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그리고 메시지

너는 너무나 소중하단다

by 이열매

학교 정문 앞, 가장 많은 아이들이 지나다니는 앞에서 나는 그 둘을 가장 치욕스럽게 만들어야 했다. B의 앞머리를 위로 잡아 올려 수치스럽게 만든 후 얼굴을 때렸다.

정말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미웠던 얼굴을 보는데도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집에서 베개를 잡고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갔는데도 실제로 사람을 때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신의 쌍둥이 동생이 맞는 것을 보자 뒤에서 A가 내 머리채를 잡았다. 이번엔 A의 머리채를 잡고 목을 꺾어 위에서 가만히 그 아이의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교문 앞에서 차를 정차해놓고 있던 한 아저씨가 뛰어와 나를 붙잡고 뭐하는거냐며 그 손 놓으라고 했다. 나는 말없이 그 아저씨에게로 시선을 돌려 "아저씨가 얘 아빠예요?"라고 물어봤다. 질문을 한건 나였는데, 갑자기 반년 내내 당했던 수모와 모든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눈물에는 많은 감정들이 담겨있었다. 울기 싫어서 눈물이 흐르지 않게 하려고 눈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 아저씨는 내 눈을 보더니 "네가 얘한테 당한 게 많니..?"라는 질문을 하시더니 조용히 차로 돌아가셨다.


잡고 있던 머리채를 놓지 않은 채 다시 그 아이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주먹으로 힘껏 내리치려 했지만 역시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폭력적으로 보였을지 몰라도 난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세게 때릴 수 없음에 분할 정도였다.

그렇게 나는 이 싸움에서 이겼다. 졸지에 나는 혼자서 쌍둥이 두 명을 팬 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여학생이 되어 있었다.



다음날 수업 중에 나는 학생과로 불려 갔다.


학생과에 불려 간 난 들어서자마자 학생부장 선생님께 시원하게 욕을 먹었다. "미친 X 네가 뭔데 애들을 패?"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진술서를 받아서 그간 있었던 일을 모두 적었다. 학생부장 선생님은 조용히 진술서를 읽더니 A와 B를 번갈아 쳐다보시고는 "이런 정신 나간 X들 뭘 잘했다고 맞았다고 신고를 해?"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잘 때렸다. 아니 그리고 넌 이런 일이 있었으면 선생님들한테 말했어야지 왜 참고 있었어! 너 둘러싸고 뭐라 했던 애들 몇십 명이고 이름 다 적어. 내가 다 징계 내릴 거야 다 적어!"라고 하시고는 양쪽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말하고 학교로 나와주셔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학생과의 큰 테이블에는 나와 우리 엄마, A와 B와 그 아이들의 엄마가 마주 보고 앉아있었고 학생부장 선생님과 담임선생님이 양쪽 끝에 앉아계셨다. 그 아이들의 어머님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을 못 하고 계시다가 "제가 악마를 키운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울며 말씀하셨다. 우리 엄마는 울면서 왜 말 안했냐고.. 그동안 어떻게 학교 다녔냐며 나를 걱정했다. 그 아이들도 울고 나도 울고 있었다. 나는 괜찮다고 대답하고 엄마가 슬퍼하는 모습에 다시 또 마음이 아팠다.



어쨌든 그 아이들에게 폭력을 가한 것은 맞기 때문에 그 아이들과 나 모두 징계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잘못을 뉘우친다는 점과 우리가 화해했다는 점을 고려해서 징계는 매일 반성문을 써서 제출하는 훈계 정도로 끝났다. 화해했다는 게 놀랍겠지만, 그 아이들의 어머님이 눈물을 흘리시며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난 이미 더 이상 학교에서 괴롭힘 당하는 왕따가 아니었다. 왕따도 극복했고 복수도 해서인지 마음속에 상처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학생과를 나오며 그 아이들에게 내가 먼저 말을 걸어 사과를 했다.

그리고 약 한 달 후, 그 아이들의 어머님이 병에 걸리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잘못을 한건 그 아이들이었는데 어머님이 오셔서 고개 숙여 울며 사과하는 모습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난 그 이야기를 듣고 괴로웠다. 내가 기억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그 아이들의 어머님 모습이 계속 눈에 밟혔고 모른 채 할 수가 없었다. A에게 괜찮냐고 말을 건넸다. 괜찮다고 웃으면서 대답했는데 훗날 들은 얘기로는 처음엔 내가 비아냥거리는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오해는 금방 풀렸고, 우리는 마음의 응어리를 지운채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였다. 병세가 악화되었다는 말을 듣고 병문안을 갔었다. 그때 우리 엄마가 병문안 가고 싶다는 나의 말을 듣고 병원까지 차로 데려다줬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얼마 후 A의 어머니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그 당시에 나의 남자 친구였던 그 아이와 아직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학생과 같이 장례식장에 들렀다. A는 나를 보자마자 부둥켜안고 소리 내어 울었다. 나도 같이 눈물이 흘렀다. 절을 하고 국화꽃도 한송이 올려놓고 A와 마주 보고 인사를 했다.

그 후에도 나는 A의 생일날 A의 학교에 서프라이즈로 찾아가 케이크를 주고 가기도 했고, A와 친분을 유지하며 잘 지냈다. B와도 잘 지냇지만 B와는 친구사이였던 적이 없어서 그런지 약간의 거리감은 느껴졌다. A와 B의 집에 놀러 가서 자고 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20대가 되고 나서 그 아이들은 나와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니여서인지 먼저 연락하는 일이 거의 없었고 서서히 연락이 끊어졌다.




어쩌면 너무 아팠을 내 중학교 시절의 일은 나에게 아픔으로만 남아 있지는 않았다. 그 힘든 순간 나를 지켜주던 한 남학생이 있었고, 든든한 나의 언니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많이 아프고 속상했고 상처 받아 잘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이 있기 때문에, 모든 왕따 피해자들이 나처럼 견뎌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 그들이 이상한 것이다. 그리고 모든 힘든 일을 혼자 견뎌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의외로 어렸을 때는 어른의 힘을 빌리면 바로 해결되는 사건들이 있기 때문에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기대는 것도 나를 지키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혼자 견뎌냈다는 걸 나중에 부모님이 알게 되었을 때, 부모님이 받을 상처는 훨씬 클 것이다. 이유 없이 반항적인 나의 모습을 받아주기도 쉽지 않으실 것이다. 더욱이, 폭행까지 일이 커졌다면 꼭 경찰에 신고해서라도 더 이상 일이 커지지 않게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만은 절대 나를 놓아버려선 안된다.







당신의 너무 아플 그 시기에 당신만은 당신에게 사랑을 많이 주었으면 좋겠다. 너무 슬픈 날에도 슬픔에 빠져있지 않게 일상에 좋은 일들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당신은 좋은 세상을 보며 자라났으면 좋겠다. 상처가 나아지고 주변에 사랑이 가득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