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지갑도둑이 되었어야지

양심을 버리는 게 맞다. <도바 위에 뜬 별 1부 제14화>

by 손병호

분칠 한 양심의 시간 <도바 위에 뜨는 별 제15화 >

야마자키 18년

봄 장마가 끝없이 이어지는 나날이 계속 되고 있었다. 봄시즌 옷을 팔지도 못하고 장사를 쉬고 있는 우울한 날들이 이어졌다.

칠근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야, 니 지금 뭐 하니?”
“비만 주룩주룩 오는데 뭐… 집에 있지.”
“야, 내 말 잘 들어라. 이번 주말, 무조건 안여사 만나야 된다.이게 네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이 말이다.”나는 잠시 말이 막혔다. 그의 말투엔 묘하게 절박함이 섞여 있었다.

“터닝포인트라… 인생이 그렇게 쉽게 바뀌나?그리고 그 여자, 계산부터 깔고 나를 만나자는 거 아냐?”

칠근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야, 사람 사는 게 다 계산이야. 네가 지금 무슨 선택지가 있다고 그런 소리 하노.

솔직히 말해라. 이 빗속에 노점상 언제까지 붙들고 살 거고?”그는 늘 그랬듯, 끝인사 없이 전화를 끊었다.

며칠 뒤, 칠근의 호출을 받았다.
이번엔 지난번에 만난 수영 오거리주점이 아닌, 부산호텔 근처 고급 룸 살롱이었다. 이곳도 칠근이가 경영하는 곳이었다.이외에도 조방앞 유명 나이트클럽에도 자기 지분이 꽤 있다고 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금융가로 이름난 구역이라,
술집이 들어서기 어려운 곳이었다.
겉보기에는 단정한 사무실 빌딩이었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지하로 내려가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두꺼운 방음문을 밀자, 은은한 조명이 깔린 넓은 프런트가 눈에 들어왔다.대리석 바닥은 은빛으로 반짝였고,천장엔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회려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복도 벽면엔 르누아르 풍 유화와 청전 이상범 산수화를 본뜬 대형 액자들이 걸려 있었다.
모조품이라지만 화필이 정교해, 웬만한 눈으로는 진품과 구분하기 어려웠다. 이 정도면 모조품이라도 값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값비싼 원목 가구와 최고급 가죽 소파,
쾌적한 공기와 정제된 향. 이곳이 지하 룸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해운대 조선비치호텔 인테리어를 맡았던 업체에서 직접 시공했다는 칠근의 말이 과장은 아닌 것 같았다.
부산에서도 손꼽히는 회원제 살롱. 부산시장을 위시한 국회의원, 대기업 오너, 언론사 간부, 대학 병원원장 같은 인사들이 사적으로 드나드는 공간이었다.
시의원 정도는 감히 발도 들이지 못한다 했다.
곳에서는 술보다 인간관계가 더 비싼 값에 거래되었다.

VIP 룸 테이블 위엔 고래 턱살과 눈살 같은

특수부위 요리가 차려져 있었다.
야마자키 18년, 히비키 21년,
그리고 레미 마르탱 루이 13세가
케이스 안에서 고요히 빛을 내고 있었다.

칠근이 어깨를 으쓱하며 잔을 건넸다.
“야, 이런 술 니 평생 마셔봤나? 세상은 이런 판에서 굴러가는 기다.”그의 얼굴은 전작이 있었는지 약간의 술기운으로 벌겋게 달아 있었지만, 눈빛은 또렷했다.


인생에서 단 한번 뿐인 큰 판
주빈 자리에는 세 번째 만남이 되는 안여사가 앉아 있었다.그녀는 마시던 술잔을 내려놓으며 나를 쳐다봤다. 그녀의 시선엔 여유와 준엄함이 동시에 엿보였다. 어떠한 사람 앞에서라도 도도함을 감추지 못하는,그 녀 특유의 태도가 오늘 따라 확실하게 느껴졌다.

“성호 씨, 지난번에도 내가 잠깐 얘기했죠.
내가 괜히 이런 말 하는 거 아냐.장길녀 대표 같은 사람, 아무나 다가갈 수 있는 인물이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학력이나 배경 따지는 사람도 아니에요.
오히려 당신 같은 사람이 옆에 있으면 서로 보완이 되죠.”

그녀의 말투엔 설득이라기보다 이미 결정된 일을 통보하는 것같은 단호함이 있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끌려가는 기분과, 혹시 모를 기회에 대한 욕망이 모순처럼 내 안에서 충돌하고있었다.
돈과 권력으로 얽힌 관계 속에 내 삶을 던져도 되는 걸까.

그때 칠근이가 잔을 탁 내려놓았다.
얼음 부딪히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야, 복잡할 거 뭐 있니. 그냥 만나.
니 지금 장사하는 거, 죽어라 해도 언제 사람 구실 하겠니?생각 좀 해봐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칠근아, 그게 말처럼 쉽나…

두 분이 선의로 권하는 거 알아. 하지만 생면부지의 사람을 돈으로 만나라는 건 내 성정엔 안 맞는다.

사람이 먼저지, 돈이 다가 아니지 않나.”

안여사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성호 씨, 사람답게 사는 거요?그것도 결국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것아니예요?.그게 꼭 돈만은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여유도 없잖아요.서양속담에 가난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사랑은 뒷담을 넘어 도망간다는 말이있다지요 ”

그녀의 말이 궁핍한 내 처지를 상기시키며 가슴을 후벼팠다.

칠근이가 의자를 끌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의 상기된 눈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있었다.

“야, 니 지금 큰 도박판 앞에 서 있는 기다. 이기 보통판이가? 다털어진 도바 물건 파는 게 아니라, 니 학벌, 경력, 인생 전체를 걸고 거래하는 거다. 내 장담컨데 니 인생에 이런 판은 다시 안 온다.”

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니 마음은 알겠는데 그래도 난 아직 혼란스럽기 그지없어 물질을 추구했라면 내가 은행이라는 안정된 직장을 왜 그만 두었겠니 ”

칠근이의 성난 목소리가 벼락처럼 내 귀를 쳤다.
씨잘데기없는 소리 그만해라! 니캉 내캉, 어릴 때 범냇골 산만디에서 같이 자랐잖아.

니 잘되면 내 일처럼 기뻤고,니가 대학 붙었다, 은행 들어갔다 소문 들었을 때마다 나도 술 퍼마시며 주위에 내 친구 자랑했다. 어린시절 연락은 끊겼어도, 나는 늘 네 소식 챙겨봤다. 근데 신문사 그만두고 나선 아무리 수소문해도 찾을 수가 없더라.
지금 니 꼴 좀 봐라. 장마에 젖은 니 몰골을
너거 어머니가 지금 니모습 보면 가슴이 안 찢어지겠나? 내 마음이 바로 그렇다. 나는 솔직히 니가 왜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내가 왜 이런 자리 마련하려고 애쓰는지 정말 모르겠나? ”

칠근이의 말끝이 떨렸다.

칠근은 잠시 한숨을 쉬었다가 다시 의자에 등을 깊게 묻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오늘, 그 여자 만나겠다고 내한테 약속할 때까지 니는
이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 내 말 명심해라.”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잔을 비웠다.

양주글라스에 얼음 녹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무거운 침묵이 계속되었다.

칠근이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안 여사가 여유있는 표정으로 나를 훝어보며 입을 열었다
장귀자 대표말이예요. 한사장님도 얼마전까지 언론에 있었으니 어쩌면 보지는 못했어도 이름은 들어 봤을수도 있을거예요. 일본에 세라믹 욕조랑 세면대를 수출하면서 재력과 기반이 아주 탄탄한 여성실업가예요. 솔직히… 그런 분이 쉽게 사람을 찾진 않아요. 현실적으로는 이제 혼자 버티기 힘든 나이기도 하고."

안여사는 나를 똑바로 주시하며 잠시 쉬었다가 말을 계속했다.

“이건 선택사항이 아니라 기회예요. 마음의 준비 보다 진심과 성실함이 더 중요해요. 대표도 그걸 원하고 있어요.”

칠근이가 안여사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성호야, 니는 지금 운명 앞에 서 있다. 돈이냐, 사랑이냐 그런 말 할 때 아니다. 인생에 단 한 번 오는 판이야.”

평소 같았으면 어림없는 제안이었다.
아무리 오랜만에 만난 어릴 적 친구의 말이라도,
‘택도 없는 소리’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겨울 시골 장을 떠돌다 양심마져 저당잡힐 뻔 했던 내 모습을 생각하면,이 자리에서 물러나는건 나 자신에게 또 한번 비겁한 짓 같았다.

아니, 그렇게 거창한 성찰이 아니어도 좋았다.
설사 돈의 유혹에 넘어갔다는 소리를 들어도 상관없었다.어쩌면 구차하게 사는것보다
오늘 이 장면이 덜 치사한지도 모른다.
그건 유혹이 아니라 거의 도둑질에 가까운 충동이었다.

그날, 차라리 그 여자의 지갑을 들고 도망쳐버리지 못한 걸 나는 오래도록 후회했다.


돌려주지 못한 양심

칠근이와 안 여사.이 둘의 다그침 속에서 나는,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밀양 장날의 내 모습을 또다시 떠솔리고 있었다.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동조하고 난 뒤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그 순간을 철저히 되살려야 했다.


작년 11월하순 어느날 이었다.
햇살이 있어도 바람이 매서웠고,장터에 하루종일있다보니 찬 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발끝이 유난히 시린 날이었다.가죽 신발이 아닌 값싼 인조 레저 구두는 매서운 첫 추위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겨울 오일장은 아침 일찍부터 열리지만,점심 무렵이면 벌써 파장 기운이 감돌았다.
바람결에 지붕 없는 장터의 천막이 허무하게 흔들리고 있었다.오후로 접어들며 손님 발길이 뚝 끊겼다.
되는 날은 일찍 도바를 걷지만, 장사가 시원찮을 땐 자릿세와 기름 값이라도 건지기 위해 늦게까지 버텨야했다. 그날도 나는 퇴근 길에 장보기를 하는 인근 도자기 공장 노동자들을 기다리며 추위 속에 떨며서 있었다.
짧아진 해가 산등성이 너머로 넘어갈 무렵, 오십 대 초반 아주머니 한 분이 내 도바 앞에 멈춰 섰다.

그녀는 한참동안 남성용 티셔츠를 뒤적거렀다. 그리고는 도바위의 청바지를 들어 바느질 상태를 살피고, 치수를 맞추느라 바지 허리둘레를 자신의 목에 걸어보며 시간을 보내더니 결국 아무 것도 사지 않고 횅하니 돌아섰다. 입속에 푸념이 절로 흘러나왔다.

옷더미는 그대로였고, 그 여자가 떠난 자리엔 쓸데없이 무의미해진 시간들만 수북이 남아있었다.

더 이상 손님도 없을 것 같아 서둘러 도바를 정리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청바지와 티셔츠 사이에서 무언가 금속 같은 것이 빛을 발하며 번쩍였다.자세히보니 검정색 손가죽지갑이었다.지갑의 지퍼 부분이 가로등 불빛에 반사된 것이었다. 지갑을 손에 쥐자 꽤나 묵직했다.
지퍼를 열자 백만 원짜리 자기 앞 수표 한 장, 십만 원 수표 여러 장, 두툼한 만원 권 현금이 들어 있었다.

본능적이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장바닥에는 천막이 거의 걷혀 있었다. 가로등만 노랗게 길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내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추석이 지난 이후 줄곧 기름값 제하고 밥값 떼고나면
남는게 없는 장사였다. 당시의 곤궁한 처지에 그 지갑 하나면 한 동안 버틸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 순간 몸이 얼어 붙었다.숨이 목구멍에 걸렸고, 눈 가장자리가 뜨거워졌다.

다시 마음을 진정시키며 옷더미를 포대에 쑤셔 넣으며 지갑주인을 기다렸다.혹시 지갑주인이 나타나 사례로 옷이라도 몇 별 팔아줄까하는 기대감에 도바 위의 옷을 반 쯤만 정리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두었다.
장터에 점점 땅거미가 깔리고 주위가 깜깜해지고있었다. 한시간이상 지나 한 여인이 허겁지겁 나타났다. 마지막에 들렀던 그 손님이었다.
그녀는 의심스런 눈길로 내가 내민 지갑을 몇번이나 확인했다.상여금을 찾아 돌아오던 길이었다는 짧은 말만 남기고 별다른 인사도 없이 그대로 떠나버렸다.
나는 그 뒷모습을 붙잡지 않았다.작은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스쳤지만,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포대를 다 싸고 차에 실을 때 쯤 장터는 완전히 어둠에 잠겼다.장꾼들이 철수한 좌판 자리엔 바람이 몰려다니며 비닐을 흩날렸다.

짐을 트렁크에 욱여넣고 뒷문을 닫았다.
손끝은 감각이 없을 만큼 시렸고, 그 차가움이 그대로 마음 깊숙이 번져왔다. 시동을 걸고도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핸들을 잡고 나서야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 년 넘게 연락을 하지 않았던 대학 친구였다. 그때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따 중동집에서 보자.”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차는 밀양강을 따라 삼랑진방향으로 빠져나왔다. 파리하게 은색으로 빛나는 차가운 달빛이 강물 위에서 부서졌다.


밀양장에 두고 온 내 마음속의 지갑
청바지와 티셔츠 사이에서 지갑이 반짝이던 순간, 본능적으로 두리번거렸던 나의 눈빛, 발끝으로 스며들던 차가운 바람. 운전대를 잡고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삼랑진 철교를 건널 때 쯤, 낙동강 물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수면은 점점 낮아져가고 있었다. 위에 살며시 내려앉은 달빛은 하얀 비단을 풀어놓은 듯 물길 위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인적이 끊긴 국도, 어둠 속에서 차체가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달렸다.
간혹 마주 오는 차량의 헤드라이트가 번쩍이며 내 마음 저편 깊숙한 곳을 쓱 훑고 지나갔다.
길은 조용했다. 엔진 소리와 늦가을 바람 부는 소리만 차 안에 가득했다. 상동면을 지날 때쯤, 도로 옆 밭에는 서리 내린 작물의 잎들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마을 불빛은 드물었고, 짙은 어둠이 무척산에서 시작하여 골짜기로 내려왔다가 낙동강을 따라 점점 더 넓게 퍼져가고 있었다.
차창에 서리는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창문을 조금 내리자 차가운 공기가 칼날같이 목을 스쳤다.

발끝은 여전히 얼어붙은 듯했고, 핸들을 잡은 손마저 서서히 뻣뻣해졌다. 생각은 그때까지도 지갑 안에 갇혀 나올 줄을 모르고 있었다.

두툼한 수표와 지폐를 본 순간, 발밑까지 흔들리던 내마음.
아무도 보지 않았지만, 내가 나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만든 그 짧은 순간. 수천만 원 수표를 휴지처럼 보던 은행원 시절의 자기 절제력은 내 마음 어느 곳에도 없었다.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던 어머님의 말씀이 그렇게 야속했던 순간도 없었다. 하긴 아들 학비도 제 때 못 낼 정도로 힘들게 살면서도 당신 자신 몫의 유산인 창원 땅을 외가의 장남인, 큰 외삼촌에게 송두리째 주었던 분이었다.
가로등이 없는 구간에서 도로는 내 마음속의 어두운 부분을 풀어놓은 양 검은 띠처럼 계속 이어졌다.

바람이 강물 위에서 불어와 차체를 심하게 흔들었다.

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잡기라도 하는 듯 핸들을 더욱ㅈ꽉 움켜잡았다.

차는 어느듯 광복동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도시는 낮의 지루한 시간에서 깨어나 밤의 찬란한 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네온사인이 화려하게 춤을 추고, 포장마차 천막들 따스한 불빛에 젖어 있었다.

중동집 앞에 차를 세웠을 때, 이미 친구는 도착해 있었다.
코트를 벗어 간이 옷걸이에 걸어두고 친구 옆에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 위에는 익숙한 안주 몇 가지가 놓여 있었다.
오래 보지 못했지만, 그와의 사이는 늘 그러했던 것 처럼 인사도 설명도 필요 없었다.

친구는 말없이 내 앞의 소주잔을 채웠고 나는 묵묵히 그 잔을 들었다. 술은 쉽사리 목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잔이 손끝에서 흔들리다 제풀에 바닥에 내려졌다. 그리고 잠시 ,내 얼굴이 포장마차 상판 판때기 위에 닿았다.

포장마차 안이 조용해졌다.술잔과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마저 멈춘 듯했다.
나는 숨을 고르지 못한 채 울음을 터뜨렸다.
어깨가 들썩였고, 두 팔로 이마를 감쌌다.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가볍게 내 등을 두드렸다.
울음은 한참 이어졌다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그는 마시던 소주잔을 치우고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부어 단숨에 마셨다. 그리고 그 잔이 넘치도록 소주를 가득 부어 내게 내밀었다.
뜨거움이 목을 타고 내려가면서 낮부터 얼어 있던 몸과 마음조금 풀렸다.

그는 짧게 물었다.
“오늘 무슨 일 있었냐.”
나는 대답 대신에 잔을 들었고, 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침묵이 오히려 긴 대화 같았다.포장마차 밖엔 여전히 바람이 불었다.


다시는 지갑을 돌려주지 않을 결심-

지난 가을의 사건이었지만 마치 어제처럼 생생한 기억이었다. 기억의 필름이 끝났을 때 쯤, 내 마음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 이건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다.내 경력과 실패, 노점상 생활까지 모두를 통채 묶어 한 번에 걸어야 하는 순간이었다.나를 아는 사람들은 훗날 나를 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나는 나를 욕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결코 지갑을 돌려주지 않을 것이다.

“좋습니다. 만나보겠습니다.”

그 순간, 안여사와 칠근의 표정이 동시에 풀렸다.
안여사의 얼굴에는 안도가, 칠근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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