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왜 이렇게 어렵기만 할까요

남들은 다들 행복해 보이는데

by 이열매

이 이야기는 내가 아는 동생 지은이의 이야기이다. 지은이는 어느 날 나를 찾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불우한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였다. 담담하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며 차분히 말하는 그녀를 보며 단단해졌다기보다는 아픔에 많이 무뎌진 것 같아 가슴이 먹먹했다.


지은이는 3남매 중 둘째였다. 위로는 4살 터울인 큰언니, 아래로는 남동생이 있었고 부모님까지 다섯 식구가 있는 가정에서 자랐다고 한다. 지은이가 5살이 되던 해에 일용직 노동자였던 아버님의 벌이로는 서울생활이 힘들어져 지은이네 가족은 전주로 내려가게 됐다.


지은이네 아버님은 술만 마셨다 하면 어머님을 때리고 난동을 부리셨다. 그 때문에 어머님은 항상 아버님과 이혼하고 싶어 하셨다. 아버님의 폭력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어머님은 참다못해 삼 남매를 데리고 아버님을 피해 외가댁으로 가게 됐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외가댁에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시 삼 남매를 데리고 어머님은 집으로 향했고, 외할머니는 딸이 밥은 잘 챙겨 먹을지 걱정되는 마음에 음식을 싸주셨다. 어머님은 음식을 감사히 받으시고는 돌아가는 길에 항상 음식을 버리셨다. 외가댁을 싫어하는 아버님이 그 음식을 본다면 또 난리가 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아버님이 항상 폭력적인 건 아니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은 자상하게 대해주기도 하셨다. 지은이네 가족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은이가 6살 때 가족끼리 소풍을 가게 됐다. 전주 동물원으로 놀러 가서 가족끼리 네 잎 클로버를 찾고, 개미를 잡아 구경하고, 도란도란 앉아 김밥도 먹으며 가족끼리 행복한 날을 보냈다.


하지만 다가올 불행을 위해 잠깐 행복이 찾아왔던 것뿐이었을까, 소풍 다녀온 며칠 뒤 새벽에 아버님이 쓰러지셨다. 아버님은 급하게 응급실로 실려가셨고, 병원에서 뇌졸중 판정을 받게 됐다. 그 일로 아버님은 오른쪽 발과 오른손이 마비되고 지능은 7살 이하로 떨어지게 됐다. 어머님은 아버님의 병간호를 해야 했다. 삼 남매를 케어해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삼 남매는 큰아버지의 집으로 보내졌고, 거기서 유치원과 학교를 다니게 됐다.


아버님은 병원생활을 꽤 오래 하다가 퇴원하셨고, 다시 다섯 식구가 같이 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버님이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지은이네 가족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고 어머님은 보험 판매일을 시작하셨다.


지은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지은이가 감기에 걸렸고 마침 어머님도 몸이 안 좋으셨어서 같이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어머님 몸이 많이 안 좋은 것 같다고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지은이는 어린 나이었어서 의사 선생님이 해주는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머님의 심장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이었다. 그날부터 어머님이 아프시기 시작했고 어머님은 집에 오시면 항상 힘없이 누워만 계셨다.


어머님의 병세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졌다. 어머님은 결국 병원에 입원해 중환자실로 옮겨지셨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던 지은이를 담임선생님이 불러내더니 엄마가 위독하시니 병원에 가는 게 좋겠다는 말을 하셨다. 지은이는 너무 무서웠다. 어머님이 금방이라도 자신을 떠나갈 것 같은 생각에 눈물이 나왔다. 집에 가면 아픈 아빠가 계신데 어머님마저 위독하시다니 초등학생인 지은이에게는 모든 일이 무섭고 먹먹했을 것이다.

어머님을 보러 간 지은이는 어머님이 혼자 소변줄에 의지해 용변을 해결하시는 것을 보게 됐다. 병세로 인해 쇠약해지신 어머님은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이셨지만 학교에서 연락받고 온 삼 남매를 보더니 힘을 내시는 것 같았다. 그날 삼남매는 애써 어머니를 향해 웃음지었고 어머니도 밝게 웃어주셨다.

저녁을 먹기 위해 큰아버지와 함께 큰아버지의 집에 갔던 삼 남매는 저녁을 먹은 뒤 연락 한 통을 받게 됐다. 병원에서 온 연락이었다. 어머님이 다시 위독해진 것이다. 친척들과 함께 차를 타고 어머님이 입원해계신 전북대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는 길이 너무 무서웠다. 삼 남매는 같이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어머님이 무사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큰아버지가 급하게 운전하신 덕에 빨리 병원에 도착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어머님은 아버지도 삼 남매도 없는 병원에서 혼자 눈을 감으셨다.

지은이는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았다. 신이 지은이의 가장 소중한 것, 지은이를 가장 사랑해줄 단 한 사람을 빼앗아가는 것 같았다.

지은이는 어머니가 혼자 병마와 싸우며 힘들게 눈 감으셨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어머님과 같이 있어주지 못한 게 그렇게 서러웠다. 그렇게 지은이는 눈 감은 어머니 곁을 한참이나 떠나지 못하고 소리 내어 울었다.


그렇게 지은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님은 아픈 아버지와 삼 남매를 두고 떠나가셨다. 큰 언니도 고작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어린 동생은 7살이었다. 엄마 품이 너무나 필요했을 삼 남매는 아픈 아버지와 함께 세상에 던져졌다.


어머님이 생전에 보험 판매일을 하시면서 보험을 여러 개 들어놓으셨던 모양이다. 어머님 앞으로 사망 보험금이 꽤 많이 나왔다. 그 당시 법적 상속권은 아버님에게 있었지만 아버님은 7살 지능이었기 때문에 상속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대리인이 필요했다. 결국 큰아버지가 그 돈을 관리하시게 됐다. 큰아버지는 그 돈으로 슈퍼를 차렸지만 얼마 가지 못해 결국 슈퍼는 망하게 되고 돈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렇게 또다시 지은이네 가족에게 힘든 상황이 찾아왔다.


지은이네 아버님은 지능이 7살로 떨어졌지만 폭력적인 성향은 그대로였다. 성치 않은 몸으로 언니를 때리곤 하셨다. 심지어 조현병 증세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버님은 집에서 혼자 천장을 보며 욕을 하기도 하고, 큰아버지가 보험금을 날려먹은 것을 기억하는지 큰아버지에게 매일 전화해서 욕하는 게 이상이셨다.

아버님은 매일 윗집에서 소리가 난다며 욕을 하셨는데 하루는 그 증세가 심해져서 윗집에 칼을 들고 쫓아가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우리는 그 일로 동호수를 옮기게 됐다. 하지만 아버님의 증세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조현병 증세가 심각해지면서 아버님은 자꾸 통장을 가지고 산속으로 들어가 빈집에서 살기도 하셨다. 기초생활 수급자로 한 달에 120만 원씩 통장으로 돈이 들어왔는데 아버님이 통장을 가져가셔서 지은이네 삼 남매는 의식주를 해결하는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 것조차도 힘들어졌다.


지은이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언니와 같이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지은이네 앞에 경찰차가 세워져 있었다. 불안한 예감에 집에 뛰어들어가 본 지은이는 눈앞에 노래졌다. 거실이 온통 피바다가 되어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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