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전시 준비로 작업노트 정리
6월 5일부터
택수 사장님, 수잔님,
순심과 함께 작은 그룹전을 합니다.
매년 서촌의 베어카페에서
공간을 허락해주고 계시는데요,
벌써 올해로 4년째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짧게나마 쪽글들을 모아서
작업노트를 정리했어요.
기록으로 좋을 것 같아 업로드해요.
그림도 함께 첨부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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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내 자리는 거기에 있었다.
안전하지 않은 나의 집.
거기가 내 몫의 자리였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그 자리에 앉았다.
엄마와 동생의 조각난 자리를,
어쩌면 빼앗아서
내 몫의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어떤 모양새로든,
온전히 자기 몫의 자리가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세상에 우리의 자리는 없는 것 같았고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들과 모여 살았다.
단칸방, 반지하, 작은 빌라
우리의 형편이나 사정은 윗집 아랫집,
그 누구들과도 별다를 게 없었다.
그다지 가진 위로도, 나눌 것도 없어서
우리는 우리의 불행을 곱절로 불려 먹었다.
세상 본연의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적이 없으므로
고군분투로 얻은 내 것은 한없이 작아 보이고,
어쩌면 지금 얻은 것들 역시
다 거짓말인지도 모른다.
때때로 엄마는 나를 집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그 무엇도 집이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가졌든 아니면 갖지 못했든
그 무슨 이유로든, 사람이라면
필요와 부재를 느낄 수밖에 없는 것들.
그래서 기꺼이
여러분이 사는 집의 문이 되어야겠다-생각하고,
나는 여러분들의 문이 되었다.
나의 최선이 그리 크지는 않았겠지만,
낡은 현관과 창틀이 되었다.
미닫이 문의 때 묻은 유리,
그을려 일어난 바닥의 장판이 되었다.
깨진 거울의 유리,
부서진 책상,
의자의 구부러진 다리,
엎어진 밥상,
.
.
.
하지만 결국,
우리는 모두 각자
언젠가는 집이 없어도 괜찮아야만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엄마는 걸을 수 없는 나의 동생도
아주 많이 사랑했지만,
내가 받는 사랑과 그가 받는 사랑은
조금 다를 수밖에 없어서,
나에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언제나 명확했다.
쉽게 말해,
내가 가장 정상성에 가까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는 기꺼이 그들의 문이 되어야만 했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그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는 실패했다고 느꼈다.
빈번하게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한 사람이 절반의 생으로 애써 얻은 것들을
그렇게 나에게 온 것들을
내가 독차지했던 것들을
그 자리를 밟고 섰음에도
부끄럽고 당연하게도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나에게는 모든 경계가 선명하다.
안과 밖을 나누는 일이 습관처럼 익숙하다.
내가 느낀 경계를 넘어가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보호받고 싶든, 상처받기 싫든, 부끄럽든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이유로 쉽지 않다.
그저 내가 그어놓은 선을
무색하게 여겨 줄 누군가를,
또는 세상이 그어놓은 선까지도
개의치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때로는,
그 어떤 경계에도
무색하고 개의치 않을 사람이
내가 될 수 있었으면 바라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은 항상 거기에 있었지만,
내가 매번 알 수는 없었다.
나는 돌아오고 나서야 떠올렸다.
내가 떠나왔거나 떠나오고 싶어 했거나
그럼에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런 곳들을.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주 길게 대답해야 할 것 같다.
오래전에는 한 사람하고만 주고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수많은 감정이 나에게 사랑이었다. 그 시간들로부터 쌓인 것들이 가장 큰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랑이라는 짧은 단어에 수많은 세상을 담고 싶다.
약간의 욕심을 부려, 사랑이라는 두 글자 안에 이 세상을 모두 욱여넣어 보고 싶다.
사랑은 당신을 오래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당신을 잠 못 들게 하는 시간 속에서,
어쩌면 사랑하기 때문에 알게 된,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을 헤아리게 하는 밤이다.
나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들을 생각하며
과연 나는 무엇을 사랑해서
무엇을 원하고 있나 되짚어본다.
많은 경우 사랑이 이루어지는 일은 쉽지 않고
대개 사랑은 나를 지나쳐가는 것으로,
영원히 가닿을 수 없는 것으로
또는 절대 내가 원하는 모양이 아닌 것으로
자꾸만 나를 외롭게 한다.
그래서 사랑을 생각하다 보면
세상에서 나만 똑 떨어져 소외되는 기분이었다.
내가 바라는 건 꽤 과분하고 명확했기에,
사랑받기를 원했다.
내가 주는 사랑도 상대방이 가치 있게 여겨주길 바랐다.
이해받기를 바랐다. 나라는 사람이 세상에 발 딛고 서 있을 자리가 필요했다.
항상 어딘가의 가장자리에 있던 나를, 누군가는 기억해 주길 바랐다. 그래서 사랑받기 원했다.
내가 없을 때에도 나의 부재를 알아주길 바랐다. 그래서 사랑받기 원했다.
필요와 존재, 내 위치를 증명하지 않아도 날 사랑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누군가가 나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서
내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을 때,
그들이 내어 준 자리를 내가 족하게 받았을 때
결국 내가 사랑받는지 궁금했다.
그 세상에 내 자리가 있을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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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제 나는 내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나와 그 또는 그들이 행복한 세상이기를 바란다.
분명하고 구체적인 행복이 늘어나게 될
세상을 사랑하기로 했다.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개인들이 늘어난다면,
세계의 시스템은 조율될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너의 증명이다.
나는 기꺼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증명이 되고 싶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세계의 방향을 함께 가늠하는 일이
되기를 바라면서,
우리가 스스로의 존재를
감당하기 위해 쓰는 시간보다
경험할 수 있는 하루가
조금 더 다채롭기를 바라면서,
많은 동료 시민들이
서로에게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어
세상의 더 많은 경계를 무너뜨릴 수 있기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녕을 바라는 일이
조금 더 사소해 지기를 바라면서,
나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그리고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