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는결심했네.
2023년 8월, 30일 작곡 챌린지 - 13번째 곡.
챌린지 첫날, 하필 '밤헤엄'을 뽑아버려, 이후 작업은 한동안 지지부진했다.
그러다 13일차쯤, 힘이 빠지며 조금은 편하게 곡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지피티에게 가사 소재를 부탁했다.
"열정과 도전을 향해 달리는 용맹한 마라톤 러너."
10분도 안 되어 가사를 모두 써 내려갔던 것 같다.
<거꾸로 달리는 남자>
김씨는 결심했네.
얼굴에 빗물처럼 흐르던 땀을
마른 곳 하나 없이 젖어버린 셔츠의
옷깃으로 머리 끝까지 흠치던 김씨
우두커니 서있는 그의 옆으로
또 한 명 제치는 표정를 감추며
쉴새없이 발을 구르던 사람들.
터벅터벅, 뜨거운 태양에,
눈을 잔뜩 찌푸리고
함께라고 생각하며
뛰던 이곳에 자신 말고
남아있지 않다는 걸 안 순간,
더이상 그는 달리지 않았네
그제야 보이는 처음보는 김씨 자신의 모습과
아름다운 줄도 모르고 밟아왔던
작은 바람에도 휘청이던 이름모를 들꽃
쓸쓸하게만 보이는 먼저 달려간 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그는 뒤돌아 섰네
그리고 앞으로 김씨를 제치고 갈, 뒤쳐진 이들의 표정을 보았네
누군가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괴로운 표정으로,
누군가는 벌써 목적지에 도달한 듯 행복한 표정
누군가는 그저 묵묵하게 뛰는 듯, 알 수 없는 표정
김씨는 결심했네
거꾸로 달리기로
그제야 보이는 처음보는 김씨 자신의 모습과
아름다운 줄도 모르고 밟아왔던
작은 바람에도 휘청이던 이름모를…
김씨는 결심했네…
문득, 좀 흔한 것 같기도 하고 너무 드라마틱한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이 노래를 정말 잘 만들고 싶은데 듣는 사람에게 닿지 않으면 애써 만든 이 노래가 애물단지가 되진 않을까, 마침, 작가인 살롱의 주인에게 피드백을 부탁했다.
아직 비평에 익숙하지 않는 새가슴이라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타격이 크지 않았다.
'제3자인 작가가 주인공의 감정을 짐작하여 쓰는 것은, 듣는 사람에게 그 감정을 강요하는 것일 수 있다'는 피드백이 돌아왔다.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누구나 상황을 떠올릴 수 있도록 묘사하기를...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눈에 담긴 ‘사실’만 적도록 했다.
메모장엔 고칠 것들이 가득했다. 서술을 명사로 바꿔보기도, 나답지 않은 묘사를 꾸역꾸역 넣어보기도 했다.
창작의 고통이 무엇인지 손톱만큼은 알 것 같기도 했다.
괴로움이 무기력으로 바뀌던 그 순간, 살롱 주인에게 전화가 왔다.
가사를 종이에 뽑아 봤다고 했다.
워낙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라 별 것 아닌 것 안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 감동한다.
종이로 인쇄하고 보니, 가사가 다르게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울컥했다고 말해주었다.
정말로 감동했는지 안 했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해주는 게 정말 고마웠다. 나는 여전히,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것을 믿는다. 내게는 한참 그런 말이 필요한 시기였다.
코드 진행은 무료로 배포되던, 출처 모를 아무 미디 파일을 불러왔다.
Eb–Dm–Eb–Bb, 단순한 진행을 무한 루프.
이 단순한 루프 위에, 형식에서 벗어난, 아주 자유로운 노래를 얹었다.
그 코드를 다듬어 작년 공연에서 이 노랠 불렀다.
독감으로 상한 목을 쥐어짜며 부른 '거꾸로 달리는 남자' 일명, '거달남'.
올해 안에는 꼭, 음원을 만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