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가난이 무서워요
내가 누군가와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아버님이 남동생과 집에 있다가 자기 화에 못 이겼는지 유리 창문을 깼고, 피바다가 된 와중에도 욕을 하고 계셨다. 그나마 너무나 다행이었던 건 남동생이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사건으로 월드비전이랑 아동학대 전문기관이 삼 남매를 찾아왔고, 상담을 받게 되었다. 삼 남매는 아빠랑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두렵고 싫었다. 상담을 받으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했고, 결국 아버님은 큰아빠를 보호자로 정신병원에 입원하셨다.
그렇게 아버님이 입원하신 후 삼 남매는 연락이 끊겼던 외가 식구들과 다시 연락을 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이모는 대학생이 된 언니와 아직 중학생이었던 지은이와 남동생까지 챙겨주셨다.
하지만 이모 역시도 가난하셨고 지은이의 언니에게 제2 금융권에서 사채를 쓸 것을 강요하셨다. 계속되는 강 요 끝에 결국 이모와도 크게 싸운 후 연락을 끊게 되었다.
지은이의 아버님은 몸이 더 안 좋아지셨다. 병세가 악화되어 좀 더 큰 정신병원으로 옮겨졌고, 그 이후로 삼 남매는 아버님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몇 년 전 아버님이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6년 만에 삼 남매는 아버지를 뵈러 병원을 찾아갔었다. 다행히 아버님은 건강이 호전되어 정신병원에 계속 입원 중이시라고 한다.
남동생이 대학생이 되었을 무렵, 지은이의 언니는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집 사정상 대학원까지 진학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되어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했고, 현재는 지은이와 언니 둘 다 직장생활 중이라고 한다.
지은이는 이런 아픔을 겪고도 밝은 모습이었다. 지은이를 오랫동안 알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아픔이 있는 줄은 몰랐었다. 지은이는 정말 친한 친구 몇 명을 제외하고는 이런 얘기를 누구에게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용기를 내어서 이런 이야기를 해준 지은이의 얼굴을 보며 아픔 속에 갇혀있는 것 같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은이는 나에게 웃으며 이런 이야기도 해주었다.
"언니 차라리 가난할 거면 완전히 가난한 게 나아. 어중간하게 가난하면 못 받는 것도 많은데 난 아빠 병원비도 나라에서 다 나왔고, 대학교도 전액 무료로 다니고 기숙사도 무료였어. LH 아파트 전세금도 지원해 주더라."
무거운 이야기를 들려준 지은이가 농담 식으로나마 이런 이야기를 하며 웃는 것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졌던 나도 같이 웃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 이런 제도가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녀가 예쁘게 웃는 모습이 참 감사하게 느껴졌다.
지은이는 꼭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은 분이 있다고 했다. 지은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이었는데, 학교 선생님들에게 제공되는 문제집을 항상 지은이를 챙겨주시고 장학금도 모두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셨다고 한다. 지은이가 누군가에게 대가 없는 사랑을 받았던 것이 이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지은이 곁에 있었다는 것도, 그런 좋은 분이 지은이의 선생님이었다는 것도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밝아 보이는 지은이에게도 이러한 아픔들이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다. 너무 어렸을 때 겪었던 일들이라 예전의 그 감정과 슬픔은 잊은 것 같다고 했지만 아버님의 영향으로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면서 눈치 보는 버릇이 생겼다고 한다. 아버님이 기분이 좋았다가도 갑자기 화를 내고 물건을 집어던졌던 기억 때문에 아빠 표정을 살피던 어린 시절의 버릇이 남아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버님이 다리가 불편해서 등산용 스틱에 의존해서 걸어 다니셨는데 집 앞 복도에서 등산용 스틱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고 한다. 그 기억 때문에 아직도 어디선가 등산용 스틱 소리만 들리면 깜짝깜짝 놀란다고 한다.
또 한 가지, 지은이는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존재인 부모님에게 사랑받은 기억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지은이는 조건 없는 사랑을 어떻게 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러한 문제는 지은이가 연애할 때도 나타났다. 상대방에게 애교를 부리겠은 물론이고 애정표현을 하는 것 자체가 서툴러서 지은이는 이러한 것들을 문제로 이별을 하기도 했다. 항상 모든 관계에서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해야 했다. 누군가가 지은이에게 많은 호의를 베풀거나 잘해주면 지은이는 '나에게 왜?'라는 생각이 들며 받는 게 그렇게 불편했다고 한다.
지은이는 저러한 트라우마가 있음에도 이야기 끝에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고 싶어 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슬픔이 약간의 트라우마로 남아있긴 하지만, 힘든 것도 다 지나가게 되더라.
시간이 지나면서 완화될 수 있어."
지은이는 이야기를 하는 내내 눈물을 보이지 않기도 했고, 마지막에 저런 메시지를 주는 것을 보니 지은이가 단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였어도 저렇게 단단해질 수 있었을까. 눈물에 밤을 지새우는 일이 많고, 받지 못했던 사랑에 마음이 공허하고 허전하지 않았을까.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 같은 상처들도 그 아픔과 멀어지면서 점점 무뎌지게 되나 보다. 지은이에게 아픔과 멀리 떨어져서 자신을 돌볼 시간이 있었던 게 참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아픔을 마주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픔의 원인과 조금은 떨어져 지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다면, 나 자신을 돌볼 시간을 가져야 한다.
마음과 몸이 지쳐 병들기 전에
그렇게 한 발 떨어져서 내 마음을 돌보다 보면
어느 순간 미소를 찾은 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일들은 결국 다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