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매상의 노림수 <도바 위에 뜬 별 1부 제7화>
지루한 봄장마, 아스팔트 바닥이 녹아내리는 뜨거운 여름이 도바위를 느리게 지나갔다.
추석이 지나자 국제시장의 분위기는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다.여름 내내 숱한 노점상들의 땀 냄새와 지짐 굽는 불판 위의 기름 냄새가 엉겨 붙던 골목에 어느덧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반팔 와이셔츠는 진작부터 찿는사람이없었고, 셔츠 도바 앞에서 멈춰 서는 손님들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가을상품을 일찌감치 취급했어야 했는데 신 부장과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구 월 초순까지 춘추용 남방을 공급해 주겠다고 큰소리쳤으나 그후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도 답답해 그가 일하는 도매상 사장을 직접 찾아갔다.사장은 마흔초반 대구사람으로 노점 도매 3년 만에 수억을 벌었다는 수완가였다.
그가 난색을 하며 변명조로 말했다.
"“와 이카노, 우리도 가만있은 거 아이데이. 동대문이랑 성남을 다 뒤져도 물건이 안 나오더라 카이. 돈을 싸 들고 가가 현금 박치기 하자 해도, 올해는 레다( 물건) 구하기가 별 따기라카이. 신부장 캉 일주일을 돌아다니다가, 내 먼저 내려왔는 기라.
상대가 힘들다고 미리 징징대니 할 말이 없었다.
물건을 못 구하면 그들 역시 장사를 못하게 되니 타격이 클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하루매출에 그날의 생계가 달려있는 노점상들이 더 힘들기 마련이었다.
“올해 겨울이 빨리 닥친다 안카능기요.그랑께 가을은 짧다 카지. 그 예보 한마디에 성남 공장들이 가을 물건들 생산을 통째로 멈춰버렸데이. ”
도매사장은 내 눈치를 살피면서 물건사입이 힘든 이유를 구구하게 설명했다.
"그러면. 사장님 어떡해요? 조금 일찍 말씀해 주셨으면 저도 대책을 세웠을 텐데. 날씨가 쌀쌀하다고 손님들이 이제 반팔은 거들떠도 안 보는데, 가을장사는 이렇게 접어라 말입니까?"
내가 따지듯 덤벼들다가 사정조로 말하기 시작하자 사장은 지금까지 말하던 거친 대구사투리 대신 나긋나긋한 서울말로 어투를 바꾸어 대꾸했다. 신상무와 힘께 일하면서 서울말 하는 요령을 터득했는 것 같았다.
" 미안해요. 성호 씨.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우리도 몰랐어. 우리 도매상들도 가을 물건 팔아야 겨울 물건 뗄 수 있는데.깨놓고 말하자면, 이 판에 어렵기는 노점들보다 우리가 더 힘들지. 미리 잡아놓은 도바도 놀릴 판인데 자릿세가 장난 아니야."
설마 했는데 결국 일이 이 지경이 된 것은 내 불찰이었다.악어형님이 늦어도 8월 말까지 가을 상품을 준비해야 한다고 내게 누누이 강조했던 일이었다.
" 성호야. 네가 지난 봄. 팔기 힘든 재고셔츠 수백장을 쉽게 파는 것을 보고, 신 부장이 너를 이용할려구 머리를 굴릴 수도 있다. 그러니 가을 물건은 각별히 신경 써야 해. 이 바닥은 어려울 땐 힘을 합치지만 평소엔 잔 돈 몇 푼에도 안면을 싹 바꾸는 곳이야"
도매상에서 가을레다 결정을 미룰 때는,사실 전년도 재고를 밀겠다는 속셈이다라고 충고를 해주었었다.
신 부장은 내가 다른 도매상에 접촉하지 못하게 시간을 벌 속셈이었다. '된다 안된다'는 확답을 해주지 않으면서 시간만 끌었던것이다.
그렇다고 이 바닥을 소개해주고 내가 어려울 때 도와준 신 부장을 모른 체 하고 다른 도매상들과 거래를 할 수는 없었다
더욱이 국제시장 노점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내가, 다른 도매상과 거래를 하게되면 ,주위노점상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고. 결국 신 부장이 몸담고 있는 도매상도 신뢰를 잃게 되는 것이었다.
다음날 신 부장에게 연락이 왔다.
전화를 못 받은 사연을 주저리 주저리 변명을 하더니 예상했던 제안이 나왔다.
" 성호 씨. 솔직히 말해 가을스웨터 재고가 창고에 꽤 있기는 있어. 근데 문제 있는 물건들이 밀부 섞여있어. 여름장마 때 지하창고 습기 때문에 약간 냄새도 나고, 많이 눅눅한 상태야. 처음엔 팔기 힘들겠지만 사나흘 햇빛에 내놓으면 괜찮을 거야. 힘들더라도 조금만 협조 좀 부탁해요"
나는 악어형님조언대로 신부장의 부탁을 완곡하게 거절했다. 조악한 옷을 팔수는 있어도 냄새나는 쓰레기를 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국제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하고
두 번의 큰 단속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악어 형님이 미리 귀띔해 준 덕분에 나는 크게 당하지 않았다.
나는 일부러 도바 위에 소량만 내놓고 장사를 했다.
단속반이 들이닥쳐도 압류당하는 건 몇 벌 뿐이었다. 미쳐 연락을 받지 못한
다른 장수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짐을 싸는 동안, 나는 애써 태연한 척을 했다.
단속이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되면,
정보를 넘긴 사람이 위험해지기 때문이었다.
이 좁은 바닥에서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했다.
동시에 때로는 이웃의 요청에 불편한 외면이 필요했다. 생존이란 그런 것이었다.
밀양장으로 가는 길
은행나무 가로수 잎이 시시각각 짙은 노란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계절은 바햐흐로 가을의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있었다.
가로수 잎이 유난히 많이 떨어지는 시월 초 어느 날,
장사를 마칠 무렵, 도바 앞에 낯선 사내 둘이 나타났다.
내가 사용하는 자리는 자기네가 10월부터 장사하기로, 신 부장과 임대 계약이 예전부터 되어 있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자리를 당장 비워 달라고 했다.
신 부장에게 확인하니 사실이었다.
신 부장이 내게 변명했다. 전직 은행원 이자 신문기자였던 내가 이렇게 장사를 오래 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며 다른 자리를 알아 봐 주겠노라고 했다. 역시 예상대로 였다. 다음날 내가 장사하던 자리에 웬 아주머니가 묵은 냄새가 나는 재고품 셔츠를 팔고 있었다.
며칠뒤, 이제 장사를 그만두어야겠단 이야기를 악어형님과 나누고 있었다. 형님은 당분간 본인의 자리를 비켜줄 테니 자릿세만 내고 장사를 해라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영숙 씨가 곁에서 내 얘기를 듣더니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을 했다.
“나도 성호씨가 걱정되어 알아봤거든요. 마침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밀양 오일장 서는 곳에서 식당을 해요. 식당 앞에 장사할 만한 자리 하나가 비어 있다는데, 충분한 자릿세만 내면 장사 해도된다네요.
5일에 한 번이지만, 목이 좋아서 여기서 사흘 치 매출은 올릴 수 있을 거예요. 거기서 여자청바지를 팔면 잘 팔릴 것 같다네요. 언니가 아는 사람들이 많아 장사에도
도움이 꽤 될거예요."
악어 형님도 곁에서 덧붙였다.
“ 여기 자리 비는 거 생기면 내가 또 연락 줄 거다. 이번 기회에 시골장판도 한 번 밟아봐라. 장사는 발품이다.”
그렇게 나는 국제시장에서 밀양으로 장사 근거지를 옮겼다.
이번에는 여자 청바지를 들고 나섰다. 친하게 지내던 청바지노점상 이 사장의 소개로 부산 평화시장 의류 도매상가에서 떼어온 상품이었다.
원가가 비싼 대신 칼러색상도 괜찮았고 미싱 바느질도 좋았다. 원가가 조금 비싸더라도 물건의 품질이 좋아야 했다.물건 품질에 확신이 있다면 비록 비싸더라도 팔 자신이 있었다. 물건에 자신이 없으면 당가( 손님 모으는 변설)를 칠 때 목소리가 세게 나오지 않았다.
밀양 장으로 가는 길
시골장은 아침 일찍 장이 시작되어 점심시간이 지나면 바로 파장분위기가 된다.
악어형님은 밀양은 넉넉잡아 부산에서 멀지않은 거리이니 당일 새벽 일찍 출발하면 된다고 했다.하지만 생면 부지의 식당주인을 만나 즉석에서 자리를 빌려 도바를 설치하고 장사하기에는 아무래도 심리적 부담이 크게 다가왔었다.
차라리 하루정도 여관에서 잘 각오를 하고 장날 전 날 오후 밀양으로 출발했다.
고속도로가 개설되지 않아 부산에서 김해를 거쳐, 삼랑진, 평촌을 지나 국도로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길이었다.
계절은 시월 중순, 가을이 한껏 깊어가고 있었다.
구포다리를 지나 낙동강을 건너자 강변의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며 은빛 물결을 만들었다.
차창 밖으로 스며드는 바람에는
싸늘한 기운과 함께 알 수 없는 서글픔이
묻어 있었다. 수확을 끝낸 빈 들판은 만추의 쓸쓸한 서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농부 몇이 멀찍이 서서 볏단을 묶고 있었고,
그 곁에 세워둔 시동 꺼지지 않은 경운기만
주인을 기다리며 괜스리 화난 사람처럼 부르릉 거리고 있었다.산과 들은 여기저기 낙옆을 흩뿌리며 서둘러 가을과 작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추일의 서정은 분명 평화로워 보였지만,
그 풍경 속을 달리는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불과 몇 달 남짓한 노점 경력. 장사라고 해봤자 국제시장 골목 한편에서셔츠 몇 벌 늘어놓고
팔아 본 초라한 경험뿐이었다.
그나마도 자리 문제로 쫓겨나듯 짐을 빼야 했던 참이었다.
그런 내가 이제 하나 없는 낯선 밀양으로, 장사를 떠나는 길이었다.핸들을 잡은 손에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기대가 없었다면 거짓말이었다.
처음 가는 장터에서 혹시 운 좋게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반면에그만큼 불안도 컸다.
또다시 낯선 장소, 모르는 장꾼들 틈에 끼어
물건을 펼쳐놓는다는 게 얼마나 어색하고 초라할가!
벌써부터 짐작이 갔다. 김해에서 가장 높다는 무척산 산등성이 위로 붉은 단풍이 번져가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붉고 누런 잎이 흩날려 도로 위로 떨어졌다. 차바퀴가 그것을 밟고 지나갈 때마다,
낯설고도 쓸쓸한 계절의 냄새가 승용차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그러한 내 마음을 아는 것처럼
라디오에서는 연신 쓸쓸한 노래만 흘러나왔다.
기댈 사람 하나 없는 초행길,
오직 초라한 베니어합판 도바와 청바지 두 포대 만이 내 동행이었다.
동대와의 이별
오래전 내가 좋아해 자주 암송하곤 했던
*당나라 시인 고적(高適)의 《別董大(별동대)》라는 이별 시가 저절로 입가에 맴돌았다.
고적이 그의 벗 동대(董大)와 작별하며 지은 시였다.
千里黃雲白日曛 (천리 황운에 해는 희미해지고)
北風吹雁雪紛紛 (북풍은 기러기를 몰아 눈발은 흩날리네)
莫愁前路無知己 (앞길에 알아주는 이 없을까 근심 마라)
天下誰人不識君 (천하에 그대를 모를 이 누가 있겠는가)
고시의 구절들은 먼 옛 벗이 보내는 위로처럼 내 마음을 감싸주었다.불안감이 어느 정도 가시자, 알 수 없는 기다림 같은 것이 마음 저편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새로운 고장에서 마주할 얼굴들, 미지의 인연들, 그리고 그 속에서 잠시 지친 인생을 쉬고 갈 안정된 도바가 나를 기다리고있을지도.
김해 생림면을 지나 낙동강변까지 작은 평야가 펼쳐지자, 멀리 삼랑진 철교가 보였다. 그 위로 비치는 시월의 햇살은 이미 빠르게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가로수가 사열하듯 늘어선 도로를 지나 삼랑진 읍내로 들어가는 길은 한산했다.작은 읍, 특유의 느린 시간과 낮은지붕들 사이로 오래된 이름모를 교회당, 고요히 내려앉은 공기 속에서 지난 추억에 잠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가 방금 달려온 길, 김해에서 삼랑진 철교로 이어지는 곧은 외길을 드라이브하는 것을 좋아했다.
삼랑진은 태백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안동과 남지, 함안, 창녕을 거쳐 드넓은 남해바다로 흘러들기 직전, 여름 녹조를 가라앉히고 잠시 숨을 고른 듯 맑은 가을 물빛을 드러내는 곳이다.
그녀는 태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소백산맥의 지선들이 남으로 남으로 달리다가 이윽고 강의 맑은 빛에 이끌려 조용히 무릎을 꿇은 듯 멈춰 선 산과 강이 만나는 삼랑진 강변길을 좋아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굳이 서김해 톨게이트에서 고속도로를 버리고 이 좁고 구불구불한 2차선 국도 빙 둘러가는 방향으로 핸들을 꺾었다
아마도 무의식 속에, 그녀와의 추억을 따라가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산에서 출발한 지 한 시간을 훌쩍 넘겼을 때였다.
삼랑진에서 평촌을거쳐 밀양으로 들어서려 했는데, 추억에 젖다보니 차는 어느새 삼랑진 초등학교 옆을 지나 만어산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잘못 든 길이라는 걸 알아차렸지만, 이미 되돌리기엔 너무 깊숙이 들어온 뒤였다.
만어산 옆 감물고개를 넘어 얼음골에 간 적이 있었다. 기억을 더듬었다. 얼음골에서 밀양시로 우회하는 길이 머릿속에서 검색되었다
어차피 정해진 길이란 없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이 그러했다. 자동차가 만어사 길과 단장면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풍경이 달라져있었다.
고지대 천수답 다랭이 논은 벌써 추수를 마치고 빈 들판만 남아 있었다. 잘려 나간 볏단 자리마다 검은흙이 드러나 있어 더욱 쓸쓸해 보였다. 길가의 가로수는 이미 잎을 다 털어내 버렸고, 앙상한 가지가 허공을 향해 뻗어 있었다.
시월 중순, 산촌은 벌써 겨울을 맞을 채비에 들어간 뒤였다.차창 너머로 스쳐 가는 풍경 속에서 불현듯 지난날의 기억이 겹쳐졌다.연인과 함께 이 고개를 넘어 지인이 초대한 얼음골 사과농장으로 향하던 날이었다.
그때는 바람도 햇살도 모든 것이 따스하게만 느껴졌는데,지금은 똑같은 길이 건만 한없이 낯설고
허전하게 다가왔다.
추억이란 것이 얼마나 쉽게 계절의 빛깔을 바꿔버리는지,내 마음은 서산으로 지고 있는 해 보다 더 빠른 속도로 깊은 허무의 강에 빠져들고 있었다.
나는 애써 그 기억을 지우려 했다. 괜한 생각이 다시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려는 찰나,
앞쪽 도로 갓길에서 산길에서 만나기 힘든 장면이 눈앞에 나타났다.
인적 드문 하행 산길, 감물리 저수지 바로 아래쪽에 하얀색 소나타가 서 있었다. 승용차 뒷 트렁크가 큰 입을 벌린 채 멈춰 서 있었다.
그 옆에 젊은 여인이 서 있었다.
쪽빛 가을 코트를 걸친, 중키의 삼십 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자. 그 여자가 내 차를 향해 부지런히 손을 흔들고 있었다.인적없는 저녘, 내리막 고갯길에서 그 몸짓은 유난히 또렷하게 부각되었다.
나는 무심코 액셀 위에 있던 오른발을 떼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익 하며 차가 작은 신음소리를 내었다.
그 순간, 가을 산길의 고요가 단숨에 깨졌다.
차체가 짧게 흔들리며 멈췄다. 쪽빛 코트를 여민 여인이 두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멀리서 볼 때는 제법 큰 키로 보였는데,
옆에서보니 평범한 키였다. 하지만 인상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양반가 여인에게서 풍길 법한 절제된 기품이 엿보였다.야무지게 다문 입매와 약간 각이 진 하관이 그 인상을 더욱 단단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어느 구석에 앉아 있어도 묘하게 본인이 좌정한 그 자리가 늘 중심이 될 것같은 사람 이었다.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밀양 쪽으로 가시는 길인가요?”
“예, 시내로 들어갑니다.”
그녀의 얼굴에 안도한 기색이 얼굴에 스쳤다.
“차가 고장이 났어요. 긴급출동을 불렀는데 오늘 출동 요청이 많아 두 시간 이상 걸린다고 하네요. 날이 저물어 불안했는데…저 좀 태워주실 수 있을까요?”
“예. 타시죠.”
그녀가 뒷자리를 살피다가, 내 옆 조수석 자리에 앉았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앉은 모습, 단정히 빗어내린 짧은 컷 단발머리, 화장기 거의 없는 담백한 얼굴이 오히려 선명하게 남았다. 그녀가 다시 뒷좌석을 흘끗 보고 말을 꺼냈다.
“짐이 참 많으시네요.”
“떠돌이 노점상입니다. 내일 밀양장에 처음 장사 나가 봅니다.”
“아…그래요”
노점상을 한다는 내말에 짧게 응답한 뒤, 그녀는 다시 창밖으로시선을 돌렸다
차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나는 라디오 다이얼을 돌렸다.한동안 잡음 끝에 퀴즈 프로그램이 흘러나왔다.
“다음 문제입니다. ‘프라하’를 배경으로 활동한,
《변신》을 쓴 실존주의 작가입니다.
직업은 보험회사 사원이었고,작품 경향은 부조리와 소외를 주로 다루었습니다. 이 작가는 누구일까요?”
전화로 연결된 출연자가 우물거리다 틀린 답을 계속 내놓았다. 스튜디오에서 웃음소리가 흘렀다.
나는 무심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카프카… 일반 사람들에겐 낯선 이름이지.”
그녀가 짧게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바라보았다.
“저도 프란츠 카프카 작품을 읽은적이있는데 내용이 어렵더군요 ”
나는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낮게 덧붙였다.
“ 일반 문학작품과는 달리 많이 어려운 작품이지요. 저 역시 전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약간 이해되늕것같습니다.… 주인공 K의 답답함이 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성에 들어가려 애써도 번번이 막히는 모습이… 꼭 제가 걷는 길 같아서요.”
그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그녀가 어머니 기일을 맞이해 불공을 드리고 오는 길이었다는 것을.
무남독녀 외동딸로, 지난 1년 동안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자신과 싸우고 있다는것도 알지못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훗날, 우리가 인연이 있어 다시 조우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