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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열매 Dec 29. 2020

잘못 끼워진 첫 단추 3

공황장애와 우울증

 나는 모 기업의 고문 비서를 맡게 되었다. 임원 비서 일은 밤낮이 없었다. 하루에 겨우 3~4시간씩 자며 언제 올지 모를 연락에 항상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사회생활을 아예 겪어본 적이 없던 나는 처음으로 들어간 회사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사회생활을 배워나갔다. 나의 직장생활은 만만치 않았고, 직장 선배들에게 쓴 충고도 받아가며 울면서 열심히 일했다.


 기업 임원의 요구를 다 맞춰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일이고 좋아하는 일이라 버틸 수 있었는데, 참기 힘든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비서직 특성상 옷을 대충 입고 출근할 수 없었고 높을 힐에 딱 달라붙는 치마를 입고 일을 해야 했는데, 성희롱이 시작된 것이다. 처음엔 내 반응을 살펴보는 가벼운 성희롱으로 시작되어서 나중엔 내 몸매를 훑으며 직접적인 성희롱까지 이어졌다.


 임원분이 근무 중에 불러서 들어가 보면 야한 사진을 보여주며 "야, 이거 재밌다 그렇지?"이러면서 내 반응을 살펴봤다. 그러다 나중엔 나를 부르는데 이상한 소리가 나서 '설마..' 하며 집무실에 들어가 보면 자신이 보고 있던 야한 동영상을 나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표정관리를 못해서 표정에서 거부감이 드러나도, 어느 날은 대놓고 싫은 표정을 지어도 그런 사람들은 상하관계에서 오는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라 반응에 상관없이 본인의 욕구를 해결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너무 무서웠다. 내가 다니던 회사의 비서직은 대부분 계약직이고 계약직이 끝나면 철저하게 임원분의 의중이 100% 들어가는 평가를 받게 된다. 그래서 더욱더 내가 내가 쉽사리 뿌리칠 수 없는, 나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이 사람이 나를 불러 이런 행동을 하는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몰랐다. 이직을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수치스러워서 누구에게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남들이 들어오고 싶어 하는 좋은 직장에 어렵게 들어와서 이런 일을 당한다는 게 나를 너무 힘들게 했지만, 나는 일을 다녀야 했다.


 나는 건강 이상증세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런 일을 겪게 된 지 1년 만에 공황장애로 나는 박자 감각을 잃게 되었다. 나는 음악을 좋아해서 쉬는 날엔 취미로 첼로와 피아노를 했었는데, 어느 날 합주를 하는데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다 느리다고 생각되었다. "왜 이렇게 느려요?"라고 질문하자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아... 실은 네가 너무 빨라..."라고 말하셨고 모두가 나를 쳐다봤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고 그 뒤로 악기를 연주할 수 없었다. 지옥 같은 직장은 내가 좋아하던 음악과 취미마저 빼앗아갔다.


 나는 비서직으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일을 겪는 줄 알았다.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을 때도 나만 힘든 게 아니라고 나를 채찍질했다. 이 직장에서 나는 그렇게 3년을 노예처럼 일을 하며 버텨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병들어갔다. 3년 동안 내가 얻은 것은 불면증은 기본이고 우울증과 공황장애, 불안장애, 소화장애, 탈모, 그로 인한 건강악화 등이었다. 결국 나는 3년 후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대학교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대기업에 입사하고 행복했던 순간은 너무나 짧았다. 다시 어렸을 때의 기억부터 올라오기 시작하며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모든 게 다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았다. 나의 인생은 평탄할 날이 없었고 매일을 약으로 버텨내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일을 다시 할 수 있을까, 다른 일을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의 시간들이 늘어갔다. 하지만 나는 이 일 말고는 다른 직업을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다른 특출 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른 일을 해볼까 해서 일을 시작했다가도 금방 그만두게 되었고, 나는 내 직업인 비서일을 다시 해야만 했다. 이직할 곳에서는 제발 좋은 사람들을 만나길 바라며 결국 나는 2년 동안의 공백 기간을 가진 후 다른 비서직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이직한 곳에서는 그룹의 임원분인 본부장님의 비서직을 맡게 되었다. 다행히 본부장님은 너무 젠틀하시고 좋은 분이셨다. 많은 여자들이 이상형으로 생각할 만한 성격에 매너까지 갖추신 분이었다. 하지만 역시 나에게 이런 좋은 직장이 올리가 없었다. 내가 속한 팀의 팀장님은 전에 직장보다 더 심하게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그 분과 같이 일하는 2년은 내가 더 이상 비서직을 못하는 계기가 된다.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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