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안돼"

넌 우는 것도 마음대로 울 수 없어

by 이열매

처음에는 내 교육 담당이었던 4년차 선생님께서 나를 에이스라며 칭찬해주셔서 더욱더 잘하고자 꼼꼼히 체크하려 했었는데, 이제는 실장님께 느리다고 혼나서 빨리 하기 위해 체크할 새도 없이 모든 일을 했어야 했다. 그때부터 내가 하는 일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진료 내내 놓친 건 없는지 맞게 준비한 게 맞는지에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었고 일이 잘 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 스스로도 내가 일머리가 없나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문제는 실장님은 여기 10년 넘게 일하신 분인데 신경치료 준비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른다는 거였다. 항상 대충 한두 개만 꺼내놓고 환자를 불러 앉히던 실장님이었기에, 내가 이것저것 준비하는데 시간 쓰는 게 맘에 안 들었던 것 같다.



실장님은 본뜰 때 본뜨는 재료를 믹스해 줄 사람이 없으면 자기를 부르라고 했다. 하루는 매우 바쁜 날이었는데, 웬만해선 실장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혼자 하고 싶었지만 맨 뒤에 치아라 자꾸 침이 닿아서 ─ 본뜰 때 침이 닿으면 기포가 생겨 본을 다시 떠야 한다. ─ 혼자 했다가는 본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마침 진료실에 들어온 실장님께 믹스 좀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고, 실장님은 천천히 걸어오시더니 "믹스 혼자서 못 해요?"라며 환자와 다른 선생님들 다 있는 앞에서 면박을 주었다. 이미 몇 차례 이런 식으로 눈치를 받았던지라 꾹꾹 눌러오던 모든 감정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감정이 차올라서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수술실에 가서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내가 밥 먹을 때가 돼도 오지 않자 5년차 선생님이 나를 찾으러 왔고, 울고 있는 나를 보고 놀라셨다. 왜 우냐고 묻자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했고 선생님은 "왜 그러시냐 진짜.. 괜찮아?"라며 나를 달래주셨다. 눈물이 계속 나서 밥을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먹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실장님은 5년차 선생님께 나를 데려오라고 하셨다. 실장님은 네가 뭘 잘했다고 우냐며 큰 소리로 소리 지르며 화를 내셨다. 그리고 덧붙여서 "나는 1년차가 그냥 싫어"라고 하셨다. 훗날 들은 이야기인데 예전부터 1년차는 개념이 없어서 싫다는 말을 줄곧 하셨다고 한다.


그 뒤론 눈물이 나도 수술실에서 울지도 못 했다. 점심시간이면 또 불려 가서 소리치는 것을 들어야 할까 봐 그냥 다른 선생님들 다 있는 앞에서 울며 밥을 먹어야 했다.

이 날은 실장님이 나를 불러 넌 일부러 스케일링을 안 하는 것 같다고 그간 선생님들이 스케일링 한 횟수를 모두 적어놓았는데 내가 가장 적었다는 이유로 혼이 났다. 억울했다. 일부러 일을 가려가며 한 적은 없었다. 연속으로 6번 스케일링 환자가 걸려 몸에 담이 걸릴 것 같은데도 군 소리 없이 한적도 있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마음 같아선 횟수 적어놓은 종이를 보여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저 속상해서 "실장님.. 전 일을 가리면서 한 적이 없는데, 제가 일부러 피하던가요?"라고 물었고 실장님은 "그래 다른 선생님들도 다 그렇게 생각한다던데?"라고 하셨다. 모두가 다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에 충격받아서 눈물이 흘렀다. "정말 다른 선생님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그렇게 한 적이 없는데..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시면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었더니 "네가 잘해야지. 네가 막내잖아"라고 하셨다.


나는 진료실로 복귀할 수가 없었다. 붉어진 눈시울로 환자를 볼 수 없었고, 선생님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점심시간에 울며 꾸역꾸역 밥을 먹고 화장실로 가서 내내 울었다. 그리고 선생님들 한분 한분께 메시지를 보내 물어봤다. 오늘 이러한 일이 있었는데, 정말로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냐고 솔직히 말씀해달라고 했다. 다른 선생님들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고, 딱 한 분만 "처음엔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니더라."라고 하셨고 "오늘 그런 일이 있었어? 속상해서 밥은 어떻게 먹었어..."라고 하셨다.


그리고 다음날 내 휴무날이 되자 여느 때와 같이 실장님은 선생님들을 모아놓고 소영이 때문에 일 못하겠다며 내 험담을 시작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실장님이 지나치다고 생각한 건지 그곳에 있던 그 누구도 실장님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실장님을 제외하고 제일 고년차였던 선생님이 실장님이 너무하신 것 같다며 소영이가 처음엔 일도 좀 느리고 했지만 이젠 잘하고 열심히 하는데 왜 이미 과거에 혼나서 고쳐진 문제들로 계속 혼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러자 실장님이 "그럼 너넨 진료실에 선후배 그런 거 없이 동등해도 괜찮다는 거니?"라는 말을 했고 다른 선생님들 모두 "네. 그런 거 필요 없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뒤로 실장님이 나에게 대하는 것이 조금 달라진 줄 알았다. 잠깐 동안은 나를 존중해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전 07화여자들의 군대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