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라 공부했지만 가장 망했던 수능 3
내가 꿈을 포기한 이유
치위생학과에 가게 되었지만, 경찰이라는 꿈은 포기하지 않았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남는 시간에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려고 했다. 그리고 대학생활중 ROTC에 합격하게 되면 경찰공무원 지원할 때 특채로 지원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하지만 대학생활도 만만치 않았다. 이미 수능을 망치면서 공부에 학을 뗐기 때문에 대학교에 일 년에 4번 있는 시험도, 과제도 버거웠다. 공부가 재미있지도 않았다.
내 머리는 참 이상했다. 갑자기 집중이 잘 되는 날에는 하루 만에 한 과목을 다 외우다시피 공부가 잘 되는데 대부분은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난 수능을 망치고 나서는 난 머리가 안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운도 따라주지 않는 공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에도 우스갯소리로 내 아이큐는 아마 100이 안 될 것이라고 농담을 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아무튼 경찰이라는 꿈은 자연스레 멀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난 치위생학과를 졸업하고 치위생사가 되었다. 일을 하면서 느낀 거는 이 직업이 참 괜찮은 직업 같다는 것이었다.
우선 내 시간이 굉장히 많았다. 야근이 없는 병원에 가게 되면 저녁 이후로는 다 내 시간이었고, 평일에도 5일 중 하루는 오프를 쓸 수 있었다. 물론 그럴 경우 토요일은 출근을 해야 하지만 그래도 토요일은 오후 1시 정도면 퇴근하기 때문에 퇴근하고 나면 그날 일을 한 것 같지도 않았다. 원장님이 일이 있어 쉬는 날엔 우리도 추가로 휴무가 생겼고, 연차도 따로 있었다.
또, 치과에 따라서 기숙사를 제공해주는 치과도 있으며 치과위생사의 역량에 따라 연봉 1억이 넘는 치과위생사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나이가 50대가 되어서도 계속 일 하는 분이 꽤 있다는 것도 알게 되면서 이 직업이 참 괜찮은 직업이란 생각이 들었다.
수능을 망쳤을 땐 나의 꿈이 사라졌고, 목표가 사라졌고, 그간의 나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돼버리는 것 같았으며, 내가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치과위생사로서 살고 있으면서, 내 삶에 굉장히 만족하며 지금은 작가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내가 수능을 보고 난 뒤에 같은 반 친구들에게 받은 롤링페이퍼가 있었다.
그곳에는 ―소영아, 네가 공부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자극받아서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어. 넌 꼭 네가 원하는 대학 갈 거야!
―소영아, 네가 우리 반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했으니 네가 원하는 대학에 못 간 다는 건 말이 안 돼! 응원할게.
―소영아, 쉬는 시간에 같이 놀려고 말 걸었는데 네가 문제 푸느라 "잠시만" 이라고 하는 것 보고 놀랬어. 나도 너처럼 공부 열심히 할걸..
등의 말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다.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모두가 내가 최선을 다했었다는 걸 증명해주는 것 같아 이 롤링페이퍼를 보며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이과반에서 1등을 하던 친한 친구가 서울에 H대학에 입학한 후 과가 잘 맞지 않아서 아예 수능을 다시 보려고 하는데 너처럼 공부해야 할 것 같다며 나에게 어떻게 공부했는지에 대해 물어봤다. 도서관에서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있었는지 등을 물어보며 나에게 내가 공부했던 수학의 정석 책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 친구는 공부한 지 반년만에 수능을 보고 원하던 교대에 가게 되었다. 그 친구가 나에게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고등학교 시절의 노력을 인정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에 더 이상 망친 수능에 대해 아쉬워하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내가 공부를 열심히 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건 성적표와 대학, 직업임은 확실하다. 나는 수능도 망했고, 대학교도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게 되었고, 직업도 남들이 존경하는 직업이 아니다. 하지만 삶에 있어서 수능 성적표도, 대학도, 직업도 그리 중요하게 생각되진 않았다.
좋은 성적을 받았고, 좋은 대학에 갔고, 대기업에 들어간 사람들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지만 매일같이 하는 야근에, 사내 시험에, 자기 여가생활조차 잘 즐기지 못하는 내면을 보고 나면 '나도 저만큼 일하면 저만큼 받겠다' 싶더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내가 부럽다고 생각이 드는 사람은 배울 것이 있는 어른스러운 사람이었고, 사랑하는 사람과 너무 행복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자기 직업 외에 다른 것을 배우거나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존경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삶에 있어 내가 가치를 두는 일은 도전과, 사랑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도전하고 있다.
오늘도 사랑하고 있으며,
오늘도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