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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May 20. 2024

짜장면과 오징어회

묵호항의 기억

나는 짜장면을 좋아하지만, 아내가 짜장면을 즐겨하질 않아 중국집엔 잘 가지 않는 편이다.

혼자 짜장면을 먹기엔 아직 혼밥 내공이 부족한 편이고.

며칠전에 짜장면 얘기를 또 했더니, 이번엔 흔쾌히 그러자해 동네 중국집엘 갔다.

너무 오랫만에 가서 그런가 짜장면이 7,000원이라는 메뉴판을 보고 둘다 놀랐다.

짜장면 한그릇, 탕수육 작은거 하나에 32,000원을 계산하니, 돈이면..하는 생각이 절로 났다.


중학교 2학년까지 살던 강원도 고향에 중국집이 두개 있었다. 

각각 태백반점과 영동반점이었는데, 집앞 가까이에 테이블 다섯개가 있는 영동반점이 있었다.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를 졸업하던 날 영동반점에서 아버지, 엄마와 짜장면을 먹었는데, 기억을 되짚어보면 그게 600원이었다. 

충청도로 전학올 때까지 짜장면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중학교 1학년 겨울, 어느 일요일 아침에 식사를 마치자 아버지가 나와 형에게 갈 데가 있다며 옷을 입으라고 했다. 옷을 입고 나서니 아버지는 말없이 기차역으로 향했다. 기차역에 도착해서야, 묵호-지금의 동해시-에 간다고 했다.

왜냐고 묻는 내게, '옷 좀 사주려고'라고 짧게 대답하셨다.

묵호역에 도착하니, 가벼운 눈과 비가 섞여 날렸다.

아버지는 묵호역에서 나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그리고 목적지인듯, 아디다스 매장으로 들어갔다.

매장에서 몇개의 옷을 입혀본 후 내게는 붉은색과 갈색이 섞인 자켓을, 형에게는 네이비색 자켓을 사주셨다. 자켓의 왼쪽 가슴엔 실로 새긴 아디다스 로고가 박혀있었다. 

'회 한접시 먹고 집에 가자'라는 아버지 말에 묵호항으로 걸어가, 좌판에 쪼그리고 앉아 막썰어준 오징어회를 먹었다.

후루룩 오징어회 한 접시를 먹고, 방파제 앞에 형제를 세운 후 사진을 찍은 후 우리는 돌아왔다.

나중에서야, 묵호항으로 갈 동안, 오징어회를 먹을 동안, 집에 돌아올 때도 누나는? 엄마는? 하고 묻지 않았던 것이 생각났다.

새 옷에 대한 기대에, 오징어회의 달착지근함에, 눈비에도 안으로 파고들지 않는 새 옷의 빳빳함에 집에 있을 누나나 엄마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나보다.


기차 타고 옷을 사러 갔다가, 항구 좌판에서 오징어를 사주시던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대학에 들어간 후 오랫동안 대화가 끊겨, 돌아가시기 몇달 전 치료를 받고 내려가시는 길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리집에 들르셨던 아버지가 하신 말, 

'집이 참 좋구나' 

그 말씀이 참 좋아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많이 서럽게 울었다. 


올림푸스 똑딱이 카메라에 담겨 인화된 형제의 사진과 내가 찍어 드린 아버지 독사진엔, 그날 묵호항에 가볍게 뿌리던 눈비가 같이 찍혔다.

아버지도 웃으시고, 나도 형도 모두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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