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카페로 갔다. 오랜만에 운동을 하려다가 말았다. 오늘은 recovery 운동이라고 가볍게 몸을 회복해 주는 날이라 움직이는 맛이 안 날 것 같았다. 헐렁한 티셔츠에 레깅스를 주워 입었다가 청바지에 쥐색 맨투맨 차림으로 갈아입었다. 요즘엔 집 바로 앞에 무인으로 24시간 운영되는 카페가 생겨 그곳을 애용한다. 작은 테이블 3개가 놓여있는데 나 말고는 앉아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가뜩이나 오가는 사람이 없는 동네에 들르는 사람마저도 음료만 뽑아가는 가게라 조용히 할 일을 하기 딱 좋다. 맞은편 의자에 외투를 걸어놓고 노트북을 펼쳤다. 며칠 전에 써 놓았던 ‘어느 날 인터뷰’라는 글을 다듬어 브런치에 올렸다. 블로그나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날이면 앱에 들어가 내 글을 읽고 간 사람 수가 얼마나 되는지 수십 번도 더 확인해 본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드문드문 글을 올리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글 쓰는 시간이 늘다 보니 예전보다 자주 포스팅하게 된다. ‘하, 나의 관종력이란.’
오늘은 이상하게 그간 올렸던 글의 대문 사진이 눈에 거슬렸다. 나는 내가 유명 인사가 될 경우를 가정하면서 저작권에 걸리지 않을 만한 사진만을 사용해 왔다. 조악하더라도 내가 찍은 사진만을 고집한 건 혹시나 나중에 유명인이 되고 소송에 말려들진 않을까 걱정이 돼서였다. 대문에 걸린 사진은 화질이 좋지 않은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것도 있었고 DSLR 카메라로 찍은 것도 있었다. 타고나길 미적 감각이 없어 그런지 화질이 좋든 안 좋든 별로였다. 나는 네이버에 ‘저작권 없는 사진’을 검색했다. 사이트 몇 개가 나왔는데 그중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사이트는 ‘Unsplash’라는 사이트라고 했다. 영어로 검색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고 했지만 단점이랄 것도 아니었다. ‘요새 번역기가 얼마나 잘 되어있는데.’ 나는 제일 먼저 핸드폰 화면을 캡처해 걸어두었던 대문 사진을 로봇 사진으로 바꿔 걸었다. 제일 구린 사진부터 차례차례 바꾸다 보니 모든 사진을 다 바꾸게 되었다. 어떻게 내가 찍은 사진은 건질만한 것 하나 없이 다 구렸다. 프로필 사진도 만년필 촉이 하얀 배경 가운데 놓인 사진으로 바꿀까 하다가 그냥 놔두었다. 그래도 내 정체성을 보여주는 사진인데 프로필 사진만은 내가 찍은 사진으로 두어야 할 것 같았다. 대문 사진만 바꿨을 뿐인데 글이 새 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분명 내가 쓴 글인데도 다른 사람의 글을 보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브런치 앱을 뒤적거렸다. 눈에 들어오는 건 사람들이 표지로 걸어 두었거나 글 속에 첨부한 사진밖에 없었다. 출처를 밝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밑에 달아야 하나?’ 고민이 됐다. 그런데 때는 이미 늦었다. 나는 Unsplash 앱에서 마구잡이로 사진을 다운로드했기에 작가가 누구였는지, 내가 뭐라고 검색해서 이 사진을 찾았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사소한 것 하나에 꽂히면 답도 없이 그것만 생각하게 된다. 하필이면 오늘, 사진에 꽂혔다.
며칠 전 ‘스테르담’이라는 작가의 글을 보았다. 그는 작가가 자신의 본체를 들키지 않도록 페르소나를 잘 만들어 내야 한다고 했다. 글을 쓴다는 사실은 가족에게도 밝히지 말라고 조언했다. 나는 이미 회사에 소문이 쫙 퍼졌다. 그 소문을 퍼뜨린 당사자는 나다. 미친 관종력으로 여기저기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떠벌리고 다녔다. 필명까지 낱낱이 공개했다. “누런콩으로 검색하면 나와요.” 이 정도면 뭐 거의 ‘나, 브런치 작가’라고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닌 격이다. 내 브런치를 구독해 준 동료들 덕분에 나는 회사 사람 욕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업무에 관한 글은 기라성 같은 선배들 앞에서 주름잡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해하며 올린다. 구독자 한 명이 아쉬웠던 처음에는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날 구독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구독자 세 자리가 된 지금에서야 지난날을 후회한다. ‘비밀에 부칠걸.’ 먹고살 만하니 배부른 소리를 한다. 오늘 사진을 싹 갈아엎은 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내 정체를 숨기고 싶은 마음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글 뒤에 나를 숨기고 싶은 건 비겁한 마음일까.
브런치는 이미 내게 자기만족의 수준을 넘어섰다. 그냥 내 일기장으로 두고 싶은 생각이 반, 브런치를 발판 삼아 유명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반이다. ‘집착하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나는 오늘도 비워지지 않는 마음을 애써 비우려고 노력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