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워요, 쫓아오지 마세요

여자에게 낯선 남자의 의미

by 이열매

무거운 주제이지만, 주변에서 정말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므로 낯설지 않은 일이다.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성희롱이나 성추행 등을 살면서 겪어봤을 것이다. 특히 누가 봐도 약해 보이는 학생일 때는 나뿐만 아니라 주변 지인들도 다들 한 번쯤은 겪어봤다고 한다.


남자들은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밤중에 앞에 가는 여자가 무서워하며 힐끔힐끔 뒤를 돌아본다던지,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여자가 자신의 집 층수에 도착하자마자 귀신 본 듯 뛰어간다던지, 에스컬레이터나 계단에서 치마 밑을 가리며 뒤를 쳐다본다거나 하는 모든 행동이 남자들의 입장에선 짜증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내 친구인 A의 남자 친구는 A가 집에 혼자 있는데 웬 남성이 자신의 집 도어록을 눌러대서 무섭다고 전화를 했더니 뭐가 무섭냐고 그냥 술 취해서 잘못 누른 거일 거라며 무서워하는 A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여성에게 '낯선 남자'란 쥐에게 고양이 같은 존재이다. 남성에게는 '낯선 남자'가 아무리 힘이 쎄 보인다고 해도 보는 것만으로도 생명의 위협이 느껴진다거나 겁먹는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괜히 시비 붙어서 좋을 것이 없으니 그냥 피해 가면 그만일 뿐이다. 하지만 여성에게 '낯선 남자'는 힘이 약해 보이고 쎄 보이는 것과 상관없이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거나 죽여버릴 수 있듯이 나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나를 죽음까지 몰고갈 수 있는 대상인 것이다.


나는 성인이 된 지금 내가 범죄의 타깃이 되지 않는 방법까지 터득하게 됐다. 설령 내가 처음에 타깃이었어도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게 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될 정도이니 이 세상이 얼마나 여자가 살기 무서운 세상인지 경각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내가 처음 성희롱이라는 것을 겪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비 오는 날 학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산을 푹 눌러쓰고 걷고 있었다. ㅡ눌러쓴 우산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2m 앞까지는 보이는 정도였다ㅡ 앞에 웬 추리닝 바지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가까워지자 바지에 속옷까지 내리고 나를 쳐다보고 있는 아저씨가 서있었다. 그 순간 너무 무서워서 뛰어 도망갈 생각도 들지 않았다. 사나운 개가 내 옆을 지나갈 때 조용히 숨죽여 지나가게 되는 것과 같은 순간이었다. 제발 그냥 지나치기를, 제발 나를 쫓아오지 않기만을 속으로 수천번 기도했다.

이 외에도 등굣길에 여자 아이들에게 길을 물어보는 척 가까이 오게 유인한 뒤 차 문을 열고 옷까지 벗은 자신의 신체부위를 보여주는 일이나, 여학교에 바바리맨이 등장한다거나, 초등학교나 중학교 여자아이들에게 바지 내리고 쫓아오는 아저씨 등 여자들은 살아오면서 성희롱에 노출되는 일이 굉장히 많이 있다.


물론 남자만 그런 건 아니었다. 난 중학생 때 여자가 "이리 와 봐"라고 하며 쫓아온 적도 있었다. 그때도 너무 무서웠고, 손발이 덜덜 떨렸지만 여자 vs 여자라면 흉기를 들고 있지 않는 이상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고등학생쯤부터는 아저씨들이 전철에서 힐끔힐끔 쳐다보더니 자신의 가방 지퍼를 여는 척하면서 손을 멀리 뻗어 가슴을 만지려고 한다거나, 지나가는데 손 흔드는 척하며 일부러 중요 신체부위를 만지고 간다거나, 버스나 전철에서 자는 척하며 슬금슬금 손을 넘어와 허벅지를 만지려 하거나, 대놓고 엉덩이를 툭 치고 가는 등 성희롱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성추행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3년이라는 시간을 트라우마 속에서 살게 한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학원이 끝난 후 밤 10시 반쯤 집으로 오는 길이였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저 멀리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는 직접적인 성추행을 당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가까워지는데도 사람을 무턱대고 의심하는 것 자체가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침착하게 보폭을 유지하며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뒤에 있던 남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그 발걸음 소리는 이상하리만큼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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