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김지수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고수가 되기 위한 ‘생산성 높이기 프로젝트’. 일과 삶, 그리고 당신의 하루에 필요한 생산성을 연구합니다. 소호의 생산성을 높여요.
매주 금요일, 작가 소호와 꾸역꾸역 사는 꾸꾸옹, 15년 차 생활체육인 시봉님이 함께합니다. 팟캐스트/팟빵/네이버 오디오 클립을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은 평균 연령 72세의, 우리가 좋아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묶은 인터뷰집이다. 수십 년을 일하며 살아낸 어른들은 모두가 자기 인생의 철학자가 되어, '어떻게 일하며 늙을 것인가'에 대한 실마리를 들려준다. 나이 들어도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죽기만 기다린다고 말씀하시는 노라노 여사님, 인생이란 본래 씁쓸하고 불시에 맨홀에 빠지지만 닥치기 전까진 재미있게 사는 게 제일이라는 윤여정 선생님, 행복은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오듯이 지나가는 감정일 뿐이라고 하는 노은 화가님. 오롯이 자기 인생을 살아낸 어른들에게서 우리는 위로받고, 동시에 우리의 앞날을 그려볼 수 있다.
"진정한 어른은 성취의 업적에 압도당하지 않고 ‘일한다’는 본연의 즐거움을 오래 누릴 줄 알았다. 그것은 ‘성공과 열심’의 뒤틀린 동맹에 적잖이 실망한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성찰의 실마리를 안겨준다. 우리와 대결하지 않지만 우리와 대결할 정도의 힘이 있는 어른 앞에서 우리는 안정감을 느낀다. 그들의 말이 ‘꼰대의 잔소리’로 여겨지지 않는 것은, 그들의 정직과 결핍과 특유의 다정함 덕분이다."
-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중
배우 윤여정
미모의 여배우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아우라를 뿜어내는 윤여정 선생님은 그 원동력이 열등감이라고 말씀하신다. 쿨하게 못생김을 인정하고 그 자리를 노력으로 채우는 자세. 부족함을 숨기려 하기보다 더 드러내고, 늘 실수하지만 반성한다. 공부는 못해도 숙제는 꼬박꼬박 해갔다는 성실함, 소화할 수 없는 정도의 대사까지 외워서 해낼 때 행복하다는 열성이 윤여정이라는 멋진 배우를 만든 힘이다.
요리 블로거 정성기
10년째 치매에 걸린 어머니에게 삼시 세끼 극진한 밥상을 차려낸 정성기님. 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적 없냐는 질문에는 오히려 이 일이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말한다. 강미정 시인의 말을 빌려, 아주 작은 일이라도 10년을 계속하면 인생이 바뀌고, 세상의 모든 큰일이 자주 작은 일을 계속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면서. 10년 동안 외박 한번 못했지만 아내와 딸의 존경을 받는 어른이 되었다 한다. 아내 휴대폰에 '좁쌀영감, 밴댕이'라고 저장되어있었던 본인 이름이 이제는 '캡틴'이 됐다고 말하는 이 어른에게서, '일'이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닌 '스스로 일궈나가는 배움'임을 배운다.
화가 노은
스물세 살에 파독 간호사로 고국을 떠났다가 세계 미술계를 놀라게 한 화가가 된 노은님. 거칠고 원시적인 화풍의 그림처럼, 인생 자체가 그림 같았던 노은님은 고생하며 살다 보니 가장 어렵고도 쉬운 게 '놓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행복이란 것도 별게 아니라고, 배탈 났는데 화장실에 들어가면 행복하고 못 들어가면 불행한 거라고, 막상 나오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지나가는 감정일 뿐이라고 말한다. 다만 눈떴는데 아직도 하루가 있으면 감사할 뿐이라고. 창문 열면 하얀 오리가 쳐다보고 여우와 사슴을 이웃 삼아 지낸다는 노은 화가님. 굴곡진 인생을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그림 그리는 일'도 더 본연의 색으로 빛을 내기 시작했던 것 아닐까.
"어떤 일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편한 세상이 돼요. 매일매일 벌어지는 좋은 일도 안 좋은 일도 수고스럽겠지만 그냥 받아들이세요. 날씨처럼요. 비 오고 바람 분다고 슬퍼하지 말고 해가 뜨겁다고 화내지 말고."
- 노은님 인터뷰 중
비단 돈을 벌기 위한 일만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효도든 운동이든 공부든 꾸준히 '배워나가는 것' 혹은 '배워나가려는 자세'에 '일하는 본연의 즐거움'이 있는 것 아닐까. 일하며 즐겁기란 과연 쉽지 않지만 세월을 그렇게 살아낸 어른들이 있기에 아직은 우리도 희망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