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피로사회》 한병철
<소호의 생산성을 높여요>는 매주 금요일, 생산성을 높여주는 책을 선정해 이야기를 나누는 팟캐스트 방송입니다. 작가 소호와 고정 패널 옹님이 함께합니다. 팟빵과 아이튠즈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8년 동안의 회사 생활이 끝난 후 '생산성'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한 것은 '피로'의 문제가 컸다. 나올 무렵 가속화된 무기력증,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간 것 같은 소진된 느낌. 나를 먼저 돌보지 않으면 어떤 일을 해도 상황은 되풀이될 것 같았다. 먹고살려면 일을 안 할 수는 없는데, 한정된 시간을 생산적으로 쓰기 위해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일해야 할까. 생산성을 높여주는 책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생산성 기본기' 매거진에 서평을 쓰면서 마음의 궤도가 서서히 바뀌어갔다. 마음의 변화는 삶의 변화로 이어졌다. 8년 동안 지쳐있던 마음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경험은 놀라웠고, 놀라움은 주변으로 눈을 돌리게 했다. 퇴사 직후의 나 만큼이나 우리도, 사회도 피로했다. ‘피로사회’ 책 속의 말처럼 우리는 저마다의 노동수용소 속에서 스스로를 착취하며 살고 있었다. 내가 책들로부터 받은 도움을 나누고 싶었고, 팟캐스트라면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큰 부담 없이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옹님과 알고 지낸지는 11년. 생산성 팟캐스트를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었다. 옹이 10년 넘게 쉬지 않고 일하다가 번아웃으로 상담을 받으면서 약을 먹고 있다고 들었을 때 참 먹먹했다. 뭐 그리 꾸역꾸역 사냐며 꾸꾸사니 꾸꾸옹이니 하는 실없는 농담이나 했지만, 마냥 웃어넘길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겪은 무기력증, 옹의 번아웃, 누군가는 공황으로 누군가는 우울증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부터 생산적인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옹을 고정 패널로 초대했다.
책 '피로사회'는 긍정 과잉 시대가 가져오는 긍정성의 폭력, 우리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피로에 대해 날카롭게 꼬집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눈 밝은 피로'를 그 대안으로 제시한다. 눈 밝은 피로란, 멈춰서 피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나를 느슨하게 만들고 태평함을 주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하는 피로다. 우리가 피로한 이유는 깊은 심심함과 머뭇거림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계속 생각하기보다는 돌이켜 생각하고 사색하는 시간을 가질 때 우리는 피로에 지배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피로의 영감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보다는 무엇을 내버려 두어도 괜찮은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피로는 특별한 태평함, 태평한 무위의 능력을 부여한다. 그것은 모든 감각이 지쳐 빠져 있는 그런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피로 속에서 특별한 시각이 깨어난다. 한트케는 이를 두고 “눈 밝은 피로”라고 말한다.
- <피로사회> 중
책에는 "피로는 가장 사나운 동물들조차 그의 주위에 모여들어 마침내 피로를 나눌 수 있게 하고, 흩어져 있는 개개인을 하나의 박자 속에 어울리게 한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팟캐스트를 통해 하고 싶은 일도 이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피로한 사회 속에서 피로한 사람들이, 뭔가를 애써서 더하려고 하기보다는 피로를 꺼내놓을 수 있는 방송.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하는 동안만큼은 옹님도 나도, 듣는 사람도 피로에 녹아버리지 않고, '눈 밝은 피로'를 찾게 된다면 좋겠다.
글 - 소호
그림 - 모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