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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보노야 May 16. 2024

백승수와 료마

아직 쓰여지지 않은 것들을 위해

한국 프로야구 경기를 1982년 프로야구가 처음 시작될 때부터 봐왔다. 개막전 경기를 TV로 과자 먹으면서 봤는데, 그냥 MBC 청룡을 응원했다. 그래서 마지막에 끝내기 만루홈런이 나오는 걸 보면서 마냥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때 충청도로 이사를 했는데, 3학년때 빙그레가 생기면서 빙그레 이글스 팬이 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보살팬으로 살아왔다. 이글스는 한국시리즈에서 딱 한번 우승했는데, 나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짓던 1999년 5차전 경기를 잠실야구장에서 직관했다. 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대학생 알바생과 같이 갔는데, 그 친구는 롯데 팬이라고 해서 둘이 따로 떨어져서 봐야 했다. 그때 내가 있던 곳 근처에 개그맨 남희석씨가 있었고, 경기가 종료되자마자 김승연회장이 경기장으로 걸어나오던게 생각난다. 너무 기뻐서 같이 갔던 알바생과 소주라도 한잔 하려고 찾아헤맸는데 결국 못만났고, 다음날 회사에서 보고 야구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올 초 올해 프로야구가 개막하기 전에 친구가 얘기해서, '스토브리그'라는 드라마를 보게 됐다.

남궁민 배우가 연기 하는 걸 처음 봤는데, 연기를 너무 잘해서 이후에 다른 드라마를 찾아볼까 했지만 그정도까지 드라마에 열의가 있는건 아니어서 포기했다.


야구를 좋아해서 지금도 욕하면서 껐다가 궁금해서 켜고, 다시 욕하면서 끄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관심을 아예 끌까 하다가도 가끔 이기는 통에 응원하는 마음을 버릴 수도 없고, 이글스 말고 또 다른 팀을 응원하기에는 이글스 팬으로 살아온 시간이 너무 길어 야구를 안보면 안봤지 굳이 다른 팀 응원하면서 볼 것까지야 하며 끓었다 식었다를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스토브리그를 보다보니, 마음에 와닿는 대사,장면이 몇개 있었다.

-망해도 새로 망하면 좋겠다. 똑같이 망하는 것보다.

-이력서 한 줄 한 줄 쉽게 적은 사람 없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자기 가치를 우리가 왜 인정해 줍니까?


뭐 이런 것들인데, 사업을 하면서, 예전에 직장을 다니면서 겪은 일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내가 같이 일하는 아랫사람한테 했던 얘기도 생각나서 짠했다.

-맨날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도 비슷한 이유로 안되는 거같으니 다음번엔 그걸 더 준비해서 해야겠다 싶지만, 결국 안되는 이유는 또 똑같은 이유때문이었다. 아예 다른 이유로 망하면 아 이번에 또 하나 배웠네 싶은데 그게 아니니 속상했던 기억이 났다.

-첫 직장에 들어갈 때부터 이직 하던 일, 사업을 하기까지 내가 내 이력서에 채워넣은 한 줄 한 줄의 시간들이 떠올라서 저 대사가 더 짠했나보다.

-같이 일했던 아랫 사람한테 했던 얘기였는데, 너가 무슨 일을 했고, 어떤 기여를 했는지 스스로 잘 챙겨라. 다른 사람들이 다 자기 일 한다고 바쁜데, 너가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까지 챙기겠냐. 못한 건 또렷이 기억해도, 잘했던 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너의 몸값은 지금 받는 월급이 아니라 내년에 계약하게 될 연봉이다 라고 했던 것들이 떠올라 저 대사가 콕 찔렀나보다.


스토브리그의 백승수 단장은 특이한 인물이다. 야구를 모르지만 우승할 수준으로까지 팀을 구축하고, 씨름과 핸드볼을 모르지만, 그 팀들도 우승시킨다. 선수들이 들으면 기함할 소리지만, 규칙을 잘 안다고, 경험이 많다고 늘 이기고 우승할 수 있는건 아니니까. 테드 래소 라는 드라마에도 미식축구 코치가 프리미어 축구 감독으로 가는게 나온다.


스토브리그 드라마를 보던 중에, '료마가 간다'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오래 전부터 보려고 했는데, 잊고 있다가 다른 책에서 료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뒤늦게 보게 되었다.

'료마가 간다'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사나이라는 것은 자기의 일생을 한 편의 시로 이룩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스노키 마사시게는 한 줄의 시도 쓰지 않았으나 그의 일생은 그대로 비길 데 없는 크나큰 시가 아니었는가?


야구 이야기로 시작해 소설속 문장으로 끝맺음 하기엔 뭔가 좀 안맞는 거같긴하지만,

스토브리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더니 한국 프로야구 얘기는 해야 할 거같고,

스토브리그의 주인공 백승수 단장의 모습을 떠올리면 한편의 시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이리 장황하게 썼다.


내 삶이 아직도 쓰여지고 있는 소설이라면, 어딘가 가슴을 울릴 절정 정도는 남아 있을 것이고,

아직 쓰여지지 않은 시라면, 아직 이룩하지 못한 무언가가 남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과 위로를 혼자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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