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 가득 차 넘쳐흐를 때, 너는 내 안에서 춤을 추네
한국무용은 대여섯 살부터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일곱 살에 시작하면 늦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내 형제는 고등학교 3학년, 열아홉의 나이에 무용을 시작했다. 지원받기 어려운 가정을 떠나 서울로 상경했다. ‘우리 춤 어쩌고'라고 적힌 간판을 보고 건물로 무작정 들어갔다고 한다. 돈도, 빽도 없이 다짜고짜 "가르쳐주십시오!"로 시작하는 예술가 서사의 클리셰 첫 장면처럼... 나도 한 때 춤을 췄지만, 감각을 잃은 지 오래, 이제 춤을 추는 모습은 내 형제의 춤선을 거쳐 이미지화된다. 그 형제는 지금 스님이 되었다.
조금 미친 기타리스트가 있다. 그림에 재능이 있었다.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그의 그림은 항상 또래 미술가들에게 교본이 되었고 어린 나이에 이미 자신의 철학을 담은 그림을 그렸다. 그런 그는 어느 날부터인가, 시력을 점점 잃어 갔고, 더는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다. 그의 절망은 잠시, 재능과는 상관없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기타를 잡았다. 자신의 연주는 어설프고 부족하다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가 음악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그의 감각과 열정을 느낀다. 이미 그림으로 자신의 천재성을 경험한 적 있는 사람이다. 천재들에게서만 풍기는 ’이것만 때려죽이겠다!‘는 집요함에서, 이미 프로 기타리스트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음악모임에서 100만 원을 건(나 혼자) 챌린지가 시작되었다. 성공하면 자기 자신에게 좋은 선물을 할 것, 실패하면 의미 있는 곳에 기부할 것. 100만 원이라는 큰 부담은 오히려 욕심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영감은 내 경험과 현재 환경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영감을 찾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요즘 독서를 많이 하고 있다.) 1일 1작곡을 하기로 한 첫날, 가장 익숙하고 편한 소재를 골랐다.
나는 두 사람의 인생이 아름답다. 그들의 이야기가 처절하기 때문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아름답다. '무용은 다섯 살 때부터'라는 통념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던 꿈꾸는 열아홉,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할 수 없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한 기타리스트. 그저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역동적인 인생이 아름답다. 마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이 평범하지 않은 페르소나들은, 나를, '그들의 이야기를 써내려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의 작가로 만들었다.
널 내 마음속에 던져두고서,
넌 내 마음속에 뛰어들고서
드넓은 이 바다, 얼마나 깊은지 알지도 못하면서
더 멀리, 더 깊이
더 멀리, 더 깊이 내게 다가오네
바닷물 가득 차 넘쳐흐를 때,
너는 내 안에서 춤을 추네
널 건져낼 수 없는 나는,
너의 춤에 일렁이네.
더 높이, 더 짙게
더 높이, 더 짙게 나는 노래하네.
바닷물 가득 차 넘쳐흐를 때,
너는 내 안에서 춤을 추네
널 건져낼 수 없는 나는,
너의 춤에 일렁이네.
I can’t see your eyes but can feel your sign.
you can’t get out of my sea but can dance for eternity.
모든 가사를 우리말로 쓰고 싶었다. 어머니께 영어를 배우고 싶은 이유를 물은 적이 있는데, '길거리의 간판을 읽어 보고 싶다'는 이유였다. 말은 세대와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쓰이지 않으면 사라진다. 빠르게 변해가는 언어 속에서, 나의 영향력은 티끌만큼도 없겠지만, 나는 전통을 지키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언어에 적응하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아름다운 말과 글을 잘 쓰기 위해 누구보다 내가 먼저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가사를 쓰던 과정에서 '태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기도 하고 '광활한' 같은 어울리지도 않는 단어가 들어가기도 했다. '태양'은 바다가 일렁일 때 금빛으로 빛나는 황혼의 그림을 묘사하고 싶었으나, 고민하다 그냥 장면자체를 빼버렸고, '광활한'은 '드넓은'으로 바꾸었다. 가사에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껴, 결국, 직접적인 표현은 영어로 덧붙였다. (다 우리말로 적고 싶었다면서...) 뒤에 'can'을 빼고 싶었는데 음절이 안 맞았다. 그렇게 수십 번의 수정을 거치고 보니, 휑한 가사만 남아있었다. 내 비루한 우리말 실력이 들통나버렸지만 오히려 함축된 가사가 되어 좋았다.
너의 춤을 볼 수 없는, 앞이 보이지 않는 주인공. 어떻게 해야 그 춤을 볼 수 있을까?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춤을 보려면, 움직임의 소리를 귀로 듣거나 직접 만져보면 알 수 있을까? 그래서 너를 주인공의 마음으로 묘사된 바다에 빠뜨렸다. 바닷속에서 움직이는 너의 춤을, 주인공은 파동으로 느낄 수 있다.
이 곡을 듣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는 여기까지….
2025. 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