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위에 별이 있는 사람 < 도바 위에 뜬 별 2부 제4화>
악어 대가리의 도발
보관소에 리어카를 맡기는 대신
우리가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지키는 일은
생각보다 잘 진행되어갔다.
경비 맡을 사람을 뽑는 과정에서
회계 문제로 약가의 잡음이 있었지만
그게 오히려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계기가 됐다.
나는 그 무렵부터
골목의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걸
느끼기시작했다.
사건이 있고 한 달쯤 지난 뒤였다.
물건 정리가 늦어져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리어카를 집중보관장소로 밀고 가는 길이었다.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좁은 골목에
승용차 한 대가 비스듬히 서 있었다.
헤드라이트는 꺼져 있었고,
안쪽이 어두워 운전자가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차에서 열걸음 정도 남았을 때였다.
갑자기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리고
브레이크 등이 번쩍 켜졌다.
“어? 뭐야…”
잠깐 멈칫한 그 순간,
차가 갑자기 뒤로 돌진해 왔다.
움직임 자체가 평범한 후진과는 달랐다.
나는 본능적으로 리어카를 옆으로 바짝 끌어당기며 외쳤다.
“정지! 정지! 리어카 부딪혀요!”
하지만 골목이 너무 좁았다.
리어카는 방향을 틀려해도
금방 돌려지지 않았다.
차는 나의 외침에도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곧장 내 입에서 짧게 “윽…” 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범퍼가 리어카 아래쪽을 쾅 소리를 내며 박아버렸다.
금속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리어카가 세차게 뒤로 밀렸다
그서슬에 나는 뒤로 밀리는 리어카에 떠 받혀 손잡이를 놓치며
균형을 잃고 그대로 길바닥에 옆으로 넘어져버렸다.
나는 겨우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
“미친 것 아니가? 사람이 다쳤는데 문도 안 열어요?”
내 말이 들렸는지 운전석 뒤쪽 창문이 내려갔다. 염소 대가리가 고개를 삐죽이 내밀었다.
하지만 놈은 운전석에서 내려올 생각도 없었다.
창문만 반쯤 내린 채, 한 손으로 대충 손을 흔들었다.
“아이고야… 우리 기사가 기어를 잘못 넣어 빠꾸기어를 넣어버렸네요. 성호 씨가 부딪힐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입꼬리는 슬쩍 올라간 채, 목소리만 미안한 척 꾸몄다.
기사가 고개를 내밀며 염소 대가리 말을 받아 말했다. “내가 좀… 깜빡했습니더, 깜빡.
뒤에 사람이 있는 줄 알았으면, 조심을 더 했을 낀데.”
염소대가리가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더 비열한 말투로 이어갔다.
“근데 뭐… 크게 다치지 않는 것 같네예?
그래도 혹시 모르니 퍼뜩 병원 가서 엑스레이라도 찍어보이소.
영수증만 가져오면… 내가 알아서 처리해 드릴께”
말은 그렇게 했지먀, 시선은 나와 마주치지않았다
사정을 챙기려는 게 아니라, 비웃는 눈이었다.
“아, 원래는 내가 병원까지 모셔다 드려야 하는데,
지금 급한 약속 있어서 말입니더… 아이고, 진짜 죄송하네예.”
말 끝에, 놈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이 더 얄미웠다.
창문이 올라가고, 차는 곧장 골목을 빠져나갔다.
나는 한참 동안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며
‘괜찮겠지’ 하고 스스로를 달래봤다.
하지만 통증은 서서히 퍼져오고 있었다.
리어카를 집중보관장소에 밀어 넣고 나니
다리가 점점 말을 안 들었다.
처음엔 단순히 뻐근한 줄 알았는데
한 걸음 내딛는 것도 버거울 만큼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왕비다방으로 올라갔다.
“영숙 씨… 파스 좀 사다 주세요.
조금 전에 넘어졌는데 다리가 좀 이상하네.”
내 얼굴을 보자마자
영숙의 표정이 확 굳었다.
그녀가 서둘러 다가왔다.
“잠깐만요. 신발 벗어보세요.”
양말을 벗기는 순간
발등이 불룩 붓고 색이 달라져 있었다.
“이거, 삐끗한 정도가 아니에요.
부산대병원 응급실이라도 가셔야 돼요.”
“아이고, 이깟 거 가지고 응급실은 좀 그렇지요.
잠시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
내가 괜찮은 척 말하자
영숙은 더 걱정스러운 눈을 했다.
“괜찮긴요. 이러다 잘못되면 신경 다칩니다.”
영숙은 잠시 창밖을 내다보며 생각을 정리하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잠시만요.
엄마가 곧 오실 거예요.
한번 봐 달라고 할게요.”
잠시 뒤,
출입문 윗부분의 작은 종이 살짝 흔들리며 소리가 났다.
영숙 어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다방 안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침술 명인 약사여래 할머니
툭, 툭—
그녀의 지팡이 끝에서 나오는 가볍고 일정한 소리가 천천히 다방 안을 메웠다.
발을 내딛기 전, 지팡이가 먼저 앞을 확인하고 발이 따라가는 방식이었다.
천천히, 그러나 흔들림 없이, 그녀는 의자 사이를 지나 내 앞으로 다가왔다.
테이블 다리를 스치는 미묘한 소리,
바닥에서 울리는 작은 울림을 감각하며,
느리지만 익숙하게 한 걸음씩 내게 다가왔다.
마침내 할머니는 내 앞에 멈춰 섰다.
내가 인사를 채 끝내기도 전에,
영숙 씨가 먼저 다리가 다친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얘야! 오늘 누가 나를 찾아올 것 같더니만
이 사람이었구먼.”
머리에 별이 있다던 그 양반 맞지?”
“자네, 다리를 좀 올려 보게.”
그녀의 손이 내 발목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눈은 분명 떠 있었지만, 내 얼굴을 직접 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의 손길은 마치 모든 것을 알아차린 듯 정확하게 움직였다.
손끝이 닿는 자리마다 힘의 크기와 각도가 섬세하게 조절되어 있었고,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내 다리 위로 흐르는 그 부드럽지만 확실한 감각에서,
나는 눈앞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는 내 발목과 종아리를 차분히 살폈다.
붓기와 압통을 손끝으로 확인하며,
눈으로 보지 않고도 다친 곳을 정확히 가늠했다.
허리춤에서 작은 침통을 꺼내더니,
익숙한 손놀림으로 침을 집어 들었다.
“움직이지 마시오.”
그녀의 손끝이 혈자리를 짚으며 침을 놓았다.
침이 자리할 때마다 발목과 발등 근육이 살짝 움찔했다.
곧, 침을 맞은 자리에서 미세한 열감과 시원한 기운이 번지며
통증이 한결 가벼워졌다.
다리 근육의 긴장이 서서히 풀리는 듯했다.
“이건 단순한 타박이 아니네.
조금 금이 갔을 수도 있겠구먼.”
그녀는 침을 세 번 놓고,
마지막으로 발목과 발등을 부드럽게 눌러 확인했다.
“이제 한동안 움직이지 말게.
오늘 밤은 다리에 힘을 주거나 절대 서 있으면 안 된다네.
열두 시간은 쉬어야 하네.”
“고맙습니다, 어머니.
정말 신통하십니다.”
“신통은 부처님께 있지.
난 그저 약사여래 부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할 뿐이네.”
“우리 어머니는 침 잘 놓는 침술 명인 할머니로 소문난 분이에요.
영주동 산복도로 주변, 경로당이나 거동 불편한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봐주셨어요.
돈은 받은 적도 없고요.
전에 한의사협회에서 문제 삼은 적도 있었는데
경로당 어르신들이 다 나서서 막아주셨습니다.”
할머니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명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괜히 지껄이는 소리일세. 지극한 마음으로 보면 어떤 병이든 보인다네. 병이 보이면, 약사여래님이 시키는 대로 내 손이 저절로 움직이는 걸세.”
그녀는 마지막 침을 빼내며 내게 말했다.
“지금은 괜찮아질 게야. 하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이 다리는 앞으로도 신경통처럼 계속 시릴 걸세. 오늘은 절대 움직일 생각 말고, 내일 해 뜨기 전까진 우리 내실에서 그대로 누워 있게나. 앞으로 이삼일은 내게 침을 맞게나.”
그리고 사용했던 침을 휴지에 싸서 영숙 씨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건 버려라.
…그리고, 영숙아 .네가 불편하겠지만 아무래도 네가 오늘 밤은 여기 있어야겠다.
나는 집에 혼자 가도 된다.”
할머니는 잠시 말을 멈추고,
영숙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영숙아, 이 양반은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중요한 결정과 일을 할 사람이야.
만약 다리에 문제라도 생기면 절대 안 된다.
이 다리는 그냥 한 사람의 다리가 아니야.
여러 사람들을 대신하여 걸어야 할 다리라는것을 유념하도록 해라.
그러니까 오늘 밤은 꼭 곁에 있어라.
혹시라도 일어나려 하면 잡아서 못 움직이게 해야 한다.”
그녀는 말을 마치고 지팡이를 짚으며 일어서다가 나를 보고 다분히 예언적인어조로 말을 하였다.
"당신은 길을 두고 메(산)로 가는 사람입니다. 그산을 오르는데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바램과 희생위에 당신은 별의 순간을 만나게 되겠지요.하지만 당신은 결국 돌아오게 됩니다. 그 시점을잊지마세요
별이 밤하늘에 뜨는 까닭은 어느 한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 잊어서는 안됩니다.이 노인의 말을 잊지마세요."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지팡이를 짚으며 익숙한 걸음걸이로 출구로 가서 다방 출입문을 밀었다. 문을 열 때 딸랑 그청아한 작은소리가 잠시동안이나마 내가 속세를 벗어나 있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주는 것 같았다. 직접적인 대화를 나누지는못했다.그러나 영숙 어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은 마치 선경에서 신선을 만난 것처럼 신비롭고 매력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