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을 포기한 이유
나는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 내내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하면서 보냈다. 아침 조회시간, 쉬는 시간, 점심 저녁시간에도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기 싫었다. 그 시간을 모두 합하면 거의 2시간 정도의 시간을 매일 더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의고사 끝나고 친구들이랑 놀러 가기로 했을 때도 "미안한데.. 나 오늘 그냥 도서관 가서 공부할게"라고 하고 도서관에 갔다.
드디어 수능날이 다가왔다. 수능 하루 전 날부터 이상하게 계속 긴장되고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하루 종일 책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손톱만 깨물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를 그냥 보내버렸다.
전날 너무 긴장해서인지 수능 당일엔 오히려 긴장이 너무 풀려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전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불안감도 같이 안은 채로 수능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엄마의 응원을 받으며 난 수능장으로 들어갔다.
1교시 언어 시간이었다. 긴 장문의 지문을 읽다가 졸음이 쏟아졌고, 다시 읽느라 마지막에 시간이 부족했다. 하지만 아직 괜찮았다. 다음 2교시인 수리는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이었기 때문이다. 2교시는 문제를 다 풀고 나서도 4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다시 한번 실수한 곳은 없는지 점검했다. 그렇게 2교시도 끝이 났다. 이제 외국어와 사탐만 남아있었다. 점심식사를 한 후 영어단어를 보고, 윤리와 경제도 훑어보았다.
드디어 제일 중요한 3교시 외국어 시간이 되었다. 외국어가 가장 중요했던 이유는 컨디션에 따라 성적이 가장 들쑥날쑥했기 때문이다. 듣기 평가가 시작되었고 나는 집중하기 위해 눈을 감고 문제를 풀어나갔다.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일까, 점심에 밥을 먹고 식곤증이 온 것일까 눈을 감고 듣고 있던 중에 잠이 들어버렸다. 한 문제가 끝나면서 깜짝 놀라 잠에서 깼고 마지막 단어만으로 답을 유추해냈어야 했다. 하지만 그다음 문제 역시 듣다가 잠이 들어버리고 그다음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내리 10문제 정도를 정신 놓고 졸았던 것 같다. 듣기 평가가 끝이 났다. 그 뒤로는 그나마 다행히도 잠에서 깨면서 정신이 맑아졌고 미친 듯이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듣기 평가에서 10점을 넘게 깎아먹은 것 같은 확신에 외국어가 끝나고 나서 미친 듯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죽어라 했던 공부였는데, 이 오늘 하루로 인해서 모든 게 무너져내리는 듯했다. 쉬는 시간 동안 그래도 정신 차리고 사탐을 공부하려 했지만 아무것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사탐 시간이 시작되었고 머리는 백지상태가 되어있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히 공부했던 것들이었는데, 분명히 중간고사 성적도 잘 받았던 과목이었는데. 나 자신의 무능력함에 속이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수능이 끝나버렸다. 나는 수능장을 나오면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전날에 컨디션을 잘 조절했더라면.. 전날에 잠을 푹 잤더라면.. 오늘 외국어 시험 중에 졸지 않았더라면.. 사탐 시간에라도 정신을 차렸더라면.. 모든 것이 후회로 밀려왔다.
가채점을 해봤다. 내가 가고 싶었던 대학교의 경찰행정학과를 가려면 적어도 평균 2.2~2.6등급 정도는 나왔어야 했다. 그러려면 전국 고3 수험생들 중에 15% 안에는 들어야 했었다. 하지만 시험시간에 졸아서 10문제 이상을 놓쳐버리고, 머리가 백지상태가 되어버린 내가 그 안에 들리 없었다. 시간이 지나 성적표를 받게 되었고, 그 해에 유독 쉽게 나왔던 외국어는 5등급이라는 성적을 받아버렸다. 독해에서 2개밖에 틀리지 않았지만 이미 듣기 평가에서 10개 정도가 틀려버리면서 70점대 후반의 성적을 받았던 것이다. 사탐도 마찬가지였다. 윤리와 경제 모두 5등급을 받았다. 그리고 윤리는 졸업할 때 교과우수상을 받으며 졸업을 했다. 1등급에게만 주는 상이었다. 나는 1등급이 5등급이 되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성적표를 받고 또 한참을 울며 고민했다. '재수할까. 죽고 싶다. 난 정말 쓸모없는 사람이다. 수능 때 졸다니. 어떻게 3년이란 시간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렸을까.'온갖 자책을 했다. 난 1학년 때도 그렇고 몇몇 과목을 망친적이 있어서 이미 수시는 포기하고 정시만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나에게 수능성적이란 나의 고등학교 3년을 설명해주는 보증서나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고민한 결과 재수를 안 하기로 결심했다. 다시 수능을 본다 해도 또 망하지 않으리란 확신도 없었고, 재수를 하고 또 수능을 망쳐버린다면 정말 그땐 살기 싫어질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난 나에게 수학 과외를 해주신 이모를 찾아가 상담을 했다. 이모는 삼촌이 치과의사인데 치위생사 직업이 괜찮다고 하셨다며 나에게 치위생학과를 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그렇게 난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치위생학과에 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