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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호 Aug 15. 2019

한 사람이 생산성을 꽃피우는 과정

<소셜 애니멀> 데이비드 브룩스



채사장의 '열한 계단'이라는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지. 이 책은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나 밀리언셀러를 만들고 또 홀연히 떠난 그가 학창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한 계단 씩 성장했는지에 대한 성장기다. 불편함과 균열 그리고 깨달음 속에서 묵묵히 계단을 오르는 '한 사람'의 이야기는 마냥 순탄하거나 밝지만은 않고, 그래서 경이롭다. 채사장은 말한다. “충분한 시간과 경험이 주어지지 않은 가운데, 자신의 궁극적인 모습으로 한 번에 도약하는 사람은 없다. 인생이라는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자신만의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


데이비드 브룩스의 '소셜 애니멀'은 사람이 사람을 만나 배우고, 정체성을 만들고, 견디고, 성취하고, 사랑하는 인생의 과정 이면에 있는 사람의 무의식과 세상의 작동 원리에 대한 이야기다. 채사장이 한 계단을 오를 때마다 마주한 불편함은 어쩌면 모든 사람이 겪는 고통이고 두려움이 아닐까. '소셜 애니멀'에 나오는 두 사람, 에리카와 해럴드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채사장의 모습이기도,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들의 인생 일대기를 제3자의 눈으로 조망하면서 세상 속에 파묻혀 살고 있는 '나'의 모습도 비로소 멀찌감치서 바라볼 수 있다. 지금 나는 몇 번째 계단을 오르고 있는 중일까.




| 해럴드, 배우다 |

학교 스포츠 스타인 해럴드는 테일러 선생을 만나 배우는 법을 배운다. 테일러 선생은 해럴드가 무의식을 넘나들며, 의식적인 과정과 무의식적인 과정을 통섭하는 방법을 배우게 한다. 4단계의 과정을 거쳐 해럴드는 지식의 꽃을 피운다. 고등학생 해럴드가 논문을 완성하는 통찰을 얻기까지의 지식 습득 과정은 이렇다.


1단계

최대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한다. 테일러 선생은 해럴드에게 읽어야 할 책을 미리 정해주지 않고, 책 다섯 권을 읽은 뒤에 책 목록을 가져오라고 한다.

2단계

테일러 선생은 해럴드에게 읽은 책을 다시 읽으라고 한다. 해럴드의 뇌에서는 정보를 재조직한다. "학습은 단순히 어떤 사실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다. 각 정보들이 맺고 있는 관계를 내면화하는 것이다. 전문가는 이 구조를 자기 것으로 체화해서 갖고 있으며, 그 구조 안에서 작동하는 원리를 암묵 지식으로 가지고 있다."

3단계

테일러는 해럴드의 지식이 표면으로 나올 수 있도록 일기를 쓰게 한다. 내면에 묻혀 있는 지식을 될 수 있으면 저항 없이 끄집어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선생은 해럴드가 주제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연습을 하도록 시켰다. 이는 절대 시간 낭비가 아니다. 왜냐하면 정신은 가장 태평할 때 가장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4단계

테일러는 해럴드가 이제는 요점을 정리할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해럴드는 책과 일기를 다시 보며 정리를 시작한다. 과학 저술가인 스티븐 존슨이 '느린 예감(slow hunch)'이라고 부르는, 자기가 길을 제대로 가고 있다는 희미한 느낌을 받는다. 드디어 해럴드의 뇌는 하나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고, 좌절을 반복하고 막다른 길에 몰려 깊은 잠에 빠졌다 깨어난 어느 날, '유레카'를 외친다.

 


| 에리카, 이겨내다 |

어떤 학자들은 아이들을 민들레와 난초로 구분한다. 민들레는 감정의 기복이 심하지 않고 어디에 있든 잘 헤쳐 나간다. 난초는 쉽게 변한다. 좋은 조건에서는 활짝 피어나지만 그렇지 않으면 금방 시든다. 에리카는 난초였다. 금세 흥분하는 성격 탓에 주변을 망쳐버리기 일쑤인 그녀는 생각한다. "왜 나라는 인간은 나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걸까?" 에리카가 자기를 통제하는 법을 알아가며 성장의 꽃을 피우는 과정은 이렇다.


자기 규율 조작

에리카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자기를 통제하는 연습을 한다. 예를 들면 테니스 경기를 치르기 전에 벤치에 앉아서 조종사가 조종석으로 들어설 때의 신중한 목소리를 마음속으로 재생시킨다. 물병을 항상 동일한 위치에 두고, 라켓 커버는 늘 앞면이 바깥을 향하도록 하고, 서브 에이스 다섯 개를 연속으로 넣는다고 생각한다. 들어가지 않을 것 같아도 스스로 느낌을 위장한다. 스스로 끊임없이 만족을 지연시키는 연습을 하면 큰일이 벌어졌을 때 의연하게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

과제 중심적 사고

코트에 들어서면 세 가지만 생각한다. 회전, 위치, 속도. 상대 선수나 심판의 고함 소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의 인격도, 재능도, 자아존중감도 없다. 오직 과제를 한가운데 둠으로써 에리카는 의식적인 자아를 차분하게 진정시킬 수 있다. 오로지 경기에만 몰입한다.

자기 감시

평정이 깨질 때면 에리카는 자기와 세상 사이에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저건 내가 아니야.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이야." 그리고 새파랗고 예쁜 풀밭을 상상한다. 한쪽에서는 으르렁거리는 개, 한쪽에는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선수가 있다. 에리카는 개가 있는 곳에서 선수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는 자기 모습을 그린다.

정체성 형성

테니스는 그녀의 마음속에서 더 거대한 우주적인 목적에 부합한다. 칼럼니스트 월터 리프만은 다음과 같이 썼다. “인간 본성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 배고픔이나 사랑이나 즐거움이나 명성, 심지어 목숨 그 자체보다 우선하는 것, 인간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자기가 어떤 질서 정연한 규율 속에 놓여 있다는 확신이다.” 테니스는 몇 년 동안 에리카의 정체성이 된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결국 인간은 의사결정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방랑자일 뿐이지만, 현명한 방랑자는 불확실성과 수수께끼와 의심 속에서 참고 견딘다."라고 말한다. 풍경이 복잡할수록 더 많은 끈기를 발휘하고, 풍경이 혼란스러울수록 조망은 더 관대해진다고. 자신의 지식이 얼마나 모자라는지 알고, 무지에 맞설 때 자기가 얼마나 허약한지도 알고 있다. 또 자신의 아주 작은 데이터로 허술하기 짝이 없는 이론을 만들고, 억지로 고정관념에 끼워 맞출 것을 안다. 하지만 메마르고 지루하고 절망스러운 시간을 견뎌낸 뒤에야 비로소 궁극적인 지혜, '메티스(metis)'를 갖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불편함에 맞서 계단을 오르는 과정은 힘들고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린 예감 가운데서 오늘도 무거운 한 걸음을 떼는 한 사람이 있고, 우리가 있다. 에리카와 해럴드가 만났듯, 우리도 몇 번째 계단에서 만날지 모를 일이다.




소셜 애니멀

데이비드 브룩스


목차

1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숨은 유혹자

2 나는 왜 이렇게 행동하는가

3 관계, 인간의 첫 번째 성장조건

4 연습과 경험이 신경망을 바꾼다

5 안정과 성공의 함수관계

6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학습법

7 재산이 아닌 문화를 물려주라

8 지능보다 자기 통제력

9 문화가 행동을 결정한다

10 케케묵은 신화와 작별하라

11 충동은 힘이 세다

12 행복을 예측하는 유일무이한 지표

13 하나가 된다고 느끼는 순간

14 치명적인 실수들

15 매티스, 문제를 해결하는 실체적 기술

16 집단의 사고가 개인의 사고보다 우월하다

17 사람을 만드는 것은 관계다

18 도덕은 본능이다

19 정책 대신 경험을 제시하라

20 본성을 거스르는 시스템이 문제다

21 정신을 살찌우는 정서교육

22 인생이 던지는 4가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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