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바위 에 뜬 별 2부 제 10화
그 아이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점심시간 마다 나타나는 단발머리 소녀였다.
그렇다고 예금하는 금액이 많은 편도 아니었다. 당시 또래 아이들 용돈보다 조금 많은 이, 삼천원 정도의 소액예금이었다.
항상 혼자 조용히 걸어 들어와 수줍은 얼굴로 통장과 돈을 함께 내밀며 “ 저금이요”라고 말하곤 하던, 또랑또랑한 눈동자의 소녀.
그 소녀는 내가 바쁠데 조차 다른 여유있는 창구로 가지 않고 굳이 기다렸다가 내게로 와서 통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객장에 앉아 업무가 처리가 끝나 통장이 나올때 까지 계속 나만 빤히 쳐다보곤 했다.
당시 나는 고시준비를 하다 지도교수님의 귄유로 갑자기 방향을 돌려 대학원 석사과정을 준비중이었다.석사과정만 마치면 어떻게든 모교에 전임강사 자리를 보장해주겠다는 과분한제안이 있었다.
그러나 장학금을 지원 받는다해도 생활비와 여유 자금이 필요했다.그런 연유로 금융기관중 보수가 높다는 은행에 길어야 일이년 정도 근무할 요량으로 취업을 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별 기대와 희망없이 오직 경제적인 동기로 시작된 첫직장 생활이었다.
주산도 서투르고 회계학이나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탓에 업무는 좀처럼 손에 붙지 않았다
익숙도가 낮아 매일 매일이 피곤하기 그지없는 신입직원이었다.하루하루가 버거웠고 퇴근무렵이면 늘 진이 빠져있었다.
지점에는 실업계 상고 출신들만 있었고, 대졸 직원이라곤 유일하게 나 혼자였다.업무를 마쳐도 함께 술 한잔 나눌 동료도, 생소한 업무나 직장에서의 인관관계에대해 조언해줄 만한 선배도전혀 없었다. 학부시절에는 그렇게 인간관계도 넓고 기대주 였던 내가 어느날 갑자기 천덕꾸러기 외톨이가 된 신세이었다.
처지가 그렇다 보니 내 행동 하나하나가 상사와 동료들의 눈에 띄게 마련이었다.
도수가 높은 안경, 어딘가 어설픈 창구 응대, 동료들이 몇 분이면 끝내는 일을 십여 분씩 붙들고 씨름해야 하는 느려터진 주산 실력, 느린 타이핑,
그리고 직장내 사람들과의 거리감까지. 그런 것들이 겹쳐 나는 지점 안에서 늘 스스로 불안하고 어딘가 어색한 자리에 서 있었다.
나로서는 상황이 이렇다보니 나보다 한참 어린 여중생이었지만 그 아이가 보내는 무언의 관심은 편치 않았다.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자, 그 시선이 괜히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예금계의 고참 여직원들은 그 아이만 나타나면 노골적으로 나를 놀려 대며 웃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매일같이 되풀이되는 업무 속에서 잠깐 끼워 넣는, 별 악의 없는 농담쯤이었을 것이다.
“한 주임님, 아가씨 팬 왔어요. 오늘은 또 무슨 이유로 저금할꼬. 호호”
"그러게. 쟤는 일편단심 민들레야. 지금도 손주임만 쳐다보고 있잖아. 뺏지를 보면 우리 여중후배인데 .우리학교는 야간반이없는 학교인데 어떻게 낮에 이렇게 나와 다니는지ㆍㆍㆍ"
그런 말을 주고받으며 자기들끼리 키득거릴 때마다, 나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도 몰라 괜히 고개를 숙였다.
전날 집계표를 다시 들춰 검산하는 척 애꿎은 주산알을 두드리거나, 그도 여의치 않으면 밀린 결재 서류를 올리러 가는 척, 자리를 피하곤 했다.
물론, 그런 순진한 반응이 동료들에게는 충분히 더 좋은 놀림 소재가 되었을 것이다.
나중에는 그런 소문이 온 지점 으로 번졌다.
그 아이가 오면 대부계나 서무계등 창구 근무가아닌 남자 동료들까지 객장쪽으로 고개를 기웃거리며 한마디씩 던지고 가곤 했다.
"이 봐. 한주임. 얼굴도 저만하면 꽤나 예쁘고 사복입으면 아가씨라해도 모르겠네. 저렇게 목을 매며 관심을 보이는데 나가서 빵이라도 사주며 여동생 함 하자고 해보지 그래"
물론 농담이었지만 내 마음 속 불편함은 더 커져만 갔다.
사실,여동생이 없는 나로서는, 그 학생의 똑똑해보이는 행동과 반듯하고 예의있는 자세가 여간 예쁘고 귀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학교 수업은 어떻게 하고, 점심시간마다 이렇게 은행에 들르는 걸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해 안타까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아이가 나를 자주 보려고 일부러 소액으로 나눠 예금하러 온 것 같지는 않았다.
통장에 찍힌 예금의 잔고를 확인하고 늘 기쁜 얼굴로 고개 숙여 인사하는것을 보건데 예금의 목적이 따로 있는 것은 분명해보였다.
어느 날 점심 무렵, 그 아이가 또 은행 출입문을 밀며 들어왔다.
나를 바라보며 ‘드디어 올 게 왔다’ 또 한번 놀려 먹을 기회를 잡았다는듯 빙긋 웃는 여직원들의 시선에 얼굴이 잠깐 달아 올랐다. 그녀들 수다에 학생과 내가 먹이감이 될 이유도 없멌다.
점심시간이 되려면 시간이 조금 일렀지만,
“어제 숙직하느라 내가 아침을 못 챙겨서요. 먼저 식사 좀 하고 오겠습니다.”
하고 나는 일찌감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뒤에서 누군가 들릴듯 말듯 웃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이층식당으로가는 계단을 오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잠깐이라도 그 시선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은행 지점마다 직원 전용 식당이 이층에 따로 있었다. 문을 여니, 식당 아주머니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 말을 걸어왔다.
“한주임,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노? 평소보다 많이 빠르네. 오늘 특식은 냉면이다. 저번에 니가 냉면 먹고싶다해서 내가 오늘 큰 맘 먹고 냉면으로 솜씨 부려봤다. .”
아주머니는 큰 사발에 혼자 먹기 벅찰 만큼 냉면을 듬뿍 담아 내주었다둥둥 떠있는 보기에도 시원한 얼음덩어리, 가느디란 메밀 면발, 그위에 오려진 토마토와 수박, 편육 고명들로,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입안 가득 군침이 돌았다. 내가 유독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러나. 앗뿔싸, 그릇을 앞에 두고 젓가락으로 한입 후루룩 삼키자마자, 출납계 신 양이 숨을 몰아쉬며 식당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한 주임님, 어서요. 빨리 1층으로 내려가 보이소. 김 대리님이 급히 오라 하십니더.”
젓가락을 바로 내려놓고 곧장 일층으로 내려갔다.
통장 잔액 0원에 우는 여학생
객장 소파 한켠에 그 아이가 앉아 있었다. 통장을 두 손으로 꼭 쥔 채, 무슨 사연인지 소리는 내지 못하고 울고 있었다. 눈물이 두 눈에 그렁그렁 맺혔다가, 더는 버티지 못한 듯 통장 위로 조용히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 안쪽이 무엇에 찔린 듯 찡하게 아려왔다.
“한 주임.”
창구 뒤에서 입출금 전표가 올라올 때마다 기계처럼 확인 도장을 찍고 있던 김 대리가 얼굴도 들지 않은채 나를 불렀다.
“저 학생이 조금전에 돈을 찾으러 왔는데 잔액이 하나도 없어. 인출이 안 되니까 저렇게 울고 있다. 네가 가서 어떻게 좀 해봐라. 지점장 들어오기 전에 얼른 내보내라. 괜히 손님들이 우리 지점에서 뭔가 잘못한 줄 오해하면 곤란하다.”
나는 학생을 무슨 귀찮은 골칫거리라도 된양 취급하는 김대리에게 공연히 화가났다.
" 언제는 고객이 왕이다고 하더마는 ᆢㆍ"부아가 나서 작은 목소리로 한마디 던지긴 하였지만 식사교대로 혼자 결재서류에 도장 찍기도 바쁜 그에게 달리 대잭이 있었을리 만무했다.
설사 시간이 있었다 해도 애시당초 어린애에게 관심을 쓸 위인도 못되었다.
나는 소녀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통장을 받아 들고 펼쳐 보니, 잔고는 비어 있었다. 전날 날짜로 찍힌 출금 기록이 마지막 거래였다.
‘출금 74,000원 . 통장잔액은 0원이었다.
나는 곧장 계산계로 가서 전날 전표보관함 플라스틱 소쿠리를 뒤졌다. 전표철이 완료 되지않은 보관함을 함부로 뒤지면 순서가 바뀔 염려가 있기때문에 담당계장이 가장 싫어하는 행위였다.
다행히 그는 식사하느라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계산계 보조인 신참여직원 윤양이 전표함을 급하게 만지는 나를, 불안한 시선으로 쳐다보고있었다
입금전표와 출금전표. 그리고 저축성. 보통예금 각전표들이 계정별로 이미 분류가 완료되었고 항목별로 편리하게 각각 고무밴드로 묶여있었다.
그만큼 빠르게 확인이 가능했다.
서둘러 전표를 뒤지다 파란색 출금전표 뭉터기에서 날려쓴 이름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 아이 이름이었다.‘정현희’
중학생 또래 아이의 손으로는 낼 수 없는 아주 세련된 어른 필체였다. 그것도 여성이 쓴 필체였다.
창구에서 하루에도수백명의 고객들 글씨를 몇달을 두고 확인하다보니 글씨만 봐도 당사자가 남자인지여자인지,어른인지 아이인지 정도는 바로 구분이 되었다. 누군가 성인 여자분이 돈을 찿아가 버린것은 확실했다.(주 1* 당시에는 본인확인 없이 통장개설시 신고된 도장과 청구서 도장의 대조 여부로 인출가능)
“점심은 먹었어요?”
“……아니요.”
“그럼 밥 먹으러 가요. 밥 먹으면서 얘기합시다.”
나는 그 학생을 데리고 은행 맞은편 식당으로 갔다.
국밥 두 그릇을 시키고 하나를 아이 앞에 밀었다.
“이 돈, 뭐 하려고 찾으려던 거예요?”
“학교 수업료요. 내일까지 안 내면 안 된다고 선생님이 말했어요.”
“매일 저금하던 게 수업료였어요?”
“예. 할머니가 글을 잘 몰라서, 제가 점심시간마다 대신 왔어요.”
“그럼 은행 오는 날엔 점심을 못 먹겠네.”
“괜찮아요. 학교 마치고 집에 가서 먹으면 돼요.”
“근데 그 돈은 어떻게 마련하였어요?”
“할머니께서 싸리 빗자루를 만들어 남항동 시장에 내다 팔아요.”
“아버지, 어머니는?”
“이혼하시고 따로 살아요. 아버지는 잘 안 오시고요. 어머니는 외할머니 뵈러 가끔 들르세요. 어제도 왔다가 오늘 아침에 일찍 가셨어요.”
말 끝에 아이는 숟가락을 들었다가 슬며시 다시 내려놓았다.
국밥에서 김이 오락모락 올랐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오래 전 한 친구를 떠올렸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꽤 잘하던 친구였다.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지만 편모슬하에 집이 너무 가난했다. 분기마다 수업료 낼 때가 되면 그는 얼굴이 점차 어두워져갔다
“아무래도 학교를 그만둬야겠어. 검정고시나 준비해야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시피했다.
결국 우리가 수학여행을 갔다오니 그는 학교를 떠나고 없었다.
어떻게 해줄 수 없었다.
그 무력감은 내게 오래 남았다.
그 뒤로 나는 대학에 들어갔고 은행원이 되었지만, 가끔 돈다발을 세다 보면 문득 그 친구 얼굴이 떠오르곤 했다. 이렇게 많은 돈이 오가는데, 꼭 필요한 사람의 손에는 왜 닿지 않는 걸까. 우리 지점만 해도 유명한 한의원 원장 개인이 지점 전체 예금의 삼분의 일을 차지하고 있는데.
뜨거운 국밥 위로 김이 계속 올랐다. 나는 연신 땀을 흘리며 숟가락질을 했지만 ,
현희라는 그 아이는 숟가락질을 하는둥 마는둥 했다. 처음보다는 조금 나아 보였지만, 얼굴에 남은 그늘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학생, 너무 걱정하지 마.”
나는 말을 고르듯 천천히 말했다.
“수업료는 아저씨가 어떻게든 알아볼게. 일단 네는 수업부터 빠지지 말고 듣고.”
“……예.”
“서무과에 가서 내일까지 사정 좀 봐달라고 하고, 오늘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학교에가서 수업은 꼭 들어야해”
아이는 눈가에 남은 자국을 손으로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업무를 마치고 , 나는 통장개설 청구서 철을 다시 들춰봤다. 현희네 주소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부산시 영선동 산289-7 18통 2반’
몇달전, 예금을 찿으러온 고객이 번호표를 돌러주지않고 집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한참을 찿아 헤맸던 그 동네 근처였다.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언덕 위에는 가난한 슬레이트지붕들이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붙어 있었다.
저녘이 되면 담도 없는 판잣집 부엌 불빛들이 서로를 비추는 곳이었다. 비탈길을 올라가다 보면 젊은 사람도 숨이 가빠지는 동네였다.
좁은 골목 벽마다 오래된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아이들 웃음소리와 라디오 음악이 섞여 흘러나왔다.
언덕 꼭대기쯤에서, 나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붉게 타오르는 노을이 구덕산 뒤쪽으로 자취를 감추고있었다. 어둠이 물결처럼 밀려오는 자갈치 부두에 출어를 기다리는 원양어선단들이 눈앞에 내려다보였다.
영도다리 우측에는 근년에 완공된 주황색 부산대교가 그 위용을 뽐내며 서 있었다. 다리너머 북항 부두를 출발한 거대한 컨테이너선이 한가득 실은 화물들이 딴에는 힘겨웠든지, 긴 기적을 울리며 오륙도를 빠져냐가고 있는중이었다.
남항의 끄트머리 송도해수욕장 해안가에 즐비한 모텔, 오피스텔 고층건물의 유리창들이 석양에 반짝이고있었다
일찍감치 불을 밝힌 남포동의 네온사인, 중앙동 금융가의 불빛들이 제각각 번쩍이며 도시를 물들였다.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이었다.
부산항을 오가는 화물선의 불빛, 재개발로 바뀐 거리의 번쩍이는 간판들,
가진 자들에게는 이 나라가 천국이었다.
하지만 그 불빛 아래,
학교 등록금도 제때 마추지 못해 눈물을 훔치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건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과 다르지 않았다.
수많은 돈이 돌고 흘러도,
가난한 학생 하나의 책가방 속엔 여전히 찬 바람이 불었다.
나는 그 빛의 도시와 바다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언덕 위로 걸음을 옮겼다.
그 꼭대기 어딘가에 현희가 살고 있었다.
빗자루를 팔아 손녀를 먹여 살린다는 외할머니와 함께.
나는 수업료가 든 봉투를 양복 안주머니에 넣은 채, 산복도로의 마지막 계단을 올랐다.
막바지 계단은 생각보다 길었다.
구두 굽이 미끄러져 돌계단에 부딪칠 때마다 몇번이나 넘어질뻔한 위험한 오르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