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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May 16. 2024

스무 장의 명함으로 남은 사람

명함의 의미

IMF 때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같은 분야로 진출하기 위해 공부했던 앞선 기수의 선배들은 한 명당 서너장의 추천서를 손에 들고 고민했었다는데, 우리 기수에게는 추천을 요청했던 회사가 하나도 없었다.

한 친구와 나는 취업을 위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를 가방에 넣고, 일주일 이상 서울 시내 회사를 돌아다니며 서류를 뿌리기도 했다. 이른바 빌딩치기라는 건데, 그냥 맨땅에 헤딩하듯이 두드리고 다니는 거였다. 실제 효과는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힘든 시기였다.

가끔은, 그렇게 직장을 찾아다닐 시간에 경제와 환율, 증시를 공부해서 여기저기 손을 벌려 달러를 사고, 주식 시장을 기웃거렸더라면 돈을 더 벌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만약에'라는 상상을 했었다. '만약에'인데 무슨 생각을 못하겠나.


어렵게 직장을 얻긴 했지만 회사의 체력은 약했고, 하고 싶었던 일은 따로 있었고 하다보니, 이직이 반복되었다. 어떤 곳은 1년만에 나오기도 했고, 어떤 곳은 3년만에 나오기도 했다. 잘한다는 소리를 듣다보면 더 꿈에 근접하는 곳으로 가고 싶었고, 날 찾는다는 곳이 있으면 만나서 들어보고, 비전과 조건에 혹해서 옮기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명함이 쌓였다.


나와 친한 지인은, 모임에서 만날 때마다 농담삼아 '명함은 그대로시죠?' 하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님 명함이, 어디보자...몇개더라. 하고 또 나를 놀리곤 했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턴가 저 농담이 통용되는 모임에 나가면, 나 스스로를 '스무 장의 명함으로 남은 사람'이라며, 윤흥길 작가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소설 속 구두가 주인공에게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상징했다면, 나에게도 명함은 자존심이나 희망같은 게 아니었을까? 직장을 잡기 힘든 때였고, 다들 힘들 때였으니 -생각해보면, 97년 이후에 대한민국에서 직장생활 하는 사람들에게 힘들지 않았던 때가 있긴 했나 싶다. 쉬운 해고, 느슨한 계약, 얇아진 지갑, 높은 물가상승 등 등- 친구를 만나거나 모임에 나가 명함을 꺼내서 주고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다행스러웠을 것이다. 


'료마가 간다'라는 소설에, 

'수치라는 것을 버려야 비로소 세상 일은 이뤄지느니라' 라는 료마가 했다는 말이 나온다. 

밥벌이 때문에, 미래 때문에, 생존 때문에... 다들 목적과 이유가 다르지만, 명함을 통해 이루려는 것은 다 같을 것이다. '내 일, 세상 일' 

일을 만들려고 할 때 내미는 명함에는 자존심이 담겨있지 않다. 그 때의 명함에는 가족의 생계와 내 일의 성패만이 달려 있을 뿐이다. 


내가 만든 스무 장(?)의 명함은 밥벌이와 생계로 시작해 미래에 대한 꿈으로 바뀌었다. 때로는 미래에 대한 꿈으로 시작해 밥벌이와 생계로 바뀌기도 할 것이다.
나를, 당신을, 응원한다.
그게 스무 장으로 남든, 백 장으로 남든 혹은 한 장의 명함으로 충분한 당신이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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