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소리가 들려온 건 아랫집이 이사오던 날 저녁부터였다. 이삿짐 트럭이 돌아간 후 아홉 시쯤부터 시작된 '소음'은 새벽 1시까지 이어졌다. 피아노 소리는 안방과 작은 방에서 가장 크게 들렸지만, 벽을 타고 올라온 소리는 온 집안에 골고루 퍼졌다.
결혼 10년 만에 집을 마련했을 때는 세상 걱정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부부가 열심히 돈 벌며 대출금을 갚고, 두 아이 잘 키우면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잔금을 치르고 일주일 예정으로 공사를 진행 중일 때 누군가 잠깐 열린 문을 열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우리는 인테리어 업체를 쓰는 것이 아니라 을지로 방산시장을 돌며 각각의 공사 업체를 찾아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고, 나는 마침 그날 공사 중인 집에서 진행을 체크하고 있었다.
-계세요?
-누구세요?
-저희 아랫집에 이사 올 사람인데요. 공사 중이신 거 같아서, 잠깐 보고 가도 되나 싶어서요.
-네, 보세요.
-어머, 공사 끝나면 깨끗하겠네. 이거 어디 맡기셨어요?
-아뇨, 직접 업체 섭외해서 하는 중입니다.
-아, 돈을 많이 아낄 수 있나요?
-네, 차이가 좀 나더라고요.
-아, 그러면 혹시 그 업체들 좀 소개해주실 수 있으세요?
아랫집에 새로 이사 올 사람들이라고 하니, 나는 흔쾌히 그러마라고 대답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 공사 부문별 업체 이름과 전화번호, 공사 범위, 가격, 공사 순서 등을 엑셀 문서로 꼼꼼히 정리한 후 받아둔 메일 주소로 파일을 보낸 건 11시가 다 되었을 때였다.
회신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회신이 오지 않자 조금 기분이 나빠진 건 사실이었다. 공사를 모두 끝내고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집을 공사한 업체 사장님 한분이 아랫집에서 공사 중인걸 보고, 그제야 우리 집을 공사했던 업체들이 고스란히 아랫집 공사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랫집 공사가 마무리되고 일주일 후쯤 이사 온 아랫집이 우리에게 건넨 첫 번째 선물이 바로 '피아노 소리'였다. 메일에 대한 회신이 없었기에 딱히 인사를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이런 '인사'를 받게 될 줄은 몰랐다. 아이들이 자기 방에서 놀다 잘 동안 주방에서 아내와 한 잔을 즐기던 나는 저러다 말겠지 했지만, 결국 소리는 자정이 넘어까지 이어졌다.
며칠간 저녁에 피아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이러다가 말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아무렇지 않게 넘긴 게 우리의 실수였다. 한 달 만에 처음 아랫집으로 내려갔을 때 나에게 공사 업체를 소개해달라 했던 부부가 '우리는 방음벽도 설치했는데 무슨 문제가 있다고 그러세요?'라고 돼 물었을 때 나는 비로소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방음벽을 설치했느냐 아니냐는 우리의 사정이 아니며, 그것보다 자정이 넘어까지 피아노를 치거나 매일같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주말까지 피아노를 치면서 아주 자주는 자정 넘어까지 피아노를 치고 그 소리가 다른 집의 생활에 심각하게 영향을 주는데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했을 때, 아랫집 여자는 자신의 두 아이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모두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으며, 방음벽까지 설치했는데 무슨 소리가 난다고 내려와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답했다.
주말이면 아침 9시가 넘어서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50분 치고 10분 쉬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때문에 나는 매주 금요일이면 토요일과 일요일에 갈만한 곳을 찾아 주말 동안 가족들과 '강제' 외출을 해야 했다. 가끔 외출을 하고 돌아올 때 아랫집에 불이 꺼져 있는 것을 보면 좋아하다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잠시 후 들리기 시작하는 피아노 소리 때문에 스트레스는 더 커졌다. 결국 6개월이 지나고 나서는 너무 힘들 때면 경찰을 부르곤 했다. 그러나 경찰이 돌아가고 나면 다시 피아노 소리가, 더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얼마 후부터 밤늦게 피아노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TV소리를 키우거나, 공을 튕기거나 하는 등의 소심한 대응을 했지만 그것이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다. 온전한 쉼터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집이라는 공간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누군가와 매일 싸움을 벌이는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와 아내는 결국 후에 신경정신과에서 상담을 받고 약간의 약을 처방받기에 이르렀다.
내가 아랫집 남자와 나눴던 마지막 대화는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그날도 초저녁부터 피아노소리가 매우 심하게 들려오기 시작했고, 밤늦도록 이어졌다. 결국 참지 못하고 내려가 아랫집 남자를 밖으로 불러냈을 때 그는 내게 '왜 나한테 자꾸 이러냐'는 식으로 말했다. 내가 '그럼 아저씨한테 말하지 누구한테 말하냐'라고 했더니 그는 그저 시선을 회피하고 말았다. 내가 '학교에 연습실이 있어서 9시까지 할 수 있다고 들었다'라고 했더니 '애들이 집에서 한다는데 뭐 어떡하냐'라고만 했다. (내 입장에서 웃긴 건, 그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데가 집에서 차로 불과 10분밖에 걸리지 않는 곳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자꾸 이렇게 불러내서 얘기하지 마라'라는 말을 끝으로 들어가 버렸고, 나는 놀이터에 남아 분노를 삼킬 뿐이었다.
1년이 좀 지났을 때 나는 그간의 내용을 정리해 당시 '층간소음분쟁조정위원회'라는 곳에 신고를 하고 조정 작업을 요청했다. 조정위원이라는 사람이 나와 조사를 한 후 평일은 저녁 9시를 넘기지 말고, 주말 또한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피아노를 칠 것으로 정리하고 조정작업을 했지만, 아랫집도 우리도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다. 결국 우리 집은 주말에는 대부분 외출했다가 오후 5시가 넘어 귀가하는 쪽을 택하게 되었고, 평일에도 9시까지는 참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현관밖이 부산스러워지고, 주방 창밖으로 트럭이 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이사가나 하면서도 '설마?' 하는 생각이었는데, 아침을 챙겨 먹고 집을 나서다가 나는 하마터면 탄성을 지를 뻔했다. '아랫집이 이사를 나가는 것이었다' 집으로 다시 들어가 아내에게 말하고, 돌아 나와서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만나는 사람들마다 아랫집이 드디어 이사를 간다라는 얘기를 했더니 모두들 축하해 주었다. 그날 나는 마침내 누군가, 무엇인가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엉덩이에 불난 것처럼 소리소문 없이 부리나케 나가버린 아랫집에 대해 전해 들은 얘기는 그 집 사정이니 내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람의 예의와 염치에 대한 것이었다. 예의와 염치가 없으니 배려가 없고, 그런 게 없으니 부끄러움도 모른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 '저 사람들에게도 사정이 있나 보다'라는 생각만 했으니 어쩌면 나도 참 한심한 사람이다. 그런 내가 아내의 눈에는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까? 나는 가끔 내가 '좋은 사람 콤플렉스'에 걸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이제야 와서 느끼는 건 요즘같이 복잡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그건 결코 좋은 삶의 방식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작은 행동과 말로부터 그 사람을 파악하고, 돌아가는 상황을 판단해 간혹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데 오랫동안 보통의 관점에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동할 수준으로만 대다수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을 규정해 왔으니 '넌 아직 세상 험한 일을 못 겪었나 보다'라는 힐난하는 듯한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셈이다.
출문여견대빈(出門如見大賓) '밖을 나서는 순간 마주치는 모든 사람을 큰 손님 섬기듯 하라'
명심보감에 나오는 말이다. 예의와 염치, 부끄러움은 이런 말을 몸에 새기면 절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