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의 나이에 수천만 원을 잃다 2

돈이 뭐가 중요해? 삶의 목표와 계획이 중요한 거야.

by 이열매

우리나라에는 '청년내일채움공제'라는 제도가 있다. 2년형, 3년형, 5년형 짜리가 있었는데 나에게 해당되는 제도는 2년형과 5년형이었다. 하지만 5년 동안 한 직장에 묶여있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단 생각이 들었고, 2년형에 가입하는 게 적당하다고 느껴졌다. 2년형은 내가 2년 동안 300만 원을 넣으면 기업에서 400만 원, 정부에서 900만 원을 지원해줘 2년 만기 후 총 1600만 원과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제도이다.


청년내일채움공제 2년형의 가입을 위해서는 총 재직기간이 12개월 미만이거나, 실직기간이 6개월 이상이어야 가입이 가능했다. 나는 당장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퇴직금은 그대로 통장에 넣어두었다. 6개월간의 실직기간을 가지면서 부모님이나 친척분들의 일을 도우며 용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6개월간 1500만 원 정도의 돈을 벌 계획을 했고, 그다음엔 청년내일채움공제가 가능한 직장에서 일을 하며 1년에 2천만 원씩을 저금할 계획을 세웠다. 2년 후엔 청년 내일 채움 공제 만료로 1600만 원이 내 수중에 생길 수 있었고, 퇴직금 등을 합하면 총 8000만 원 정도의 돈을 모을 수 있었다. 만약 원금까지 모두 받게 된다면 1억이 훌쩍 넘는 금액이 나에게 생기는 것이었다.


이렇게 계획을 세우고 나니 다시 활력이 생겼고, 묶여버린 원금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계획서를 들고 식탁에 계신 부모님 앞으로 가져갔다. 나의 2년 반 동안의 계획을 부모님 앞에서 브리핑했다. 며칠 동안 저 때문에 걱정 많이 하셨을 텐데, 나는 이러한 계획을 세웠고 지금 아무렇지도 않으니 내 걱정은 말고 부모님 노후대비나 더 탄탄히 해놓으라는 말을 했다. 엄마는 기특하다고 힘들지 않겠냐며 나를 대견하게 생각하며 눈물을 보이셨다.


그리고 책임자분께 연락을 했다.


아침 식사는 하셨어요? 괜찮으신가요? 걱정이 되네요.. 그래도 오늘 세끼 다 잘 챙겨 드시고 힘내셨으면 좋겠어요. 돈은 있다가도 없는 거라고 했어요, 사는데 돈은 먹고살 만큼만 있어도 행복할 수 있잖아요. 제가 응원할게요. 처음에는 속상하긴 했는데 그거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저는 계획도 착실하게 잘 세워놔서 그 돈 못주신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게 다시 돈 모으면서 잘 살 수 있으니까, 너무 미안해하시거나 속상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처음에 월급 150만 원 받으며 시작했는데 덕분에 최근엔 한 달에 250만 원도 저금하면서 지냈어요. 너무 풍요롭게 지내서 주변 사람들도 더 챙기고 베풀 수 있는 사람도 됐고요. 덕분에 얻은 게 많고 너무 행복하게 지냈으니까 얼른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직장도 잘 다니고 있고 생활도 달라진 거 없으니까 마음의 짐 조금이라도 내려놓으세요. 여태까지 주셨던 행복으로 충분하답니다. 배울게 참 많은 어른이세요. 책임자분처럼 좋은 어른으로 나이 들고 싶어요.


내가 이렇게 보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진심이 아닌 부분은 하나도 없었는데, 어차피 잃어버린 돈은 내가 이 분을 탓한다고 해서 다시 돌아오는 돈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돈을 잃은 것 자체가 내가 위험부담을 감수한다는 약속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책임자분이 나에게 돈을 변제해줄 의무가 없었다. 법적으로 변제의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책임지고 돈을 원상복구 시켜주겠다는 책임자분의 책임감에 존경심도 느껴졌다. 그리고 정말 덕분에 풍요롭고 행복하게 생활했기에 몇 년 동안 나를 행복하게 해 주신 이 분에게 항상 감사함을 느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겼다고 이 분에게 감사했던 일이 사라지는 게 아니었고, 이 분의 잘못도 아니었기에 이분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답장이 왔다.


나는 소영이 나이 때, 소영이 만큼 성숙하지 못했었는데 소영이야말로 내면이 더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네. 고마워 소영아. 천군만마를 얻은 것만큼 힘이 나! 오늘 소영이 덕분에 더운 것도, 힘든 것도 모르겠다. 힘든 상황에서도 꿈을 찾아 묵묵히 가는 모습 정말 존경스럽네. 계속 응원할게. 소영이 처럼 멋진 사람이 나를 그렇게 봐주니 나 더욱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지네. 진심으로 고마워.




책임자분은 40대의 여성분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이 나에게 '존경스럽다'라는 단어를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늘 낮은 자세로 눈높이를 맞춰 대화해주는 분이셨다. 나와 책임자분은 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힘든 상황 속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소중한 존재가 되어갔다.


살다 보면 누군가가 나에게 의도치 않은 피해를 입힐 수도 있고, 돈을 빌려가고 갚지 않을 수도 있고, 나를 도와주려다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당장의 내가 입은 손해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 사람 탓을 하게 되고 미워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나에게 줬던 도움으로 인해 내가 고마웠던 부분이나, 그 사람의 의도, 그 사람의 상황 등을 생각해보면 상대방을 믿어주며 응원해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사람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것 둘 중 하나밖에 생각하지 못한다고 한다. 내가 지금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있다면 얼른 나를 그 부정적인 생각에서 꺼내 주어야 한다. 일부러 행복했던 일을 생각해보거나 웃긴 것을 찾아본다던지 등 나를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내가 지금 이뤘던 무언가를 잃어버렸거나 실패하는 일이 생긴다면,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그 상실감과 슬픔에 빠져있지 말고 책상 앞으로 가 내 삶의 목표와 계획을 세워보길 바란다. 그렇게 하고 나면 상실감에 빠져있다가도 일어날 힘이 생길 것이다."


돈 때문에 부모형제간에 의절하는 일도 종종 발생하곤 하는데, 내 삶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 돈 때문에 내 주변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을 잃는 바보 같은 일을 저지르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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