과였다는 건 인정해야지. 가짜 목사노릇을 한 죄의 대가아니겠어? 남들은 눈치 채지 못했겠지만 내게 닥친 불행이 나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을 내가 왜 모르겠어. 그러니 정말 미치겠더라고. 죽고만 싶었지. 하지만 어딜 피해서 달아나겠어. 나에게 남은 거라고는 가치가 없는 목숨뿐이었지. 이런 쓰레기 같은 자식. 죽어도 싸지. ‘왜 살아남았냐!’ 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산 속에 올라와서 내 가슴을 치며 삿대질을 하며 울부짖었다고.

이 숲을 봐. 이 거대한 숲속 안을 살펴보면 겉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아주 비정하지. 생존을 위해서는 연민이고 동정이고 없어. 개구리는 긴 혀로 날 파리를 순식간에 낚아채고, 투명한 거미줄에 걸린 나방은 버둥대다 거미의 밥이 되어버리거든. 허무하지? 사람도 자신을 학대하거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동물과 다를 게 없어.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게 뭔지 아나? 그건 자기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는 거라네. 그리고 솔직하게 인정해야지. 성공하고 싶은 그 내면에 자리 잡은 비열한 욕망을 말이야. 겸손이라고는 하지만 남들 몰래 감추고 있는 유치한 열등감을 덮어버리지 말고 고백하는 거야. 나를 인정하는 일이야말로 나를 만든 창조주를 인정하는 거라네. 창조주가 만든 피조물이 고장이 났으면 당연히 창조주에게 고쳐달라고 달려가야지. 그걸 혼자 해결한다고 끙끙대면 나중에는 자기 부인에, 변명에, 세상만 원망하다가 목숨을 끊는 못난 짓을 하게 되지. 나는 미래 아버지를 원망할 염치조차 없었어. 다 내가 뿌린 죄 값인 걸. 그래도 다행히도 두 눈은 멀쩡하게 세상을 볼 수가 있잖아? 죄의 대가는 도망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야. 달아난다고 끝이 나지 않아.-


“목사님이 어떤 사람이었든, 그런 중요한 일은 아니야.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네 아버지를 목사님이 돌보아주셨던 것도 그랬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지?

“뭐? 목사님이 우리 아버지를?”

“그래, 그분이 너의 아버지였다는 것을 처음엔 몰랐지. 행색이 너무 형편없어서 그냥 걸인인 줄만 알았데.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던 목사님이 우연히 너희 아버지가 길에서 신음하는 것을 보게 되었고 위급한 상황이라 병원으로 급히 옮겼지. 목사님 연락을 받고 나도 병원엘 갔거든. 우선 연락할 가족이 있을까 싶어서 소지품을 찾다가 신분증을 발견하게 됐어. 너의 아버지는 목에 신분증을 걸고 다니시더라고. 너의 아버지 성함은 내가 잘 알잖아. 그 신분증을 보고 단박에 알았지. 너의 집 대문 앞에 걸려있던 문패에 새겨졌던 이름과 같았거든.

성명 : 양준만

대상구분 : 무공수훈자

보훈번호 : 00000000

훈격 ․ 상이등급 : 화랑

기분이 묘하더라고. 너의 아버지는 두려움의 본질을 아는 분이셨어. 하긴 칼을 휘두르셨던 건 홧김에 그랬던 게 아니라 그만큼 신념이 남달랐던 거지.”

“그게 무슨?”

“솔직히 나는 하나님이 없다고 보지는 않았지만 있다고 믿지도 않았어. 아니, 안 믿는다는 쪽이 더 가까웠는지도 몰라. 천막교회를 다녔던 건 재미삼아 다녔고, 그땐 그것밖엔 재미라곤 없었으니까. 말하자면 환경에 떠밀려 교회라는 걸 접하게 됐으니 믿음이니 신앙이니 하는 건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어. 나에게 관심이란 게…….”

“뭐?”


후……읍.


찬우는 말을 하다말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울음을 삼키려는 듯. 복받치려는 감정을 억누르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 그는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마치 해묵은 상처들과 결전이라도 벌이고 있는 표정이었다. 기다려야했다. 찬우가 그 무거운 침묵의 휘장을 제치고 자신을 드러낼 때까지 나는 잠자코 기다려야만 했다.


“부, 불이 나던 날, 난 죽어가는 할머니를 외면하고 너를 들러 업었어. 불이 났던 그 뿌연 연기 속에서 나는 힐끔 할머니를 돌아봤지. 애원하듯 나를 바라보던 할머니의 눈빛. 지금도 그 눈빛만 떠올리면 가슴이 저려와.”

“어떻게 그런 일이?”


찬우는 급기야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꼈다. 울음도 쌓이면 석분처럼 굳어지기 마련이다. 오랜 세월동안 짓눌려 단단해진 눈물을 쏟아내는 그의 모습은 마치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절망스러워보였다.


“차, 찬우야.”

“할머니의 간절함을 외면한 채 나는 너를 업고 할머니를 천막 안에 둔 채 빠져나와버렸어. 목격자도 없으니 세상에 알려질 일도 없는 그 일은 망각 속으로 묻혀가는 듯 했지. 내가 나를 어떻게 위로 했는 줄 알아? 할머니는 워낙 건강이 안 좋으셨고 그 일 때문이 아니더라도 병 때문에 돌아가셨을 거라고 멋대로 갖다 붙였어. 할머니는 불이 난 일주일 후에 숨을 거두시고 나는 지금까지 태연하게 살았던 거야.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할머니를 죽인 살인자라는 죄책감은 사라지기는커녕 아주 빳빳하게 고개를 처 들었어.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마음속에 핑계거리를 만들어서 위안을 삼고 변명했거든. 나를 이런 가정 속에 집어 처넣은 건 하나님, 당신이라고 말이야. 하나님은 할머니를 죽게 한 대가로 나를 이런 불행 속에서 고생시키는 속 좁고 유치한 존재라고만 여겼지. 그리고 또 신이 있으면 어떻고 또 없으면 어떻다는 건가. 죄를 짓고도 용서만 구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교리는 편리했지. 그래서 나는 겉으로는 열심히 교회에 나갔지만 의식적으로 교회를 싫어했어. 왜냐면 나는 할머니의 죽음을 방조했잖아? 그걸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자신은 속일 수 없는데 교회에 가서 앉아있는 자리가 떳떳할 리가 있겠니? 그래도 나는 어떤 식으로든 가증스런 논리로 할머니를 죽게 한 나의 죄목을 없애려고만 했어. 그 대신에 내가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고 살자는 다짐을 했었다. 그럴 듯했지. 사람들은 깜박 속았던 거야. 나의 위선에 하, 하, 하.”

“차, 찬우야.”

“더 들어봐.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너의 아버지는 나를 정확히 파악하시더군. 가증스런 믿음의 두께를 말이야. 매장된 줄로만 알았던 나의 양심은 전쟁 중에 사람을 죽이고 평생 동안 자신을 학대해왔던 너의 아버지의 괴로움에서 되풀이되었고 숨겨놓았던 죄책감까지 생생하게 되살아나더라고.”

030-city-7.jpg

“너의 아버지를 병원에 모신지 한 달쯤 지났을 거야. 생전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가 뜻밖의 고백으로 내 본질을 휘저어 놓으시던 밤이었어. 난 그날 괴로움에 잠조차 잘 수가 없었어. 의자는 왜 그렇게 딱딱하고 배기던지. 다들 잠이 든 복도는 아주 잠잠했어. 밤이면 한두 번은 꼭 내 이름을 호출하던 안내방송이 고장이 났는지 그날따라 조용하더라고. 나는 뒤치락거리다가 슬그머니 일어나 병원 복도를 오고가며 챠트 정리를 하는 간호사 곁을 지나 너의 아버지가 누워있는 병실 문을 열어보았는데 주무시는 모습이 너무 평안해보였어. 그런데 예감이라는 게 참 묘해. 문득 이상하다하는 생각이 얼핏 스쳐지나가는 거야. 두 시간 간격으로 진통제를 맞지 않으면 통증으로 견디질 못하는데 고통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고 이상스러울 만치 평안해보였으니. 너무 차분해서 혹시, 돌아가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퍼뜩 나서 침대 곁으로 갔더니 그만, 용서를 구하고 싶다던 너의 아버지의 고백은 살아남은 자들이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겨놓고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


그랬구나. 그래도 나는 막연하게나마 아버지가 어딘가에 살아 계실 줄만 알았다. 아니, 그렇게 여기고 싶었다. 어느 하늘 아래든지 살고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싶었다. 언젠간 만나겠지. 원망도 마르고, 책망도 무색해지는 어느 날 나는 아버지 앞에 나타나리라고 기대했었다.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이상하게도 미워하는 마음이 들면 그 미움 때문에 몹시 괴로워해야 했다. 밉다가도 그리워지고, 그립다가도 원망이 되었다. 그것 때문인지 죽는 순간까지 엄마는 눈을 감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엄마는 아버지에게 용서를 빌 수 있는 날이 오길 간절히 기다렸을 테지.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눈물은 가슴에서 타버린 지 오래다. 그리움도 작은 티끌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젠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 이 세상에서 마지막 말이 되어버린 말이 화산처럼 가슴에서 복받쳐 올라왔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 다음은 장편소설 독박골 산1번지 마지막 편인 "제18화 우리들의 이야기" 편이 이어집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제16화 휘어진 십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