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나만 받는 게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물

by 이열매

쉬는 시간이 되고 역시나 대여섯 명이 몰려와서 나를 둘러싸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미쳤냐고 드디어 돌은 거냐며 앉아있는 날 내려다보며 때리는 시늉까지 했다. 또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한 번만 더 건들면 참지 않을 거라고 속으로 다짐하고 있던 난 나에게 엎드려뻗치라고 명령했던 그 아이의 머리채를 잡아버렸다.


무슨 말을 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같이 몰려왔던 애들이 몹시 당황했고 겁먹었는지 멀리서 때리는 시늉만 하면서 그 손 놓으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에게 머리채를 잡힌 아이는 손톱이 매우 길었는데, 그 아이도 내 머리채를 잡고 내 얼굴을 사정없이 할퀴어서 얼굴 곳곳에서 피가 나며 진물이 났다.


머리를 잡혀서 목에 담이 걸린 것 같았다. 잡힌 머리채도 상처 난 얼굴도 아팠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쳐다봤다. 그 아이의 주변엔 친구들이 많았지만 내 옆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를 좋아해 주던 그 남학생이 뛰어와 놀란 얼굴로 날 쳐다보며 괜찮냐고 어루만져주었다. 수줍어서 얼굴 보고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던 그 남학생의 따뜻한 말 한마디 손길 하나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치열했던 2학기 학교생활이 끝나고 겨울방학이 되었다. 평화로운 나날이 찾아왔다. 학원도 그만두고 시간이 많았던 겨울방학은 잡생각을 하지 않으며 그 남학생과 같이 게임도 하고 메신저로 대화도 주고받으며 일상을 보냈다.


나는 원래 남의 것을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 성격 탓에 나는 그 아이들이 sns에서 나를 두고 뭐라고 떠들던 들어가 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남학생이 나에게 메신저로 진지하게 대화를 걸어왔다. "OO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거 네가 봐야 할 것 같아서..."라며 자신의 O이월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주며 A의 sns에 들어가 보라는 말을 했다.


나는 뭔가 심각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했고, 알려준 대로 A의 sns에 들어가 봤다. 느낌이 안 좋았다. 원래 내가 게임할 때면 옆에 앉아서 구경하던 언니가 그 남학생이 나에게 대화를 건 후로는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쳐다보지 못했다. 언니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했다.

사진첩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나의 사진들이 올려져 있었다. 그냥 평범하게 웃으며 찍어 올렸던 내 사진들을 캡처해서 얼굴을 일그러트려놓고, 입을 귀까지 찢어놓고 , 다리를 옆으로 늘려 펜으로 여기저기 낙서를 해놓았다. 소름이 끼쳤다.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아 머리에 몰리는 듯 했다. 나는 내 사진을 보았지만, 그곳에는 내가 없었다. 기괴한 사진들만이 있었다.


멍하니 한참을 쳐다봤다. 그리고 밑으로 내려 게시물에 써놓은 글과 댓글들을 봤다. 게시물들에는 "얘들아 웃어"라고 쓰여 있었고, 그 밑에 댓글들에는 웃으면서 나를 조롱하는 댓글들이 수십 개가 있었다. "역겨워", "징그러워", "토 나와", "개 웃겨ㅋㅋㅋㅋㅋㅋㅋ", "ㅁㅊㄴ ㅋㅋㅋㅋㅋㅋ" 댓글 하나하나가 심장을 파고드는 듯했다. 심지어 나랑 사귀고 있던 그 남자아이에게도 웃으라고 시켰다고 한다. 그 남자아이의 이름으로 "ㅋㅋㅋ"이라고 댓글이 달려있었다.

한 학기 내내 잘 버텨내며 당당하게 다니던 내가 무너졌다. 그 순간 가장 슬프고 충격적이었던 그 사진도, 그 남자아이의 댓글도, 아이들의 조롱도 아니었다. 옆에서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울고 있던 언니의 모습이었다. 언니는 다 알고 있었지만 내가 상처 받을 것이 두려워서 나에게 말도 못 하고 혼자 속상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고 있었구나."라는 나의 말에 언니는 "너는 못 보게 하려 했데..."라고 말했다. 그렇게 언니랑 나는 같이 한참을 울었다.

나는 내가 잘못한 것이 없었기에 아이들이 나를 괴롭히며 못살게 굴 때도 기죽지 않으려 했다. 속상하고 힘들었지만 더 당당한 척하며 무시하곤 했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언니가 속상해하는 것을 보니 더 이상 그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것은 나의 일이었고, 나의 싸움이었다. 이 싸움을 끝내려면 누군가가 이겨야 했다. 나는 개학하면 그 아이들이 다시는 나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리라 다짐했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잠시 학교에 나가는 동안과 봄 방학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2학년 선배들이 1학년 애들 중에 내가 외모가 좀 튄다는 이유로 나를 같은 학년 아이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있는 아이로 만들어주었다. 그 일로 나에게는 자연스럽게 친구들이 생겼고, 나를 이유 없이 욕하던 아이들도 사라졌다. 오히려 예쁘다고 아부하며 따라다니는 애들도 생겼다.


개학하면 그 쌍둥이 A, B를 남들이 다 보는 앞에서 짓밟아버리겠다고 다짐하고 있던 나에게는 좋은 기회가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의 복수가 완벽해질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가고 있었다.



2학년이 시작되고 어느덧 4월이 되었다. 나는 A에게 가서 일부러 시비를 걸었다. A는 보기 좋게 나의 덫에 걸려들었고, 나는 교문밖으로 A와 B를 유인해내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