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밖에서 길을 잃고 마음 안에서 자리를 잃어

노점상이 멀리하게 되는 것 <도바 위에 뜬 별 1부 제8화>

by 손병호

라디오의 퀴즈 프로그램이 끝났다.그 때부터 가을 분위기에 어울리는 경음악이 계속 흘러나왔다.

표충사 방향으로 계속 자동차를 직진시키다가 울산에서 영남 알프스를 가로질러 넘어오는 24번 국도로 길을 갈아탔다. 도로는 시원하게 일직선으로 뚫 려 있었다.차는 밀양시내 방면으로 서서히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외람된 말씀이겠지만, 노점상 하시는 분이 카프카의 소설을 읽으셨다니요? 선생님, 실제로는 어떤 일을 하시나요? 설마 만행 중이신 건 아니실 테고요?”

여자는 차 안에 흐르는 음악과 침묵이 불편한 듯, 또다시 먼저 말을 꺼냈다.나는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않았다. 창밖을 바라보다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독서의 깊이가 직업이나 신분에 따라 정해지는 건 아니지요.그냥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어요. 뜻도 모르고 닥치는 대로 읽다가 고등학교때 카프카에 꽂혔던 거죠. 뭐 청소년 때의 그 시절엔 괜한 지적 허세 같은 게 없었다고는 못 하겠지만요.”

말끝에 나도 모르게 자조적인 웃음이 섞였다.
“그쪽 분이야 말로 프란츠 카프카를 읽으셨다니, 독서 수준이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나의 과장섞인 감탄에 여자가 별다른 반응없이 . 내 독서이력을 떠보기라도 하듯이 새로운 질문을 했다.

“선생님, 혹시 최인훈 씨의 『광장』이라는 중편소설을 읽으신적이있나요?”
나는 그녀가 내민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그 소설 주인공 명준은 반공포로에서 심사 때 돌아갈 곳이 없었다. 남북으로 갈라진 조국. 그는 제3국 인도로 향하는 동지나해의 한 지점에서 푸른 심연을 향하여 사라져 버린다. 나또한 삶의 한지점에서 방향을 잃고 목적지가 없는것 은 소설의 주인공이나 다름없었다.

때마침, 깜빡이도 켜지 않고 갑자기 차선을 침범해 오는 고급승용차가 있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라이트를 두세 번 작동시켰다.

“아, 오해하셨다면 정말 죄송해요. 그냥 궁금해서요. 『성』의 주인공 K와 『광장』의 이명준, 두 사람 다 현실 속의 인간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상징으로만 봐야 할까요? 제가 참여하는 문학모임에서 다음 달 주제가 ‘광장’이라서요.”

그녀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지만, 여전히 나를시험하려는 은근한 도발이 섞여 있었다.

노점상인 내가 과연 책을 얼마나 읽어봤을까, 그런 미심쩍음이 다분히 엿보이는 질문이었다.
그런 시선이 잠시동안이나마 예전에 걸쳤던 나의 자의식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내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나 역시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노점상은 노점상이지, 책은 무슨 책이냐’는 생각을 했을법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ㅡ런 생각에 이르자 은은한 웃음이 내 입가에 떠올랐다. 여자의 의도는 중요치않다. 오랫만에 문학이야기를 나눌 즐거움을 회피할 필요가 없었다.
서산너머로 막 넘어가는 저녁 햇살 한줄기가 힘없이 날아와 자동차 정면 유리창에 부딪쳐 바스러지며 물결이 되어 빠르게 흩어졌다.

차안에는 엔진 소리만 일정하게 이어지고, 여자의 향수 냄새가 희미하게 코끝을 감돌았다.
카프카의 K나 이명준 이야기의 주제도 간단치 않거니와 나의 의견을 꺼내기엔, 이 낯선 여자의 눈빛이 너무 탐색적이었다.

"K는 ,끝내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이죠.”
나는 짧게 그렇게만 말했다.
너무 함축적이고, 마치 교과서식으로 들렸다는 생각이 들어 말을 덧붙였다.

“그런 면에서 보면, 실존의 상실이죠.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한 투쟁이 곧 실존 그 자체인데,
그를 둘러싼 세계는 그가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잖아요.”

잠시 뜸을 두었다가, 나는 결론처럼 말했다.
“이명준도 마찬가지고요.”

"나 역시 마찬가지" 라는 말을 내 속으로삼켰다.

여자는 내 이야기가 더 듣고 싶은 눈치였지만 철학적 논제를 이야기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나
필요 이상의 설명은 손님들에게 괜한 불신을 낳는다는 걸, 짧은 장사 경험 속에서 이미 배워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이상 덧붙이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다만 K는 세상 바깥에서 길을 잃었고,
이명준은 마음 안에서 길을 잃었겠죠.”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자 차가 다시 미끄러졌다.
서로의 침묵이 길다고 느껴질 즈음, 여자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선생님, 실존주의자들은 인간은 누구나 실존적 존재라고 하잖아요.
그 말이 결국 고독이나 소외를 전제로 한다면… 그런 데서 벗어나는 길은 뭐가 있을까요?” 여자는 선생님이라는 호징은 이제 자연스레하고있었다.나 역시 그녀의 문학동아리 선셩님처럼 쉽게 대답했다.

이번 질문은 아까보다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목에 감긴 염주팔지와 무릎 위에 놓인 봉투를 힐끗 보았다.‘만어사’라는 글씨 아래로 달마스님을 그린듯한 불화 한 폭이 희미하게 비쳐 보였다.

“굳이 제게 물으실 필요는 없을것 같습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 댁에서 이미 실천하고 계신 게 해답인 것같습니다. 고독을 피하려고 산사로 가는 길.
그게 일종의 탈출일수도 있겠죠.”

그녀가 어이없다는듯 살짝웃었다
“그럼 종교가 해방이 아니라 도피라고 생각하세요?”

“그럴 수도 있죠.

종교는 고독을 잠재워주지만,
현실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진 않잖아요.
대상이 너무 멀리 있으니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되물었다.
“그럼 현실적인 해법은 뭐지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레 대답했다.
“그게 어렵죠.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로맨스 아닐까요?

그녀가 나를 돌아봤다.
“로맨스요? 어이없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고독에는 고독으로 맞서지 말아야죠.사람 때문에 생긴 일은 사람으로 풀어야 하거든요.”

내 말이 너무 진지했던 걸까.
여자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내 말 속에 농담이 섞였다는 것을 알고서 입술 끝에 쓴웃음을 띠었다.
그리고는 완연히 장난스레 물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랑, 해보셨어요?"

나는 전방만 응시하며 짐짓 무뚝뚝하게 그녀의 말을 받았다.
“노점상 하다 보면 그런 거… 멀리하게 됩니다.”

“그럼 그게 고독의 이유겠네요.”
그때 신호등 불빛이 앞유리에 부딪혀 그녀의 옆 얼굴을 비추고 지나갔다.
멀리 밀양강을 낀 강변도로 쪽 가로등들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꺼내도 진심처럼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방송국채널이 바뀌었는지 차 안에는 잠시 라디오 잡음만 흘렀다.

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창밖으로 얼굴을 돌린 채,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했다.그 틈에 신호등이 몇 번 바뀌었고,차는 어느새 밀양 시가지 쪽으로 접어들었다.


밀양장의 첫날.


밀양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고장이다.
북쪽으로는 종남산이 시가지를 감싸고,

동쪽으로는 영남알프스라 불리는 천 미터급 능선들이 주욱 이어진다.
가지산과 운문산이 그 중심을 이루며,남쪽에는 천황산과 재약산이 마주 서 있다.

산줄기들이 맞닿아 만들어낸 골짜기마다 안개가 일고,
물길이 흘러내려 강을 이루며 밀양이라는 내륙의 작은 도시를 감고 지나간다.

새벽안개가 산자락을 훑고 내려와 남천 징검다리 위에 엷게 걸려 있었다.장터로 들어서는 길목마다 흙먼지 섞인 바퀴자국이 얼기설기 그려져 있었다.

시월의 이른 아침, 산아래 골짜기마다 뭉쳐있던 먹물 같은 어둠들이 조금씩 묽어지고 있었다.

무더기로 덩이져 있었을 때는 그것은 분명 짙은 암흑이었지만 풀어질 때는 조금씩 청회색으로 변해 갔다.

그것은 마치 밀양의 산들이 밤새 게워 낸 하늘의 빛을 골짜기의 어둠들이 자기 것 인양 모아두었다가 아침이 오면 시나브로 다시 세상 밖으로 슬금슬금 돌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멀리 산아래 마을의 형태가 드러나기 시작할 때쯤.
리어카와 트럭들이 하나둘 시장 골목 안으로 밀려들었다.바야흐로 5일마다 열리는 인근에서 가장 큰 밀양장이 시작될 시간이 임박했기 때문이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미련스레 남아있는 마지막 어둠을 훑으며 지나갔다.오랜세월 오일장을 전전하던 뜨내기상인들과 토박이 장사꾼들이 서둘러 자리를 잡았다.
여기저기 포장을 설치하는 소리. 1톤 트럭의 경적소리. 오랜만에 만난 장사꾼끼리 서로 안부를 묻는 소리. 왼갖 소리가 곳곳에서 부산하게 들렸다.

내 옆 자리를 차지한 이는 산골에서 버섯 꾸러미를 들고 내려온 일흔 살가량의 노인 부부였다.
그들은 내 도바 맞은편에 천막용 푸른색 비닐 커버를 인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돗자리를 편 뒤 버섯을 쏟아놓았다.

값비싼 자연산 송이버섯은 대바구니에 담아 따로 내어놓고, 일반버섯과 말린 표고버섯들을 바닥에 그냥수북이 쌓아 올렸다.

버섯 장수 옆에는 단감을 파는 노점이 들어섰다.밝은 주황빛 단감이 산처럼 쌓였다.
갓 쉰이 넘어 보이는 중년남자와 아들인듯한 이십대후반 가량의 청년이 감꼭지를 다듬느라 분주했다.
단감 자루 밑에는 곶감용으로 따로 빼둔 모양 빠진 감들이 함부로 굴러다녔다.


청도에서 새벽 기차로 왔다는 그 노인은 함께 온 청년이 싫어하는 기색도 아랑곳 않고
“이건 홍시감이고, 저건 곶감용이요.” 하며
장을 보러 온 시골 농부에게 맛을 보라고 귀잖을 정도로 권했다.

내 자리 건너편, 영남슈퍼 앞 매대에서 오미자 향이 퍼졌다.빨갛게 말린 열매들이 바구니마다 차곡차곡 담겨 있었고, 그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사람들 옷자락이 서로 스쳤다. 한 아주머니가 말린 대추를 한 줌 집어 들고 이리저리 굴려보며 말했다.
“껍질이 얇고 씨가 작네. 이게 국산이요?”
국산인 줄 알면서도 가격을 낮추려는 수작이었다.

상인은 아주머니의 수작에 미소로 답하며 대추 한 알을 깨물어 보여주었다.

장터 길목 끝, 손님이 뜸한 외진 자리 도토리 묵을 만들어 팔러 나온 초동댁이라는 오십 대 초반의 아주머니가 더덕 장수 무안댁과 함께 장사는 제쳐둔 채 서로 시어머니들 흉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말을 주고 받으면서도,손님들이 지나 갈 때마다"도도리 묵 사이소""국산 더덕이 쌉니더"하는 말을 하는 것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내가 도바를 펴고 옷가지를 거의 정리했을 ,
동쪽 하늘의 햇살이 얇은 부챗살처럼 퍼지며 시장 곳곳을 비추기 시작했다.
천막 천에는 밤새 스며든 냉기가 아직 남아 있었고,
손끝에 닿는 비닐은 차가웠다.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희미하게 흩어졌다. 겨울을 재촉하는 한기 섞인 바람이 골목안을 맴돌았다.


골목 안쪽에는 생닭과 오리를 파는 상인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뜨거운 물과 이제 막 세상과 이별한 닭의 냄새가 뒤섞여 코끝을 찔렀다.
냉동대구를 파는 노점천막 안에 나무 몸통그자체를 자른듯한 큰 도마 위에 '탁탁'칼 부딪히는 소리가 연달아 났고,장정들의 목청이 그 리듬에 맞춰 터졌다.

“펄펄 살아 있는 놈이요, 바로 잡아 드려요!”

그 옆에서는 생선을 손질하는 여인들이 손놀림을 멈추지 않았다.비린내에 섞여 멸치젓 냄새가 퍼지고,그 위로 장터 아낙들의 목소리가 오르내렸다.

잠시 뒤 버스가 툴툴거리며 들어와 시외버스 터미널 앞에 한 무리의 시장 보러 온 사람들을 쏟아냈다.
터미널 안쪽까지 침범한 토박이 장사꾼들의 좌판들에는 고추, 대파, 마늘 , 무, 배추 등 농산물이 빼곡했다.
영남알프스 고지대 산비탈에서 갓 내려온 싱싱한 고냉지 배추에는 흙이 그대로 묻어 있었고,손님들은 줄기 굵은 것을 골라 큰 비닐자루에 여러 씩 담아 갔다.
그 옆에서는 솥뚜껑에 전을 부치는 노파, 막걸리를 종이컵에 따라 손님에게 건네는 장돌뱅이,양념된 돼지껍질을 굽는 참숯 불길이 화로에서 거세게 일렁였다.사람들은 흥정했고, 행인들이 떠밀리듯 움직였다.
1톤트럭 짐칸 위에서 한 남정네가 확성기로 외쳤다.
“밀양 단장면 대추, 얼음골사과.모두 모두 떠리미요

오늘이 마지막 물량이요!”

그 소리에 아이가 울고, 어디선가 단속 호루라기소리가 길게 울렸다가 사라졌다.


산으로 둘러싸인 장터 위로 영남알프스의 능선이 짙은 청색으로 걸려 있었다. 그 산에서 내려온 향토 물건들이 밀양 장을 채우고,사람들의 목소리와 냄새, 손의 움직임이 뒤섞여 장날의 하루가 그렇게 살아 있었다.


내가 청바지를 풀어놓자, 의외로 많은 손님들이 몰려왔다. 젊은 아낙네들이 앞 다투어 바지를 허리에 대어보고, 학생들이 친구들과 웃으며 사이즈를 물었다. 첫날부터 대박이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장이 끝나갈 무렵, 주변 장사꾼들과 토박이 할머니들이 몰려와 거세게 항의했다.

“우리가 몇십 년을 여기서 장사했는데, 어디서 굴러 지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이 자리서 돈을 쓸어 가면 우린 뭐로 먹고사나!”

그들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억울함이 섞여 있었다. 식당 주인 부부가 나서서 중재했지만, 상황은 쉽지 않았다.

주인은 그들과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 함부로 내 편을 들 수도 없었다. 결국 다음 장부터는 내가 직접 팔지 말고, 식당 아주머니가 대신 팔아주기로 합의가 되었다.

그 후로는 묘한 방식이 자리 잡았다. 장날마다 아주머니는 친척과 식당 손님들에게 남자·여자 청바지를 직접 팔아주었고, 나는 뒤에서 물건만 정리하고 돈만 받았다. 그래도 수입은 여전히 괜찮았다. 오히려 아주머니 덕에 단골이 생겼고, 매출은 안정되었다.

나는 주인아저씨에게는 자릿세로 오만 원을 주고, 아주머니에게는 장날 매출에 따라 삼만 원에서 오만 원정도 따로 챙겨 드렸다.

그 수입이면 한 달 식당 임대료를 내고도 남을 만큼이었다. 그러니 부부도 나를 퍽이나 반가워했다.

남자 주인은 나보다 세 살 위였고, 아주머니는 나와 동갑이었다. 장이 늦게 끝나는 날이면 우리는 같이 술을 마셨고, 술판이 늦게 파하면 그 집 식당 방에서 자고 다음날 귀가하기도 하였다.

낯선 타지에서 시작한 장사였지만, 그곳에서 나는 다시 한번 버틸 구멍을 찾은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주변 장꾼들과도 친해졌다. 그들은 내게 그들과 함께 다니자며 다른 오일장을 권했다.

“청도장도 괜찮다. 거기도 사람이 의외로 많다.”

“합천 장은 장날마다 쇠전에 소도 들어와서 엄청 북적인다.”

“경주 장은 관광객 덕에 수입이 고만고만하다.”


나는 그 권유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영남 곳곳의 장판을 떠돌며 청바지를 팔기 시작했다. 밀양, 청도, 합천, 거창,산청 경주. 안강 안동 영양 장날마다 달력을 들여다보며 어느 고을로 가야 할지 일정을 맞췄다.

그러나 떠돌이 장사의 길은 생각보다 많이 고되었다. 거리가 멀다 보니 여관에 묵는 날이 늘어났고, 차를 세운 곳마다 주차 단속에 걸려 딱지를 떼이기 일쑤였다. 하루 매출에서 여관비와 식비, 자리 세를 빼고 나면 남는 게 없을 때도 많았다.

겨울이 깊어지자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손님들의 발걸음이 끊기고, 청바지를 만져보던 손길마저 사라졌다. 청바지는 그저 먼지가 덮인 채로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버텼다. 봄이 올 때까지는 어떻게든 자리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장터에서 한 번 놓친 자리는 다시 잡기 어려웠다.


― 겨울을 버티고, 서른아홉의 봄


밀양 장을 거점으로 삼아 청도와 합천, 경주로 발걸음을 넓혀 간 것은 10월 하순부터였다.

처음에는 낯선 장판의 기세에 눌려 고개조차 들지 못했지만, 몇 번 다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장터 사정에 익어버렸다.

청도 장터 입구의 수구레 국밥집, 합천 장터 뒷골목의 신발가게, 경주역 앞에 늘어서는 관광버스 행렬. 각 장마다 냄새와 소리가 달랐고, 나는 그곳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냈다.

밀양 장에서는 내가 도착도 하기 전에 식당 아주머니가 장사준비를 대신해 주었다. 이전 장날에 일부 남겨둔 옷가지들을 이른 장꾼들에게 팔아주는 덕에 장사가 순조로웠다.

그러나 다른 장에서는 내가 직접 도바를 펼쳐야 했다. 전날 홀로 여관방에서 마신 술로 쓰린 속을 부여잡고 먼 길을 달려 장터에 도착하면 몸은 이미 천근만근이었다.

12월로 접어들자 사람들의 발걸음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청바지를 허리에 대보던 아낙네들이 이제는 두툼한 잠바에 얼굴을 묻고 도바를 그냥 지나쳤다. 겨울바람은 매서웠고, 손끝은 금세 얼어붙어 단추 하나 채우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어느 날 경상북도 안강 장에서였다. 눈발이 흩날리는 아침, 나는 도바를 펼쳐 놓고 멍하니 서 있었다. 인적은 끊어지고 , 찬바람만 몰아쳤다. 그때 건너편에서 고구마를 굽던 할머니가 내게 소리쳤다.

“보소, 총각인가 젊은 아저씨인가는 잘 모르겠지만, 우야든, 바람 막으려면 합판 위에 자갈 더 얹어라. 오늘 바람이 태풍 못지않은 돌풍이다. 그냥 두면 도바고 옷이고 다 날아간다!”

나는 허둥지둥 도바 모서리에 벽돌을 얹었다. 별것 아닌 충고였지만, 그 말 한마디가 왠지 모르게 고맙게 들렸다. 낯선 장에서 내가 외톨이가 아니라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경주 장에서는 관광객 덕분에 한때 활기가 돌았다. 그러나 크리스마스가 지나자 관광객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장꾼들은 “겨울 장사는 원래 이런 거라” 위로하며 말했지만, 그 말은 내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밤마다 여관방 전기장판에 몸을 붙이고 누우면, 막연한 미래가 불안하기만 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이도 벌써 서른아홉인데 이렇게 장마당에서 세월을보내는게 올바른 선택인가?간혹 회의감도 들었다.’

내 나이가 어느새 서른아홉, 은행원으로, 기자로, 그럴듯한 직함을 가졌던 시절은 이미 고단한 삶믜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금의 나는 겨울 장판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손을 비비는 일개 노점상일 뿐이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비록 가난하고 외로워도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 바로 이 길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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