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의 소피아 로렌

여왕이라고 불리는 여인 < 도바 위에 뜬 별 1부 제6화>

by 손병호



국제시장 인근 창선파출소 뒷골목은 저녁이 되면 낮보다 오히려 활기가 넘쳤다.

젊은 층이 많이 모여드는 까닭이었다.

낮 동안 의류나 생필품을 팔던 리어카들이 물러난 자리에, 어묵, 떡볶이, 오징어 튀김, 부추전 등을 파는 리어카가 빽빽하게 들어찼다.

인형, 장신구, 가방, 벨트, 스카프, 액세서리를 파는 좌판도 줄지어 늘어섰다. 오피스걸이나 여대생, 관광객들 등 주로 젊은 여성고객이 그 대상이었다.

반면 세명 약국 골목은 낮에는 수입 의류, 중고 전자기기, 이미테이션 명품 가방으로 인파가 몰렸지만,

밤이 되면 인적이 끊겼다.

간간이 지나가는 행인을 상대로 가락국수나 소주를 파는 포장마차 불빛만 몇몇 포장 틈으로 새어 나왔다. 골목은 그렇게 어둡고 적막해졌다.

그 어둠 한가운데, 주위의 낮은 점포들과 달리 5층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1층부터 3층까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어, 마치 깊은 어둠 속 바다에 떠 있는 등대처럼 보였다.

2층에는 ‘왕비다방’ 간판이 걸려 있었고, 3층에는 ‘사교댄스’라는 큼지막한 글자가 대형 유리창에 붉은색 시트컷팅으로 붙어 있었다.

그러나 ‘왕비’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건물 겉모습은 초라했다.

시멘트는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고, 외벽에는 불 꺼진 낡은 간판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1층에는 국밥집과 제법 규모가 있는 가방 직판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국밥집 안에는 전대를 찬 노점상 몇 사람이 수육과 소주를 앞에 두고 한창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가방 직판점 안에는 젊은이들 거리에서부터 용케 미로 같은 길을 따라 들어온 관광객 서너 팀이 각양각색의 핸드백을 고르고 있었다.

건물 입구는 좁고 어두웠다.

안으로 들어서자 곰팡내와 접착제 냄새가 한꺼번에 코를 찔렀다.

접착제 냄새는 지하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계단 벽에는 붉은 글씨체로 ‘미창가방’이라고 적힌 작은 아크릴 간판이 붙어 있었다.

실제로 지하에는 가방 공장이 입주해 있는 것 같았다.

잔업근무로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계단을 타고 요란하게 울려왔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 벽에는 오래된 누수 자국이 군데군데 번져 있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서 대팔이가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염소대가리라는 리어카 보관소장이 여기 건물주인데,

워낙 짠돌이라. 귀신 나올 만큼 어둡다고

몇 번을 말해도 형광등 고칠 생각을 안한다카더라.

그러면서 공용 전기료는 또박또박

다방이랑 댄스교습소에 받아간다 카이”

대팔이는 이 다방의 내력세 대해 잘 알고 있는 것같았다

“그러다 계단에서 누가 다치면 관리 책임이 있는 건물주가 보상해야 할 텐데.”내가건성으로 대팔이의 말을 받아넘겼다.

대팔이는 내가 세상물정 모른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흥! 성호야, 그 새끼가 돈 없는 사람들 깔보고 그러는 기다. 여기 입주자들 중 민사 소송 걸만한 인간들이 있겠나? 4층, 5층은 조그만 칸막이를 쳐서 방이랍시고 집 없는 사람들한테 비싸게 임대해 주는데, 사실 태반이 노점상들인 기라. 한 집에 불이라도 나면 다 죽는기라 ”

대팔이의 말을 듣고서야, 건물 밖에서 보았던, 창문에 널린 빨래며 이불들이 이해되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끝 지점에 이르자, 어디선가 연탄보일러에서 나오는 가스 냄새가 흘러 나왔다.

계단이 끝나자 바로 정면에 왕비다방’이라는 글씨가 적힌 유리문이 나타났다. 다방 안으로부터 7.80년에 유행했던 팝송 음악이 새어 나왔다. 대팔이가 앞장서 문손잡이를 잡았다.

“들어가자, 성호야. 다들 기다린다."


왕비다방 마담


2층 다방의 마담은 서글서글한 큰 눈에 오뚝한 코. 약간 두툼한 입술. 늘씬한 몸매에 육감적인 미모를 지닌 여인이었다.

영숙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녀는 서른 중반정도의 나이로 보였다. 키는 중간 정도였지만 허리와 어깨가 곧게 펴져 있어 더 당당해 보였다. 연푸른 색 한복, 뒤로 말아올린 머리에 은빛 비녀가 단정하게 꽂혀 있었다.


얼굴은 둥근 듯하면서도 턱 선이 또렷했고, 눈은 약간 길게 치켜 올라간 모양새였다.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 그 눈매가 상대를 쏘아보는 것 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입술은 보기 싫지 않을 만큼 살짝 두툼한 정도. 결코 두껍지는 않았다. 말할 때마다 입술 선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피부는 곱게 단장돼 있었으나 지나치게 화려하지는 않았다.


약간 도드라진 광대뼈는 사람을 곧장 응시하는 듯 한 눈매와 어우러져, 전반적으로는 온화해 보이는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팔자가 센 듯 한 기상을 남겼다. 예술가이거나, 아니면 물장사라도 해야 할 운명을 타고난 사람 같았다.


그녀는 손님을 맞을 때 늘 웃음을 머금었지만, 그 웃음은 여느 변두리 다방의 마담처럼 가볍지 않았다. 목소리는 낮고 또렷했다.

“어서 오세요. 오늘도 늦게까지 고생 많았지요”


그 첫인상은 악어 형님을 처음 보았을 때 못지않게 긴장감을 주었고, 동시에 알 수 없는 신뢰를 느끼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녀는 테이블을 마주하고 내 맞은편 자리에 앉으려다 무슨 생각이 났는지, 짤막한 인사만 건네고 찻잔을 놓고는 곧장 돌아섰다.

대팔이는 신 부장에 대한 불만을 연신 쏟아내고 있었지만, 내 시선은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만 쫓고 있었다.


그때 다방 문이 열리며 묵직한 발자국소리들과 함께 덩치 좋은 젊은 남자 셋과 악어형님이 들어섰다. 대팔이가 자리에서 반갑게 손을 흔들었고, 구 씨 형님도 몸을 일으켜 자리를 내주었다.




― 좌담회


다방 문이 열리며 악어 형님이 들어섰다. 그 뒤로는 덩치 좋은 젊은 사내 셋이 따라왔다.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고, 술기운으로 지껄이던 말들이 잦아들었다.

“아, 오늘 신참 들어왔다 하던데 본인 소개안하능기요?” 가장 맨끝에 앉아 자기네들끼리 이야기꽃을 피우던 중년이 지난 남자가 갑자기 내 쪽을 쳐다보며 퉁명스레 말했다.

악어 형님은 나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호라 카는데, 셔츠 쪽으로 시작했다. 도매는 신 부장을 통해 물건을 받고 있고 노점장사는 처음이라하니 다들 잘 좀 챙겨주고.”


그제야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청바지를 판다는 이 씨가 먼저 말을 건넸다.

어째든 이 바닥에 새로온 동생, 반갑다. 근데 셔츠면 원단이 어디 건데? 린넬인가, 옥스퍼드? 아니면 그냥 싸구려 사카리?”

그의 질문에는 웃음이 섞여 있었지만, 장사꾼답게 자기가 모르는 낮은 단가의 새로운 소스를 곧장 쑤셔보는 기민함도 있었다.

내가 대답을 머뭇거리자, 액세서리 좌판 김 사장이 끼어들었다.

“에이, 이 씨는 또 디테일 따지네. 신참인데 벌써 직물 감별하라 하면 실례지. 그래도 이건 알아둬야 해요, 동생. 요즘 손님들 귀가 얇아도 눈은 밝다 아이가. 라벨이랑 원단 뽀록나면 그대로 욕먹는다.”

탁자 한쪽에서는 땅콩장수아저씨가 잔을 들고 코웃음을 쳤다.

“라벨 붙여도 다 알아본다.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물건인지, 짝퉁인지 요즘은 소비자들이 귀신이야. 구라 쳐서 팔던 시대가 좋았지.

나도 한 때 구포 장에서 의류 쪽으로는 제일 잘 나갔었는데”

구 씨 형님이 그 말에 손을 내저으며 끼어들었다.

“구포 얘기 이제 좀 그만해라. 다 지난 일 아이가. 그때 대박 난 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개뿔 뭐 남은 게 있나. 물건이든 사람이든 모두 다 한철이다.”

이야기는 곧 서면 쪽으로 옮겨갔다. 김 사장이라는 치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서면 지하상가 말이야. 이번에 수입 신발 대박 났다 카더라. 이태원에서 들어온 거라는데, 부산 쪽으론 서면만 물량 잡았대. 그래서 거긴 하루 매출이 몇 백만 원까지 찍는다 안카나. 우린 구경도 못하고, 도매상 놈들이 우리 국제시장을 아예 패싱해 버린 거지.”

청바지 이 씨가 손바닥을 턱에 괴며 푸념하듯 말했다.

“그게 모두 다 매출 때문이야. 도매상들은 큰 상권만 챙긴다.

국제시장 같은 데는 사람은 많이 끓지만, 영세한 장수들이 대부분이물건을 크게 못 받아. 신상 물건들 중 잘나가는 것은 모조리 서면이나 아니면 창원 울산 쪽으로 먼저 밀어버린다카더라.”

그때 팥빙수 장수 은 씨가 끼어들었다.

“내 말 좀 들어 보이소. 우린 여름 장사 아니면 답이 없다. 빙수 얼음 갈아 아무리 열심히 팔아도,원재료값이 도매에서 계속 올라버리니 남는 게 없는기라.그런데 요새 젊은 것들은 빙수보다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를 더 찾는다 아이가.우리 같은 올드 장사는 인자 시마이인거라요.”

그의 한숨이 짙게 깔리자, 분위기가 금세 가라앉았다. 악어 형님이 손바닥을 탁 치며 말을 돌렸다.

“빙수야! 마, 그런 궁상시런 소리 하지 마라. 내일 걱정 미리할 필요 어디있노? 우리 노점상들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내는 기 중요하다. 답답하면 서로 머리 맞대고 한개라도 더 팔 궁리를 해야지.”

악어 형님이 빙수장사 말을 끊으며 주제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오늘 낮에 특별한 사건 없었나? 본 것 있으면 누가 얘기해 봐라.”

형님과 함께 들어 온 젊은 애들 중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살짝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며 대답했다.

“점심때 파출소 옆에 관광버스가 두 대나 섰습니다.

앞으로 날씨가 더 따뜻해지면 관광버스가 많이 들어올 건데 그리되면 장사는 괜찮아지지만 단속도 심해질 것 같습니다. 오늘은 저녁 무렵까지 사람들이 국제시장 안으로 계속 흘러들었고, 오징어튀김, 부추전등 리어카 음식 장사 빨이 평소보다 두 배 가까이 좋았습니다. 반면에 대각사 뒤는 조금 한산했습니다. 낮부터 짜가 상표 단속반 같은사람들이 얼쩡거리더니, 손님 발길도 꺾였던 것 같습니다.”


“그거, 나도 들었다, 다음 주에 가짜 상표단속들이 치고 들어올거라는 말이 돌더라.아마 사전에 증거확보하려고 돌아다닐 수 있으니 이미테이션 가방 파는 데는 조심해야 할거야 ”

악어 형님이 진중하게 말하자, 모두의 눈길이 그에게 쏠렸다.

“근데 딱 깨놓고, 특사경 애들도 고발 없이는 단속 안한다 .이건 분명히 누가 찔렀다는 말이다.” 형님의 목소리 톤이 조금 높아졌다.

형님의 성난 목소리에 좌중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크게 술렁거렸다.

“그럼 이건 우리 안에 배신자가 있다는 말 아닙니까? 같은 노점 중에 누가 뒤통수친 거 아닙니꺼. 잡아내야 합니다” 악세서리 김사장이 언성을 높이며 거들고 나섰다.

다시 악어형님이 김사장을 손짓으로 진정시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식으로 흘러가면 우리만 피곤하다. 이건으로 시장판을 들쑤실 일은 없다.어차피 고발장 없으면 개들은 움직이지도 못한다.

문제는 김사장말대로 누군가가 우리를 팔아먹고 있다는 거다. 구 사장. 이번 기회에 니가 어떤 놈들이 장난을 치는지 한번 알아보면 어떻겠노?.”

구 씨 형님이 걱정스레 말했다.

“그건 내가 알아보면 될 거고, 문제는 오늘 조간신문에 국제시장 재개발 기사가 또 나왔던데, 하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 일단 알아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나도 그 기사를 보긴 했어.근데 전문가들은 의견은 쉽지 않을거라며?대부분 영세 세입자들이고 노점상들 반발이 거세어 사업 진척이 쉽지 않을 거라 안 하더나? 국제시장 재개발은 최소 10년 이상 걸린다 안카나 ”

그러자 땅콩장수가 걱정스레 말을 이었다.

“그래도, 그 기사가 손님들 눈에 띄면 장사에 영향은 있습니더. ‘여기 곧 없어진다’는 말만 돌아도 발길이 줄어들 것 아잉교?”

악어 형님은 신문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내 생각은 그게 아니였다.

기자 경험으로 볼 때 대기업들은 큰 사업의 경우,사전작업에 시간과 공을 많이 들인다.

언론을 통해 한, 두 해 전 쯤부터 자기네들의 계획을 흘리며 여론동향을 떠본다. 그리고 판이 무르익었다 싶으면 어느 날 불시에 시작하는 것이 재개발 철거 관련 시책이다.

땅콩장사의 말이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았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적막을 깨뜨린 건 악어 형님이었다. 그는 손바닥으로 탁자를 천천히 두드리며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자, 자, 오늘 나온 얘기, 두 가지로 정리해 보자. 하나, 위조상표건은 누가 찔렀는지 알아본다. 그냥 당하고만 있어서 될 일이 아니다. 둘, 서면처럼 큰 상권이 우리를 무시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뷥은 분명히 있다. 내일이라도 대처할 수 있는 방법부터 찾아보자.”

그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임은 어디까지나 비공식 좌담회였지만, 악어 형님의 말은 묘하게 중심을 잡았다. 결정권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었으나, 반대가 없는 한 그의 말이 곧 방향이 되었다.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마담 영숙이 조용히 테이블 사이를 돌며 빈 잔을 치웠다.

사람들은 하나 둘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다방 안의 소음이 잦아들었고, 밖에서는 아직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문밖으로 나가면서 나는 잠시생각에 잠겼다. 계단 벽에 얼룩진 물자국, 곰팡내, 그리고 멀리서 스며드는 연탄가스 냄새까지. 이 건물도, 이 시장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근데 따지고 보면 그것은 사치한 생각이었다. 우리 모두가 오늘을 사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인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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