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잠든 새벽 세시 나는 옥상에 올라왔죠
하얀색 십자가, 붉은빛 십자가
우리 학교가 보여요
조용한 교정이, 어두운 교실이
엄마, 미안해요
아무도 내 곁에 있어주지 않았어요
아무런 잘못도 나는 하지 않았어요
왜 나를 미워하나요? 난 매일 밤 무서운 꿈에 울어요
왜 나를 미워했나요? 꿈에서도 난 달아날 수 없어요
사실은 난 더 살고 싶었어요
이제는 날 좀 내버려 두세요
나는 올해로 서른둘이다. 20년 전 나는 자우림의 ‘낙화’라는 노래를 즐겨 들었다. 노랫말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닿았다.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지만 나에겐 아직 선명한 기억. 나에 대한 루머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고 또래 여자애들로부터 경멸 어린 시선을 받던 그때. 나는 그때의 내가 왜 따돌림을 당했는지 모른다. 처음에야 이유가 있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유 같은 건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남은 건 단지 아이들의 괴롭힘뿐이었다. 쉬는 시간이 되면 나는 줄곧 엎드려있었다. 어떤 애들은 일부러 내 앞에서 발을 굴렀다. 수업 시간엔 내 뒤에 앉아 내 머리가 커서 칠판이 보이지 않는다고 손을 들고 말했다. 내가 엉덩이를 앞으로 빼고 앉은키를 낮춰도 애들은 집요하게 내 머리가 커서 앞이 보이질 않는다며 큰 소리로 말하곤 자기들끼리 웃었다. 어느 날부턴가 나는 점심 먹는 걸 포기했다. 식당에 가면 옆 반 여자애들을 마주쳐야 했는데 이유 없이 욕설을 들어야 하는 그 시간이 곤혹스러웠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나는 매일 밤 기도했다. 제발 빨리 나를 데려가 주세요. 낙화의 노랫말이 내 상황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 숨죽이고 그 노래를 들었다. 듣고 또 들었다.
나는 생존자다. 애들이 물리적 힘을 행사하기 전 나는 운이 좋아 다른 도시로 이사했다. 그 학교에서 나머지 유년 시절마저 보내야 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나는 아직도 그 애들 꿈을 꾼다. 며칠 전 꿈에선 그 애들이 나에게 이상한 걸 마시게 했다. 달아나려던 나는 외국말을 하는 남자들 무리에 둘러싸였는데 그들은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겠다며 나를 다시 내 방으로 끌고 갔다. 내가 구조요청을 하기 위해 핸드폰을 집어 들자 그 애들이 갑자기 나타나 까르르거리며 웃었다. 같은 상황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나는 꿈이란 걸 인식하고 깨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겨우 눈을 떴을 땐 목뒤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울고 싶어졌다. 아직도 어린 날의 기억이 내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하니 서글퍼졌다. 그때의 내가 부서지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조금은 더 맑고 밝고 명랑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때로부터 한참을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꿈을 꾸고 나면 다시 그때로 회귀하는 기분이 든다.
우리는 서로에게 잔인했다. 타인을 괴롭히는 것에 중독된 아이들은 이번 주엔 얘를, 그다음 주엔 쟤를 이유 없이 따돌렸다. 사소한 것으로 트집을 잡고 번갈아 가며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새로운 학교에서 나는 썩 잘 지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다시 튕겨져 나가지 않을까 조마조마해했다. 나는 아이들의 손가락 끝이 나를 향하지 않도록 빌고 또 빌었다. 나보다 약해 보이는 아이가 재물 삼아지면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피해자였던 나는 언젠가 가해자였을 테다. 소리 없이 피 말려가는 아이들의 폭력은 어른들 눈에 하잘것없는 것으로 비치는 것 같았다. 첫 번째 학교에서 나는 종종 선생님 손에 이끌려 빈 교실로 갔고 상담 비스름한 것을 받았다. 선생님은 “요새 별일 없니?”로 운을 떼곤 했는데, 그 끝은 대부분 ‘친구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라’ 류의 훈계였다. 그건 단순히 친구끼리 잘 지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 인간의 존엄의 문제였다. 내게 무슨 하자가 있나? 내 어떤 점이 그 애들 눈에 거슬렸을까? 원인을 찾고 찾다가 나는 결국 내 존재 자체가 잘못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꽃이 떨어지고 있다. 학폭 피해 학생의 사망 기사가 끊이질 않고 올라온다. 가시화되지 않은 아픔까지 차마 다 헤아릴 수 있을까. 타인에 대한 존중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는 타인의 아픔에 둔감한 어른이 된다. 기준을 ‘나’로 삼고 손쉽게 ‘이 정도는 견뎌내야지’ 말해버리는 사회구성원이 된다. 몇 달 전 학교 선배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스스로 생을 등졌다.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을 치러야, 얼마나 더 큰 고통을 감내해야 우리는 꽃으로 그 자리에 피어 있을 수 있을까. “사실은 난 더 살고 싶었어요, 이제는 날 좀 내버려 두세요.” 보컬 김윤아의 처절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