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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열매 Dec 30. 2020

잘못 끼워진 첫 단추 4

나비효과

 팀장님은 가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희롱을 했다. 나를 아래위로 쭉 훑으며 "이야 다리 죽인다~", "○○씨 남자친구는 되게 좋겠네."등 흔히 눈으로 시선 강간한다고 하는 성희롱을 주로 했다. 그리고 밤에 전화해서 법인카드로 얼마 썼는지 물어보며 뭐 하고 있냐고 물어보거나, 다음날 스케줄을 물어보며 개인적인 일을 시키는 등 유독 애인처럼 굴며 나를 밤낮없이 괴롭혔다.


 견디다 못해 나는 결국 2년 만에 회사를 도망치듯 나오게 되었다. 회사생활을 하는 총 5년 동안 나는 우울증과 불면증 약을 달고 살았다. 우울증은 결국 내 영혼까지 갉아먹게 되었고, 나는 자살시도까지 하게 되었다. 다시는, 정말 다시는 내 인생에 비서직은 없으리라 결심하며 하루하루를 영혼 없이 살아가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까 약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을 때였다. 일도 하지 않고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면서 쉬고 있는데 그동안 곪았던 것이 터져버렸다. 어렸을 때부터 받았던 충격적인 사건들에 성인이 되면서 겪은 일들까지 모든 게 나비효과가 되어 나를 덮쳐버렸다. 달리는 차 안이나 비행기에서는 눈을 감고 가거나 잠을 자야 갈 수 있었다. 아니면 누가 옆에 붙어서 계속 이야기를 해줘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공황장애로 인해 탈 수 없었다. 잠을 잘 때면 항상 악몽을 꿔서 일어나면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고, 잠을 자지 않을 때면 힘든 기억들로 인해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나는 3달 동안 음식도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나는 소리 내서 울어본 적이 없었다. 항상 마음에 모든 것을 담아두고 맺힌 채로 두었다. 울어도 눈물 한두 방울 떨어지는 게 끝이었다. 어느 날 밤 집에 혼자 있는데 자기 전에 '아 이러다 내가 죽겠구나. 내일 아침 나는 눈을 못 뜰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힘든 일이 있어도 마음껏 울어보지도 못하고 눈물을 닦고 경주마처럼 계속 달려왔었는데, 이제는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더 이상 이 세상에 미련도 남아있지 않았고, 내 스스로 이 생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을 모아 두고 물을 떠 왔다. 이제 이 약을 삼키고 잠이 들면 고통스러운 나날도 끝이 난다. 약을 삼키려는 찰나 핸드폰의 불빛이 번쩍였다. 엄마에게 장문의 문자가 왔다. 혼자 사는 딸이 요즘 많이 힘들어 보였는지, 문자에는 나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가득 담겨있었다.


 "사랑하는 ○○아, 아픈 데는 없니? 요즘에도 소화불량이 심하니? 잠은 잘 자는지 걱정되는구나. 지금은 힘들지라도 나중에 뒤돌아보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일일 수 있을 거야. 너는 엄마 아빠의 귀중한 보물 같은 존재니까 좌절하지 말고, 항상 기도하고 감사해하자. 가족들은 항상 너의 편이고 ○○이 네가 잘되길 기도하고 있어. 엄마는 항상 눈물로 새벽기도 다니는데, 반드시 우리 ○○이 잘될 거라는 걸 믿고 있어. 지금의 어려움은 나중에 큰 상급으로 돌려주실 거야. 세상이 뭐라 하던지 그것에 귀 기울이지 말고 멋지게 살아보자. 우리 ○○이 사랑한다."


 문자를 읽고 나니 그간 가슴에 맺혀있던 모든 일들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오면서 처음으로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나를 이렇게 사랑해주시는 부모님이 계시는데 내가 지금 뭘 하는 걸까. 부모님이 안 계셔서 힘든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부모님께 효도는 못할 망정 엄마 가슴에 대못을 박으려 했구나.'싶은 생각이 들면서 정신을 차리고 준비해둔 약을 전부 버렸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나는 우는 건 약한 것이고 지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항상 당당하고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서 힘들어도 기계처럼 일을 하러 나갔고 내 감정을 들여다보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엄마의 문자를 읽고 나니 이제는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가장 친한 친구 중에 간호사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와 전화통화를 많이 하면서 친구의 권유로 정신과를 다니며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부모님도 도와주시고,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으며 우울증과 마음의 병을 극복하는데 많은 힘을 받았다.


 나에겐 친한 친구들이 3명이 있었는데, 친구들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아 네가 뭘 하건, 어떤 삶을 살건, 네가 어떤 사람이건, 다른 사람들이 네게 뭐라고 하건 우린 네 편이야."라는 말을 해주며 무조건적인 지지를 해주었다. 내 주변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보내는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들은 나를 많이 건강해지게 해 주었고, 1년 동안 이러한 시간을 찾아간 끝에 나는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5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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