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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런콩 Apr 01. 2024

밥 짓는 하루

요즘 내 하루는 밥 짓는 시간으로 가득 채워진다. 나는 하루 종일 먹을 걸 궁리하고 몸을 움직인다. 밥 먹은 걸 정리한다. 돌아서면 밥시간이 오고 나는 똑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채식을 시작하면서 생각보다 먹을 게 많다는 데 놀랐다. 그래도 미리 준비해 놓지 않으면 제대로 된 한 끼를 먹기 힘들어서 틈만 나면 ‘조금 있다가는 무얼 먹지?’ 생각하곤 한다. 밥 한 끼 먹는 데 품이 많이 든다는 걸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엄마 밥’을 얻어먹었다. 지금도 가끔은 엄마가 해준 따스운 밥을 날로 먹는다. 나는 엄마에게 “엄마가 엄마의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라고 종종 말하곤 했다. 밥 하는 데 이리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단 걸 알았더라면 그리 쉽게 말하진 못했을 것이다. 식구들 입에 들어갈 밥, 그놈의 밥 한 끼 해결하는 데 하루가 다 간다. 어디서 시간이 나 취미활동이며 자기 계발을 하겠는가. 배부른 소리다. 속 시끄러운 소리 그만하고 차라리 밥 하는 거나 도우라고 소리치지 않은 우리 엄마야말로 붓다요, 성인군자다. 나는 괜스레 엄마에게 미안해졌다.


그러면서도 어젯밤엔 토라졌다. 두 달 만에 엄마에게 국수를 말아달라고 했다. 엄마가 사뭇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너는 김치도 못 먹고 집엔 오이도 없는데 어떻게 비빔국수를 해?”라고 말했다. 귀찮다는 말을 돌려하는구나 싶어 “됐어, 안 먹을래” 하고선 방 안에 틀어박혔다. 엄마를 이해하겠다고 해놓고선 또 금세 어린애처럼 군다. 나는 모순 덩어리다.


오늘은 미안한 마음에 양배추를 삶고 병아리콩과 토마토, 오이를 소금, 후추에 간하여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유에 버무렸다. 일어나면 먹으라는 메시지까지 고이 남기고 출근했다. 밥이 이다지도 많은 역할을 하다니, 참으로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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