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장수는 입으로 팔고 나막신 장수는 얼굴로 판다.

< 도바 위에 뜬 별 1부 제4화>

by 손병호

그날 늦은 시간, 신 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성호 씨, 내일 물건은 내가 어떻게 하든, 있는 대로 다 긁어줄 테니 장사에만 신경쓰세요.” 장사를 시작하자 마자 그가 부르는 내호칭은 한기자님이 아니라 성호씨가 되었다.

'긁어 줄테니'라는 말이 웬지 목구멍에 가시처럼 마음에 걸렸다.다음 날, 나는 그 전화가 '힘든 하루의 시작 예고’였다는 걸 알게 됐다.


노점상 이틀째 날


다음 날 아침, 국제시장 골목, "너거 모두 다 알제? 술 꾼들에겐 재첩 국수가 해장에 최고다. 이기 술에 찌든 간에는 직빵인기라.마늘과 국산고춧가루가 국물과 어우러져 쓰린 속을 확 풀어준다 아이가."

40년을 하루같이 새벽부터 아침 열 시까지 장사를 한다는 순이 할머니. 노파의 재첩국 자랑이 끝없이 늘어졌다. 할머니의 큰 입에서 간간이 뛰는 침 세례를 피하고자 그 때 마다 대팔이와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려야했다.

재첩국 장수 세사람 가운데 가장 연장자였다. 먹자골목 아침 장사반의 최고어른이다.

재첩국수 할머니들이 10시쯤 장사를 마치면 그 자리를 재빨리 김밥 장수 아주머니들이 바통을 이어받는다.

그렇게 좁은 자리 하나로 여름엔 땡볕아래서, 겨울엔 칼바람을 맞으며 여러 집이 먹고 살았을 것이다.

할머니는 국수가 삶기길 기다리며 자신의 시장이력과 재첩국 자랑을 계속했다.아마 이 골목에 새얼굴인 나에게 어떤식으로든 본인 자신을 어필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대팔아 너거들 "간암 3기 걸렸다던 인형장수 유 씨 알제? 그 양반이 3년을 하루같이 우리집 재첩국수만 먹었다 아이가.그라고, 병이 싹 다 나았다는 소리 못 들었나? 항암 치료도 안 된다는 사람을 이 재첩국물이 살린기라. "

구 씨 형님과 대팔이와 나는 재첩국수 좌판에 앉아 할머니의 다소 과장 섞인 무용담을 들으며 국수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김이 나는 국수 사발을 막 받아 든 순간이었다. 등 뒤에서 신 부장의 끌끌 한듯 상냥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침부터 국수로 속을 푸네요! 세 분이 어제 많이 달렸나 봅니다.”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신 부장이 다가왔다. 그는 그와 함께 온 트럭기사에게 물건없이 나의 도바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차 맨 뒤에 실은 물건, 여섯 푸대, 저기 모두 갖다 놓으세요.”

신부장이 가져온 물건들은 겉보기엔 그럴듯했다. 하지만 막상 나일론 끈을 풀고 그 안을 확인하자 거의가 기대에 못미치는 물건들이었다.
그는 우리의 반응을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지금 부산바닥 노점에 깔 셔츠는 구할려고해도 없어요. 이게 마지막이예요.. 내가 부산시내 도.소매점 다 뒤져 셔츠란 셔츠는 다 긁어 왔어요.” 그가 세련된 서울말씨로 말했다. 어제부터 내가 만난 노점상들중 그 혼자만 표준말 발음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는 포장상태가 안 좋은 것은 처음부터 도바 위로 올리지 말고 안보이게 아래에 깔아놓고,괜찮은 포장제품들과 섞어 팔아라 "고 얄팍한 힌트를 준 뒤 "부평동시장 도바에도 빨리 물건 대어주어야한다”면서 서둘러 트럭을 타고 떠나버렀다.
셔츠를 포장한 각각의 투명 비닐 포장지는 새것과 달리 쭈글쭈글 늘어나 있었다.

오랫동안 야외에서 태양열기에 노출된 흔적이 역력했다. 흰 셔츠는 미미하게 빛이 바래있었다. 감색과 보라 계열은 어제 마지막까지 팔리지 않다가 겨우 팔아 치웠던 색상들이었다. 손님들이 자주 찾는 100이나 105 사이즈는 거의 없었고, 110 이상 대짜 사이즈95 이하 스몰 사이즈갖고 온 포대의 절반 이상 이었다.

구 씨 아저씨가 얼굴을 찡그리며 걱정조로 말했다.
“아이고, 성호씨, 딱보니 이거 전부 팔다 남은 거다 . 신 부장 그 인간물 타기했는기라.”

물건을 뒤적거리던 대팔이가 씩씩대며 말했다.
“형님, 이런 쓰레기 가지고 우찌 장사 하겠습니꺼! 시발, 신 부장이 성호가 아무것도 모를거라고 완전 덮어씌우는 장면 아입니꺼?"

구씨형님이 아랫입술을 입안으로 밀어넣으며 심각하게 말했다.

"성호야 , 니 오늘 장사 이무래도 힘들 것 같다. 선금 준 것도 아니니, 차라니 이대로 반품해버려라 . 고마 하루.이틀 쉬면서 다른 물건 찾아보는게 낫겠다 ”

두 사람의 예민한 반응에 나도 무언가 잘못됐단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나 어제 딱 하루장사하고 바로 그만두기는 싫었다. 어제의 그 열기를 다시 한번 더 느끼면서 몸으로 나의 실존을 확인하고 싶었다.

어차피 노점장사가 쉽지 않을 것이라 각오는 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의 역량도 시험해보고 싶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다. '안되면 되게 하라' 지금까지 내게 없던 강한 확신과 동기부여였다.
걱정 마세요. 신 부장이 내건 조건이 좋습니다. 전량 외상에 반품 보장, 거기다 마진 60퍼센트 보장. 괜찮지 않습니까?오늘 하루 시험해 보고, 안 되면 그때가서 전량 도로 가져가라 하면 어떻겠습니까”

자신있게 말을꺼냈지만, 실상 내 속은 편치 않았다.

어쩌면 첫날의 대박은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었다. 그새 불어 터진 국수 그릇을 마저 비우고 서둘러 장사준비에 들어갔다. 구 씨 형님은 도바위로 하나둘 깔리는 셔츠들을 불안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악어형님이 새로 칠해준 합판은 마음에 들었다.

갓 칠한 페인트 냄새가 은은하게 올라와, 내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주었다.어제는 도바위에 섰을 때 간간이 합판이 흔들려 늘 불안했는데, 오늘은 바닥이 탄탄해 확실히 안정감이 있었다.

“사장님, 이 색깔 다른 사이즈로 한번 볼 수 있을까 예?.”

물건을 깔자마자 첫 손님이 들이닥쳤다. 인근에 셔츠파는 노점이 없다보니 여기까지 찿아왔는 것 같았다.나는 셔츠를 들어 안과 밖을 돌려가며 품질을 설명을 길게 했다. 다음 손님이 올 때까지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

목선의 박음질, 주머니 모양, 세탁 후의 변색 우려까지 차근차근 짚어주자, 손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장을 집어 들었다.

나는 어제 셔츠와 옷감. 염색. 재봉 등에 관해 나름 공부를 했었다. 밤늦게까지 자료를 검색하고 메모를 하며 손님들의 관심을 끌 멘트를 구상했었다.

“자, 오늘은 상품으로 시작합니다. 말로만 좋은 게 아니고 진짜 괜찮습니다. 오늘 들어온 신상입니다.

사이즈를 보십시오. 넉넉합니다. 원단이 튼튼합니다.

봄 한 철 입고 버리실 거라면, 차라리 비싼 거 말고 이 제품. 가성비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노점쇼핑에도 고객님 여러분들의 현명한 선택이 필수사항입니다.”

나는 가성비라는 당시의 신조어를 유난히 강조하며 당가( 호객멘트의 노점상 은어)를 쳤다.

1990대중반, 당시는 양극화가 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사회는 능률과 억압의 시대에서 벗어나 다양성과 효율이라는 명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가성비라는 단어였고. 등장하자마자 바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신용사회를 강조하며 지금까지 일부 계층에만 발급되던 카드가 제한이 풀리면서 경기가 고점에 이르고 풍부해진 시대가 되었다. 이른바 샴페인을 일찍 따버린 시대, IMF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말끝마다 웃음을 보태며 설명하자, 지나가던 다른 사람들도 발길을 멈췄다.

두세 명이 동시에 몰려들며 셔츠를 뒤적였다.

점심 무렵이 되자, 갑자기 앉을 시간도 없이 바빠졌다.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시간대가 아닌데, 여기저기서 “이거 얼마라카노?” 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대팔이가 그의 부인 눈치를 보더니, 자기 도바에서 빠져나와 어제처럼 내 곁에서 거들기 시작했다.

“예, 손님요. 그건 원래 이만 원 넘는 기인데 오늘은 반에 반 값 오천원입니더! 색깔 좋고, 오래 입어도 안 집니다!”

그의 목소리는 장터 특유의 억센 억양으로 사람들을 잡아끌었다.

구 씨 아저씨도 곁에서 셔츠를 펼쳐 보이며 크기를 맞춰주는 등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정오의 햇빛이 내려쬐자

땀이 이마에서 줄줄 흘러내렸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불안이 꿈틀거렸다.

인기 없는 색상과 애매한 사이즈는 여전히 산처럼 남아 있었다. 초반에는 ‘싸니까 한 장쯤’ 하고 가져가던 손님들도,오후 두 시쯤 되자 고개를 저으며 다른 도바로 발길을 돌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안 되는 건가! 혹시 도매상에서 약속과는 달리 반품을 받아 주지 않으면 재고만 끌어 안아야 하는 판국인데…’

하지만 이미 장사는 시작됐다. 멈출 수는 없었다.

"오늘 장사는 어떻소?. 도바는 괜찮지요?"

어느새 악어형님이 바로 내 옆에 와서 초보장사꾼인 나를, 나름 대견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씩 웃고 있었다.

입가에 걸린 큰 웃음이 큰 얼굴에 잘 어울리게 보였다.

"근데 어제 내가 말하려다가 첫날이라 말 안 했는데 도바를 이렇게 깔면 매출이 많이 안 올라요.

어제는 첫날이라 운빨이 있었던 거고.하기사 장사는 첫날에 잘 되는 법이오. 손님들이 초보인 줄 딱 알아보고 동정심에서 팔아 주는 기 있거든."


"그러면 어떻게..."

“내 같으면 도바를 이렇게 일자로 안 깔지.”

악어형님이 팔짱을 낀 채 도바를 훑어보며 말했다.

“어제 우리 도바 봤지요? 청바지 팔고 있는데,

여기 도바하고 뭐가 다르데요?”

“거기는 도바 형태가 기역자로 돼 있던데예.”

“맞다, 그기요. 액세서리나 양말 같은 싸구려 물건은 손님들이 빨리 고르기 쉽게 일자로 벌려 나야 합니더.

그런데 5천 원 이상 가는 물건들은 손님들이 살까 말까 망설이거든요. 그러다가 안사고 그냥 갈 확률이 높아지겠죠? 손님이 가버리면 우찌 팔겠소? 일단 물건을 팔려면 우선 살(손님)들이 많이 붙어야 되겠지요? 그래서 이런식으로 너무 일목요연하게 배열해 놓으면 안 돼요.조금씩 배열이 복잡해야, 물건 고르는데 시간이 걸리고, 물건을 찾다가 보면 그 사이에 살 의욕도 더 많이 생긴다 말입니다.”

“예,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도바를 기역자나 디귿자로 만들어야 한단 말이요. 우선 어저께 부숴져 내게 가져왔던 이 합판, 내가 테이프로 여러 번 감아 놨으니 며칠은 버틸꺼요. 지금 깔아놓은것과 같이 사용해보소.그리고 장사는 물건보다 사람이 먼저이고, 도바 모양은 결국 내 얼굴 대신이라 말이지.”

그 마지막 말은 지나고보니 형님의 장사 철학이고 인생철학이었다.

“자, 비켜보소. 내가 다시 도바를 배치해 줄 테니, 일단 이 위에 있는 물건들부터 좀 치워보소.”

악어형님은 어제 본인이 내게 주었던 판과 자기가 갖고 온 합판을 추가하여 도바 형태를 디귿(ㄷ) 자 모양으로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리고 가운데 안으로 움푹 들어간 자리에 나를 세우며 말했다.
이렇게 하면 우측에서 오는 손님들에게 물건들이 똑바로 보이고 옆으로 지나치는 손님들 시선도 잘 몰리게 될 것 아니요.여기 안에 서서 함 팔아보소. 아마 조금 전보다 장사하기가 훨씬 수월할거요."

한참 뒤, 형님하고 친해졌을 무렵,내가 물어보았.

“형님, 다른 장사들은 일자로 도바를 펴서 장사하던데, 왜 나한테만 굳이 디귿자 형태로 배열해주셨습니까?”

형님은 약간 겸연쩍어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는거라.근데
아우, 니는 초보라 첨부터 좋은 버릇부터 들여 놔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사실 말이야, 니 옆모습이 서양 사람처럼 코가 크고 우뚝해서, 허허— 손님들이 볼 때 믿음이 가거든. 디귿자는 손님들의 시선이 상인의 정면보다 옆 얼굴에 집중하게 되거든. 그날 순간적으로 성호 니는 디귿자 도바가 맞겠다는 감이 확 오더라.사실 이것도 장사 비법이라 남한테 잘 안 가르쳐 주는거다. 알제?”

그는 마지막으로 귀띔하듯 한마디 더 덧붙였다.
“디귿자 배열은 말이야, 손님들이 양쪽에서 서로 마주 보며 물건을 고르거든. 그럼 경쟁심리가 생겨,
‘저 사람 사기 전에 나도 하나 집어야지’ 하는 마음이 든다 말이지.그게 바로 장사의 흐름을 읽는 방법이야.”

악어형님은 도바를 재배치 하고 난 뒤,도바 위 물건들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훑어보았다.

“오늘 물건들,때깔이 어제보다 좀 떨어지네.”

걱정스러운 말투였지만, 곧바로 입매가 유난히 많이 올라가는 큰 웃음을 씨익 지었다.
“ 속옷장수는 입으로 팔고, 나막신 장수는 얼굴로 판다는 장삿꾼 속담이 있어요. 길거리 가게나 노점일수록 자신만의 장사 철학이 있어야 버틸 수 있지. 쓰레기도 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 자신감과 아이디어 정도는 있어야 진짜 장사꾼이지 ”

그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성호 씨, 이만한 일로 물건에 기죽지 마소.진짜 장사는 물건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기다.”

그 말을 남기고 형님은 자기 도바로 돌아갔다.

“예! 오늘 아니면 이 가격에 절대 못 삽니다!

남은 수량이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어제 완판 된 자리, 오늘 또 기회가 왔습니다!”

피크 타임인 오후 세시 무렵, 장사는 어제보다 반응이 훨씬 떨어졌다. 쉬시않고 당가를 쳤지만 손님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경험 있는 노점상들이 장사가 잘 되는 조건으로 꽂는 것이 세 가지 있다. 첫째가 도바. 둘째가 레다. 마지막 셋째가 당가이다

아무리 말 빨이 좋아도 레다, 즉 상품이 좋지 않으면 팔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상품이 많이 밀리는 날. 세시 핫타임을 놓치면 오늘 장사는 마지막이다. 어쩌면 이것을 마지막으로 이 노점 판에서도 밀려 날 수 있겠다는 절박감이 들었다.

나는 되던 안되던 과감하게 판을 벌이기로 했다.

일단 대팔이에게 먼저 양해를 구했다.

그의 노점자리 일부를 빌려 도바를 크게 보이도록 확장하여 배치했다.

그리고 도바 위에, 투명 비닐케이스에 쌓인 셔츠 수백 장을 한꺼번에 산더미처럼 쏟아부었다.

비닐포장 안에 든 셔츠들이 서로 뒤엉켜 무질서하게 흘러내렸지만, 그 거대한 물량 자체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붙잡았다.

“와, 이 집 물건 봐라. 일반 매장보다 더 많네.”

“이 정도면 백화점도 울고 가겠다. 공장에서 바로 출하된 것 같네”

사람들의 감탄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나는 그들의 관심과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일반 매장의 옷걸이에 질서 정연하게 걸려 있는 상품과는 비교가 안되었다.

내 도바는 무너질 듯 쏟아져 있는 의류상품의 ‘거대한 산’이었다.다양하지 못한 색상과 사이즈들, 산더미 같은 셔츠 속에서 손님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쉽게 찾기는 힘들다. 나는 규모의 과시와 손님들의 체류시간을 길게 만들어 도바에 더 오래 붙들어 놓으면 , 어제처럼 다른 행인들이 호기심에 또 몰려들 것을 기대했다.

게다가 남들은 잘 골라서 사가는 데,본인만 그냥 가기에는 뭔가 찜찜하게 손해 보는 심리를 이용하기로 했다.

기왕 큰 돈이 아닌 5천 원. 분위기에 휩싸여 마음에 들지 않는 아무 상품이라도 일댠 고르는 게 일반 군중들의 심리구조이다.

누군가가 옷을 집어 들면, 옆 사람도 덩달아 손을 뻗어 같은 더미를 뒤적였다.나는 그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크게 소리쳤다.

“자, 저쪽 손님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당첨되셨습니다.

예! 이쪽 손님! 현재 두 개째 당첨입니다. 이 많은 상품들 중에서 본인이 찾으시던 색상. 사이즈.

찾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싸게 드리는 겁니다. 시간을 들이시기만 한다 한 장 값에 석장 당첨으로 가져갈 수 있습니다.

"에이!왜 이렇게 사이즈 찿기가 힘들어 .아저씨 레드 색상 105없어요. 좀 찾아줘보소. “

덩치 큰 중년남자가 한동안 옷을 뒤적이다 짜증섞인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녜 손님. 죄송합니다. 저 역시 상품이 많다보니 쉽게 찾으시는 제품이 어디 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하지만 상품은 반드시 있습니다. 단지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릴 뿐입니다. 예. 말씀드리는 이 순간. 또 새로운 당첨자가 나왔습니다. 쪽에 선글라스 신사분. 당첨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메이커 정장입으신 사모님도 찿으시던 상품 당첨을 축하드립니다"

당첨이라는 말은 손님들의 옷찿는게임 마인드를 자극하는 멘트가 되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당첨이라는 내 말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당첨 ? 이게 뭔 소리!혹시 공짜라도 주는가? 궁금증을 갖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는 엄지와 검지는 동그랗게 붙이고 나머지 세손가락들을 구부려 확성기 모양을 만들어 크고 재빠르고 톤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나의 빠른 목소리는 옷을 고르는 손님들의 마음을 급박하게 몰고 갔다.마치 축구경기 아나운서가 방송 중계하듯 나는계속 말을 이어갔다.

"본인인 원하는 물건을 찾는 바로 이 자리,

즉석에서 돈을 벌어가는 자리. 오늘은 영신어패럴 특별 이벤트 데이! 입니다.시중가격 이만 원, 삼만 원 하는 고가의 영신어패럴 셔츠! 절반에 또 그 절반가격입니다. 오늘만은 단돈 오천 원입니다.

단, 여기 이자리 오늘 입장료가 만원입니다.저희 영신어패럴 본사, 자금 사정상 부득이 원단 값도 못 미치는 가격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빠른 자금 회전을 위해 부득이하게 두 장 이상 구입하시는 분에 한하여 판매합니다.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손님이 조금 모이자 완전 빼째라 배짱식으로 두장씩 구입하는 분에 한해 판다고 떠들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으면 손님들이 재고 상품이니, 이월상품이니

투덜대며 사가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내가 먼저 베짱을 부려야 이기는 게임이 될 것이었다.

오전 내내 계속 그런 불평들 끊이지 않았다. 어차피 못 팔면 돌려 줄 물건,에라 내 배짱 대로 밀어붙이자 라는 생각이 그 순간 들었었다.

값싼 물건일수록 비싸도록 보이게 해야 하고 잘 팔리고 사기 힘든 물건으로 착각하게 해야 귀한 대접을 받는 법이다.

나는 예전직장 동료들과의 정기적인 모임때문에 미리 준비해 온 검은색 정장 양복으로 옷을 갈아 입었다.

그리고 조금 더 절박한 어조로 몰려든 손님들에게 장사 멘트를 날리기시작했다.

"부산 사하구소재. 부산 보세가공의 산 역사. 수출의 역군. 한국은행이 지정한 유망중소기업. 여러분의 친지나 이웃이 근무하는 바로 영신어패럴입니다.

여러분 귀에 이미 익숙한 브랜드. 영신 어패럴 .

아무 데서나 만날 수 있는 노점브랜드가 아닙니다.

본제품 안쪽을 보세요.상표 라벨이 모두 짤려져 있죠. 예 그렇습니다. 일부러 라벨을 짤라야했습니다.

저희 회사 라벨을 굳이 뗀 이유? 눈치 빠른 분들은 아실겁니다. 저희들이 지금 비정상적인 가격에 팔고 있기 때문이란 점 주지해주시기 바라면서 고객 여러분들께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사실 저희 회사가 요즘 많이 어렵습니다.전국 130 여개 백화점 매장. 그리고 10대 아울렛에서

현재 판매되고 있는 고 퀄리티 중저가 브랜드 영신 어패럴.

바로 우리 부산의 대표 중견기업 영신어패럴이 지금 현재, 일시적 자금난으로 회사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법정관리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본 제품을 고르시는 여러분의 작은 손길들. 그 손길들이 야말로 흑자도산에 내몰려 바람 앞에 촛불 같은 이 회사를 살릴 수 있습니다.

주부 여러분들 , 혹시 찾는 사이즈가 없으시더라도 그냥 가지 말아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남편 분 입기에는 사이즈가 작다고요. 그렇다면 시동생에게 선물하세요.

돈 오천 원이 가족들의 우애를 살립니다. 현명한 주부들은 타이밍을 압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구입하십시오. 그리고 선물로 여러분의 마음을 표현하세요. 조카들이나 친정동생. 이웃, 친지들에게 단돈 오천 원으로 여러분의 관심과 애정을 표시하세요. 정말 믿기 힘든 가격 오천 원이지 않습니까 "

아랫배에 힘을 주고 허리를 똑바로 곧추 세웠다.

그리고 점점 비감 어린 어조로 영신어패럴의 위기를 계속 강조했다. 나는 내가 직원이라는 말은 절대 사용하지 않았다. 과장은 가능하되 거짓말은 해서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생소한 브랜드이지만 계속 반복하여 듣다 보면 익숙한 브랜드인것 처럼 들리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누군가가 고개를 끄덕이며 지갑을 열게 되면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다른 이들도 줄지어 따라왔다. 사는 사람이 조금 뜸하다 싶으면 대팔이가 코스(바람잡이)를 자청하여 손님을 유인했다.

그는 능숙했다. 모여든 손님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일부러 만 원짜리 수십 장을 한손에 쥐고연신 흔들었다. 그만큼 장사가 잘 되는것으로 보이게 하는 트릭이었다.그리고 "부장님, 여기 석장만 빨리 담아주세요."라고 나를 보고 큰소리쳤다. " 그 때쯤 대팔이 부인이 재빨리 분위기를 잡았다.

“그래, 우리가 조금씩이라도 팔아줘야

회사가 살지 않겠어요? 저는 넉장샀어요. 회사가 그렇게 어렵다는데 일단 살리고 봐야지” 하며

내말에 맞장구를 첬다.

그러면 암달러 아주머니가 이어 다시 분위기를 띄웠다.

“한 장 값에 서너 장이니 여러 장 사두면

이번 봄철 내내 씻고 벗고 입고도 남겠다.”

동정과 호응이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도바 앞은 순식간에 북새통이 되었다.

나는 지휘자. 상품은 악보의 음정이었다.도바는 나의 음악당이 되었,행인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나의 지휘에 따라 노래를 불렀다.

대팔이는 아예 자기 도바를 그의 부인에게 맡기다시피하고 내 장사를 도왔다. 그는 장사꾼 기질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손님들에게 농담을 던지는 솜씨가 천연덕스럽기 그지 없었다.

한 아주머니가 옷을 고른 뒤 대팔이를 보고 흥정을 시작했다.

“사장님, 많이 사가는데 이거 조금만 빼주세요.”

그러자 대팔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큰소리로 대답했다.

“사모님 예, 와 이캅니꺼? 아직 넣지도 안 했는데 뭘 빼 달라카십니까! ”

대팔이의 엉큼한 농담에, 순간,도바 앞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 아주머니는 처음엔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가 나중엔 본인도 배시시 웃으며 셔츠를 챙겨갔다.옆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재미삼아 한 두 장씩 손에 들고 갔다.

대팔이는 또 다른 손님에게 그 특유의 입담을 펼쳤다.

“형님요, 이거 안 사가시면 오늘 집에 들어가서

사모님께 한 소리 듣습니데이. ‘옆집 아저씨는 벌써 두 장이나 사 왔다 카던데, 당신은 어디 가서 뭐 했노?’ 이런 소리들을 낍니더!”

그 재치에 손님들이 깔깔 웃으며 지갑을 꺼냈다.

" 노점에선 손님이 웃어야 돈이 들어온다"라는

악어형님의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셔츠를 들어 올리고, 펼쳐 보이고, 돈을 받고,

다시 다음 손님을 불러 세우는 반복 속에서

나는 어느새 장사의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사장님, 이거 흰색 남아 있습니까?”

“예, 저기 오른쪽 더미 밑에 있습니다.

직접 꺼내 보세요. 얼른 안 꺼내면 옆 사람이 가져갑니다!”

사람들은 서로의 손길이 부딪히자 더 바쁘게 셔츠를 뒤적였다. 그 속도와 열기에 도바는 마치 작은 경기장처럼 변해갔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허리춤에 찬 전대는 이미 불룩해졌다.마감을 하고 나니, 전날의 두 배가 넘는 4백 장 가까운 셔츠가 팔려나간 상태였다.

“이야, 이건 진짜 미쳤다. 하루에 이백만 원어치 팔아치우는 노점이 어디 있다고.”

구 씨 형님이 나를 쳐다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대팔이는 땀에 젖은 얼굴을 수건으로 닦으며 크게 웃었다.

“성호야, 니 지인짜 잘한데이. 손님들 심리를 으찌 그리 잘 아노? 기가 막히게 이용하는기라.”

도바를 정리하고 청소를 한 후 최종 정산을 했다.

나는 수익의 절반을 대팔이와 구 씨 형님께 나누어 주었다. 두 사람 모두 몇 번 사양하다 받아 들었다.

“성호야, 바쁘지 않으면 우리 왕비다방에 들러 차 한잔하고 가자.” 대팔이가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돼지목살 구이에, 니캉 딱 한잔 하는 것 말고는 바쁠 게 뭐 있겠니.

근데 거긴 또 왜?”

“악어형님도 온다 카더라. 이 바닥 오래 있으려면 다른 장사꾼들 얼굴도 익혀둬야 안 되겠나.”

낯선 사람들 틈에 끼는 건 부담스러웠지만,

‘악어형님이 온다’는 말에 내 마음이 흔들렸다.

그날, 나는 몰랐다.
내 인생의 커다란 회오리를 일으킬 사람들—
악어형님, 그리고 그의 연인 배영숙을
곧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

장사 이틀째 날.
나는 이년 뒤에 나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그 폭풍의 눈 속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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