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기억 < 도바 위에 뜬 별 1부 제13화>
최철국― 내 기억 속의 친구
다음날. 새벽까지의 과음으로 늦잠을 잤다. 말숙 씨로부터 문자메시지와 최칠근으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다.
문자메시지를 열어보니, 말숙 씨는 몸살 기운이 심해 며칠 쉬고 싶다며 혼자라도 하려면 어제 만난 심여사를 대신 보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술자리에서 벌어진 갑작스런 해프닝이었지만 돌발적인 키스 사건 여파인 것 같았다. 선불한 도바 사용료가 아까워 혼자 오후부터 장사하겠다고 문자를 날렸다.
곧이어 최칠근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우리가 어제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니라 익숙한 관계처럼 혼자 신나게 떠들어댔다. 결국 그와 안여사와의 관계에 대한 변명이었다. 안여사와 자신은 특별한 관계는 없었지만 말숙씨가 유난히 나를 챙기는 탓에 순간적으로 오버했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입으로 말숙씨에게 사과는 하겠지만 은근히 그런사실을 내가 말숙씨에게 전달해주었으면 하는눈치였다.
“어이, 근데 한사장. 친구 하기로 약속했는데 존댓말은 계속 왜 하나? 어제 내가 술에 취해 좀 실수도 했지만 말이지. 사실 우린 원래 친구사이야.자네가 신문기자하다가 갑자기 노점상을 하고 있어 내가 깜짝 놀랐지만 말이야. 어젠 나를 기억 못 하는 것 같아 꽤 섭섭했네.언제쯤 기억이 나시려나 허허. 그건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지. 근데 안여사가 한 사장을 아주 잘 보셨더구만. 좋은일을 소개할테니 한번 만나자고 시간내어달라는데.괜찮겠지.
이번 토요일, 수영 삼거리 내 가게로 오시게. 심여사랑 말숙 씨도 올 거고, 내가 어제 일 사과 겸해서 밸런타인 30년 산 한번 따주지.”
그 말을 끝으로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정말이지, 못 말리는 사람이었다.저런 쇠도둑 같은 사내의 무엇이 말숙씨의 마음에 들었을까.혹시 돈때문일까?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말숙씨에게 조차 야릇한 실망감이 들었다. 근데 칠근이라는자가 했던 말은 무슨 뜻인걸까. 분명히 그와 나는 오래전 친구사이라고 했다.그러구보니 그의 목소리와 말투는 분명 유년시절 멈추어진 기억의 한 장소에 남아있던 소리였다. 소리의 주인공을 찿는데 시간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소리를 따라 잊고 있었던 오래된 장면이 기억의 언덕 저 편에서 서서히 떠올랐다. 칠근이와 닮은 얼굴이었다.유년의 기억 속 어슴푸레한 공간에서 떠 오른 그 얼굴의주인공은 최칠근이 아니라 다른 이름이었다. 이름대신 숫자가 새겨진 명찰만이 오른쪽 푸른색 윗옷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얼굴이었다.
회색빛 건물은 부산소년원건물이었다. 음습한 긴 복도의 끝. 그곳엔 면회실이 있었다.
온기가 사라진 연탄난로는 뚜껑이 열린 채 차갑게 식어 있었다, 다 타버린 연탄재의 희끄무리한 색깔이 그날의 면회실 안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차가운 긴나무의자에 앉아 있었다.그날의 냉기가 엉덩이로 스며들던 감각만큼은 지금도 선명하다.
내가 얼굴을 들었을 때, 마주 앉아 있던 소년의 눈가에서 굵은 눈물이 연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래, 이제 제대로 기억이 난다.
최철국.
철국이는 한겨울임에도 얇고 남루한 옷을 걸친 채 울음을 참으려 애쓰고 있었다.
내 옆자리에서 그의 어머니가 창살 위로 손을 뻗으며 흐느끼고 있었고, 날카롭고 모진 목소리의 교도관이 짙은 국방색 점퍼 차림으로 다그쳤다.
“어서 나오시오. 시간 다 됐습니다.”
철국이 어머니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떼며 교도관 앞으로 다가갔다.그녀의 손에는 낡은 보자기로싼 옷 보통이 하나가 들려 있었다.
때가 묻은 보자기 안에는 철국이 어머니가 부업으로 일거리를 받아하던 가내 공장에서 만든 메리야스 내의가 들어 있었다.그 옷은 사실, 그날 아침 내게도 한 벌 건네주었던 것과 같은 옷이었다.
“우리 철국 입히려고 가져오면서, 성호 네 것도 가져왔다. 맞는지 한 번 입어봐라.”
그날, 나는 그 내의를 입은 채 철국 어머니와 함께 부산 서구 동대신동 소재, 소년원으로 갔다.
글자를 쓸 줄 모르는 그의 어머니를 대신해 면회 신청서를 써주기 위해서였다.
그때 우리는 열두 살, 그는 열세 살. 그는 나보다 한 살 많았지만 5학년때까지 항상 같은 반이었다.
철국이는 잦은 좀도둑질와 장기결석으로 한 해 전, 5학년때 신학기 초에 이미 자퇴 처리된 아이였다.
나는 그날, 면회실 차가운 공기와 의자에 스며들던 냉기, 그리고 창살 너머로 흘러내리던 철국의 눈물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철국의 눈물 맺힌 얼굴은 조금 전, 전화를 걸어온 칠근이의 목소리와 겹쳐졌다.
최칠근이가 바로 내 친구 철국이었다
“어이, 한사장.” 하며 허세와 넉살을 뒤섞어 내뱉던 목소리 속에서, 나는 여전히 울음을 참던 어린 철국의 떨림을 들은 듯했다.
어쩌면 그는 이제까지, 그날 차가운 면회실에서 멈춰 선 아이 그대로였는지도 모른다.
이름을 바꾸고, 세월이 흘러 제법 건장한 중년 사내가 되었어도, 그 속엔 여전히 어린 철국의 굴욕과 슬픔,모멸감이 응어리처럼 남아 있는 아이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철국이를 나쁜 아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는 누구보다 인정이 많은 아이였다.먹을 것이 생기면 언제나 먼저 내 몫부터 챙겨주었다.학교 육상부 학년 대표였던 그는 급식 시간에 늘 다른 아이들보다 옥수수식빵을 하나 더 받았다.그리고 남는 빵 한개를 늘 반씩 나누어 내게 내밀었다.
4학년 때 쯤,그는 이미 6학년 선배들까지 제압하여 일찌감치 소문이 나있었다. 산복도로 동네에 위치하여 싸움 잘하는 아이들이 많던 거친 학교였지만,체격이 약한 나를 감히 건드리는 녀석은 아무도 없었다.
철국이의 이름이 내 뒤를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철국이에겐 어릴 적부터 어쩔 수 없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철국이네는 우리 집 바로 옆집이었다. 그의 어머니와 우리 어머니는 서로 언니, 동생 하며 아주 가깝게 지내는 이웃이었다. 연탄불이 꺼지면 서로 밑불을 빌려줄만큼 허물없이 지냈다.철국이와 나도 어머님들 못지않게 친하게 지냈다 그가 학교를 중퇴하기전까지는 늘 붙어다니던 둘도없는 친구사이였다.
철국이 어머니는 늘 허리를 굽히고 재봉틀 앞에서 하루 종일 미싱을 돌리시던 분이었다. 장사물건 떼러 서울에 올라간 어머니를 대신해,그분은 어린 나를 집으로 불러 밥을 먹여주셨고, 반찬거리를 장만해주시기도 했다.
우리 어머니에게 그분은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생이자 친구였다.
나는 스무 살이 넘어서야 비로소 철국이네의 가슴 시린 사연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예전 범냇골 시절 이야기를 꺼낼 때면, 빠지지 않고 따라붙던 이름이 바로 철국이네였다.
철국이 아버지는 1960~70년대 외항선원들과 손잡고 일본이나 홍콩을 오가며 전자제품 밀수로 돈을 번 사람이라 했다.
그 밑천으로 신발 하청공장을 몇 개나 거느린 제법 큰 부자가 되었지만, 문제는 술집 마담 출신이던 철국이 어머니였다.
아들이 없는 본처의 구박을 견디다 못해, 다섯 살 난 철국이를 데리고 본가를 뛰쳐나왔다.
그리고 정착한 곳이 피란민 판자촌, 우리 동네였다.
손재주가 좋았던 그녀는 우리 어머니의 소개로 봉재 미싱일을 시작해 겨우 생계를 이어갔다.
그렇게 자란 철국이는 학교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
동네 못된 형들과 어울려 좀도둑질을 하거나 싸움에 휘말렸고, 결국, 더 큰 사건에 휘말려 버렸었다.
형님들이 동네 뒷산에서 어떤 여자 공원을 집단으로 성폭행할 때, 철국이에게 누가 오는 지 망을 보는 역할을 맡겼다고 했다.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그 건은 소년원에 끌려갔다.
그날, 철국이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울며 이렇게 말했다고하셨다.
“언니… 얘는 그렇게 나쁜 앤 아니에요.
그냥, 아버지가 우리 모자를 버렸다고 실망해 빗나가서 그래요…”
나는 어린 나이라 그 말의 무게를 다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한참 후에야 내게 설명해 주셨다.
“철국이는 잘못했지. 하지만 그게 다 그 애 탓만은 아니야.세상이 애를 그렇게 몰아붙인 거야.”
철국이 어머니는 담당 형사가 내민 진술서에
지장만 찍으면 아들이 바로 풀려날 거라는 말을 믿었다고 했다.그런데 그게 죄를 인정하는 서류였었다.
“천하에 몹쓸 놈들이지.인두겁을 쓰고 그 불쌍한 모자에게 어떻게 그런짓을 하다니 ”
어머니는 치를 떨며 말씀하셨다.
정작 죄를 지은 자 놈들은 돈을 써서 모두 풀려나고,
애꿎은 철국이만 소년원으로 끌려갔다.
그때 당시 철국이 어머니는혹시 전 남편이 철국 이를 빼앗아갈까 봐 연락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재판이 다 끝나고서야, 경찰과 검찰에 속았다는 것을 안 뒤에야 철국이 아버지에게 기별을 넣었다고 했다.
창살 너머로 본 남루한 옷차림의 소년.
눈물로 얼룩진 얼굴.
애써 울음을 삼키던 그 표정.
유달리 붉은 뺨 위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릴 때,
철국이 어머니도 창살 사이로 손을 뻗으며 흐느꼈다.
그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모자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1년쯤 뒤,
철국이가 석방되던 날이었다
찬 바람이 뺨을 베고 지나갔지만, 어머니는 아무렇지 않은 듯 가만히 서 있었다.며칠째 뜬눈으로 지낸 사람처럼 눈가가 퀭했고, 입술은 파래져 있었다.
잠시 후, 철문이 덜컥 열렸다.철국이가 회색 외투 차림으로 문을 나섰다.철국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멈춰 있던 숨이 터져 나왔다.
“우리 철국이…!”
그녀는 떨리는 팔로 아이를 끌어안으려 다가갔다.
그때였다.
검은 세단 한 대가 미끄러지듯 정문 바로 앞에 멈춰 섰다.타이어가 얼음 위에서 끼이익 소리를 질렀다.
차 문이 열리고, 고급 외투를 걸친 50대 중년신사가 남자가 내렸다.남자의 옆에는 회사 비서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남자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남자는 철국을 향해 손짓했다.
“철국아, 이리 와라.”
철국이는 잠시 머뭇거리며 우리 쪽을보더니 천천히 자가용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눈 위에 남겨진 발자국이 바람에 지워지고 있었다.
그는 끝내 어머니 쪽을 뒤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일부러 돌아보지 않았는 지도 몰랐다.
차문이 닫히고, 검은 세단은 눈길을 미끄러지듯 멀어져 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철국 어머니의 손이 허공에서 덜덜 떨리고 있었다.눈발이 그녀의 손등 위로 내려앉았다.철국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얀 눈이 모든 소리를 삼켜버린 날이었다.
며칠 뒤,동네는 비보로 술렁거렸다.
철국이 어머니가 우물에 몸을 던져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우리 어머니께서 동사무소와 구청을 들락거리며 도움을 받아 철국 어머니의 장례를 치러 주셨다.연락할 곳이 없어 상주 설 사람이 없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친구 철국이를 대신해 하루 동안 상주를 맡게 하셨다.그렇게 장례를 마친 뒤, 어머니는 하루 종일 울었고 며칠을 앓아누우셨다.
나는 그때의 일을 잊지 못한다.그 이후로 철국이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떠올리게하는 몇 번의 간접적인 인연은 있었다.
대학교 때 남포동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뒷골목에서 깡패들과 크게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다.
그때 골목 어두운 곳에서 “야, 개들 건드리지 말고 빨리 철수해” 하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그리고 우리는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전에 고등학교 때 범일동 보림극장 앞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내게 돈을 빼앗으려던 폭력배들 중 한 놈이 내 이름표를 보더니"니 철국이 친구 맞제?” 하며 그냥 보내주었다.
직장에 들어가 멏년되지 않아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어떻게 알았는지 양복 차림의 깍두기 하나가 철국이 어머님 이름으로 조화와 부조를 들고 찾아왔었다.
어쨌든 내 친구, 철국―아니, 칠근이가 내 눈앞에 오랜 세월을 건너 뛰고 건장한 사나이가 되어 다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