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독박골 산1번지" 마지막 회
- 자넨, 젊은 청춘에 전쟁에 뛰어들어 사람을 죽인다는 게 어떤 건지 아나? 열일곱 살에 학도병으로 전쟁에 참가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동료들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했지. 실은 나도 그때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어. 전쟁터에 내일은 없는 거야. 언제 총탄이 날아와 내 심장을 꿰뚫을 지. 그런 판국에 야망이 무슨 소용이 있고 영원이라는 게 무슨 개똥철학이야. 모두 다 웃기는 헛소리지. 사람들이 신을 찾는 이유가 뭔지 알아? 겉으로는 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찾지만 실은 신을 사랑해서가 아니고 무서워서 신을 찾는 거라고. 죽을까봐서, 살려달라고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거란 말이야. 살아있는 사람에게 목숨이란 공포 그 자체지. 방금 전까지 나랑 얘기 하고 웃고 떠들던 사람이 총알이 박혀서 호흡이 끊어졌다고 생각해봐. 끔찍하지. 산다는 게 오히려 공포로 느껴질걸. 그래도 죽은 사람은 생명이 순간적으로 끝나니까 두려움을 느낄 시간조차 없지만 산 사람은 눈으로 보면서 두려움을 체험하게 되지. 겁나는 거야. 나도 저렇게 무참하게 죽을 까봐서. 파리처럼 맥없이 죽어가는 광경을 보면 마음을 비우는 게 아니라 더 악착같이 살고 싶다고 아등바등 신에게 매달리는 게 인간의 본능이이라고. 나는 그렇게 치사하게 생명을 구걸하고 싶지는 않았지. 대신 나는 미친 듯이 전쟁터를 누볐어. 죽여 볼 테면 죽여 봐라! 하고 말이야.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죽지 않고 살아남았네. 전쟁은 3년 만에 끝이 났고 난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것 같아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군. 그래서 군대에 계속 남겠다고 했지. 그런데 전쟁 끝난 군대는 사회나 마찬가지야. 경쟁만 남았던 거지. 죽을 고비에서 살아남은 나는 전투가 아닌 이번엔 삶이라는 전쟁과 싸워야 했어. 말하자면 전쟁에서는 영웅이었지만 삶에서는 패잔병이었지. 사회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폐물이 된 나였다고. 차라리 전쟁이 나서 총알을 갈기며 뛰어다니는 게 더 나았는지도 몰라.
자넨, 하나님이 진짜로 있다고 보나? 믿는다고? 봤어? 보지도 않고 봤다고 엉터리로 둘러대지 말고 차라리 솔직히 모른다고 말해. 하나님이 뭐하는 분인지도 잘 모르면서……, 난 하나님이 없다고 여겼지. 신은 죽은 거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스무 살도 안 되는 꽃다운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갈 수가 있겠는가? 하나님이 있다고 떠들고 다니는 건 사람이 죽어가는 끔찍한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래. 거기가 바로 지옥이었으니까. 나는 이미 지옥을 갔다 왔다고. 쌓여진 시체를 보며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어?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작자나 거기에 광신적으로 매달리는 무지한 인간들이나 다 쓰레기 같은 것들이야. 왜냐면 죽을까봐 전전긍긍하거나 오로지 잘 살기 위해 무당한테 매달리듯 교회에 출석하는 거라고.
도대체 하나님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거지? 그런 질문을 해본 적 있어? 나는 물어보았지. 언제 물어봤냐고? 내가 잠을 자는 곳이 어딘 줄 아나? 교회였지. 문이 열려 있는 교회라면 아무데나 들어가서는 잠을 잤어. 문이 열린 교회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야. 뭐 그리 훔쳐갈게 많은지 문을 꼭꼭 닫아걸어 놓더라고. 교회에서 잠을 자면 새벽이면 일어나야 한다는 게 괴로웠지만 그래도 구질구질한 지하철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 교회에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나도 새벽에 깨서 남들처럼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하는 척했어. 그냥 눈만 감고 있었던 것은 아니야. 물어봤지. ‘당신은 정말로 살아있습니까?’하고 말이야. 가족들을 보고 싶다고 말했던 것도 같아. 그런데 가족대신에 자네와 그 목사를 떡하니 만난 거야. 난 한 눈에 알아봤어. 눈자위 아래로 그렇게 긴 흉터를 갖고 있는 사람이 그리 흔하겠어? 등골이 서늘해지데. 달아나고 싶었지. 그 목사가 나에게 똑같이 보복을 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잖아? 자네 같으면 나 같은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겠어? 자기 얼굴을 그렇게 만들어놨는데. 그런데 그 목사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더군. 이해할 수 없어. 내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는 전혀 달라서 오히려 당황이 되었지. 병원에 입원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도 뿌리치고 싶었지만 길거리에서 죽을 수는 없다는 자네와 그 목사의 설득을 못이기는 척 따랐지. 그 목사라는 사람 이해할 수 없는 양반이야. 그리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또 있는데……. 어느 날인가 교회에서 깜박 잠이 들었는데 십자가에 매달려있던 조각품이 천천히 움직이더니 나를 어루만지는 거야. 어찌나 다정하게 나를 감싸 안는지 나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말했어. 나 자신을 용서하고 싶다고. 내가 나를 증오하니까 남들도 용서할 수 없었다고. 난 지독하게 나를 미워했거든. 내가 죽을 때가 가까우니까 가끔씩 그렇게 헛꿈을 꾸나봐. 어제도 조각상이 내 병실에 찾아왔었어. -
서울역 기차대합실에 들어섰다. 찬우가 기차표를 사러 간 사이 나는 대합실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대합실 군데군데에 영상기가 설치되어있었다. 망연하게 앉아 영상을 바라보는데 낯익은 문구가 비춰졌다.
‘아름다운 서울 사진전’
-그리움의 문턱을 넘어서-
카메라 앵글이 ‘그리움의 문턱을 넘어서’라는 부제가 붙은 현수막으로 돌아가고 여자 앵커가 그 현수막 앞에 마이크를 들고 멘트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 서울 광장에 이색전시회가 열려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리움의 문턱을 넘어서’라는 현수막에 쓰인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이번 사진전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한국계 미국인 조앤 플린 선생의 초대전입니다. 전시회가 오전 10시부터 오픈이 되기 때문에 현재 작품들은 전부 가려진 상태입니다. 지금 많은 분들이 관심과 호기심으로 오프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선 시민 한 분을 모시고 오늘 전시회에 대한 소회 한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오늘 이 사진전을 구경하려고 오셨나요?”
“네, 조앤 플린 씨 작품을 제가 좋아하는데 그분이 본 서울의 모습이 궁금하고 또 ‘그리움의 문턱을 넘어서’라는 저 문구가 제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네요. 저는, 실은 서울이 고향이 아니거든요.”
“아! 그러세요. 그럼 지금 고향엔 누가 사시나요?”
“부모님께서 사시는데 자주 뵙질 못해서 죄송스럽습니다.”
“올 명절에는 꼭 고향을 가보셔야겠네요.”
“예, 그럴 예정입니다.”
“저기, 저쪽에 계시는 다른 분께 여쭙겠습니다. 고향이 서울이세요?”
“아닙니다. 저도 지방에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말씨는 완전히 서울 분 같으십니다.”
“아, 예. 노력 많이 했습니다.”
“서울에서 사시기가 어떤가요?”
“서울에서 살고는 있지만 마음은 늘 고향에 있습니다. 정말로 지금 제 앞에 문턱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넘어서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습니다.”
“네. 지금 몇 분과 말씀을 나눠봤는데 아마 현재 서울에 사시는 분들 대부분은 고향을 떠나오신 분들인 것 같습니다. 아마 서울에 살고 있다고 해도 자신이 태어난 동네에서 평생 사는 분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리움’하면 왠지 감동이 전해지는데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작가가 담은 서울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우선 조앤 플린 선생님을 이 자리에 모셨는데 한 말씀 들어보겠습니다. 조앤 선생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이제 잠시 후면 사진이 오픈이 될 텐데요. 이번 전시회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하셨는지 들려주시겠어요?”
“하늘 아주 가까이에……. 희망을 접어버린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들던 동네를 여러분들은 모르시겠지요. 그 동네는 이상망뚱한 동네였습니다. 사람들은 산속 계곡 옆에 길 따라 물 따라 투닥투닥 집을 지어 아침밥을 지어먹고 저녁이면 털 빠진 깃털을 접고 잠을 잤습니다. 개풀 뜯어먹는 소리가 웃음으로 통하고 넉넉하진 않지만 부족한 것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집달이들이 몰려와 무허가 건물이라며 망치로 장난감 부수듯 집 한 귀퉁이를 부셔놓고 가버려도 사람들은 풀잎처럼 일어나 바람을 맞이했습니다. 집달이의 무례함만 빼놓고는 목소리가 제일 큰사람이 장땡인 그곳, 어른들의 넋두리가 끊이지 않던 동네에서 저는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았지만 헐벗고 비루한 사람들이 유일하게 활개를 칠 수 있었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 동네에도 전봇대가 세워지고 수도시설이 가설됐습니다. 문명은 감격스러운 일이어서 동네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문명이전의 세월들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도시도 사람처럼 늙어가기 때문이거든요. 도시가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만큼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도 많다는 뜻도 되겠지요. 삶의 애환은 모델하우스가 아니기에 새 건물이 들어선다고 그 속에 깃들여있는 사람들의 넋마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어쩌면 제가 살던 곳은 물질의 눈으로 본다면 하찮고 보잘것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낡고 허름한 집 대신에 번듯한 아파트촌이 들어서서 어디에도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은 영혼과 같아서 흘러간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난 삶을 그리워지게 만듭니다. 현재의 시간은 눈으로 보지만 과거의 시간은 마음으로 봐야 합니다. 영혼의 눈으로만 봐야하는 에덴의 동산을 여러 분께 보여드리려고 준비했습니다.”
“정말로 기대가 되는데요. 이제 오픈 시간이 다 됐나봅니다. 자! 보십시오.”
진열대를 가렸던 흰 천을 일제히 벗겨내자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다.
“와-.”
그리고 다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진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반응이다. 진열대에 걸린 것은 사진이 아니라 손으로 그린 세필화였으니 놀랄 만도 하겠지.
인화된 사진은 딱 두 장뿐이었다.
찬우가 날 업고 뛰던 장면.
요셉과 마리아 복장을 한 아이들의 정지된 웃음.
확대하느라 해상도가 낮아져서 선명도는 떨어졌지만 뿌연 사진은 독박골로 들어가는 길로 사람들을 안내했다.
삶의 이야기, 양철로 덧댄 지붕에 빗물이 떨어지면 지붕이 무너질까 맘 조리던 사람들, 햇빛이 병아리 꼬리만큼 비치다 사라지는 창문을 열고 하늘을 쳐다 볼 줄 알았던 사람들. 푸른곰팡이들이 서럽게 내려앉은 무겁고 눅눅하게 방안에 살았어도 별을 보면 감탄할 줄 알던 사람들. 일자리를 잃어 인대가 끊어지는 것 같은 굶주림에도 웃을 수 있었던 순박한 사람들. 허름한 토담집에서 바람이 문짝을 흔들어대는 소리를 들으며 내일의 끼니를 걱정하고 살아가야했지만 슬픔조차 아름다웠던 지난 시간들이 광장 벽면을 가득 채웠다.
카메라의 앵글은 그림을 보고 어느 여자의 얼굴을 크로즈 업 했다. 그녀의 눈가에 촉촉이 눈물이 타고 흘렀다. 그녀도 돌아갈 고향이 있는 건가? 아니면 돌아갈 수가 없는 건가. 챙처럼.
흑인에게 얻어맞지 않았다면 챙은 베트남으로 돌아갔었을까? 어쩌면 그녀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향수는 돌아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망가진 영혼을 회복시키려는 몸부림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독박골을 지키고 있던 찬우, 나를 기다렸다는 시간만큼 내가 찬우 곁에 머문다면 그를 닮아갈 수 있을까. 설사 그런다고 해도 나는 찬우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나를 버리는 일이었으며 동시에 나를 포기하는 일이기도 했다. 누굴 위해 나를 포기한 적이 없는 나는 그를 흉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그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해도 찬우는 아마 죽는 날까지 X축과 Y축에서 만나는 꼭짓점에서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고 멈춰 섰을 테지.
지난 10개월 동안 나는 찬우가 사는 계곡으로 숨어버렸다. 예전의 독박골의 모습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지만 계곡을 꾸미고 있는 돌멩이들과 나무들은 예전 그대로였다. 불두화 나뭇잎에 매달린 장수벌레를 툭 건드렸더니 놀란 듯 날개를 펴고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물푸레나무 아래 닭의장풀이 화려하게 피어있었다. 바위틈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 옆에 한 무더기의 달맞이꽃이 머리를 맞대고 모여 있었다. 숲을 이루고 있는 것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없었다. 내가 어릴 적 보았던 그 나뭇잎은 그 모양 그대로 나뭇가지에 매달려있었다. 옛날에 바위였던 것이 세월이 흘렀다고 바위 비슷한 모양으로 바뀌진 않았다. 겨울동안 개구리 알을 품었던 계곡 물도 여전히 졸졸 거리며 흘러내렸다.
문명 앞에 숲이 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있다던가. 언젠가 프랑스의 작가 샤토브리앙이 했던 말이라며 책꽂이에서 책을 꺼내던 쿽이 말해주었다. 내가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그렇게 대답했다.
“결혼은 인생이라는 문명에 사막을 만드는 일이라서.”
계곡에서의 하루가 지나가고 숲속에서의 이틀이 흘렀다. 찬우가 가는 곳에 내가 있었고 내가 있는 장소에 찬우가 함께 있었다. 극단에 일이 있는 날은 찬우를 따라 시내구경을 했다. 계곡 안에 있을 때는 숲 터를 지키는 찬우를 따라 족두리 봉에도 올라갔다. 넓은 바위 위에는 누군가 만들어놓은 제단이 푸른 하늘을 향해 나풀거렸다. 인간의 간절함은 하늘 가까운 곳에 자리 잡기 마련이다. 무슨 기도를 드리는 중일까. 나도 그 곁에서 간절하게 중얼거렸다.
‘문명을 등지고 살아가는 한 남자의 가슴에 문명으로 뚫린 길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독박골, 한때는 가난 때문에 수치스럽다고 여겼던 동네였지만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나는 비로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살았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 수 있는 사람은 좌절 같은 것은 없는 거라고. 캄캄한 밤하늘에서 나는 비로소 잊었던 꿈을 보았다. 나뭇잎 위에 부서지는 햇살 너머로 그리움이 어른거렸고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삶의 감동이 쏟아져 내렸다. 내 두 눈의 눈꺼풀을 싸고 있던 오염된 껍질이 벗어지기 시작했다. 그건 숲이 아니라 찬우 때문이었다. 사람의 영혼을 치료하는 계곡 때문이 아니라 찬우가 내 옆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디에도 옛 기억을 되살릴만한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독박골에서 숲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찬우가 이 계곡에서 더불어 살아가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그 삶을 담기로 했다. 온몸으로 살아가던 어른들의 모습. 비로소 온몸으로 살아가는 것 밖에는 방법을 몰랐던 사람들이 이해됐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벌깨덩쿨 주위로 꿀벌 두 마리가 윙윙 거리는 장면을 찍다가 문득 하루 세끼 수제비만 끓여먹었다는 병찬이의 서럽고 슬픈 표정이 떠올랐다. 야간학교에 다니는 게 창피했던 동네 언니가 골목길로 학교를 가는 것도 모르고 튀김사달라고 조르던 어이없는 내 철없음도, 어느 집인지 숨어살다가 수갑을 차고 경찰한테 끌려가던 어느 청년의 살벌한 풍경도, 해가 질 무렵이 되면 밀가루를 뿌려놓은 것같이 뽀얗게 화장을 하고 독박골 고개 아래를 내려가던 술집 아가씨의 재빠른 걸음도. 모두 허공에서 부서진 사연들이지만.
보이지 않으면 담을 수 없는 것들, 홀연히 사라진 시간들을 나는 빠짐없이 종이 위에 끄집어냈다.
“미래야! 일어나. 기차 타러 가야지.”
“그래.”
털커덕 털커덕. 기차는 밭을 지나고 동네를 지났다. 밭이 시작됐는가싶으면 어느새 산을 지나고 산이 시작됐는가싶으면 강물이 흘렀다. 올망졸망 시골길을 가로지르다가 덜컹덜컹 흔들리는 작은 도시를 보았다. 애련하게 매달리는 눈 꼬리 끝으로 나뭇가지가 쫓아오고 숲이 와락 달려들었다. 예전에도 이렇게 땅덩이가 작았던가. 훌쩍 어른이 된 나는 문득 모든 게 작다고 느껴졌다. 숙명적인 크기와 절대적인 운명이 맞닿은 산과 강물사이로 기차는 철로를 붙잡고 달렸다.
“참 작네!”
“광활한 미국 땅을 보다가 한국을 보니 우습니?”
“어렸을 적엔 무지 크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작다니…….”
“나……, 난 말이야, 지키고 싶었어.”
“응? 뭘.”
“사람들이 돌아올 거라고 믿었어. 조만간 사람들은 잃어버린 기억들을 찾고 싶어서 독박골을 찾아올 거라고 여겼지. 지난날에 대한 회상은 그리움뿐만 아니라 짙푸르게 멍들어가던 아픔을 조금씩 아물게 해주거든. 상처였다고 해도 간혹 떠오르는 옛 추억은 잃었던 영혼을 되돌려놓게 하는 능력이 있어. 그래서 나는 나이를 먹는 걸 두려워했지. 늙기 싫다는 단순한 욕망이 아니고……. 그런 차원이 아니라, 나이를 먹게 되면 옛 기억들이 희미해질까 봐 그게 좀 안타까웠을 뿐이야.”
“무엇을 그토록 간직하고 싶었던 건데?”
“그건, 마, 말…… 할 수 없어.”
“바보.”
바보. 예전에도 나는 찬우에게 바보라고 그랬었다. 그걸 기억했는지 찬우는 내 말에 잠자코 마주잡은 자신의 손가락을 응시했다.
“나, 독박골로 돌아올까?”
“…….”
대답대신 찬우는 내 손을 꽉 쥐었다. 그리고 덜커덩 흔들리는 유리창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한차례 인생의 격렬함이 훑고 지나간 다음에 남는 건 죽음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일까. 이렇게 덤덤할 수 있는 건 젊음이 쏟아버리고 간 자존심의 퇴락이 아니라 순수하기만 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아련한 향수 때문일 것이다. 초로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직 설익은 야망의 찌꺼기가 남아있다면 그건 지난 세월에 대한 애정은 아니다. 기억의 어느 한 부분은 세월만큼 복수를 키울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잔잔함은 증오와는 거리가 먼 서로에 대한 연민이었다.
우리는 대전역에서 내렸다. 광장을 지나 길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전철과 버스를 갈아탔다.
현충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발걸음이 묵직해졌다. 스피커에서 나지막하게 흘러나오는 가곡은 가슴에서 저릿저릿 울렸고 눈가에는 벌써부터 벌겋게 눈물이 고여 들었다. 사병묘역을 지나 장교묘역 쪽으로 올라갔다. 병풍처럼 둘러진 계룡산은 아주 드높고 웅장해보였다. 우거진 나무들은 활처럼 펼쳐져 영령들을 위로하려는 듯 말없이 비석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열을 지어 세워진 비석들 사이에 아버지의 이름이 보였다. 전쟁 때문에 목숨을 아끼지 않았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언젠가 있을 전쟁 때문에 목숨을 맡긴 영령들의 이름들 틈에 아버지의 비석이 있었다.
육군 대위 양준만.
“아버지! 아버지! 저 왔어요.”
목이 메었다. 털퍼덕 비석을 붙들고 주저앉았다. 회한이 복받치고 미안함에 무릎을 세우고 서있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이 있다면 부끄럽게도 오해뿐이다. 불쌍한 아버지, 위로 한 번 받아보지 못한 불쌍한 아버지. 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젊음을 평생을 두고 절망했을 아버지를 이제야 찾게 됐지만 세월은 한 사람의 일생을 이해하도록 기다려주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누구나 다 연습 없이 인생을 살아가기에 시행착오는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위로의 말을 진작 했어야 했다. 비석은 차가웠다. 땅속에서 끌어올려진 차디찬 아버지의 호흡일 것이다. 냉기로 가득한 땅 속에서 뿜어지는 아버지의 숨소리를 쓰다듬었다.
세상엔 미안하다는 인사치레로 갚을 수 없는 게 있었다. 고맙다는 말로도 탕감이 어려운, 빚이라고 하기엔 무겁고 사랑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벼웠다. 용서를 구한다면 그건 서로에게 잔인한 일이리라. 애초부터 나는 누구와도 원수가 아니었으므로 용서를 구하는 건 가당치 않았다. 그런데 나는 지금 용서를 빌고 싶었다. 조앤 플린이 되어버렸고 이제는 양미래로 돌아갈 수도 없는 나는.
“아버지한테 용서를 빌고 싶어.”
“네 아버지는 아무도 미워한 사람이 없어.”
“실은 난, 아버지를 미워한 적이 없어. 아버지에게 그 말을 했어야 했는데.”
“미래야, 그 마음을 네 아버지도 아실 거야.”
“찬…우…야, 이제, 다 끝났네.”
“끝나긴. 지금부터 우리들의 이야기가 시작인데.”
찬우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가 내미는 손을 잡았다.
“자, 가자. 집으로.”
-끝-
그동안 장편소설 독박골 산1번지를 읽어주신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