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를 정해놓고 나와 아내가 한 일은 아침을 어디서 먹을까 하고 지도와 블로그를 뒤지는 것이었다. 기왕에 사찰을 다니는 거라면 즐거운 맘으로 맛있는 식사를 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다니자라는 것이 우리 부부의 생각이었다.
여태 낙산사를 여러 차례 다녔지만 늘 속초에서 덤으로 가는 길이었기에, 양양에서 낙산사로 넘어가기는 처음이었다. 양양에서 낙산사로 갈 때 아침 먹기 좋은 곳을 찾았더니 나온 곳이 감나무식당이라는 곳이었다. 7시에 문을 열고 3시면 주문이 끝난다는 인기 있는 맛집이라고 했지만, 사실 기다리며 식사를 해야 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가진 우리가 과연 기다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한편으론 일찍 가면 안 기다리고 먹을 수 있겠지 하며 생각했다.
낙산사를 목적지로, 식당을 중간 경유지로 찍고 차를 달렸다. 양양에 들어서자 지도의 축적이 바뀌었는데 식당 앞 도로에 길이 막히는 표시, 빨간색이 나오는 것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식당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식당으로 들어가는 차들이 줄지어 서있어서 빨간색으로 표시됐다는 걸 확인했다. 잠시 고민했지만, 8시 조금 넘은 시간에 어디 가서 아침을 먹을까 하고 일단 아내가 대기표를 받으러 갔다. 몇 분 만에 돌아온 아내가 하는 말, '일단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사진을 찍어와야 대기표를 준대'. 뭐 이런 식당이 다 있나.
어찌어찌 15분 만에 차를 세우게 되었다. 그러고 대기표를 받으니 앞에 42명이 있다고 한다. 역시 잠시 고민했지만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동네 주변 산책도 하고, 앉아서 얘기도 하면서 40분을 훌쩍 보냈다. 우리 차례가 되어 들어가니 사람은 많은데 생각보다 시끄럽지 않고, 막 나간 사람들의 테이블 위 뚝배기가 싹싹 비워져 있는 것이 음식맛을 기대하게 했다.
이 집의 메인이라는 황태죽과 송이 황태죽을 시키고 나니 또다시 15분이 훨씬 지나 음식이 나온다. 아침 식사하기 위해 2시간을 넘게 달려와, 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나온 음식이다.
음식맛이 어땠냐고? 기다리기 힘들었지만, 양양에 온다면 다시 와서 먹을 거같다.
혹시 양양을 가시는 분이 계시다면 도전해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하다. 기다리는 동안 옆자리에서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 꼭 아침식사가 아니라 10시, 11시가 넘어서 드신다면 기다리는 시간이 없거나, 기다리지 않고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황태죽 밥상이 정갈하다
30분도 채 안 걸려 뚝배기를 싹싹 비우고 식당을 나와 낙산사로 향했다.
낙산사로 향한 목적은 홍련암에 들러 절하고, 해수관음상 앞에 엎드려 절하자는 것이었다. 속초 여행길에 몇 번이나 가본 낙산사지만 마음을 달리 먹고 가려니 가기 며칠 전부터 마음이 설레었다.
낙산호텔 쪽 주차장으로 들어가 의상대를 지나 홍련암으로 먼저 갔다. 홍련암은 낙산사의 부속 암자로, 암자 마루에 엎드려 절하면 암자 바닥으로 관음굴을 볼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 수년 전 낙산사가 불탈 때 유일하게 화마를 피한 곳이기도 하다.
이날 마침 홍련암에서 스님이 축원 기도를 하고 계셔서 사람들이 많았다. 빈자리를 찾아 들어가 엎드려 기도하고 나오려니 많이 아쉬운데,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나와야 했다.
홍련암에서 뒤돌아보면 지나쳐 온 의상대가 보인다. 홍련암 앞에서 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길 틈도 없이 해수 관음상을 향해 걸었다.
바다 앞 작은 암자 홍련암
해수관음상 가는 길에 보타전에 들어갔더니 해설사(?) 한 분이 절에 머무는 듯이 보이는 사람들에게 낙산사의 역사와 한국불교 역사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옆으로 살짝 비껴 나 보타전에서 절하고 나와 해수관음상으로 올라갔다.
낙산사 해수관음상은 거대하지만 완벽한 아름다움을 가진 불상의 모습이다. 우리는 동해를 바라보며 서있는 관음상 앞에서 엎드려 절하고 또 절했다. 해수관음상 앞에서 절하고 주변을 살짝 돌며 동해바다를 바라보다가 원통보전에 들러 초를 밝히고 다시 절했다.
찾는 사람들이 많으니 절 이곳저곳에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놓고, 시원한 둥굴레차를 제공하니 우리도 앉아 바람을 쐬며 차를 마셨다.
절 이곳저곳을 돌며 절하고, 잠깐 쉬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커피 한잔이 그리워 여기저기 찾다가 커피맛이 좋다는 곳이 있어 차를 몰았다. 도착해 보니 중년의 부부가 하는 작은 커피숍인데, 커피맛이 정말 좋았다. 양양남대천을 앞에 두고 아내와 나란히 앉아 비 떨어지는 걸 보며 커피를 마셨다. 이런 게 여유고, 행복이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점심을 먹고 출발하려고 양양시장에 들렀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송이닭강정을 하나씩 들고 있어 우리도 사서 가기로 했다. 집에 와서 보니 양양 송이를 넣어 만든 닭강정이 아니라 그냥 닭강정인데 상표가 송이닭강정이었다. 송이를 넣었다면 얼마나 비쌌을지 왜 그 생각을 못한 걸까. 잠깐 실망스러웠지만, 속초에서 사 먹었던 만석닭강정보다 훨씬 맛있다는 아이들의 반응에 기분이 금세 좋아졌다.
낙산사의 해수관음상은 우리에겐 모나리자만큼이나 아름다운 불상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보아도 인자함을 잃지 않는 관음상 앞에서 건강과 행복, 그리고 사업이 잘되기를 빌고 또 빌었다.