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모스크바로 유학을 갔다. 나는 모스크바에서 국제학교를 다녔고 내가 다닌 학교는 한국인이 거의 없는 학교였다.
나는 그곳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외향적인 성격이었다. 친구도 잘 사귀고 친구들과 별문제 없이 교우관계가 원만한 편이었는데, 외국생활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낯선 그곳에서 나와 잘 맞는 친구를 사귀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어느 날 가장 친했던 친구들이 내 뒷담화 하는 것을 듣게 되면서 점점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하게 되었다.
나는 모스크바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니게 되었는데, 외국 타지 생활을 하면서 나는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있어 무의식적으로 거부감이 생긴 것 같았다. 무얼 해도 어딜 가도 소극적으로 변했고, 한국에서는 너무나 쉬웠던 친구를 사귀는 일 조차 이제는 나는 할 수 없는 머나먼 일처럼 느껴졌다. 결국 나는 학창 시절 즐거운 추억거리도 만들지 못한 채 친구도 없이 혼자 학교생활을 했다.
외국인 친구들과 사귀기 힘든 점은 내가 그들에게 외국인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고,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전학 간 학교에서 한국인들에게마저 배척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전학 간 학교에는 한국인이 10명 정도 있었는데, 그들과 친하게 지내면 이러한 교우관계 문제들은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불화가 생겨서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외국인들과도 사귀기 힘든데, 한국사람들 마저도 나와 동화가 안 되는 느낌은 나에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유학생활이 끝나고 스무 살에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돌아갈 곳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고, 나 스스로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내 정체성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평생 대인관계가 힘들어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힘든 고등학교 생활까지 마치고 졸업한 뒤 한국에 들어왔다. 나는 유학생활에서 겪은 인간관계가 트라우마로 남지 않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 한 소셜 모임을 알게 되었고, 사람들과 많은 교류도 할 수 있고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 모임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 모임의 사람들은 각자가 서로를 너무 존중해주고 있었다. 나는 항상 나 스스로를 폄하해왔었는데, 그곳에서는 내가 한 명의 인격체로서 존중받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채우지 못한 인간관계의 결핍을 그 모임을 통해 많이 채워가고 있었다.
모임을 시작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어느덧 나는 잃어버렸던 나의 모습을 점점 찾아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생기면서 어렵게만 생각했던 인간관계를 극복하게 되었다.
나의 작은 실천이 잃어버렸던 나를 다시 찾게 해 준 것이다.
유학생활을 한다고 하면 대부분 배울 것도 많고, 외국에서 남들이 누리지 못한 많은 것들을 누릴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곳이 해외이든, 한국이든 사람 사는 것은 거의 다 비슷하다. 오히려 좋을 것이라도 생각했던 곳에 가서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다.
학생 때는 학교가 세상의 전부이기 때문에 아무 데도 속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매우 힘들 것이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은 매우 작기 때문에 이런 일을 겪는다면 그 좁은 세계관 안에서 한없이 가라앉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좁은 세계관 안에서 내 존재가 흔들리고 앞이 안 보이는 상황이 생길지라도 그러한 상황은 어떻게든 지나가게 된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이러한 역경을 극복하고 나면 오히려 나중에 나에게 큰 힘이 된다.
나는 고등학교 때 있었던 힘든 일들로 인해 오히려 다른 사람의 말을 더 경청할 수 있는 큰 장점이 생겼고, 나를 어떻게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지에 알게 되었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의 관계를 모두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생겼다.
다른 사람의 세계관을 존중해주며 나의 세계관도 존중받을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이제는 인간관계 속에서 힘들어했던 내가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