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과 인 하우스 팀의 차이: 호흡을 길게 볼 때
컨설팅(혹은 에이전시)인지, 인 하우스인지, 디자이너라면 한 번쯤은 해봤을 고민이다. 디자인 에이전시에서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지만, 인 하우스 팀에서는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선배들에게 고민 상담을 할 때마다 에이전시에서 시작하면 전문 분야가 생기지 않는다, 혹은 인 하우스에서 에이전시로 오기 힘들기에 차라리 커리어 초반에 에이전시로 시작해야 된다 등 일관된 정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렇다,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커리어이기에 정답을 대신 내려주기 쉽지 않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느꼈던 차이점을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비단 디자인뿐만 아니라 넓게 본다면 다른 분야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디자인 에이전시라면 컨설팅 업계처럼 클라이언트한테 의뢰를 받아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회사다.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하기에 최적화된 인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 등 담당 분야와 규모에 따라 구성원이 달라지며, 디지털 서비스, 브랜딩, 산업 디자인 등 에이전시마다 전문성이 정해져 있다. 국내에서는 라이트브레인, 플러스 엑스, 데이라이트 디자인 등 다양한 에이전시가 활동 중이고, 해외에서도 IDEO, 펜타그램(Pentagram), 바켄앤바크 (Bakken & Bæck) 등 종류와 규모가 정말 다양하다. 컨설팅 업계에서는 대략 2015년부터 여러 디자인 에이전시를 인수하면서 컨설팅 업계 안의 인 하우스 디자인 팀을 만들기 시작했다. 맥킨지에서도 북미 지역에서는 Lunar라는 에이전시를, 유럽에서는 Veryday라는 에이전시를 인수했던 것이다.
여기서 프로젝트는 짧게는 2주, 길게는 6개월, 혹은 1-2년씩 진행되고, 다양한 분야를 접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이번 달은 금융, 다음 달은 제약, 그다음 달은 소비재 등 분야를 막론하며 디자인을 할 수 있기에 스펀지처럼 모든 분야를 흡수하는 것이다. 초반에는 정신없을지 몰라도 연차가 쌓이면 새로운 분야를 빠르게 훑어 핵심만 뽑을 수 있는 실력이 생긴다. 이는 디자인뿐만 아니라 어떤 것이든 새로운 것을 빠르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큰 장점이 생기게 된다.
그렇지만 단점은 일이 많아서 야근이 많다는 것이다. 클라이언트에게 전달하는 결과물의 퀄리티도 높아야 되고,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프로세스도 자세하게 명시해야 된다. 프로젝트 중 보고를 할 때마다 자세한 업데이트가 필요하고, 발표 자료 하나도 허투루 만들면 안 되기에 '이렇게까지 해야 돼?'라는 질문이 나올 때까지 일을 해야 된다. 또한 에이전시에 오래 있으면 담당하는 프로젝트가 때로 한정적일 수 있다. 인 하우스에서 해당 일을 맡을 내부 인력이 없거나 새로운 시각이 필요할 때 에이전시를 찾지만, 내부에서 맡기 싫은 일, 혹은 손은 많이 가지만 시간은 쓰기 아까운 일을 맡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전의 양면이 있듯이 인 하우스 디자인 팀은 에이전시의 반대다. 가장 큰 장점이라면 프로젝트 별로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기에 일에 대한 오너십이 생기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직접 경험할 수 있다. 마치 내가 직접 낳은 아이를 청소년, 그리고 어른이 될 때까지 직접 키우는 것이다. 최근에 발매된 조수용 디자이너의 책, '일의 감각'에서 그는 그의 디자인 스튜디오 JOH에서 담당했던 삼성카드 리브랜딩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런 차별화된 브랜딩은 오너의 강하고 일관된 의지 없이는 유지되기가 어렵습니다. 얼마 안 가 삼성카드의 콘셉트가 희석되고 무뎌지는 것을 보면서 많이 아쉬웠던 기억이 납니다.'
에이전시에 맡겨 훌륭한 디자인 작업을 할 수는 있어도 해당 에이전시가 떠나고 난 뒤에도 지속적으로 그 결과물을 챙겨주고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의미가 희석된다. 하지만 적어도 인 하우스 팀에서는 디자인의 영향력을 끝까지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가령 게임 회사에서 일하는 UX 디자이너라 하면, 게임 외의 다른 분야는 조금 모를 수 있어도 게임 UX에 대해서는 에이전시에서 일하는 그 어떤 디자이너보다 많이 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업계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연차가 쌓일수록 다른 업계로 옮기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나 제약이나 바이오와 같이 전문성이 강한 분야면 시니어 디자인 포지션일수록 동종 업계에 대한 경험을 우대 사항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의 역량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고, 이직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두 조직의 차이를 가장 크게 느꼈던 적은 디자인 시스템을 구축할 때였다. 맥킨지에서 클라이언트를 위한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2-3주라는 짧은 시간 내에 타이포그래피부터 컨포넌트까지 완성하며 디자인 시스템 전체를 구축했다. 짧은 시간 내에 끝냈기에 완성본은 아니겠지만 내부에서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려면 적어도 1-2달은 걸리는 작업을 맥킨지를 통해 일단 초안은 완성한 것이다. 그렇지만 해당 클라이언트는 아직 내부에서 피그마 라이선스를 얻는 과정 중이었기에 우리가 몇 주만에 만든 컨포넌트들이 직접 사용될지, 혹은 디자인과 개발 사이의 시간 단축에 직접 도움이 될지 결국 알지 못했다.
하지만 영란은행에서의 디자인 시스템 구축을 위해서 첫 6개월 간은 오히려 피그마를 한 번도 열지 않았다. '디자인 시스템? 그게 뭔데?'라는 의문을 갖는 임원들에게 이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시간과 예산을 단축시킬지, 만들고 사용하는데 어떤 인력이 필요한지 설득하는 과정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예산을 받아왔다면, 브랜드 색상을 정하고 컨포넌트를 만드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우리 팀이 색상을 정한다고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케팅 팀, 개발 팀, 브랜딩 팀 등 수많은 다른 부서들과 상의해야 되기 때문이다. 이 조직에서 디자인 시스템 구축은 특정 기간 내에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나 역시도 어느 길이 맞고 틀리다고 누구에게 자신 있게 조언할 수 없다. 각자의 장점과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짧은 기간의 에이전시 프로젝트에 회의감을 많이 느꼈고, 디자인의 영향력을 더욱 긴 호흡으로 보여주고 싶었기에 인 하우스 팀으로 옮겼다. 각자 자신의 능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환경을 찾고, 그 속에서 부족한 점은 보완하고 장점으로 부각할 점은 더욱더 갈고닦는 커리어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