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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희 Nov 11. 2017

그들만의 전시회

옆집 담장에 난데없이“Art Show"라는 배너가 걸려있었다. 옆집 사는 백인 남자는 일요일마다 집수리하는지 드릴소리를 냈다. 어떨 때는 높다랗게 자란 침엽수 나뭇가지 치는 소음으로 모처럼 즐기려든 휴식시간에 방해를 주던 바로 그 옆집 울타리에 색다른 배너가 걸린 것이다. 가끔 그 집에 사는 흰 턱수염이 난 백인 남자와 그보다 체격이 큰 노랑머리 아내를 마주치긴 했어도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적은 없다.


  그 집은 유색인종만 사는 동네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몇몇 안 되는 백인이었다. '백인이라서, 또는 백인이기 때문에' 라는 나의 선입견이 옳은 건지 모르겠지만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거리였어도 묘한 거리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당신 때문에 시끄럽다는 말 한 마디 못하는 속앓이가 영어가 서투른 이민자의 자격지심이겠지만.

  나는 쪽문을 드나들 때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 때문에 그 집 응접실 내부를 다 알고 있다. 가끔 불 꺼놓고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주인 남자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새장 밖으로 나와 박제처럼 움직이지도 않고 있는 커다란 앵무새를 보기도 한다. 몇 마리인지 모르는 개들이 울부짖는 소리로 미루어보아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만 알 뿐이다. 울타리 틈새로 보이는 그 집 마당은 아주 자그마한데 가끔씩 밤늦도록 떠드는 소리로 사람들을 좋아하는 사람일 거라는 상상만 한다.


  그런데 별로 커보이지도 않는 집 마당에서 무슨 전시회를 한다는 건지. 순간적인 호기심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공개적으로 오픈을 하겠다면 그 집안을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아닌가. 용기를 내어 그 집 안으로 들어섰다. 이내 후회할 거라는 상황을 미리 짐작하지 못한 게 실수이긴 했다.


  그들은 그들만의 전시회를 열고 있었다. 늘 마주치던 백인 남자는 여전히 희끗한 턱수염이 덥수룩했다. 나는 옆집에 살고 있다고 내 소개를 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애초부터 나를 반길 것을 기대하진 않았으니까 떨떠름한 그의 표정에 신경을 쓰진 않았다.


  집안에 들어서자 늘 보았던 새장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간이 칸막이가 세워져있었고 인물화들이 걸려있었다. 솔직히 그림수준은 아마추어 실력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평범한 그림도 사람들이 돈을 내고 사가는 지. 괜히 왔다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건 다음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몰랐을 때의 단순한 감정이기도 했다.

  앞마당으로 향했다. 그림이 걸려있는 칸막이 앞에 서서 사람들이 스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느닷없이 들어선 동양여자에 대한 반감이었을까. 분명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림을 가로 막고 있는 그들의 커다란 몸짓 때문에 나는 고개를 기웃거려야했다. 그래도 어느 누구 하나 내가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었다. 마치 내가 빨리 사라져주길 바라듯이.

  나는 서둘러 쪽문을 열고 그 집 응접실을 지나 집안으로 들어왔다. 저 정도 그림실력 갖고 동양인을 무시하는 백인들이라면 겁낼 게 없다는 배짱에 창문을 열고 ‘오빠는 강남스타일’을 커다랗게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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