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의 나이에 수천만 원을 잃다 1

돈이 뭐가 중요해? 삶의 목표와 계획이 중요한 거야.

by 이열매

나는 치과위생사이다. 치과위생사는 지역마다 연차별로 평균 연봉의 차이가 있는데, 내가 1년 차 때 내가 사는 지역의 1년 차 평균 월급이 150이었다. 치과위생사는 해마다 연봉협상을 할 수가 있다. 해마다 평균적으로 저 연차의 경우 월급으로 치면 10~20만 원 정도가 인상되는데, 이것은 치과의 재정 상태나 치과위생사의 업무능력에 따라 차이가 있다. ㅡ이직 할 때는 능력에 따라 연봉이 600이 오르기도 한다ㅡ


나는 1년차로 치과에 입사하자마자 30세가 되기 전까지 1억을 모으는 계획을 세웠다. 4년제 대학교를 나왔고 24살 3월부터 돈을 벌기 시작했으니 5년 9개월간의 계획이었다. ㅡ5년 9개월간 평균적으로 한 달에 약 145만 원씩 저금해야 가능한 액수였다ㅡ 나는 월급 말고 부수입이 있었기에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고 매년 정해진 액수만큼을 채워나갔다.


1년차 때가 가장 액수를 따져가며 힘들게 모았을 때였던 것 같다. 나는 1년 동안 1천만 원을 모으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려면 한 달에 83만 원씩은 저축을 했어야 했다. 1년 차 때 나는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 남자 친구는 학생이었고 1년 동안은 데이트 비용을 거의 9:1의 비율로 내가 지불했기 때문에 사고 싶은 옷도 사지 못하며 저축했던 기억이 난다. 데이트 비용을 내면서 기념일도 준비했었고, 각종 선물과 생일선물 등을 해주려면 나에게 투자할 돈은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1년 반 동안 연애를 하며 돈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만큼 재미있게 연애를 했었다.


그렇게 알뜰하게 차곡차곡 돈을 모아나가며 유럽, 일본, 중국, 동남아 등 8개국을 여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20대 후반쯤부터는 일 년에 3천만 원이라는 돈을 모을 수 있게 됐다. 계획대로 알뜰하게 차곡차곡 돈을 모아 왔고 30세가 되기 이전에 목표한 금액을 모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2월 말부터 코로나가 터지기 시작했고, 주식이며 나라 경제가 위태로워지기 시작했다. 당시 부수입으로 받고 있던 돈이 내가 모아놓은 돈으로 인해서 수입이 발생하는 구조였는데, 이 돈이 묶여버렸다. 원금을 당장 찾을 수도 없었고 더 이상의 부수입도 발생하지 않았다. 수천만 원이라는 돈이 당장 내 수중에서 증발해버렸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괜찮아지리라 생각했다. 둘째 날부터는 눈물이 났다. 1년 차 때 들어간 치과에서 2년 반 동안 직장상사에게 괴롭힘을 받으며 죽고 싶은 상황에서 이 악물며 버텨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떻게 모은 돈인데 그 모든 게 공기 중에 흩어져버린 느낌이었다.


셋째 날부터는 멍해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의 미래가 아득하게 멀어져 버린 기분이었다. 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고, 그와 결혼해도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연애를 했었다. 당장 결혼 얘기가 오간 것도 아니었지만, 그 당시에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내가 모은 돈을 합하면 당장이라도 결혼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당장 결혼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형편이 되어버린 것과 결혼할 능력은 있지만 연애를 하며 천천히 생각해보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나는 이제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 얘기가 오가도 결혼을 할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나의 사정을 알고 계셨고, 마음 아파하셨다. 내가 그 힘든 직장을 버텨내면서 어떻게 모은 돈인지 부모님이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를 안아주며 눈물을 보이며 나를 걱정하기도 하셨다.


나는 돈이 묶여버린 그 날부터 머릿속이 온통 복잡했고, 일상생활을 하는데도 집중할 수가 없었으며, 모든 일에 의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남자 친구에게 이 사실을 알릴 수도 없었다. 나는 그저 전과 같을 수 없는 나의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나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다고만 알렸으며, 시간이 지나서 괜찮아지면 이 일에 대해 말해주겠다고 했다.


며칠 후 나는 내 돈이 들어가 있던 곳의 책임자분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돈이 묶여버려 더 이상 매달 지급하던 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이셨고, 그 돈을 복구하는 데는 2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였다. 2년 반이 지나면 원금의 일정 퍼센트만큼 매달 지급해줄 수 있다고 했고, 원금을 모두 지급해주는 데까지는 2년이 더 걸린다는 이야기였다. 이 계획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계획이며, 빠를 경우 내년부터도 돈을 지급해줄 수도 있지만 일단 최대한의 기간으로 계획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내 돈을 모두 복구하는데 까지는 최대 4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희망이 생겼다. 원금을 아예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몇 년이 걸리든 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수억 많게는 수십억을 잃으신 저분도 포기하지 않고 복구를 위해 계획을 세우고 한 명 한 명 만나 설명해주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딸린 식구도 없고 고작 몇천만 원 잃은 내가 세상 끝난 듯 넋 놓고 있는 게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는 바로 책상 앞으로 가서 노트를 펼쳐 원금은 못 받는다는 가정하에 2년 반 동안 8천만 원이라는 돈을 모으는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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