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은 끝까지 가봐야 안다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계획을 세우는 일이 헛된 망상처럼 보일 것이다.

by 권소희

컴퓨터 마우스가 영 말을 안 듣는다. 언젠가부터 선 한줄 그리는데도 2-3분을 기다려야 했다. 점점 시간이 갈수록 마우스를 움직일 때마다 버벅거리며 속도가 느려졌다. 도저히 이 상태로는 하루에 한 컷 그리기도 힘들 것만 같았다. 하필이면 웹툰을 그리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결심한 이 시점에 프로그램이 말을 안 듣다니.


3개월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웹툰을 완성하기로 굳은 결의를 하지 않았던가. 컴퓨터를 맡기면 작업을 멈춰야 하고 그러면 리듬이 깨질지도 모른다. 리듬이 깨지면 웹툰 완성은 멀리 떠내려가는 나뭇조각이 될 거라는 염려에 버티고 버텼다. 하지만 작업속도가 점점 느려져 작업을 하다말고 컴퓨터 본체를 떼어 컴퓨터 수리점으로 달려갔다.

2-1.jpg 마우스가 버벅 거려 작업을 멈춰야 했다.

“포토샵 프로그램을 새로 깔아주세요. 다른 프로그램은 괜찮은 데 포토샵 작업하려면 무척 버벅거려요.”

“그러면 포토샵 프로그램 문제가 아닐 수도 있어요.”


엥? 머릿속이 하얗게 백지장이 되어버렸다.


“그, 그럼 어떻게 해요? 저장된 파일을 백업도 안 받아놓았거든요!”

“컴퓨터 상태를 살피는 걸로 파일이 삭제되진 않아도 되니 안심해도 돼요.”

메모리 문제인지, 그래픽 카드 문제인지 일단 컴퓨터 상태를 살펴봐야 한다는 직원의 말에 컴퓨터를 맡기고 터덕터덕 집으로 돌아왔다.


때론 인생이 계획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때가 있다. 계획을 세운다고 끝까지 간다는 보장은 없다. 하다보면 중간에 포기해야 할 때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손을 놓아야 한다. 26살에 입학한 내가 등록금이 없어 대학1학년 마치고 휴학계를 내야 했던 것처럼.


그땐, 등록금이 떨어졌으니 학교를 등록할 다른 방도가 없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대입준비를 해서 입학을 했던 나의 무모했던 꿈의 유효기간은 딱 1년 동안이었다. 직장에 사표를 쓰고 대입준비를 할 때도 내가 1학년만 마치고 학교를 그만둘 거라고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아니, 분명하게 닥칠 암울한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졸업도 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할 걸 염두에 두었다면 아마도 대학입학은 아예 이루어지지 않았을 테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계획을 세우지 않는 건 더 어리석다. 계획은 미래의 일이다.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길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계획을 세우는 일이 헛된 망상처럼 보일 것이다. 계획을 한다고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설사 계획이 원하던 성공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다고 해도 그건 실패가 아니다. 사람은 실패를 통해서 철이 들기도 한다.


다행히 컴퓨터에는 문제가 없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도 일단 포토샵을 업 버전으로 깔아 달라고 했다. 다음 날 오전에 컴퓨터를 찾아왔다. 일단 소프트 프로그램을 바꾸고 그래도 작업속도가 느리면 그때 가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직원이 알려줬다. 집에 돌아와서 떨리는 마음으로 작업을 하니 다행히도 펜툴이 부드럽게 잘 나간다.

2-0.jpg 채색을 하다말고 수리점으로 뛰어갔다. 계획을 세운다고 끝까지 간다는 보장은 없다.

포토샵 프로그램 문제였다. 진작 고쳐올 걸 차일피일 미뤘던 게 후회가 된다. 컴퓨터를 맡기고 다시 찾아오는 건 귀찮은 일이다. 그래도 고칠 건 고쳐야 한다. 뭔가 이상한 점이 발견되면 빠르게 수정해야 한다. 빤한 판단이지만 알면서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가족 간에서 발생한 문제라면 해결방법이 없다. 삐거덕거리며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해결방법을 몰라서 그냥저냥 사는 건 아니다. 기계는 고치면 되지만 사람을 고치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문제를 해결했으니 자, 이제 나의 무모한 도전기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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