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다는 것'

by soheek



주고받는 좋은 대화는 항상 많은 힘이 되어준다.


최근 들어 작업하는 과정들을 부모님과 대화를 하면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고, 도움이 되는 조언을 받고 있다. 시각적인 언어의 방식을 찾고 만들어가는 것, 그 과정을 거치고 있는 나는 지금까지 그린 언어를 잠시 멈추고 다시 생각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이유는 즉, 내가 그려낸 시각적인 언어와 생각 사이에서의 충돌 때문이었다. 완성된 그림을 보면서 내가 모든 생각들을 그림 안에 다 넣고자 하는 욕심이지 않았나라는 느낌이 스쳤고, 이게 정작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언어인가라는 생각으로 넘어갔다.


욕심, 아빠는 자기의 욕심이라는 것을 알았을 땐 비워내라고 했다. '비우다'라는 단어의 뜻은 알고 있어도 그림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잡혔다. 최근에 그린 두 세점의 그림을 보면서 욕심이 과한다는 걸 알았고, 갈아엎으면서 다 덮어두었다. 다시 시각적인 언어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은 주춤했던 거 같기도 했다. 선을 그어 시간을 쌓고, 그 안에서 덩어리를 찾고 만든 후, 그다음은? 여기까지는 나의 언어가 그림을 그리면서도 편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그려진 후 보이는 화면에서는 여전히 완성에 대해 확정할 수 없었다.


나는 그림에서 느껴지는 답답하고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부분이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온 방식에 규정을 지어버리는 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듦으로써 전에 부모님과 대화를 통해 네가 만들어가는 방식에 얽매이지 말고 편하게 그림을 그리는 게 어떠냐는 말이 떠올랐다.


천을 들어 답답하게 하는 부분들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물감은 닦아지면서 서로 자연스럽게 섞여 부드러워졌으며, 일부러 닦아내지 않은 붓의 흔적은 더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또한 지우면서도 선이 생길 수 있다는 것, 지워진 곳에도 전에 그려놨던 붓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새로운 언어의 방식을 터득하게 되었다.


비워낸 자리에는 여전히 그렸던 언어의 흔적이 남아있었으며 주변의 화면과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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