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왕따, 아니 전따였다

내가 뭘 잘못했어?

by 이열매

중학교 입학식 처음 교복이라는 옷을 입고 교문에 들어선 순간을 잊지 못한다. 햇살이 맑고 따사롭게 내려오는 날이었다. 이 첫날의 기분을 잊지 않으려 하늘을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괜히 내가 어른이 된 것 같았고 교복은 마치 제복을 입은 것만큼이나 멋있게 느껴졌다.


근처 초등학교를 나왔지만 같은 반에는 아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그래도 앞뒤에 앉은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며 친구들이 하나둘씩 생겼고, 좋아하는 남학생도 생겼다. 좋아하는데 고백할 용기가 없어서 그 시절 누구나 들고 다니던 mp3 player에 녹음파일을 넣어서 들려줄까 고민했던 기억도 난다. (우스워 죽겠다)


무난하게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이 되었다. 반에서 꽤 잘생겼고, 말수가 적어 호기심을 유발하던 한 남학생이 컴퓨터 메신저로 대화를 걸어왔다. 할 말이 있다며 내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호감이 있었는데 친해지기가 쉽지 않다고 느껴졌던 그 남학생의 고백에 놀라기도 했고 가슴이 뛰며 설렜다. 나는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했고 조금 뒤 긍정의 뜻을 내비쳤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여학생이 같은 대화방에서 "잘 봤습니다." 라며 웃기 시작했다.


그 대화방에는 나와 그 남학생 말고 한 명의 우리 반 여학생이 더 있었고, 나는 그 남학생의 고백에 정신이 팔려 이 대화방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미쳐 알아채지 못했다. 그 남학생이 나에게 했던 고백은 그 당시 초등학생들에게나 유행하던 일종의 반응팁 같은 것이었던 모양이다. 둘이 같이 나에게 장난을 쳤는데 나에게 원하던 반응이 나오자 그 여학생은 매우 재밌어했고 나는 민망함에 얼굴이 달아오르며 무 창피했다.


2학기가 시작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그 남학생과는 오히려 가까워졌다. 그 남학생은 나에게 호감이 있었던 모양인데, 자신이 했던 몹쓸 장난에 부끄러워하는 내 모습을 보고 나에게 더욱 마음이 갔나 보다. 그 남학생은 나와 학교 끝나고 매일 메신저로 대화하며 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조금씩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고백해왔다. 그때 나의 가장 아름답고 예쁜 추억으로 기억되던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그 여학생은 A라고 칭해야겠다. A는 나랑 반에서 제일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었다. 우리는 그 일로 싸우진 않았지만 알 수 없는 뭔가가 거리감 같은 것이 생긴 듯했다. 그러다 A는 그 남학생과 내가 가까워지던 순간부터였는지 나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말을 걸어도 차가웠고 친구들과 단체로 몰려다니며 나를 노려보고 나에게 와서 괜히 시비를 걸기도 했다.

A의 친구 중 한 명이 그 남학생과 사귀다 헤어졌었는데 A의 친구는 계속 그 남학생을 좋아하고 있었고, 나는 그 친구의 남자 친구를 뺏어간 여우처럼 보였나 보다.


처음에는 친했던 A와 멀어지는 것이 속상했었다. 매일 얼굴을 봐야 하는 같은 반 친구와 적대적인 관계로 지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이래서 그랬나 보다, 이런 이유들로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나 보다...' 싶은 거지 그 당시에는 A가 나에게 그러는 이유 알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A와 A의 친구들의 괴롭힘은 심해졌다. 지나가며 나를 쳐다보는 눈초리가 따가웠고 나에 대해 험담하는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단체로 몰려와 나를 둘러싸고 손가락질하고 비웃고 욕하는 일도 있었다. 그 당시에는 O이월드라는 sns가 유행이었는데, sns에서 자기들끼리 나에 대해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고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여기저기 퍼트리는 일도 있었다.

나를 쏘아보는 눈들이 무서웠다. 나에 대한 험담을 듣고 나면 속상하고 화가 났다. 나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애들이 나를 쏘아보며 헛소리를 해대는 것이 듣기 싫어 mp3 볼륨을 최대로 키워 듣지 않았고, 주눅들지 않으려 고개를 당당히 들고 그들이 나를 쳐다보건 말건 그들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단체로 몰려와 나에게 "야 이리 와 봐." 하며 말을 걸 때는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지만 "네가 와 XX아"라며 욕을 했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나를 둘러싸고 때리는 시늉을 하며 나한테 위협을 가할 때는 손발이 덜덜 떨려 제대로 서있기도 힘들었지만 "때려봐"라고 하며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말하곤 했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은 정말로 나를 때리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뿐이다. 아마도 같은 학교 3학년에 우리 언니가 있어서 나를 크게 건들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같은 반 친구들이나 A의 친구들에 국한돼있던 괴롭힘은 아래층, 위층으로 번져나갔고 전교생이 나를 괴롭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A는 쌍둥이였고 A의 쌍둥이인 B 역시 같은 학교였어서, 나를 괴롭히는 주동자는 두 명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루는 학교에 지각을 했는데 교실에 담임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다. 우리 반에는 지각하면 앞에 나가서 엎드려뻗쳐를 하는 게 일종의 '룰'이었는데, 나를 싫어하던 같은 반 아이들은 내가 자리에 앉아있던 게 맘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앞에 나가서 엎드려뻗치라며 나에게 욕을 했다. 난 그들의 말대로 따라주기 싫어서 "닥쳐 XX아."라고 무표정으로 쳐다도 안 본 채 욕을 했다. 내 욕을 들은 주변 아이들이 빵 터져서 웃기 시작했다. 나에게 나가라고 명령하던 그 여자아이는 민망해하며 나에게 미쳤냐고 욕을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던 것과는 다르게 속으로는 '쉬는 시간이 되면 또 여러 명이서 나에게 몰려오겠지.'라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