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 산복도로 위의 소녀 1.

도바위에 뜬 별 제2부 9화

by 손병호

봄의 끝 아지 못할 불안


계절은 봄의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전 국민들이 IMF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해 시장골목도 조금씩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왕비다방도, 시장 골목도 다시 예전처럼 일상의 삶으로 회복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러한 상황들이 여전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금 간 자리를 대충 메워 버리고 아무렇지 않기를 바라는 눈속임이나 매 한 가지로 보였다.

지금 차례대로 곧 닥칠 여름장마와 혹서기, 짧은 가을을 지나면 긴 겨울이 닥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노점 장사는 그렇게 계속 힘든 고비를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돌기마련이고 외부적으로는 겨우 생존의 목줄이나마 이어가려는 우리들의 노력을 관과 재벌들이 가만히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었다.

도바앞의 낯선 시선


그렇게 나 혼자 긴장된 나날을 보내던
어느 주말 오후,

손님들이 잠시 뜸해진 틈을 타 나는 도바 위에 걸터앉아 흐트러진 옷들을 다시 개며 하나씩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이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직장인 차림의 아가씨가 도바에서 제법 떨어진 거리에서 계속 나를 주시하는 느낌을 받았다. 한동안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하다가 이내 마음을 정한 듯 조심스레 내게로 다가왔다.

“저 선생님, 바쁘시지 않으시면 제게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갑작스러운 요청에 영문을 몰라 뜨악한 얼굴의 나를 불러 세워놓고서 아가씨는 계속 땅바닥으로 시선만 떨군 채 말이 없었다.

초면인 듯 아닌 듯 어디서 본 적 있기도 한 얼굴이었다. 대체 이 아가씨가 내게 무슨 볼 일이 있을까?

혹시 그 아가씨와 관련될 만한 일이 있었나 싶어 최근의 일들을 짧게 되짚어 보았다. 몇 가지 장면이 스쳤지만, 딱히 연결되는 것은 없었다. 생각은 더 이어지지 않았고, 나는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하기사 하루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만져보거나, 흥정하다 그냥 가는 곳이 노점판이다. 손님들 얼굴을 일일이 기억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닐 수 없었다..

더욱이 나는 안면인식장애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사람들의 얼굴에 대한 기억이 불분명하기로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얼떨떨한 상태로 엉거주춤 서있는 나를 보고 눈치빠른 말숙 씨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턱짓으로 왕비다방을 가리켰다.

그제야 나는 한창 나이의 아가씨가 시장통에서 노점상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불편하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 여기는 이야기 나누기가 좀 불편하니 저 쪽에 있는 왕비다방으로 먼저가 계세요. 제가 곧 뒤따라 가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정리하던 옷들을 급히 한 켠으로 치우고 자리에서 바로 일어섰다.

그런데 땅만 보며 얼굴을 붉히고 있던 아가씨가 갑자기 고개를 내저으며
“선생님, 저 , 거긴… 가기 싫어요.”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 그래 단호한 어조의 이 목소리. 분명 들은 적 이 있는 목소리였다. 그것도 아주 최근에 분명히 들은 적이 있었다는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악어형님 따님



그 순간, 번개처럼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악어형님 전처 뒤에 서서 싸늘하게 나를 노려보던, 바로 형님의 하나뿐인 따님의 눈빛이었다.

“저.. 혹시 정성봉 형님 따님 맞으시죠?”

“네. 지난번에 정말 죄송했어요. ” 갑작스러운 나의 질문에 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나는 얼마 전 해운대 아파트에서 그렇게 당당하게 따지던 아가씨가, 별안간 내 앞에 다시 나타나 지난번의 무례를 사과하겠다고 나서자 적잖이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출현이 뜻밖일 뿐 아니라 그 태도가 예전과 너무 달라 되려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혹시 사과라는 말 뒤에 또 다른 부탁이 따라오는 건 아닐지, 아니면 뭔가 새로운 요구를 제시하며 해결해 달라고 찾아온 건 아닐지 하는 걱정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떤 내용이든 내가 존경하는 그 분의 하나뿐인 혈육이고 전날의 태도를 진심으로 사과하며 나를 직접 만나러 와 준 것이 사실 반갑기도 하였다. 나는 이 기회에 영숙 씨의 재산문제에 대한 이들 모녀의 오해와 섭섭함도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가씨의 출현에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던 말숙 씨와 대팔이에게, 나는 별 일 아니라는 뜻으로 가볍게 눈짓을 보냈다. 그리고 왕비다방이 아닌 다른 다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기도 전에 아가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 어머니 뒤에서 선생님께 함부로 무례한 행동과 불손한 말씀드렸던 것 사과말씀 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제가 상황도 잘 모르면서 어머니와 함께 괜한 말을 하여 속 많이 상하셨죠
정말 죄송합니다.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깊이 숙여 정중하게 절을 했다.

상대의 정중한 태도에 당황한 나는 인사를 받는둥 마는둥 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손사래를 치며 그녀에게 빨리 앉길 권했고, 민망한 얼굴로 말을 건넸다

"아니에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이러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오해의 여지가 있었어요. 오늘 오신 김에 제가 충분히 설명드리죠"

"아녜요. 사실 그날 함께 가셨던 변호사 사무장이라는 분에게 어머니께서 속으셨던 겁니다.

노점상만 하신 제 아버지께서 아파트를 사실만한 여유는 없었을 테고 남기신 것 또한 거의 없었을 것이라는 정도는 어머니께서도 잘 알고 계셨어요.

제가 저희 직장의 고문 변호사에게 자세히 알아보니 법적으로도 저희 쪽에서 대항할 권리가 전혀 없다는 것도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희는 어머니께서 한 때 보험영업을 하시면서 실적 때문에 아버지 사망보험을 많이 가입해 두었었는데 , 최근에 이를 보상받아 경제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니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차라리 왕비다방 여사장님이 더 걱정이에요. 제가 어머니께 잘 말씀드렸으니 앞으로 그분을 귀찮게 하시지 않으실 거예요.그 분께도 사과 말씀 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그녀의 어깨가 작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근데 아가씨는 제가 여기 있는 것 어떻게 알고 왔어요."

"얼마 전에 큰 아버님이신 대각사 주지스님으로부터 제게 연락이 왔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님 유품이랑. 통장. 그리고 제게 따로 남기신 글들을 전해주시더군요.

그리고 아버님께서 이 시장분들에게 어떤 존재이셨던지. 지금은 선생님께서 아버지 뒤를 이어 고생하시고 계시다는 말씀과 아버님 생전에 선생님과 각별한 우정을 갖고 계셨다는 말씀도 전해 들었습니다."

"그럼 오늘은 아버님 생각이 나서 여기 들럿셨겠군요."

" 예. 사실 그날 해운대에서 어머니와 그 난리를 쳐놓고 사실을 알고 나니 너무 부끄러워 왕비 다방아주머니와 선생님을 뵐 낯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희 직장에 인사이동이 발표되었는데 제 근무지가 서울지점으로 발령 났어요.
아버지 생전에 와보지도 못했던 곳이지만 다음 주에 서울로 가면 오기 힘들 것 같아 작별인사차 이곳에 들렀습니다. 근데 선생님 뵙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난번 해운대에서의 사건에 대해 부끄러워 사과도 제대로 못했다는 말,
전근발령 때문에 고인이 장사하시던 자리에 대한 추억의 자취나마 남기려고 찾아왔다는 그녀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하던 나는 나를 만나고 깜짝 놀랐다는 그녀의 말에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불현듯 악어형님을 노점장사 첫날 만났던 순간이 떠올랐다. 분명 그 당시 악어 형님 얼굴 또한 그전에 한 번쯤 부딪힌 얼굴이었는데. 그날 이후 번번이 기억을 되살리는데 줄곧 실패를 해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내 앞에 이 아가씨도 최근에 본 얼굴이 아닌 이미 오래전, 내 빈약한 기억의 창고에 분명히 저장되어 있었던 얼굴임에 분명했다.

그녀가 갑자기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친근하고 다정한 눈빛으로 내 눈을 쳐다보며 물었다.

“선생님 정말로 제가 기억 안 나세요? 저 지금 섭섭해지려고 하고 있어요. 전 선생님 생각 그동안 진짜 오랫동안 했었는데ㆍㆍㆍ”
상대는 내가 자신을 바로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서운해 보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쉽게 떠올리지 못한 이유가 자신의 달라진 모습 때문이라는 데서 묘한 만족을 느끼는 눈치였다. 그녀는 내 반응을 가만히 살피며, 자신의 신체적 변화가 제대로 먹혔는지를 확인하듯 잠시 그 표정을 즐기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의 나가 아닌 과거의 나를 잘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우수의 기색이 스쳤지만 흔들림은 없었고, 판단이 빠른 사람 특유의 또렷함이 있었다. 이런 눈길을 처음 본 것은 분명 아니었다. 스쳐 지나간 정도로는 남지 않았을 기억의 흔적이 내 안 어딘가에 분명히 걸려 있었다.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말 대신, 어서 떠올려 보라는 재촉이 두 눈동자에 담겨 있었다. 나는 몇 번이나 기억을 더듬었지만 끝내 닿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무 말로나 얼버무리고 싶지는 않았다. 나를 반가워하는 사람 앞에서, 모르는 척 그 존재를 대충 희석시켜 지워버리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결국 나는 고개를 저으며 기억을 못 떠올려 미안하다는 뜻만 전했다. 그 앞에서 내가 내밀 수 있는 것은, 그 정도의 솔직함뿐이었다.

“십 몇 년 전에 영선동에서 교복 입고 자주 저금하러 다니던 그 여중생이었어요. 그래도 기억 안 나요? "

그래. 맞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래된 앨범이 한 장씩 펼쳐지듯, 까마득한 기억의 동굴에 새겨놓았던 장면들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 끊어져 있던 기억의 회로가 멈추어진 시간들을 거꾸로 돌리는 영사기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신입 행원 시절



부경은행 영선동지점, 막 대졸 신입행원으로 발령받았던 시절.
점심시간마다 교복 차림의 한 여중생이 몇천 원씩 예금을 하고 가곤 했다.

늦게서야 기억이 떠올랐지만, 그 일은 오래전의 시간이었음에도 쉽게 바래지지 않았다. 마치 어제의 일처럼, 마음 한편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1985년. 여름 어느 날.
점심시간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부경은행 영선동지점의 보통계(예금계) 창구.
입행 6개월째로 신입행원 티를 막 벗은 나는 고객들의 보통예금과 저축성예금 입출금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중앙에 놓인 보통계 단말기에서는 통장을 찍어낼 때마다 찌이익 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그 소리를 배경처럼 들으며 창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막 인쇄된 통장을 받아 든 여직원들이 예금주 이름을 부르고, 공과금계 앞에는 수도요금 납부하는 긴 행렬이 줄어들기는 커녕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별단예금계에서는 고참 여직원들의 전날 입금된 타행 자기 앞 수표 사고 여부를 유선으로 확인하는 목소리가 쉬지 않고 이어졌다.

그렇게 지점 안은 잠시도 가만있지 않았고, 업무는 점심식사시간마저 뒤로 미루어야 할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고있었다. 출납창구에는 인근 시내버스 회사 경리직원이 다량의 동전을 지폐로 교환이라도 하러 왔는지, 동전 계수기가 연신 자르럭 자르럭 시끄러운 소리를 반복적으로 내고 있었다.

지점이 자리 잡은 영선동과 남항 동, 대평동 일대에는 크고 작은 해운회사와 선박수리업체, 각종 부품을 취급하는 영세 공장들. 여기에 원양어선이 출항할 때마다 필요한 선용품 전문점들까지 밀집해, 당시에는 “지나가는 개도 천 원짜리 한 장은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경기가 좋았다.

지역 특성상 점심시간을 이용해 은행 업무를 보러 오는 손님들이 많았다
비만 오지 않으면 월말로 다가 갈수록 지점 안은 늘 사람으로 북적 거렸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창구 앞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고, 숨 돌릴 틈조차 없는 북새통이 계속 이어졌다.
이 같은 소란스러운 분위기 사이로 교복 차림의 귀여운 여중생 하나가 대형 유리 출입문을 밀고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