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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보노야 Oct 24. 2024

야구와 짜장면

야구, 그게 뭐라고.

짜장면이 배달되어 왔을 때는 제법 긴장되는 상황이었다.

원아웃 1루와 2루의 상황. 우리팀 타자는 첫 공에 배트를 내지 못했다. 나는 집중해서 보느라 벨소리에 반응을 못했는데, 두 번째 벨이 울렸을 때 짜장면이 왔다는 걸 알았다. 

-그냥 두고 갈 것이지. 

대문을 열자 배달원이 짜장면 한 그릇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가 카드단말기를 꺼냈을 때 계산을 안 했다는 게 생각났다. 카드 영수증과 함께 짜장면을 들고 돌아왔을 때 투아웃으로 바뀌어 있었다. 

-바보 같으니라고, 삼진이라니!  

-그래, 어차피 아웃될 거면 삼진이 낫다. 병살타를 쳤더라면, 아휴. 저런..

-감독은 뭐 하는 거야, 대체. 이 중요한 상황에 저런 놈을. 배트도 제대로 못 냈을게 뻔한데.


짜장면을 올려둘 식탁을 가져왔을 때 상대 투수가 공을 1루수에게 던졌다. 이번 시리즈에서 4할이 넘는 타율을 보이고 있는 우리 팀 타자를 상대로 한 첫 번째 공이 존에서 크게 빗나가자 상대 감독은 지체 없이 교체를 선택한 것이었다. 

-이런.. 흐름을 깨자는 거야, 뭐야.


TV화면이 광고 영상으로 바뀌었다. 나는 재빨리 김치와 물을 가져오고 전자레인지에 햇반을 돌리기 시작했다. 짜장면 그릇에 덮인 랩을 벗기고 짜장을 비비기 시작했다. 

-짜장면 한 그릇쯤이야. 엇... 이런 미친... 

짜장을 들이붓고 비비다가 짜장이 튀고 말았다. 너무 서두르다가 ㅠㅠ 

-에라이 

투덜거리며 행주를 가져오고, 닦고 그걸 치우는 사이에 화면은 어느새 바뀌고 있었다. 

바뀐 투수는 한 개만 더라는 제스처를 취하고는 몸을 움직였다. 

타자와 투수 모두 셋업 포지션에 들어가자 짜장면을 말아 올리던 내 손이 멈췄다. 

퍽!

바뀐 투수가 던진 첫 번째 공이 우리 타자의 헬멧을 때렸다. 

-저런 썅.....

타자가 자빠지고, 포수가 일어섰다. 놀란 TV 중계팀이 버벅거리는 사이 심판은 투수에게 자동 퇴장을 지시했다. 투수는 고개를 숙인 채 나가다 말고 타자를 향해 인사하려는 듯했으나, 넘어진 타자와 달려 나온 코치는 그걸 볼 새가 없었다.

미안하게도 난 쾌재를 불렀다. 

-기세가 넘어왔네. 

난 얼른 폰을 꺼내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썼다. 

-대박, 야, 이러다가 이기는 거 아니냐. 홈런이면 역전이야, 역전

-그르니, 대박

-그래, 못 칠 거 같으면 몸으로라도 때워야지

-좀 아프긴 하겠다

-약간 비껴 맞은 거 같기도 하고, 안 아파도 누워있어야지. 지금은.

-야, 근데 쟤들 투수가 남았나?

-우리는 아마 대타 내지 않을까? 누가 있지?

-그게 문제구만. 낼만한 애가 없어. 에휴.. 진짜. 맨날 리빌딩은 무슨


비비다만 짜장면을 마저 비비고, 젓가락질을 시작할 때 경기가 다시 진행되었다. 상대팀 투수는 1군으로 올라온 지 며칠 안 된 왼손 투수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 팀 타자는 역시나 대타였는데, 이 상황에서 과연 맞나 싶은, 그런 선수가 올라왔다. 어쩌면 올해를 끝으로 은퇴를 하게 될 선수였다.

-야, 이게 모냐. 지금 이 상황에서 쟤가?

-아냐, 가끔 한방씩 쳐. 가끔이라 그렇지

-음, 긴장하지 않을 만한 선수를 고른 건가?


투수의 첫 번째 공이 존을 크게 빗 나갔을 때 나는 볼넷이나 사구를 기대하기 시작했다. 

-한 점씩 가면 되지, 한 점씩

투아웃 이후 상대팀 수비는 정상적인 수비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자 우리 주자들의 리드폭이 커지고 있었다. 젓가락질을 하다 말고, 투수의 두 번째 투구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중계진이 소리를 질렀다.

-앗!!!!!!!!, 홈에서 아웃이에요.

-이게 뭐죠? 작전이 나온 건가요?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지금 상황은 홈스틸 작전이 나올 타이밍은 아닌데, 투수를 보고 3루 주자가 단독으로 시도한 거 같아요. 아, 좀 무리한 시도였네요.


-이런 씨..............

갑작스러운 3루 주자의 돌발 홈스틸 시도와 아웃에 공격이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우리 단톡방도 일시에 멈추어 버렸다. 아무도 할 말을 찾지 못하는 거 같았다. 욕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그걸 단톡방엔 쓸 수 없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에라이. 저 개~. 

짜장면을 먹다 말고 던진 젓가락이 밥상에서 튀어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런 니미럴, 나는 반복해서 나오고 있는 홈스틸 아웃! 장면을 보면서 욕을 하다 말고 TV를 꺼버렸다. 




불어버린 짜장면을 먹고, 햇반을 가져다가 비빈 후 나는 슬며시 TV를 다시 켜고 말았다. 이기기는 쉽지 않아 보여 보기는 싫고, 그러자니 또 안 볼 수도 없고.


에이, 야구, 그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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