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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소희 Nov 10. 2017

듣는 사람으로서의 일

초봄에는 볕은 따뜻하지만 바람에는 온기가 없다. 내가 처음 카우앤독에 들린 날도 바람이 세찼다. 육중한 문을 온몸으로 밀고 건물 안으로 들어오니 낮은 음악 소리 위로 이따금 커피 내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구직자가 갖는 특유의 긴장감 때문에, 또 바람의 폭격을 맞은 뒤라 나는 서둘러 매무새를 가다듬고 건물 안을 둘러보았다.


무채색으로 통일된 벽면과 높은 천장 정도만 구경했을까.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고 인사를 건넨 사람은 말간 얼굴에 초록색 세로줄 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다. 하얀 얼굴과 대비되게 긴 눈매에  진한 검은색 눈동자가 자신의 존재감을 뽐냈다.


어느 곳이나 사람을 들이는 일련의 과정이 있고, 그 과정은 이야기를 청하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의 상호작용으로 채워진다.  에스오피오오엔지(sopoong)에 합류하려고 카우앤독에 방문했을 때, 내 앞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이야기를 청하고 듣는 데 전문가였다. 경청은 공기를 다르게 만들고 말하는 사람을 순식간에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는다. 나는 수다쟁이가 되어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내게는 나를 만나는 일이 그 사람의 일이여서 다행이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 심지어 면접관인데도 말을 너무 잘 들어줄 때. 진작에 눈치챘어야 했다. 일을 시작하고 보니 내가 하는 일의 팔 할이 온 힘을 다해 듣고 전달하는 데 있었다. 사회적가치에 대한 완전무결한 정의는 없기 때문에, 나는 먼저 정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공명해야 했다. 다음 만남에서 더 잘 듣고 필요한 말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정의를 계속 수정해나가야 했다. 내가 찾는 곳이 어딘지, 무엇을 실험할 건지, 왜 실험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는지 등. 동시에 언제나 내가 못 보는 것에 대해 인정할 수 있어야 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가설을 가지고 검증을 하고 다시 개선하는 일, 다시 정의하는 일을 배치마다 반복해왔다.


잘 듣는다는 것은 잘하고 못하고를 판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너무도 쉽게 개인의 훌륭함이나 미덕으로 치부되지만, 그런 정의는 하등의 쓸모가 없다. 듣는 것은 개인의 태도나 마음가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자원을 매개하는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의 책무고 기능이다. 앞으로 쓰일 글에서 이 기술을 연마하는 사람들, 듣고 묻고 자원을 매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와 동료들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사람들에게 자원을 잇고 그들이 제시한 솔루션이 현실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편으로는 냉정하게 그 솔루션이 효과적이었는지를 확인하고, 효과적이라면 확산되기 위해 필요한 자원들을 다시 끌어모은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의 실험이 실패했을 때, 실험의 종류는 다르지만 같은 맥락을 가지고 실험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 실패가 무엇을 남길 수 있는지를 상상하고 고민한다.


이야기에는 힘이 있어서 사람들을 공감하게 만들고 때에 따라서는 사람 자체도 변화시키지만 자리에 앉히지 않으면 금방 떠올라 없어져버린다. 이제라도 에스오피오오엔지에서 나와 동료들이 어떤 부단한 노력을 했는지, 그리고 그 노력이 축적되어 무엇을 만들었는지 소상히 이야기하려고 한다.

하지만 단순히 에스오피오오엔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설명과 단상이라기 보다 임팩트 투자라는 좁은 판에서 끊임없이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는 투자 전문가들, 직접 사업을 시작하는 소셜벤처들의 이야기를 듣고, 액셀러레이팅이라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일터에서 하나씩 적용시킨 이야기라고 여겨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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